크롬웰의 정치와 왕정 부활 | * 청교도 혁명으로 크롬웰이 집권함 → 크롬웰의 정치(아일랜드 정복, 항해법 발표, 청교도적인 독재정치) → 항해법 제정(영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은 반드시 그 물건을 생산한 나라의 배나, 영국의 배로만 실어 나르도록 한 법이다. 이 법은 해양국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영국이 유럽 최고의 해양 대국이 되도록 만들었다. 항해법은 영국의 무역 발전에 기여하였다) → 이러한 업적에 교만해진(권력욕을 가진) 크롬웰은, 나라를 지킨다며, 영국의 수호자라면서, ‘호국경(護國卿)’ 이 되어, 전권(專權. 혼자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름)을 행사하였다. → 특히, 청교도 윤리(금욕주의)에 기초한 음주와 독박 금지 등의 조치는 국민들의 불만을 초래하였다. → 이로써 크롬웰의 사후(死後)에, 왕정복고(王政復古. 공화정이나 그 밖의 다른 정체가 무너지고 다시 왕정으로 되돌아가는 일)가 이루어졌다. → 그가 죽은 뒤 독재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져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왕정복고(왕정의 재수립)는,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국이 종말을 맞은 뒤, 1660년에 찰스 2세가 영국 왕위에 복위한 사건을 말한다. → 왕정은 군주정과 동일한 의미이다. 왕의 뜻대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왕정이다. 국민의 대표자(대변자)들이 모인 의회중심의 정치는, 여러 사람들의 의사(의견)를 듣고 하는 정치를 공화정이라고 한다.
* 의회파는 나중에 장로파(지주 귀족, 상층 시민들)와 독립파(산업 자본가, 중소 상인들)로 분열됨 → 장로파는 ‘장로교 확립과 입헌군주제’ 주장, 독립파는 ‘신앙의 자유와 간접선거에 의한 공화정’ 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