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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한옥마을 |
예로부터 북촌이라 하여 양반 동네로 알려진 이곳 주택은 모두 조선시대의 기와집으로서 상류층의 구조 형태를 간직하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원래 이 동네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큰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 밖에 없었으나, 일제말기와 6.25수복 직후 지금의 상태로 늘어났다.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이다.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하여 전통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 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백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전통문화체험관이나 한옥음식점 등으로 활용이 되어 간접적으로나마 조선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원서동,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 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당시로서는 왕실의 고위관직에 있거나 왕족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구로 유명하였다. 곳곳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 채의 한 옥들은 이때의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러 채의 한옥이 지붕처마를 잇대고 벽과 벽을 이웃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풍경은 우리들이 잊고 살았던 따뜻한 정과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해준다. 북촌 지역을 걷다보면 이어진 처 마선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골목길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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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
1998년 4월 18일 개관한 남산골 한옥마을은 대지면적 총 79,934m²(24,180평)에 전통한옥 5동, 전통공예전시관, 천우각 광장동, 전통정원, 타임캡슐 광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994년 서울 정도6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완공된 타임캡슐 광장과, 남산골의 정취를 고려하여 조성된 전통정원이다.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전통가옥 5동을 이전 복원한 한옥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남산골 제모습 찾기사업의 일환으로 수도 방위사령부 부지를 89년도에 인수, 건물 철거후 조성하게 된 것이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가장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타임캡슐 광장은 서울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600개의 품목을 선정 타임캡슐에 담아 지하 15m에 매장해 놓은 곳이다. 이것은 400년후인 2,394년에 개봉하게 된다. 타임캡슐 광장을 따라 내려오며 펼쳐지는 전통정원은 남산의 산세를 살려 구릉지와 계곡을 완만하게 조성하고 소나무 등 향토수종을 식재하였으며 간간이 설치된 누각과 함께 멀리 펼쳐지는 시내 전경이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통정원의 한켠으로는 5동의 한옥가옥들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 내의 7,934m²(2,400여평)에 조성한 이 한옥마을은 순수혈통의 전통 가옥 5채를 이전 복원한 곳으로, 민속자료로 지정된 서울 시내 23채의 전통 가옥 중 변형이 가미된 것을 제외한 순수혈통의 한옥들로 종로구 삼청동의 오위장 김춘영가옥(구 김홍기 가)와 관훈동의 부마도위(임금의 사위) 박영효 가옥(구 이진승 가), 옥인동의 순정효 황후 윤씨 친가(구 서용택 가), 동대문구 제기동의 해풍 부원군 윤택영댁 재실(구 정규엽 가), 중구 삼각동의 도편수 이승업 가옥(구 조흥은행 관리) 등이다. 이 중 건물 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하고 나머지는 모두 건물을 하나하나 뜯어내 이전 했으며, 재활용이 불가능한 목재는 설악산의 자생육송으로 대체하였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에서는 예절배우기, 국방공예 등 문화학교, 해풍부 원군 윤택영댁 재실에서는 서예, 한시, 사군가, 찬문강옥 등의 전통문화 강화가 열린다. 부마 도위 박영효 가옥에서는 전통촌에다 한국의 소리 공연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에서는 전통공예 기능을 전승, 보급하는 무형문화재 시연이 열린다.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전통찻집으로 하고 있다. 또한 공예 전시관에서는 민화, 침선, 나전칠기, 전통매듭 등을 만드는 방법을 재연하고 각종 공예품도 전시 판매하고 있다. 공동마당에서는 전통민속놀이 재현 행사 등이 열리고 있다.
