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너 명 : <종교너머 아하!>
* 방송 시간 : 2024년 9월 9일 (월) 오후 6시-7시
* 주제 : 아시아종교평화학회, 원광대평화연구소 공동학술회의
* 제작 진행 : 오경석 PD
* 청취권 : 서울 경기지역 FM 89.7 | 부산 영남지역 FM 104.9
대구 경북지역 FM 98.3 | 광주 전남지역 FM 107.9
전북 충남지역 FM 97.9 MHz
매주 월요일 코너입니다. ‘종교너머 아하!’
종교의 울을 넘어, 이웃종교와 화합하고 협력하는 분들을 초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인데요. 한국과 일본 종교인들이 중심이 돼서 설립한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원광대 평화연구소가 지난 8월 30일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공동 학술회의를 열었습니다.
주제는 <적의 계보학: 우리에게 적은 무엇인가>였는데요. 과연, 우리에게 적은 무엇이고, 적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 적을 없애 이기면 평화는 오는 것인지, 이날 학술회의를 주최한 원광대 평화연구소장 원익선 교무님과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교무님 안녕하세요.
1. 반갑습니다. 제가 소개한대로,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원광대 평화연구소가 공동 학술회의를 열었습니다. 두 단체의 인연이 어떻게 됩니까?
아시아종교평화학회는 작년 11월 16일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시 소재의 쇼센지(정천사)에서 한일의 종교인, 종교학자, 평화학자들이 모여 결성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일본의 국제종교문화연구회와 한국의 종교평화를 연구하는 레페스 포럼이 한일을 오가면서 포럼을 개최하며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작년의 포럼 주제는 ‘종교의 무엇이 평화인가, 아시아적 맥락에서’였습니다. 레페스포럼은 그 동안 종교와 평화를 주제로 한국에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날 회장에는 일본 종교사상 및 인도 아프리카학을 연구해 오고 요카이치 대학 명예교수님으로 계시는 기타지마 기신 정토진종 스님이 회장으로, 강남대학교 교수와 보훈교육연구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인권평화연구원장으로 계시며 평화학을 연구해 오신 이찬수 목사님이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저는 이 학회의 기획위원으로 레페스포럼이 창립될 때부터 참여해왔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회장님과 이찬수 부회장님은 제가 재직하고 있는 원광대의 학술모임에 수차례 참여하셔서 저희 대학과는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2020년에 제가 소장이 되어 맡고 있는 원광대 평화연구소와는 이번에 처음으로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본격적인 공동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인류의 평화를 지향하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두 조직이 앞으로도 학술회의를 공동으로 열어갈 예정입니다.
2. 이날 학술회의의 주제가 <적의 계보학: 우리에게 적은 무엇인가>였는데요. 여기서 적이란 게 어떤 의미인가요?
오늘날 전 세계는 국지적인 전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는 고작 몇 년을 빼고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무모한 증오의 대가로 세상은 막대한 재산 상실과 인명 살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명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쌓아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과 증오는 우리 내면의 불안과 생존 투쟁의 현실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 자신들끼리는 물론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분리된 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사실 적은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연기적인 관계를 끊는 인간의 무명과 무지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강조한 연기의 세계 내에서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불종성을 가진 한 인류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류는 다 같은 하느님의 창조로 맺어진 형제자매라고 했으며, 소태산 대종사님도 모든 존재는 은혜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고 밝힌 것처럼 실제로 진화심리학에서는 상부상조로 인류가 진화되어 왔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적은 결국 우리의 분열된 마음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보고 있는 갈등과 전쟁인 것입니다.
3. 쉽게 말하자면, 평화를 해치는 개념으로 적을 이해하면 될까요?
평화학자 요한 갈퉁 교수님은 전쟁 같은 물리적 폭력이 부재한 상태가 소극적 평화, 물리적 폭력을 포함해 사회 구조적인 폭력까지 부재한 상태를 적극적 평화라고 합니다. 차별이나 멸시 등의 문화적 폭력은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공존하면서 은혜를 주고받는 평화를 깨는 일이 최초의 적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는 일상에서 갈등과 분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집단적으로 증폭된 분쟁과 전쟁은 원수를 상정하여 박멸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입되어 발생한 적과의 대결입니다. 이웃과 또는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는 아군과 적 쌍방을 고통과 병, 살상으로 뒤덮이게 합니다. 결국 내면의 평화와 외부의 평화를 해치는 갈등 그 자체가 바로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평화롭지 못한 이유도 다양하듯이, 적의 개념도 다 다를 수 있겠군요?
적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사랑과 증오는 손바닥의 앞뒷면이라고 하듯이 사랑하는 만큼 증오도 깊어집니다. 그 어떤 사랑도 지속될 수 없는 한계를 인간은 안고 살아가는 데요. 그 이유는 마음이 변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무상한 나라는 존재마저도 고정되어 있지 못하는데 외부의 적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상의 평화가 지속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과의 대화와 대화를 통한 이해가 이뤄질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 울타리를 치고, 시비이해의 관계로 저울질하면서 상대방이나 주변에 대한 시각을 시시각각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적과 아군이 합종연횡 하는 것은 욕망이나 욕구에 따라 적에 대한 개념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이날 학술회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는지 궁금한데요. 다 들어볼 수는 없겠고, 꼭 소개해주고 싶은 내용이 있을까요?
