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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할계(牛刀割鷄)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다
牛 : 소 우(牛/0)
刀 : 칼 도(刀/0)
割 : 벨 할(刂/10)
鷄 : 닭 계(鳥/10)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이란 속담은 덩치가 큰 차이 나는 두 동물을 대비하여 서로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있는 사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큰 소를 잡는 칼(牛刀)로 조그만 닭 잡는 데 쓴다(割鷄)는 비유도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도구를 쓴다거나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나 몸짓을 할 때 자주 쓰는 성어다.
그렇지만 ‘닭 잡아 겪을 나그네 소 잡아 겪는다’란 말이 있는 것처럼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소홀히 하다가 나중에 큰 손해를 입지 않도록 가르치기도 한다.
모기보고 칼 뺀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이나 천리마를 소금 수레 끄는 일에 부린다는 기복염거(驥服鹽車) 등도 비유하는 바가 같다.
이 말은 공자(孔子)님이 처음으로 썼다. 뛰어난 제자 10명을 가리키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 들기도 하는 자유(子遊)가 노(魯)나라의 조그만 읍 무성(武城)이란 곳의 읍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스승에게서 배운 대로 예악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데 힘썼다.
어느 날 공자가 읍에 들렀을 때 마을 곳곳에서 현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를 듣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자유에게 말했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割鷄焉用牛刀)?‘
스승은 자신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흐뭇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제자는 정색하여 예악을 배우면 백성을 사랑하게 되고, 백성도 잘 다스려져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아차 하여 제자들에게 자유의 말이 백번 옳고 자신은 농담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공자가 말한 것은 자유 같은 재주가 많은 사람은 더 큰 곳서 뜻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논어(論語)의 양화(陽貨)편에 실린 이야기다.
할계우도(割鷄牛刀)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할계우도의 4가지 용인술
한여름, 때아닌 '닭칼, 소칼론'이 뜨겁다. 그 출처는 '논어'의 '양화'편인데 이야기 전말은 이렇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노나라의 작은 읍(邑)인 무성을 다스릴 때였다. 공자가 무성을 들르게 되었는데 예악으로 잘 다스려져 마을 곳곳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공자가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割鷄焉用牛刀)"하며 웃었다. 자유는 "'군자가 (예악의)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익히면 부리기 쉽다'고 선생님이 평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당차게 반박한다.
좀 더 크게 쓰일 수 있는 제자의 재능을 안타까워해 한 말이었지만, 제자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 공자는 곧바로 "네 말이 옳다. 내가 실언(농담)을 했다"고 사과한다.
'할계우도(割鷄牛刀)'를 용인술(用人術)과 관련해 4가지 논점으로 짚어보자.
첫째, 닭칼이든 소칼이든 칼의 기본 원리는 같다는 논리다. 소규모나 대규모 조직의 기본 운영 원리는 같다. '작은 것을 잘하는 사람이 큰 것도 잘하는 법이다'식 사고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직원 2명의 구멍가게 리더십이나 수천 명의 대규모 조직이나 기본 운영 원리는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둘째, 닭 잡는 데 소칼을 쓰는, 역량이 자리를 넘치는 오버스펙의 경우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방통을 무시해 낮은 벼슬을 맡겼다. 방통은 부임 100일 동안 술타령으로 소일한다. 현지 시찰을 온 장비가 추궁하자 '밀린 일을 반나절 만에' 해내는 신공을 보인다. 인재는 자신의 실력에 걸맞게 쓰이지 않을 경우, 불만 내지 태만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않는다.
셋째, 소 잡는 데 닭칼을 쓰는, 역량이 자리에 못 미치는 언더스펙의 경우다. 닭칼로 소를 잡으려 하면 소뿔에 받힐 위험에 처하듯 조직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일을 부가적으로 만들거나, (부족한데도) 자신을 임명한 인사권자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관리자는 조직을 위태롭게 한다.
넷째, 소칼과 닭칼은 아예 쓰임이 다르다는 논리다. 한나라 장수 한신은 한고조 유방에게 "폐하는 장수들의 장수이기 때문에 10만명만 거느려도 충분합니다. 저는 병사들의 장수이기 때문에 많을수록 좋습니다(多多益善)"고 말한다. 요컨대 병졸에 대한 리더십과 장수에 대한 리더십은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는 논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피지기 안목이다. 소칼인지 닭칼인지, 소와 닭 무엇을 잡고자 하는 건지 자기 인식과 상황 인식이 먼저다. 작금의 '소칼·닭칼론'을 보면 원저작권자인 공자가 무슨 말을 하실지 궁금하다.
