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손수 돌본
한국의 방위산업>
☆인사말씀☆
<한국의 방위산업 총론>
최근의 대규모 글로벌 정치사회사건으로서 우크라이나 영토 전쟁과 중동의 종교전쟁 그리고 미중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계속되면서 이에 따라 벌어지는 경제적 요소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2024년도 경제성장률 목표인 2.6% 성장과 수출 7천억 불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보도입니다.
안정된 글로벌 경제에서 전통적인 수출대종 품목인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류등에서 반도체를 빼고는 모두가 수출 증가 감소 때문에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낮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난국에서 세계 경제 군사대국만이 할수 있는 원전과 방산품목이 새로운 정밀 기술집약제품목으로 수출품목이 되었다는 낭보로 위안을 삼습니다.
박정희는 60년대의 한강의 기적을 뛰어 넘고 70년대 초에 부닥친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고 부국강병의 국가를 건설하여 선진국을 항한 K 방산과 중화학을 탄생시켰습니다.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탄핵과 특검에 빠진 정치 사회적 소요와 혼란은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지경입니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동지들 특히 MZ세대들은 궐기하여 자유주의의 윤석열 정부에 힘을 실어주도록 하여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친북반미의 공산주의는 안됩니다. 나라를 망칩니다.
필자는 박정희 정부의 70년대초 방산과 중화학의 최초 최후 담당자로서 오늘날의 난국해결에 도움이 될까 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은 한국의 방위산업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총론으로 작성한 것이며 4,5에 걸쳐 각론이 뒤따르겠습니다.
( 박정희의 K방산 총론)
박정희 대통령의 K 방산은 71년도에 겨우 후진국에서 신생 경제개발국으로 승격된 한국이라는 소국이 그의 자주국방 철학 아래 병기와 장비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에 착수하였다.
내각의 국방부를 비롯한 재경당국과 자주국방하라던 미국마저도 박정희의 방산착수에 반대하였다.
박정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청와대에 방산
T/F 조직( 팀장 오원철 수석비서관)을 설치함으로써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는 사업으로 발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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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한국의 방위산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철학인 자주국방건설 비전과 결심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방위산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71년 당시 한국의 경제위상은 1인당 gnp가 278불이고 수출 13.5억 불 밖에 안 되는 동방의 소국이 방위산업에 착수할 국가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박정희는 국방과학 연구소(ADD)에 기본병기의 시제(시험생산)를 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방산에 착수한 것이다.
ADD는 번개사업이라는 작전명을 목에 걸고 약 2년간의 노력 끝에 볼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성공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은 VIP 시사회에 참석하여 성공현황을 참관하기도 하셨으며 집무실 옆에 국산병기를 진열해 놓고 입장하는 장관들에게 자랑하며 설명하는 지극정성도 보여 주셨다.
방산착수의 기초인 시제는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중화학의 추진 이유 중의 하나인 방위산업 육성이 기계공업을 만난 것이다.
이 만남이 구조적으로 견고하고 효과적인 한국식 방위산업 공업을 건설하는 기초를 만든 것이다.
정부를 대표한 EPB의 화려하고 막대한 투자를 요하는 4대 핵공장 건설 건의를 접수치 안 상공부 오원철 차관보의 "병기는 부품의 결합체"라는 초라하지만 방대한 투자를 요하지 않는 기계공학의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방위산업 육성원칙이 수립된 것이다.
중화학과 방산 시젠의 만남의 결과가 방위산업 육성을 가져왔고 기계공업은 방위산업이란 대수요를 만나 기계공업이 육성된 것이다.
이원리를 실천으로 옮기기 위하여 제1차적으로 추진한 것이 방산육성의 제도화를 기하는 법령 제정이었다.
방산육성의 일차적 책임부서인 국방부는 "군수조달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고 청와대는 각의를 대신하는 기구로 정부조직법 2조 2항에 의거 경 제각의 급 "중화학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청와대 경제 2가 관장하며 위원회 행정업무는 중화학 기획단이 담당토록 했다
이와 더뷸어 중화학과 방산건설을 위한 건전한 자금조달을 위하여 국민투자 기금법을 만들고 국방부는 추진 도중에 방위세법을 만들었다.