*전통한옥 1) 오위장 김춘영 가옥(구 김홍기 가) 조선조 말기 오위장(군대 하급장교)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으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옮겨다 놓았다. 홑처마로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서민 주택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안방의 뒤쪽 벽, 즉 길가 부분에 화방벽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인 것이 특이하다. 2) 도편수 이승업 가옥(구 조흥은행 관리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될 때 도편수(조선말당시 목수의 우두머리) 이승업이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했다.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있으며, 안채는 정자형, 사랑채는 ㄴ자형이다. 전후연의 지붕길이가 다르게 꾸민것이 특색이다. 3)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구 정구엽 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 윤비가 동궁계비에 책봉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이다.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전하였으며, 가옥전체 분위기는 살림집이라기보다는 재실용도에 걸맞게 되어 있다. 4) 부마도위(임금의 사위) 박영효 가옥(구 이진승 가) 서울 팔대가 중의 하나로 전해지는 이 가옥은 조선조 제 25대 철종의 후궁 숙의 범씨 소생인 영혜옹주의 부군 박영효가 살던 집으로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것이다.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으로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주택 형태이다. 장대색을 사용한 기단, 철량가의 가구, 6칸 크기의 부억 등에서 대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5)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구 서용택 가) 조선조 제 27대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 윤씨가 열세살 나이로 동궁계비에 책봉될 때가지 살았던 집이다. 윤비가라고도 하는 이 집은,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데 집이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 양식 그대로 복원했다. 장대석 기단, 정자살창, 화방벽이 설치된 점 등으로 보아 최상류층의 저택임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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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 한국민속촌 |
한국민속촌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41㎞, 경부고속도로 수원 I.C에서 동남쪽으로 3㎞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민속촌은 민족문화자원을 보존하고,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을 위한 학습장 및 내외국인을 위한 전통문화의 소개 등을 설립 취지로 하여 1973년 착공하였으며 1974년에 완공되었다.
민속촌의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의 한 시기를 택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것이다. 특히 당대의 사농공상의 계층별 문화와 무속신앙, 세시풍속 등을 재현 전시하였다. 또 지방별로 특색을 갖춘 농가, 민가, 관가, 관아, 서원, 한약방, 서당, 대장간, 누정, 저자거리 등을 비롯하여 99칸 양반주택 등 대토호가도 재현되어 있고, 유기공방 등 전통공방을 생동감 있게 재현하고 있다.
공연행사로는 농악, 널뛰기, 줄타기, 마상무예, 전통혼례식 공연 및 기타 특별한 이벤트 행사가 절기별로 행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야외에서 재현.전시하기 어려운 부분은 옥내민속 전시관을 통해 민속생활 전반을 재현 전시해 놓았다. 놀이시설로는 눈썰매장을 비롯하여 국내 유일의 화산폭발을 재현하고 있는 대규모 가족공원이 있다. 장터에 이르면 증편, 인절미, 북어구이, 빈대떡, 파전같은 우리 고유의 떡과 안주류에 순 재래식으로 담근 동동주를 맛볼 수 있다.
< 민속촌의 주요 볼거리> * 관아 -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공무를 집행하는 곳. 조선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정문, 행랑, 중문, 정청과 내당이 있고 뒤뜰에 감옥이 있다. * 중부지방 양반가 - 속칭 99칸집. 1861년 수원성 안에 지어졌던 건물을 그대로 옮겼다. 솟을대문, 줄행랑, 바깥사랑, 안행랑, 안사랑, 내당, 초당 등 유교를 숭배하던 상류층의 모든 살림공간이 갖추어진 전형적인 양반집 이다. * 제주 민가 - 집이 낮고 3면은 돌벽으로 쌓았다. 시원한 큰 마루와 부뚜막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울릉도 민가 - 겨울이 길고 비바람, 눈, 습기가 많아 이중외벽을 치고 지붕은 낮으며, 띠로 잇고 통나무 귀틀벽으로 꾸몄다. 울릉도에서 모두 원형대로 옮겨지었다.