우도할계(牛刀割鷄)
어머니가 동래현의 기생이었다. 그것도 관기였다. 관청에 소속된 관노가 어머니였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제도의 나라였다. 일천즉천(一賤則賤), 부모 중 한명이라도 천민이면 자식들은 자동적으로 천민이 되었다. 천민은 백성 취급도 받지 못했다. 주인을 위해 일하다가 죽는 牛만도 못한 신세였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관가에서 일을 했다. 농기구를 고치거나 병기를 수리하는 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주를 높이 산 남양 부사 윤사홍의 추천으로 궁중에서 일을 하게 된다. 조선시대 왕들의 고민은 한결 같았다. 기근(饑饉)에서 백성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에만 의존했던 농사기술로는 기근을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없었다.
가뭄, 홍수, 한파, 태풍, 병충해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중에서도 가뭄은 천형(天刑)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 경작지가 천수답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의존해야 했다. 왕이나 대신이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천지신명께 비는 것이었다.
세종은 농업기술을 혁명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하늘에 의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했다. 농업의 과학기술화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간 측정, 계절별 강우량 측정, 천체에 대한 해석이 필요했다.
궁중으로 들어온 관노의 아들은 재주가 비상했다. 그의 손을 거치면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점점 소문이 나고 그 소문은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세종은 그를 불러 천문관측기구를 만들게 하였다. 그것이 간의(簡儀)다.
대신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천민이던 그를 발탁해서 벼슬을 내렸다. 그에게 벼슬을 하사하는 과정까지는 순탄하지 않았다. 임금이니 일방적으로 명을 내릴 수도 있었지만 세종은 그러하지 않았다. 중신들의 완강한 반대를 설득하고, 중의를 모으는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세종은 명나라에 의존하던 조선의 과학기술을 자주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런 세종의 의지를 중신들도 알고 있었다.
신분질서가 지엄했던 시절 세종은 스스로 그 권위를 낮은 곳으로 향했다. 세종은 늘 백성의 편에 서고자 했다. 그래서 식량 자급자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제였다. 세종은 천민인 그에게 면천을 해주고 중임을 맡겼다. 세종이 아이디어를 내면 그가 설계를 하고 시공을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조선시대의 표준시계가 된 '자격루'다. 자격루의 발명은 후에 '옥루'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옥루'는 자격루와 혼천의를 결합한 자동시계다. 이 자동시계의 발명은 시간과 계절을 정확하게 알려줌으로써 농사기술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지역별 벼와 보리를 심는 시기를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10,000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혼천의'는 천문과학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천체의 좌표를 관찰하는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는 조선 과학기술이 명나라를 뛰어넘는 계기가 되었다.
세종이 통치하던 시대는 조선시대 중 문학, 과학, 예술의 르네상스시기였다, 또한 부국강병(富國强兵)하여 전쟁도 적었고, 사화도 없었고, 농업생산성도 높아 백성들은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았다. 농업과 과학의 접목은 세종의 의지와 세종이 발굴한 그와 함께 이루어 낸 찬란한 업적인 것이다. 그의 이름은 조선의 발명왕으로 불리는 장영실(蔣英實)이다.
우도할계(牛刀割鷄)란 말이 있다. '소 잡는 칼로 닭은 잡는다'는 뜻이다.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작은 일을 하도록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릇이 항아리인데 간장종지 역할만 하게 한다면 아까운 인재를 사장시키는 것이다.