이러한 만반의 기본사항이 사전에 만들어진 조처에 힘입어 박정희의 방위산업은 제도적으로 추진하는 국가산업이 된 것이다.
또한 법령의 규정에 의거 상공부가 민간의 방위산업 업체를 지정하게 됨으로써 한국의 방위산업과 중화학은 정부 시책대로 방위산업은 민간에 의한 국가기업이 된 것이다.
상공부는 행정조치로서 청와대 경제 2와의 협의 후 방산업쳬를 지정하고 방산공장은 창원기계 공업단지에 집중적으로 건설토록 하였다.
방산이나 중화학은 희망업체가 없었다. 대통령의 승인아래 한국의 10대 민간기업은 방산이나 기계공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만들어 정부가 강제 지정하다시피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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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한국의 방산과 중화학은 민간의 대기업이 담당하는 형태가 되어 대기업이 있는 곳에 중소기업이 발전하는 형태가 되었다
예를 들면 당시 한국의 1,2위 기업으로 삼성의 삼성정밀은 삼성항공을 만들어 F16 항공기 엔진을 면허생산하여 항공기 산업을 개척하였고 삼성테크윈이 K9 무반동포를 개발하였다
삼성의 구조조정으로 삼성의 방산과 석유화학을 매각함으로써 한화가 매입한 것이다.
한화는 한국화약으로서 안강의 풍산금속과 더불어 탄약생산 지정 업체였다.
현대는 현대차량이 전차 생산지정업체가 되어 현재의 현대 로뎀이 되었다
창원단자에 방위산업 업체로 지정되면 무조건적인 융자혜택이 주어졌고 국방부의 율곡사업
발주 시 방산업체에만 기회가 있었다. 대통령 순방 시 때로는 병역면제 혜택도 주어졌다.
박정희의 K 방산을 생산구조면에서 보면 중화학으로 건설된 철강, 비철금속과 합금 주물을 제공하는 금속공업이 육성됨으로써 원자재 국산화가 이루어 짐으로서 피라미드의 정상을 건설한 것이다.
중화학에 의한 전자나 석유화학제품도 필수적이다.
특히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중화학용 기술인력양성에서 기계공고를 방산용 정밀기능사 양성 공고로 특성화하여 양성하였다는 것이다.
방위산업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중화학이 있는 곳에 방위산업이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방위산업은 최우수 성능의 제품을 염가로 납기를 지키며 생산하는 기계공학의 기본을 교훈으로 지킴으로서 K 방산의 기반이 구축된 것이다.
현재 K 방산이 수출하는 주품목은 K2 전차, 레드백 정갑차, K9 자주포, 다연장 로켓. , 전투기로 FA50, KA 21 그리고 유도 무기로서 천무와 천궁 2등이 있다.
박정희의 국가 자주국방으로 착수한 K - 방위산업이 50여 년 전 1억 불, 10년 전 10억 불에서 시작하여 2024년 현재 200억 불의 수출을 예상하고 있으니 K 방산이 수출산업이 되었다.
K 방산의 수출화의 공로는 민간기업과 기계기술자의 공로이다. 오늘날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촉망되는 첨단산업 형태이다.
박정희의 K방산은 탄생 후 50여 년의 역사는 순풍에 돛 단 항해의 역사는 결코 아니고 피눈물 나는 역경과 파와의 전투에서 자유민주주의 투사들의 총화단결로 만들어진 결정체인 것이다.
좌경 친북 반미 정부에서의 탄압은 방위산업을 말살하겠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방산업체는 견고한 국가관으로 무장하여 견디어 냈다.
그러므로 K 방산 성공의 일등공신은 방산기업체이다.
필자는 박정희의 K 방산 착수의 주역으로 일하신 분들을 잊을 수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각하
그립습니다.
K 방산의 야전 사령관이셨던 필자의 직속상관이 셨던 김정렴 비서실장과 오원철 수석을 비롯해서 시사 시 순직하신 이석표 비서관, 긴급 시 창원현장에서 주재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