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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 예배
성경: 계16:1-21절(신414)
제목: 일곱 대접 심판(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에 새 출애굽(15:2-4)의 관점에서 오늘 본문(16장)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15:2)를 지나 하늘의 보좌에 나아가는 ‘새 출애굽’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가 받은 ‘세례’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고전10:2절입니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홍해)에서 세례를 받고.” 우리 세례에서의 물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즉 죽음의 물인 동시에 구원(새 생명)의 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였고 그의 부활에도 연합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롬6:3~5).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창조) 언약에 따라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새 출애굽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새 출애굽(세례)의 관점에서‘하나님의 일곱 대접 심판(재앙)’인 오늘 본문(16장)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일곱 대접 심판(2~21)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 명령인 1절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여기서 ‘땅’은 땅과 바다와 물과 하늘을 모두 포함한 영역, 즉 마귀의 통치를 받은 세상 전체를 상징합니다. ‘대접을 쏟는다’라는 것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된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가서’와 ‘쏟으라’는 현재 명령이기에, 하나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계속 쏟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 인간의 역사에서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시행됩니다. 첫째는 인간의 죄악(무지함)이 스스로 파괴에 이르도록 허용하시는 것입니다(롬1:24). 둘째는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사 인간의 죄악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인이나 나팔과 같이 일곱 대접 재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계속해 오신 일이며, 앞으로 주의 재림 시까지 계속하실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 사건(애굽 재앙과 홍해)과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이 반복되는 것은 그들 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일곱 대접은 특별히 그의 마지막 재앙(15:1)을 가리킵니다. 전자의 심판들은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일곱 대접 심판은 전 우주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일곱 대접 재앙은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 숭배하며(1) 회개하지 않은 자들(9, 11)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고통이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도 일곱 대접 재앙을 받은 세상에 살기에 당연히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결코 그의 재앙(심판)일 수 없습니다. 세례(새 출애굽)를 받은 우리에게는 율법(창조)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15:1).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심판)이 없기”(롬8:1)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를 연단하여 성화와 영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롬8:28-30)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골1:24).
1. 처음 네 개의 재앙과 그 심판의 정당성입니다(2~9).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8~9a)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9b)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이것은 율법(창조) 언약에 따른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모든 자연계(땅, 바다, 강과 물 근원, 해)에 대한 하나님 진노의 재앙(심판)입니다.
먼저 첫째 대접(2)은 악하고 독한 종기 재앙이며, 둘째(3)와 셋째 대접(4)은 피의 재앙입니다. 둘째 대접은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었고, 셋째 대접은 강과 물의 근원(샘이나 호수)이 피가 된 재앙입니다. 이 재앙들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고통과 죽음을 당하며,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셋째와 넷째 대접의 막간에서 하나님 심판의 원인과 정당성입니다(5-7).
물의 천사 찬송입니다(5-6).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1:4, 8:4, 8, 11:7)에서 인용하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거룩하신 이’(5)로 호칭합니다. 여기서 ‘장차 오실 이’를 ‘거룩하신 이’로 대치한 이유는 율법(창조) 언약에 따라 일곱 대접의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주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물의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다’(5)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의 심판의 원인과 그 의로움(정당함)을 노래합니다(6).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한 것이 합당하나이다 하더라.” 여기서 ‘피를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만이 아니라 온갖 종류 재앙도 상징합니다.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다’는 것도 직접적인 죽음(순교)과 박해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현재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스트레스로 인한 암 환자가 아주 많으며, 어떤 교수가 우리 사회가 만든 타살이라고 해석하는 ‘자살률’이 세계 1위이며, 많은 젊은이는 결혼을 포기하며, 결혼한 이들도 출산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작년 수해에서 상관들의 부주의한 명령으로 억울하게 죽는 한 병사의 사고를 법의 절차에 따라 바르게 조사하여 경북경찰청에 이첩 한 해병수사단장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자신의 이해에 따라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같이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 출애굽(세례)의 관점에서 이것을 이해하고 ‘어린 양의 노래’와 ‘기도’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그의 의로운 심판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롬12:20, 잠25:21~22). 40세의 모세가 애굽의 불의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였을 때 실패하였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80세의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물의 천사의 찬송(5~6)에 대하여 제단이 동의합니다(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여기서 의인화된 표현(9:13)인 ‘제단’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6:9)을 상기시키며, 기도하는 성도들(8:3~5)을 상징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찬양과 기도의 예배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는 천지가 흔들려도 복음의 새 언약대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불의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는 선한 하나님이 아니시며,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거짓의 하나님, 아니 하나님이 아니실 것입니다. 율법 언약에 따라 저주를 받게 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맡기시면서 감사의 찬양과 기도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해의 재앙인 넷째 대접(8~9a)은 해(1/3)와 달(1/3)과 별들(1/3)이 타격을 받아 낮(1/3)과 밤(1/3)이 어두워진 넷째 나팔(8:12)과 다르게 오직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크게 태우는 재앙입니다.
현재 지구는 산업화로 인한 많이 발생한 이산화탄소로 인하여 온난화 중에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였던 자연재해가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는 파리 협정(2015)을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폭을 2.0도보다 낮은 1.5도 내로 하고, 2050년까지 ‘탄소 제로’로 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작은 섬과 해안지역은 1.5도와 2.0도 사이에 생존과 소멸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앙들의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을 인정(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하며 영광을 돌리지 아니합니다(9b). 이것은 5~7절에서와같이 그들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원인과 그 정당함을 나타냅니다.
2. 나머지 세 개의 대접입니다(10~21).
