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 매켄지, 정교가 기록한 을사조약 체결 스토리 1부- I. B. 비숍의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와 황현의 ⌜매천야록⌟
윤치호 일기를 읽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호기심, 흥분과 새로운 발견과 이해 속에서 계속 근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의 기록과 당시 조선에 거주하거나 조선을 여행한 외국인들의 글들을 읽으며 멸망의 길로 치 달았던 조선사회를 종합적으로 입체적으로 그려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벨 비숍의 글들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었다.
이사벨 비숍은 1894년 1월에 요코하마를 경유하여 1894년 2월에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189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서 조선을 방문하여 얻은 그의 경험과 지식을 1897년 11월에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이라는 책에 쏟아 부었다. 그는 동학 농민봉기, 청일전쟁, 농민전쟁과 을미사변, 아관파천이라는 조선 역사의 격동기를 목격한 자였다. 그는 책의 결론 부분인 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에는 그가 조선을 여행하며 인식한 조선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나온다.
아래는 신복룡 역주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조선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국가는 아니다. 조선의 자원은 고갈된 것이 아니라 미개발 상태이다. 성공적 경작을 위한 조선의 능력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기후는 멋지고, 강수량은 풍부하며, 토양은 비옥하다. 언덕과 골짜기는 석탄, 철, 구리. 아연, 금을 매장하고 있다. 1,740마일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어장은 국부의 원천일 것이다. 조선에는 근면하고 호의적인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조선 사람들의 힘은 휴지 상태이다. 상위 계층은 사회적 의무의 부조리에 마비되어 있으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며 일생을 보낸다. 중간 계층에게는 출세의 길이 열려 있지 않다. 중간 계층의 에너지를 전환시킬 수 있는 전문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매우 충분한 이유들로 인해 ⌜늑대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이상으로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조선은 모든 면에서 열악하고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서울에서조차도 가장 큰 시장의 규모가 상점 정도이다. 계층적 특권, 국가와 양반들의 수탈, 불의, 불안정한 수입, 개혁되지 않은 다른 모든 동양 국가들이 기초하고 있는 최악의 전통을 수행해 온 정부, 책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공식적 약탈자들, 대궐과 대단찮은 후궁에 칩거하며 쇠약해진 군주, 국가 내의 가장 부패한 사람들 간의 밀접한 연합, 이해관계가 얽힌 외국의 상호 질시, 널리 만연되어 두려움을 주는 미신이 이 나라를 무기력하고도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겪은 첫인상이었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423,424쪽
중략 …
몇 년 동안 조선을 망신시켜 온 정치적 당파 싸움은 결코 원칙에 대한 다툼이 아니었고 자신들의 식솔에게 공직과 돈을 제공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고위 관리들이 함께 일하는 것을 막는 것도 부분적으로 자신의 동료들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왕에게 행사하고 싶은 대신들의 욕구 때문이다. 한국어 사전의 저자가 말하기를, 한국어로 일(work)이라는 단어는 ⌜손실⌟,⌜죄악⌟,⌜불운⌟의 유사어 라고 한다. 게으른 삶을 사는 사람은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자신의 권한을 입증하는 것이다. 관리들이 그의 수하를 통해 제기하는 가장 강력한 불만은 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관직에 임명되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최대한 ⌜쥐어짜내는⌟것 이외에는 할 일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424,425쪽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지겹게 반복했다. 농사꾼들은 다른 어떤 계층보다 열심히 일하고, 토지의 생산성과 다소 원시적이지만 토양과 기후에 매우 잘 적응된 그들만의 기술들을 쉽게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수확에 대한 소유권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하는데 만족하고, 더 좋은 집을 짓거나 훌륭한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방관들과 양반들의 대출 강요와 수탈로 인해 경작지가 해마다 감소하는 농부들이 부지기수로 있는데, 그들은 현재 겨우 하루 세 끼의 식사가 가능한 정도이다. 수탈당하는 것이 확실한 운명을 가진 계층이 최악의 무관심과 타성과 무기력의 늪으로 가라앉아야만 했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여러 가지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가망 없는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교육에 의해, 생산 계층 보호에 의해, 부패한 관리들의 처벌에 의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일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정부의 모든 공직의 업무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어야 한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424,425쪽
비숍은 청일전쟁의 결과물로 조선이 청나라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으나 영토 보전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졌고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운명을 놓고 대립하는 상황에서 조선을 떠나며 안타까워하였다.