모두 금은 보석 같은 말씀이라서 다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우희종 교수님의 <적이라는 이름의 허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교수님은 노벨상 수상자인 존 쿳시(John M. Coetzee)의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barians, 1980)에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공의 ‘야만인’이란 적을 공식적으로 만들어 내부 문제 원인을 외부 대상에게 돌리는 손쉽고도 전형적인 인간 모습을 지적하는 것을 통해 국제사회, 한국사회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개체나 집단의 결코 이뤄질 수 없는 평화에의 염원이 적을 만들어 내는 기반이며, 관계망 속에 형성되는 개인의 개체고유성이나 집단 정체성이 온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적이다.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진정한 적의 계보란 우리의 관념화된 양비나 양시론의 실체적 대상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내면에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평화와 안녕을 깨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다 보니 적은 악의 소산이 된다. 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라고 하십니다. 평화라는 자의적인 규정의 한계, 적의 상대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을 넘어서는 선의 일상성을 실천하고, 선악의 이분법적 어리석음을 뛰어넘는 당당한 분노는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우희종 교수님의 발표에 대해 많은 질의응답이 오갔습니다. 그 외에 기타지마 기신 회장님의 <적대의 원천을 해명하고 화해를 향하는 길>, 홍이표 선생님의 <한국 개신교의 적 개념 형성사 개관>, 박문수 선생님의 <적의 계보학: 6.25전쟁 전후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중심으로>, 박현도 선생님의 <팔레스타인 단상: 정치적 손실을 따지는 비참한 전장>, 테라바야시 오사무 선생님의 <애국심과 내셔널리즘>, 저의 <적과 전쟁에 대한 불교의 인식>, 오오하시 켄지 선생님의 <신 부재의 문명과 내면의 적: 시장신학의 지배와 황폐>라는 흥미진진한 연구 발표들이 있었습니다.
6. 우리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참 평화롭지 못하고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잖아요. 다 같은 한국인인데 적을 대하듯 하고, 이젠 누가 적인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지 모르겠어요. 교무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분열은 분단이 그 원인입니다. 근본모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공존하던 한반도의 백성이 힘에 의한 일제식민강권통치에서 고통 받고, 다시 유럽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북이 분열되어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 분열이 남한 사회마저도 남남갈등의 상황을 낳고 있습니다. 또한 이 분열의 틈을 노려 단죄 받지 못한 친일반민족주의자들이 다시 활개 치는 불의와 부조리가 가세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정의가 무너지니 자신과 일족의 이익을 앞세운 무리들이 판을 치고, 진리와 양심과 대중을 속이는 파렴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현들의 말씀대로 일단 파사현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준엄한 하늘의 질서를 회복한 후에 모두를 감싸 안는 포용과 일치를 위한 화합을 이뤄야 한다고 봅니다. 지자본위의 차원에서 높은 도덕성을 지닌 인물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면 한국은 세계의 리더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7. 우리가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참 교묘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런 공부를 끊임없이 해나가야겠어요?
적을 무화시키는 마음공부가 중요합니다.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원이라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말씀처럼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고, 정의를 세우는 동시에 불의와 부조리를 없애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이 적입니다. 이웃을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대하는 마음이 바로 평화를 구축하는 근본입니다. 사회를 분열시키는 원인을 잘 분석하고, 우리 자신들이 그 분열을 일으키고 적들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살아가는 동안 성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이 사회에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전쟁은 인간끼리 적을 만들고, 기후위기나 생태계 파괴는 우리를 둘러싼 지구와 자연을 적으로 돌린 결과입니다. 결국 적을 만든 인간은 그 적이 부메랑이 되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이러한 현실을 반성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원음방송을 비롯한 종교방송들이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며 감사한 일입니다.
8. 종교는 이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겠죠?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신의 귀환, 종교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평화에 반하는 행동을 한 기성종교인들의 잘못도 있지만, 자본주의에 의한 신자유주의와 같이 지구 자원을 고갈시키고 인류를 더욱 더 적대 관계로 분열시키는 세력을 막는 것은 종교의 가르침 외에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과 은혜에 기반한 인간 연대를 통해 모든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작업이 바로 문명을 살리고, 지구의 고통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나라는 개체에 매몰되지 않고 무아와 대아로 자신을 확장하고, 타자를 나와 같은 존재, 나와 뿌리를 같이 하는 존재, 법신불과 하느님의 분신으로 보고 환대하는 역지사지의 황금률을 실천하는 길은 종교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불장난으로 인류 문명은 한 순간에 파탄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저희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원광대 평화연구소는 이러한 위기를 평화로 전환하는 작업을 열심히 해나가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8월 30일 향린교회에서 진행된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원광대 평화연구소의 공동학술회의에 대한 이야기, 원익선 교무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