* 공연행사 1) 농악 11:00 / 3월 ~ 10월 15:00 / 11~2월 14:30 (1일 2회공연-공연장) 2) 널뛰기 11:30 / 3월 ~ 10월 15:30 / 11~2월 15:00 (1일 2회공연-공연장) 3) 줄타기 11:40 / 3월 ~ 10월 15:40 / 11~2월 15:10 (1일 2회공연-공연장) 4) 마상무예 13:00 / 3월 ~ 10월 16:00 / 11~2월 15:30 (1일 2회공연-마상무예 공연장) 5) 전통혼례 3월 ~ 10월 16:30/11월 16:00 (12~2월까지 휴연) * 대표적인 축제 - 계절별 각종 민속놀이, 연날리기, 썰매타기, 그네뛰기 * 민속촌 체험거리 - 민속놀이 체험(투호, 널뛰기, 줄넘기, 그네뛰기, 널뛰기) 전통생활체험(지게지기, 다듬이질, 물지게 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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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 왕곡마을 |
송지호 북쪽에 들어선 왕곡 전통마을은 강원도 북부해안 지방으로 피서여행을 갈 때 꼭 한번 들러볼만한 곳이다. 해변과의 거리는 불과 1.5km인데 묘하게도 마을에서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없다. 오음산, 두백산, 공모산, 순방산, 제공산 등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들이 마을 둘레를 에워싼 때문이다. 이처럼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덕에 한국전쟁때 에도 대부분의 집들은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고택들 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전통마을 분위기를 잘 간직하게 된 것이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순천 낙안읍성 마을처럼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번듯한 외 관을 갖춘 집들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일단 마을 안에 들어서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빠져든 듯한 느낌이 든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대형 안내판을 끼고 있는, 수령이 1백 50여 년을 넘은 노송 거목 10여 그루가 솔향을 뿜으며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은 총 50가구이고 기와 32동, 초가 9동 이 있다. 왕곡마을에서 순메밀국수집을 꾸려나가는 함승본씨는 "이 동네가 그리 부자 동네도 아닌데 기와집이 제법 많았던 것은 더 안쪽의 구성리 마을에 기와를 만드는 가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곳 기와집들은 방과 마루, 부엌과 외양간이 전부 한데 붙은 강원 북부 지방의 고유 가옥 구조를보여주고 있다. 이런 구조는 추운 겨울이 긴 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양식이다.
마을 위쪽에는 강릉 함씨, 아래쪽에는 강릉 최씨가 집단으로 모여사는데 함씨 가 최씨보다 조금 더 많다. 그 밖에 전씨와 김씨 성을 가진 이가 각각 2가구, 박씨가 1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효자각이 2개나 있는 효자 마을이기도 하다. 옛스런 분위기를 간직한 마을이라 때때로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 무대로 등장한다. TV 문학관 - 홍어를 비롯 배달의 기수 등 다수의 반공 영화가 이곳 에서 촬영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엑스트라로 나선 경력들을 자랑하기도 한다. 왕곡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논농사. 작게는 1천평, 크게는 1만평 정도의 논농 사를 짓는다. 4년 전만 해도 감자를 많이 경작했지만 판로가 없어 지금은 식 구들 먹을 정도로만 재배한다. 해풍이 불어오는데다 일교차가 심한 기후 탓인 지 잡곡 농사도 잘 안 돼서 밭에서조차 밭벼를 재배한다.