이 세 개의 대접은 각각 병행적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이 ‘화, 화, 화가 있으리니’라는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의 큰 소리(8:14)로 묶이는 것같이 ‘하나의 단락’으로 간주 됩니다. 즉 이들 사이에 하나님 심판의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로 세상 나라가 영적으로 어두워지는 다섯째 대접의 심판입니다(10a).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어둡게 되어 왔다).” 여기서 ‘짐승의 왕좌’는 용의 지배를 받는 세상 나라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 나라가 스스로 어두워지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 나라가 스스로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리석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대 역사 철학은 진화론의 영향으로 계속 진보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인류가 진보함에 따라서 하등종교는 먼저 사라지고 고등종교만 남았다가 결국에서 모든 종교는 사라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 역사 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교육을 많이 받는다고 반드시 지혜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주의 산물인 공산주의도 거짓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영적으로 스스로 어둡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현재 우리의 세계는 영적으로 점점 어둡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다섯 개의 재앙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10b-11).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이것도 5~7절과 9b절에서와 같이 하나님 심판의 원인과 그 정당성을 나타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큰 날(종말)에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서 귀신들의 이적을 통하여 온 천하 왕들을 모이게 하는 여섯째 대접의 심판입니다(12~16).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그)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먼저 하나님은 로마와 동방 파르티아 제국의 사이에서 장애물이었던 ‘큰 강 유프라테스’(12)과 같이 하나님 백성인 교회와 짐승의 왕좌인 세상 나라 사이의 경계선을 상징하는 유프라테스의 강물을 마르게 하사 그 장애물이 제거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동방에서 오는 왕들’(12), 즉 다섯째 대접의 심판으로 스스로 어둡게 되어 온 ‘온 천하 왕들’(14)이 하나님의 교회를 침략하러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13), 즉 ‘귀신의 영’(14)이 이적(표적)으로 ‘하나님의 큰 날’에 있을 ‘그 전쟁’을 위하여 온 천하의 왕들이 ‘아마겟돈’(16)에 모이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큰 날’(14)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종말의 마지막 심판(구원)’을 의미합니다(6:16).
‘전쟁(폴레로스)’이란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 9번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앞에 정관사가 있어 ‘그 전쟁’(14, 19:19, 20:8)으로, ‘아마겟돈의 전쟁’, 즉 ‘하나님의 큰 날’에 있을 결정적인 전쟁, 그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그 전쟁의 모습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묘사들(19:19~21, 20:7~10)로 설명됩니다.
여기 막간에 주의 날(종말)의 심판을 앞에 둔 성도들에 대한 주님의 권면입니다(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은 ‘주님 자신이 도둑 같이 오신다’라는 경고입니다(마24:43). 그러므로 ‘깨어 있고 자기 옷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옷’은 믿음으로 의의 옷, 즉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19:8)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고’와 ‘지키는’이 현재 분사이며, 하나의 정관사(호)로 연결되었기에 ‘계속 깨어 있고 자기 옷을 지키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기까지 복음의 새 언약을 믿으면서 짐승의 우상 숭배와 그의 수(666)를 받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가 복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복의 선언에서 셋째입니다.
다시 ‘깨어 있고 자기 옷을 지켜야’ 할 이유는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그들이 그의 부끄러움을 보지 않도록’입니다. 여기서 ‘벌거벗고 다닌다’라는 것은 믿음의 의의 옷을 벗어버리고 다닌다는 것이며, 그 결과로 그들(세상 사람)이 그의 부끄러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가요?
셋째로 용과 짐승이 권세를 잡고 있는(엡2:2) 공중에 대하여 ‘되었다’라는 하나님의 한 말씀인 일곱째 대접의 심판입니다(17~21).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여기서 ‘되었다’(17)는 ‘완성되어왔다’라는 의미입니다(15:1, 8, 21:6, 요19:30).
그렇습니다. ‘되었다’라는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용과 짐승의 세상 구조와 지형이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와 함께 역사상 가장 큰 지진으로 무너지고 사라집니다. 이것은 다섯째와 여섯째 대접의 심판을 통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서 모인 모든 세상의 왕들이 다 전멸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를 대적하는 모든 세상 세력에 대한 그의 마지막 심판의 또 다른 묘사입니다(11:15~18, 14:14~20).
특히 ‘만국의 성들’(19)을 대표하는 ‘큰 성 바벨론(로마)’(19)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잔을 받아 멸망합니다. 이것은 17~18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이제 일곱 나팔 심판은 하나님 심판의 원인과 그 정당함으로 마무리됩니다(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약 30kg 이상)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여기서 우박은 그의 마지막 심판의 하나의 예입니다. 아무리 큰 재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죄악을 인정(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심판의 원인은 그들에게 있으며, 그의 심판은 의롭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세 출애굽(세례)의 관점에서 불의한 죄악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불의한 세상에서 우리의 고난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위쪽으로 떨어지다”라는 책의 저자인 ‘리처드 로어’에 의하면, 우리는 떨어져도 하늘로 떨어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용과 그의 짐승들로 인하여 아무리 어려워도, 어떤 불의의 고난을 받아도 우리는 지옥으로 떨어지기는 다 틀린 인생, 결국 위쪽으로 떨어지는 인생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이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15:1).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새 출애굽(세례) 한 자로서 다가오는 그의 마지막 재앙과 세상에서 당하는 불의와 불공정에 대하여 ‘어린 양의 새 노래’와 ‘기도’로 우리 주 하나님께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복음의 새 언약대로 될 것입니다.
찬송 370장을 부르신 후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