그가 떠난 후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서 나와 ⌜대한제국⌟을 선포하였으나 그 나라는 비숍이 제안하는 개혁과 갱신으로 건립된 새로운 국가가 아니었다. 당시 망해가고 있는 나라를 살리려는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의 개혁을 위한 몸부림도 고종의 황국협회 사주로 해체되었다.
대한제국은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중립국 선언을 하였지만 러일전쟁이라는 덫에 치여서 마침내 1905년 11월 18일 한밤중 1시에 을사조약 서명으로 외교권을 상실하였다.
비숍이 말했던 ⌜가망 없는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교육에 의해, 생산 계층 보호에 의해, 부패한 관리들의 처벌에 의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일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정부의 모든 공직의 업무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는 일은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역사를 향해,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지며 당시 을사조약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책 황현의 ⌜매천야록⌟, F. A.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 정교의 ⌜대한계년사 7⌟에서 을사조약 관련 부분을 발췌해서 당시의 긴박하고 암울한 정황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다음은 ⌜매천야록⌟에 나오는 을사조약에 관한 부분이다. 당시 전남 구례 월곡에서 살았던 황현의 기록은 그리 길지 않다.
왜놈들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하다
21일(경신)밤, 왜놈들이 대궐을 침범해 신조약을 강제로 성립시키고, 참정대신 한규설을 면직해 유배했다.
이등박문이 도착하자 장안이 흉흉해져 변란이 일어날까 의심했다. 장안 사람들은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부대신 권중현 등이 입을 다물고 관망하거나 몰래 서로 일을 꾸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밤에 구완희. 박용화 등이 왜군을 이끌고 궁궐 담을 에워싸며 대포를 설치했다. 이등박문과 임권조, 장곡천이 곧 바로 어전에 들어가 다섯 개 조항의 신조약을 내어 놓고 임금께 서명을 요구하였지만 임금이 듣지 않았다. 구완희가 위협하며 말했다.
“이러시면 벽력이 떨어집니다.”
임금이 벌벌 떨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 때 이지용 등이 입시해 있었는데, 참정대신 한규설이 분노하며 말했다.
“나라가 망하더라도 이 조약은 허락할 수 없다.”
이등박문이 온갖 방법으로 협박하고 꾀었다. 임금이 말했다.
“이것은 외부의 일이니 대신에게 물어야 한다.”
박제순이 주사를 불러 외부 직인을 가져오게 하여 찍게했다. 임금은 끝내 도장을 찍지 않았고, 한규설도 찍지 않았다. 외직 외부대신 이하 각 부 대신들만 찍었다. 한규설은 강제 조인이 이미 끝난 것을 보고 분노하며 절규하였다. 이등박문이 임금의 명을 거짓으로 꾸며 그를 삼 년간 유배 보냈다.
이로써 장안 백성들은 기운을 잃고 방방곡곡에서 백 명, 천 명씩 무리 지어 “나라가 이미 망했으니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하며 크게 부르짖었다. 그들은 미친 듯 취하고 슬프게 울부짖었으며 몸 둘 곳이 없는 사람처럼 웅크리고 다녔다. 밥 짓는 연기도 오르지 않아 정경이 참담했으니,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듯했다. 왜놈들은 군대를 보내 순찰하며 비상경계로 마주앉아 욕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황현 ⌜매천야록⌟,348, 349쪽 서해문집, 2016년
2부로 계속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미시
우담초라하니
참고서적
*I. B. 비숍 저,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집문당, 2000
*황현저, 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서해문집,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