장영실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가졌어도 그를 발탁하지 않았다면 동래현에서 무기나 농기구를 고처주고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임에도 천민인 장영실을 발탁하여 조선 과학의 르네상스를 이끌게 한 세종의 탁월한 인재발굴역량은 지도자라면 마땅히 배워야 할 덕목이다. 세종의 한글창제나 집현전의 역할도 세종의 깊은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세종은 능력을 평가할 때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썼고, 책임과 함께 권한도 대폭 위양했다. 그래서 동례 현에서 병장기 수리나 하면서 평생을 보내야 했을 장영실에게 국가의 과학기술을 이끄는 책임자란 큰 칼을 쥐어줬기 때문에 조선시대 과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는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구안'이다. 특히 인재 발굴 및 운용에 대한 선구안은 나라의 흥망성쇠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핵심의제다. '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닭을 잡는 일(牛刀割鷄)'을 시킨다면 인재를 죽이는 일이고, 또한 '닭을 잡는 칼로 소를 잡으라고 권한과 역할을 준다면(鷄刀割牛)' 나라가 온통 아비규환이 된다.
인재는 적제적소에 써야 하고 능력과 잠재력에 부합하는 책임을 부여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인사정책으로 인하여 현재까지도 국민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닭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소를 잡는 권한을 주어 도탄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의 으뜸은 조선시대 무오사화를 주도한 유자광이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종의 아들 세조는 아버지와 정 반대의 인재를 등용했다. 태생이 쿠데타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조 등극의 제 1등 공신 한명회도 유자광의 눈치를 살펴야했다. 유자광은 서얼출신이다.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중신들을 겁박하여 유자광을 중용한다. 과거에 낙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조가 직접 1등으로 낙점하여 장원급제를 시켰다고 한다.
조선의 2대 간신하면 유자광과 임사홍을 일컫는 이들이 많다. 유자광은 고변과 음해 그리고 논쟁을 일으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그의 세치 혀에 조선 선비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남이장군을 역모해서 죽이고,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빌미로 삼아 무오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선비들을 죽였다. 이때 처음 등장한 것이 부관참시다.
연산군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유자광은 자신의 주군인 연산군을 몰아내는 중종반정을 다시 주도한다. 닭을 겨우 잡을 수 있는 유자광의 재능을 세조가 발탁하여 소를 잡도록 해서 만든 참담한 역사적 비극이다.
지도자는 인재발굴에 얼마나 신중하고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닭 잡는 정도의 칼을 소를 잡도록 잘 못 배치한 것은 아닌지, 소를 잡는 칼로 닭을 잡도록 한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소 잡는 칼로 소를 잡고(牛刀割牛), 닭 잡는 칼로 닭을 잡도록(鷄刀割鷄) 하는 것 그것이 인사가 만사가 되는 길이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
▶️ 刀(칼 도)는 ❶상형문자로 칼을 본뜬 글자로 옛 자형(字形)은 사람인(人=亻; 사람)部와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웠다. ❷상형문자로 刀자는 ‘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칼을 뜻하기에는 다소 모양이 이상하지만, 이것은 고대에 사용하던 칼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이 칼에는 굽은 칼날 위로 뾰족한 날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것은 적의 칼날을 부러뜨리거나 밀어내는 역할을 했었다. 刀자는 그러한 형태가 변화된 것이다. 칼은 물건을 자르거나 베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刀자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대부분이 사물이 갈라지거나 ‘공격하다’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刂자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刀(도)는 ①칼 ②화폐(貨幣)의 이름 ③거룻배(돛이 없는 작은 배) ④종이 100장 ⑤무게의 단위 ⑥갈치(갈칫과의 바닷물고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칼 검(劍)이다. 용례로는 칼로 이마에 입묵하던 형벌을 도묵(刀墨), 작은 칼을 도자(刀子), 칼을 만드는 사람을 도공(刀工), 칼과 검을 도검(刀劍), 칼의 몸을 도신(刀身), 칼집을 도실(刀室), 포목을 마르고 재는 일을 도척(刀尺), 종이의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베는 일을 도련(刀鍊), 도검에게 새긴 명을 도명(刀銘), 칼의 배면을 도배(刀背), 썩 잘 드는 칼을 쾌도(快刀), 옛날에 만든 칼을 고도(古刀), 과실 깎는 칼을 과도(果刀), 긴 칼을 장도(長刀), 짧은 칼을 단도(短刀), 보배로운 칼을 보도(寶刀), 새김칼로 글씨나 형상을 나무나 돌 따위에 파는 데 쓰는 칼을 각도(刻刀), 칼날에 베인 흔적을 도흔(刀痕), 얼굴에 있는 잔털이나 수염을 깎는 일을 면도(面刀),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 메스를 잡음을 집도(執刀), 아주 험하고 위험한 지경을 비유한 말을 도산검수(刀山劍水), 칼은 부러지고 화살은 다 써서 없어짐 곧 싸울 대로 싸워 다시 더 싸워 나갈 도리가 없음을 도절시진(刀折矢盡),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뜻으로 항상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설참신도(舌斬身刀) 등에 쓰인다.
