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0] 장영창(張泳暢) - 하늘 길은 슬프다 4. ‘더 웨이 어브 더 월드’와 ‘통일세계’와 ‘주간종교’의 출간 - 3
21 이렇게까지 되어 드디어 나는 기사의 내용은 그대로 남겨놓고, 목사님의 이름만 딴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어 넣기로 하고, 타협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당시 나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22 일반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통일교회가 발간하는 신문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속으로 울 수밖에는 없었다. 이 이외에도 물론 슬픈 일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일일이 그것들을 기록할 수는 없는 일이다.
23 여하튼 우리들은 그 기독교 회관에서 약 1년 동안을 두고 신문을 발간하다가 광화문에 있는 고려빌딩의 8층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주간종교를 비롯해서, 통일세계, 국제승공보, ‘더 웨이 어브 더 월드’(The Way of the World), 그리고 '풀과 별’이라는 일반 사회와 문학계를 상대로 하는 “월간시지”(月刊詩誌)까지를 책임지고, 출판사업을 관장해야만 했었다.
24 참으로 나는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1975년 5월 28일, “구세영우회”를 출범(出桃)시킬 때까지 줄곧 그곳에서의 집무를 계속했던 것이다.
25 그런데 내가 영적(靈的)인 사업을 초종교적(超宗敎的)인 입장에서 담당하는 “구세영우회”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던 데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숨은 일들이 있었다.
26 내가 주간종교의 편집국장이 되어 열심히 집무하고 있던 1974년의 어느 날이었다. 한 장의 두터운 편지가 나에게 보내져 왔다. 편지를 뜯어보았더니 참으로 이상한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27 무려 큰 종이에다 글을 앞뒤로 열몇 장이나 적어 보내온 것이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았을 때, 대략 다음과 같은 것으로 요약할 수가 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남한산성에서 약 10년 가까운 세월을 두고, 생식을 하면서 땅굴 속에서 수도를 해 나온 스님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28 그리고 자기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에 이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중대한 문제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29 첫째로, 자기가 알기에는 우리나라의 서울에 있는 장충단공원은 명당 중의 명당이다. 그래서 그 장충단과 박정희 대통령의 운명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곳에다 영빈관과 같은 고층건물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명당기운이 쇠해가고 있다.
30 따라서 그 건물들을 하루속히 철거시키지 않으면, 박정희 대통령의 주변에서 큰 불상사가 생기게 되어 있다. 그러니 장 선생께서 빨리 청와대에 연락해서 그것을 철거하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