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미 6:9-16 절이고, 제목은 “주를 경외함이 지혜”입니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불의로 쌓은 재물과 거짓말 하는 자들을 쳐서 병들어 황폐하게 만드시고, 농사를 지어도
수확을 누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백성들이 가장 패역했던 오무리와 아합의 전통을 따라갔기에 그들은 반드시 조소와
수욕을 당하게 됩니다.
묵상
오늘은 ‘지혜를 묵상합니다.
히브리어 ‘호크마’(חׇכְמָה-chokmâh)는 성경에서 가장 보편적(150회 이상)으로 지혜(wisdom)로 번역 사용(신 32:6; 시 111:10;
잠 1:2, 7, 20; 전 6:8)되고 있는
것으로, “현명하다, 지혜롭다”라는 동사 ‘하캄’(חָכַם-châkam)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지혜’로 사용된 히브리어는 ‘투쉬야’ (תּוּשִׁיָּה-tûwshîyâh)입니다. 이 ‘투쉬야’(תּוּשִׁיָּה-tûwshîyâh)는 성경에서 총 12회(KJV) 사용되었으며, ‘지혜’를 말함 에 있어서 좀더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건전하고, 효율적이고, 지속적이면서, 실용적인 면을 다루는 특정한
단어로서 “영원한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직접 사용하신 것(사 28:19; 미 6:9)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이러한 ‘지혜’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여호와께서 “주를 경외함”이라고 직접 알려주고 계십니다(9절). 여기서 ‘경외함’이라는 히브리어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라는 동사인 ‘야레’(יָרֵא-yârêʼ)의 명사형인 ‘이레’
(יִרְאֶה-ireh)입니다. 동사 ‘야레’(יָרֵא-yârêʼ)의 가장 기본적 의미는 “두려워하다”이지만, 이것은 무서워서 두려워만 하기 보다는
신비롭고도 강력함에 압도된 이끌림을 말하는 것으로 ‘경외하다’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죄인은 마땅히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지만, 믿음으로 의인됨으로 담대하게 그 분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경배(예배)하게 하는 능력으로서 ‘경외함’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불붙는 떨기나무를 보고 무서워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더 가까이 나갔을 때의 상태(출 3:2,3)와 같은 것입니다.
날마다 범죄하여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죄성을 가진 연약함으로 인하여 매 순간 두렵고 떨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기를 사모하여 그 분의 영광스런 임재 앞으로
기꺼이 담대함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열망하는 상태가 바로 ‘경외함’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진정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지혜를 갖기 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외함은 실패와 범죄의 넘어짐으로 인해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나아와 거룩하신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이 너의 힘과 능력으로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겸손함을 가질 때만 가능한 것임을 기억 하여라.”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레마’입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마음은
원하지만, 거듭하여 넘어지고 실패하는 연약함을 고백 드립니다.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용서 하옵소서. 오늘도 당신의 거룩함을 사모하게 하사,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참된 경외함으로 거룩하신
아버지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지혜자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