왕곡마을 방문을 마치고 가볼만한 인근 해수욕장으로는 송지호, 삼포, 백도해수 욕장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백도해수욕장과 삼포해수욕장 중간에 들어선 자작 도 해수욕장은 최근에서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피서지다. 동해안의 해수욕장 치고는 해변 길이가 4백m 정도로 짧은 편이지만, 내륙쪽으로 활처럼 깊게 휘어들어 수심이 얕아 익사사고 한번 없었다고 민박집 주인들은 자 랑한다. 바다로 1백m를 나가도 깊이가 어른 가슴 정도에 불과하다. 해수욕장 개 장 기간은 7월 10일부터 8월 20일까지. 가족 단위 피서지로 인정을 받은 뒤 최근 에는 해변가에 콘도식 민박집들이 여럿 들어섰다. 2004년도 부터 10월 중순 "고성왕곡마을 민속체험축제"가 개최되어 과거로의 여행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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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 너와마을 |
산간오지의 삶을 가장 잘 보존 시켜오는 곳이 삼척 너와마을이다 . 항상 오지라는 이름이 붙어오던 백두대간의 숨겨진 마을. 예부터 화전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연부락을 형성한 산촌마을이다. 때문에 여태까지 때 묻지 않은 자연풍광과 두메산골만의 수수한 정과 고향의 따뜻함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마을이기도 하다. 그곳 마을 한 켠에 너와집 펜션단지를 조성해 놓고 체험숙박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앞에는 작은 계곡이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야산에 소나무 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작은 분지에 조성된 너와 체험마을에는 현재 식당 한 채와 숙박할 수 있는 너와집 다섯 채가 들어서 있다. 너와집은 넓은 마당을 빙둘러 반원형으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데, 마당중앙에는 어린이 놀이터까지 갖춰져 있다. 이 곳 너와집 중에서 본래 너와집의 모습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곳은 한 채 뿐이다. 넓직한 부엌에 외양간이 딸려있고, 마루에 연이어 안쪽으로 방이 나란히 붙어있는 전통 북방식 가옥구조다. 그 외 나머지 집들은 지붕과 벽 등 바깥모습만 너와집일 뿐 완전히 펜션식을 꾸며 현대식 편리함을 가졌다. 한 개의 방안에 주방과 화장실이 함께 들어가 있고, 팔각형 모양의 집안에는 노래방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방의 크기는 각기 다르다. 연인들이 먹을 수 있는 작은방에서부터 10여명의 단체가 묵을 수 있는 방까지 골고루 이다. 너와는 주로 참나무와 소나무를 세로로 켠 다음 말렸다가 기왓장처럼 켜켜이 지붕에 올린다. 또한 벽면은 길게 켠 나무판자를 세로로 덧대기도 하고, 통나무를 가로로 덧쌓기도 한다. 때문에 겨울에는 외풍이 많고 다소 춥다. 그래서 너와집들은 군불을 떼는 온돌이 잘 발달되어 있는데, 너와체험마을의 집들도 모두 군불을 뗄 수 있는 아궁이가 만들어져 있다. 체험마을에서 신리마을로 조금만 가면 150년 된 원형 그대로의 너와집이 보존되어 있고, 바로 앞 개울 옆에는 너와마을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너와 물레방앗간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너와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거리는 머루 와인 체험장이다. 너와마을에서 머루를 재배해 와인을 제조하는데, 이제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은 이곳만의 특산품이 되었다. 너와마을과 문화재로 지정된 너와집 앞을 지나 고개하나를 돌면 개울 건너에 머루와인 공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클레오너와(clio neowa) 라는 브랜드까지 단 머루와인이 생산된다. 여기서 와인 시음도 하고 너와저장고도 살펴볼 수 있다.또한 머루 수확철에는 직접 와인 담그는 체험도 해 볼 수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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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외암 민속마을 |
외암마을은 충정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위치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 2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500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충청지역 고유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길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다량의 민속품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이다. 또한 가옥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 참봉댁, 종손댁, 영암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고 마을 뒷산의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지고 연못을 만들어 외암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마을에 사랑채가 있는 살림집은 모두 11가구이다. 이중 건재고택, 참판댁(큰댁), 송화댁은 처음부터 양반집 모양으로 지었으나 이효숙 가옥은 근래에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참판댁(작은댁) 사랑채는 초가이지만 처음 지을 당시의 구조와 모양을 잘 간직하고 있다. 외암마을 양반집 사랑채는 대개 대청마루를 작게 만들고 좌우에 크고 작은 사랑방을 설치해 두었다. 그리고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는데 전체를 마루로 하지 않고 한칸은 방으로 막아 두었다. 외암마을의 모든 가옥은 안채를 가지고 있다. 사랑채에 부엌을 두기는 어려워도 안채에 사랑방을 두면 조선시대 유교의 덕목으로 여겼던 남녀유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외암마을의 대표적인 안채로 건재고택, 교수댁, 참판댁 큰댁 및 작은댁, 송화댁, 감찰댁(이동식가옥), 이준세가옥 등이다. 