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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첫 출정 (5)
감공 대(帶)와 외후(隗后)가 죽음으로써 주왕실의 내란은 종식되었다.
주양왕(周襄王)은 진문공에 대해 감동했다.
"정말 고맙소. 경의 노고에 대해 치하하는 바이오."
주양왕(周襄王)은 크게 잔치를 베풀고 진문공과 그 군대를 위로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진문공에게 말했다.
"경의 소원을 말해보시오. 내 기꺼이 들어주겠소."
주왕실의 분란을 해결해준 공로에 대한 보답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관례이기도 하다.
- 망극합니다. 신은 제후로서 할 일을 다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겸양의 대답을 올리는 것 또한 관례였다.
그러면 천자(天子)는 공을 세운 제후에게 관작을 더 한다든가 왕실의 보물을 내린다든가 함으로써 양쪽 모두 좋은 모양새로 헤어진다.
그런데 이때 진문공(晉文公)의 대답은 사믓 뜻밖이었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수(隨)를 허락해주십시오."
수는 수장(隨葬)이라고 한다. 무덤 안의 길을 말한다. 무덤 안에 길을 내는 것은 오직 천자의 무덤에만이 가능하다. 일반 사대부들은 물론 제후에게도 허락되어 있지 않다. 천자(天子)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진문공은 감히 '수(隨)를 허락해주시오'라고 청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자신이 천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 막 군위에 오른 진문공(晉文公).
한껏 겸손해도 시원치 않을 시기에 감히 천자의 상징인 '수(隨)를 허락해달라니.
진문공의 가슴속에 언제부터 그러한 야망이 싹트고 있었던가.
진문공(晉文公)의 엉뚱한 요청에 주양왕은 안색이 돌변했다.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수(隨)는 천자와 신하를 구분하는 징표이오. 내 아무리 주왕실의 천자라고는 하지만 한 개인의 수고에 보답하기 위해 국가 대전(大典)을 어길수는 없소. 그것은 누구보다도 경이 잘 알 것 아니오?"
그러자 이번에는 진문공(晉文公).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술잔을 들이켰다. 그렇다면 진문공이 거절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한 요청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정말로 천자의 상징인 수(隨)를 허락받을 줄 알았던 것일까.
아니다. 진문공은 다른 것을 노리고 주양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수(隨)'를 요청했음에 틀림없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한 연극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주양왕의 첫 물음에 선뜻 '망극합니다'라는 평범한 대답을 했을 경우, 주양왕(周襄王)은 고작 진문공에게 관작을 더하고 '고래의 술잔'이나 그릇을 내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전례가 있다. 주양왕의 아버지 주혜왕(周惠王)은 왕자 퇴(頹)의 반란을 진압한 정여공에게 고래의 술잔을 하사한 적이 있다. 주양왕도 그러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고래(古來)의 술잔' 따위는 진문공(晉文公)에게 하등 필요가 없다. 그가 필요한 것은 그릇 따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진문공에게 있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 땅이다.
진문공(晉文公)은 자신의 영토인 고원지대에서 평원지대인 중원(中原)으로 나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왕실은 가난했다. 공신에게 하사할 땅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질 못했다. 기껏 보유하고 있는 것이 낙양 주변의 직할령이다. 진문공(晉文公)이 노리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땅이었다.
그러나 그 땅을 처음부터 달라고 하면 주양왕이 허락할 리 없다. 따라서 그는 '수(隨)'를 요구함으로써 주양왕을 궁지에 몰아넣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2차로 요구할 참이었던 것이다.
진문공(晉文公)의 이러한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주양왕 또한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단번에 진문공이 관작이나 보물 따위로 물러가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보통내기가 아니군.'
그렇다고 얼마 남지 않은 직할지를 내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주왕실은 그야말로 땅 조각 하나 없는 무일푼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주양왕(周襄王)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수((隨)를 허락할 수는 없는일. 대신 경에게 온, 원, 양번, 찬모 등 하내(河內)의 네 고을을 내려주겠소."
땅을 내주긴 하였으되, 모두가 주왕실 땅이 아닌 주인 있는 땅들이었다.
'어이가 없군. 그 땅의 주인들이 순순히 내게 넘겨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진문공(晉文公)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감격한 듯 머리를 조아려 사은하며 말뿐인 하내(河內)의 땅을 하사받았다.
"주왕실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진문공(晉文公)은 일단 낙양에서 철수하여 강성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성질 급한 위주가 투덜거린다.
"이번에 주공께서는 헛농사를 지으셨다. 어찌하여 주인 있는 땅을 받아 주양왕에게 생색만 내게 하였는가?"
이 말을 들은 진문공(晉文公)이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부터 하내(河內) 네 고을을 차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주왕실로부터 그 땅을 분양받았으니, 군대를 동원한들 누가 우리를 비난하겠는가?"
이번에는 조쇠(趙衰)가 물었다.
"돌아가는 길에 하내의 땅을 접수하면 될 것을 굳이 강성으로 귀환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진문공(晉文公)이 다시 대답했다.
"진목공(秦穆公)이 먼저 근왕병을 일으켰으면서도 우리의 말을 들어 황하를 건너지 않은 것은 우리가 주왕실의 일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주왕실을 안정시키고 하내(河內)의 땅까지 얻었으니, 진목공은 지금쯤 우리를 무척 시기하며 원망하고 있을 것이오. 듣자하니 요사이 진(秦)의 속국인 약(鄀)나라가 진을 배반하고 초(楚)나라에 붙었다 하니, 우리는 먼저 약나라를 쳐서 진목공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하내(河內)의 땅을 접수하지 못할 것이오."
진문공(晉文公)의 말을 듣고 조쇠가 감탄한다.
"우리 주공이야말로 천하의 일을 바둑판 들여다보듯 하는구나. 진(晉)나라는 조만간에 천하 맹주가 될 것이다."
그해 진문공(晉文公)의 움직임은 눈부실 정도였다.
1월에 강성을 떠나 3월에 주왕실의 분란을 해결하고, 6월에는 다시 강성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조쇠에게 말했듯이 진목공과 연합하여 진(秦)을 배반한 약(鄀)나라를 공격, 끝내 항복을 받아내 진목공(秦穆公)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 이제 뒤는 염려 없다.
모든 병력을 하내(河內) 쪽으로 집중해도 진목공이 진(晉)의 영토를 침공할 염려가 없어진 것이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