▶️ 割(벨 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일이 잘 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뜻을 가진 害(해, 할)로 이루어졌다. 소를 수술(手術)하다의 뜻인 개(犗)를 칼로 수술하므로 割(할)로 고쳐 쓴 것, 또 칼로 '가르다', '뻐개다', '상처내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割자는 '베다'나 '자르다', '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割자는 害(해칠 해)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害자는 집안에서 큰 소리로 다투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해하다'나 '해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해치다'라는 뜻을 가진 害자에 刀자가 결합한 割자는 칼로 누군가를 베어 해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割(할)은 어떤 수나 수량(數量)을 10으로 나누어, 그 가운데의 몇을 나타내는 말로 ①베다, 자르다, 끊다 ②끊어 버리다 ③나누다, 쪼개다 ④가르다, 갈라서 찢다 ⑤영토를 나누어 주다 ⑥할거(割據)하다, 차지하다 ⑦빼앗다 ⑧해(害)치다, 손상(損傷)하다 ⑨판단(判斷)하다 ⑩파다, 파헤치다 ⑪재앙(災殃), 불행(不幸) ⑫할(割), 비율(比率) ⑬어찌, 어떻게,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값에서 얼마를 덜어 냄을 할인(割引), 여러 몫으로 노느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몫을 할당(割當), 아쉬움을 무릅쓰고 나누어 줌을 할애(割愛), 지급할 돈을 여러 번으로 나누어 줌을 할부(割賦), 땅을 나누어 차지하고 막아 지킴을 할거(割據), 한 지방을 점령하고 지킴을 할거(割去), 가죽을 벗기고 살을 도려냄을 할박(割剝), 제 값어치의 물건 밖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을 할증(割增), 배를 갈라 자살함을 할복(割腹), 썰어 삶아서 음식을 조리함 또는 그 요리를 할팽(割烹), 이웃한 남의 논밭을 개개면서 가는 짓을 할경(割耕), 보리를 세로 2등분 한 뒤 다듬어 정제한 보리쌀을 할맥(割麥), 구성원의 자격을 빼앗고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버림을 할명(割名), 반에 나누어 벰을 할반(割半), 자리를 달리함 또는 절교함을 할석(割席), 원둘레 또는 그밖의 다른 곡선에서 둘 또는 둘 이상의 점을 지나는 곧은 줄을 할선(割線), 땅이나 물건의 일부를 떼어서 남에게 넘겨 줌을 할양(割讓), 베어 주거나 쪼개어 주는 일을 할여(割與), 은정을 끊음을 할은(割恩), 밑나무를 가르고 접붙일 나무를 끼워 넣는 접붙이기를 할접(割接), 발목을 부러뜨림을 할족(割足), 한 부분을 빼앗아 가짐을 할취(割取), 제가 하여야 할 제 앞의 일을 역할(役割), 나누어 쪼갬을 분할(分割), 똑같이 나눔을 균할(均割), 벤 듯이 아픔을 여할(如割), 위험에 부딪칠 때 일부 동물이 제 몸의 일부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일을 자할(自割), 팔뚝을 베어 피로 맺은 맹세라는 뜻으로 남녀의 굳은 사랑의 맹세를 이르는 말을 할비맹(割臂盟), 공복을 채우기 위해 허벅살을 베어 먹는다는 뜻으로 한때를 모면하기 위한 어리석은 잔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할고충복(割股充腹), 사귐을 끊어서 자리를 같이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할석분좌(割席分坐), 허벅지의 살을 잘라내어 부모를 치료한다는 뜻으로 효행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할고료친(割股療親), 가죽을 벗기고 살을 벰을 할육거피(割肉去皮), 몸의 반쪽을 떼어내기는 고통이라는 뜻으로 동기를 잃은 슬픔을 이르는 말을 할반지통(割半之痛), 배를 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일컫는 말을 할복자살(割腹自殺), 고을 원이 백성의 재물을 갈취하여 긁어 모으는 나쁜 정사를 일컫는 말을 할박지정(割剝之政) 등에 쓰인다.