이중 안 대청이 제일 큰 것은 감찰댁으로 3칸이다. 또 외암마을은 한옥을 감상하는 재미 이외에 체험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는데 4월~6월에는 모내기를 비롯해 감자심기, 고구마심기, 냉이 캐기 등을 체험할 수 있고 여름에는 옥수수와 감자 수확을 할 수 있다. 가을에는 추수체험을 할 수 있고 겨울에는 김장하기와 연 만들기, 썰매타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어 민속문화를 경험하는데 좋은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리고 초가와 기와집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민박을 실시하고 있는데 방의 크기가 다양하여 인원수에 맞는 방을 예약하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외암리에서 현재 바로 숙박을 할 수 있는 고택은 신창댁을 비롯해 16가옥. 방 한 두개씩을 빌려주기도 하고 아예 집 전체를 빌려주기도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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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한옥마을 |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시 풍남동과 교동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한국의 전통 건물인 한옥(韓屋)이 800여채나 밀집되어 있다. 빠르게 변화는 도시 속에 옛 것을 그대로 간직한 전주한옥마을은 한국의 옛 전통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주한옥마을의 멋은 무엇보다도 한옥의 아름다운 지붕선에 있다. 지붕자락이 살짝 하늘로 향해 있는 것이 한옥의 특징이고 멋이다. 한옥의 구조는 크게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져 진다. 안채는 여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규수방이 있고, 사랑채는 남자들이 사용하던 곳으로 선비방으로 되어 있다. 한옥은 남녀의 활동이 구분되어 있어 각각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안채의 경우는 여인들이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한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온돌방이다. 한국은 주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바닥에 온돌을 깐다. 온돌의 구조는 방밖에 아궁이(함실)을 만들고 구들(아궁이 안쪽)밑으로 불을 때면 온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것이 온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곳에 가면 한옥생활체험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한옥생활체험관안에 있는 선비방과 규수방에서 직접 온돌방 체험을 할 수도 있다. 한옥생활체험중 이곳에서 제공되는 전통한식은 납청유기(納淸鍮器)에 담아 맛과 멋을 더한다. 전주한옥마을에서 직접생활도 해보고 맛있기로 유명한 전주비빔밥도 맛보는 두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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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쌍산재 |
쌍산재는 우리고유의 전통한옥으로 서당채, 안채, 건너채, 사랑채 등의 기타 부속건물 다수로 어린이에게는 교육현장으로, 엄마 아빠에게는 어릴적 추억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고난했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생활속에 전통한옥 쉼터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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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 |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 때 파지성, 고려 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장군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 302호에 지정되었다.
조선태조 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 후,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다른 지역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 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길이가 1410m로 동내, 남내, 서내 등 4만 1천평에 달하는 3개 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 안은듯 장방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지금도 91세대(2001년 기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민속 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무을 비롯 서, 남문을 통해 성 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 들며(사극 용의 눈물, 태조왕건 등 촬영장소) 용인, 제주민속마을과 같은 전시용이나 안 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 의 모습이기에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남부 지방의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 위의 장독, 이웃과 이 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을 연상케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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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도래마을 |