▶️ 鷄(닭 계)는 ❶형성문자로 鶏(계)는 통자(通字), 鸡(계)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奚(해, 계)로 이루어졌다. 새벽을 알리는 새(鳥)의 뜻이 합하였으며 닭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鷄자는 '닭'을 뜻하는 글자이다. 鷄자는 奚(어찌 해)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奚자는 상투를 손으로 잡은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닭 볏으로 응용되었다. 사실 갑골문에 나온 鷄자는 좀 더 직관적이었다. 닭 볏과 다리, 꽁지까지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도 이것이 닭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전으로 넘어오면서 닭의 볏은 奚자가 대신하게 되었고 隹(새 추)자가 더해지면서 볏이 있는 새를 뜻하는 雞(닭 계)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해서에서는 隹자가 鳥자가 바뀌면서 지금은 鷄자가 ‘닭’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鷄(계)는 ①닭(꿩과의 새) ②화계(花鷄: 되새. 되샛과의 겨울 철새) ③폐백(幣帛)의 하나 ④성(姓)의 하나 ⑤현(縣)의 이름 ⑥산(山)의 이름 ⑦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닭의 알 달걀을 계란(鷄卵), 닭의 울음을 계명(鷄鳴), 닭고기를 계육(鷄肉), 닭을 가두어 두는 장을 계사(鷄舍), 닭과 개를 계구(鷄狗),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의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의 계구(鷄口),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계간(鷄姦), 밤눈이 어두워 밤에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계맹(鷄盲), 닭을 잡아서 그 뼈나 눈을 보고 치는 점을 계복(鷄卜), 닭이 새벽을 알림을 계신(鷄晨),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으로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을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으로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을 계구(鷄口), 닭의 무리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의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계군(鷄群), 독서하는 방을 계창(鷄窓), 닭을 기르는 일을 양계(養鷄), 집에서 기르는 닭을 가계(家鷄), 닭을 잡아서 죽임을 도계(屠鷄), 싸움 닭을 투계(鬪鷄), 썩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장을 빼고 털을 뽑고 얼린 닭을 동계(凍鷄), 묵은 닭을 노계(老鷄), 때 아니게 낮에 우는 닭을 오계(午鷄), 어미 닭을 모계(母鷄), 털이 흰 닭을 백계(白鷄),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계군일학(鷄群一鶴),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일컫는 말을 계군고학(鷄群孤鶴),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으로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을 계란유골(鷄卵有骨), 동쪽 닭과 서쪽 개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닭 우는 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여 인가가 잇대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계견상문(鷄犬相聞),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는 뜻으로 인가나 촌락이 잇대어 있다는 말을 계명구폐(鷄鳴狗吠),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계명구도(鷄鳴狗盜), 닭 울음소리를 묘하게 잘 흉내 내는 식객을 일컫는 말을 계명지객(鷄鳴之客),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단체의 말석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을 계구우후(鷄口牛後), 닭 울음의 도움이란 뜻으로 어진 아내의 내조를 일컫는 말을 계명지조(鷄鳴之助), 살갗은 닭의 가죽처럼 야위고 머리칼은 학의 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계피학발(鷄皮鶴髮), 닭과 돼지가 한데 어울린다는 뜻으로 같은 고향 사람끼리 서로 친목을 도모함을 일컫는 말을 계돈동사(鷄豚同社), 닭과 집오리가 먹이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툰다는 뜻으로 여염의 사람들이 서로 다툼을 일컫는 말을 계목쟁식(鷄鶩爭食), 닭 대가리는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남의 위에 서야지 남의 꽁무니에 따라 다녀서는 안됨을 일컫는 말을 계시우종(鷄尸牛從), 몸이 쇠약해서 침상에 기대어 몸을 지탱함을 일컫는 말을 계골지상(鷄骨之床), 다른 사람의 권세에 빌붙어 승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계견승천(鷄犬昇天), 맨드라미 열매의 과육이라는 뜻으로 여성의 젖가슴을 일컫는 말을 계두지육(鷄頭之肉)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