도래마을 한옥민박촌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에 위치해 있으며 풍산 홍씨 집성촌으로 이곳에는 세 채의 문화재 지정 고택이 있는데 풍산 홍씨의 종택인 홍기응 가옥 (중요민속자료 151호), 홍기헌 가옥 (중요민속자료 165호), 홍기창 가옥(전남민속자료 9호)이다. 고택들이 즐비하여 전통이 살아 숨쉬는 남도 양반주택의 공간구성을 볼 수 있는 마을이다. 그중에 홍기응 가옥은 전체적으로 서쪽방향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고 일직선 축으로 안쪽에 안채와 가운데에 사랑채 그리고 앞쪽에 솟을대문을 갖춘 행랑채를 배치하여 안정감을 주는 구조로 만들어 졌다. 각각의 건물에 돌담을 만들어 놓아 독립적인 건물로 하였으나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아 서로 이동하는데 불편함은 없게 만들었다. 도래마을은 풍산 홍씨 씨족마을로 1480년경부터 마을이 생성되었으며 본래 김씨, 최씨 등이 살았던 이 마을에 풍상 홍씨가 살게 된 계기는 15세기 중엽 성천부사를 지낸 홍수가 계유정난에 화를 입고 전라도로 낙향하여 지금의 나주시 노안면 금아리 반송마을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홍수의 손자 홍한의가 강화 최씨집에 장가들었고 당시 풍습대로 처가동네에 새집을 지어 살게 되면서 풍산 홍씨의 집성촌이 됐다. 도래라는 마을 이름은 뒷산의 맑은 물이 세 갈래로 흐른다 하여 도천이라 했으며 천(川)의 우리말이 `내'인 까닭에 도내가 되었고 말하기 쉽도록 도래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도래마을의 명성에 맞게 마을입구에 정자 두 채와 당산나무가 방문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고 있으며 왼쪽으로 열 칸짜리 대형건물인 양벽정과 오른쪽으로는 조선시대 학당으로 쓰였던 영호정이 버티고 있어 도래마을은 기품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양벽정 앞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주변을 따라 향나무, 비루나무, 사철나무 등이 주변의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지금은 전통문화 체험마을로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있으며 주민들의 뜻을 모아 고택에서 민박체험을 할 수 있도록 건물 보수와 마을을 깔끔하게 단장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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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하회마을 |
하회탈의 고장 하회마을의 팜스테이 참가 농가는 모두 5농가인데 다른 곳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문화체험과 꿩농장 체험이 있다. 그물이 쳐진 야산에 1천마리 이상을 방목으로 키우는 꿩농장 체험은 직접 모이도 주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잡으려 하면 엄청난 무리의 꿩들이 일시에 날아 오르는 장관을 연출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자칫 놀라기 까지 한다고 한다.
별신굿 춤사위도 배우자 문화 체험은 별신굿 이수자 김종흥씨가 가르치는 전통 춤사위 배우기와 장승깍기 등이 있다. 이 고장에 전해 내려오는 별신굿의 기본 동작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농사일로는 딸기, 참외 하우스 일과 땅콩바매기 등이 있다. 딸기 농사체험은 추운 겨울에도 가능해 추위도 피하고 농가 일도 돕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될 것이다.
* 참여농가 - 5농가 * 이용방수 - 32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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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군자마을 |
안동에서 북쪽으로 도산서원 가는 국도를 따라 약 20km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오천 유적지'라는 안내판과 자연석에‘군자리'라고 새긴 표석이 연이어 서 있고, 여 기서 오른 쪽으로 300m 정도 들어가면 20여 채의 고가들이 들어앉은 안배된 유적지에 다다른다. 자동차로는 안동시청에서 출발한다면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이곳이 조선 조 초기부터 광산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세거해 온 외내에 있었 던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그 밖의 고가들을 1974년 안동댐 조성에 따른 수 몰을 피해 새로 옮겨 놓은 오천유적지이다.
‘군자리'라고도 불리는 이 유적지는 산 중턱에 자연스럽게 조성되었으며, 앞 골짜기가 호수를 이루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유적지는 터를 2단으로 구분하여 아래쪽에 주차 장을 만들었고, 위쪽에는 산기슭의 경사면을 따라 광산김씨 예안파의 중요 건물들을 잘 배치하여 놓았다. 이제는 주위의 국학진흥원, 도산서원 등과 더불어 ‘안동의 주요 관광코스의 하나가 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천근 교수는 안동의 종가에서 이 문화재단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화가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적절하게 묘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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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닭실마을 |
햄버거에 피자, 치킨, 스파게티, 스낵.. 날이 갈수록 진정한 우리의 맛이 사라져 가고 있다. 가히 전통 입맛 상실 시대라 불러도 좋을 듯 싶다. 게다가 전국 어디를 가나 음식 맛 도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모두 다 광고에 나오는 조미료들을 듬뿍 듬뿍 사용하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경상북도 봉화 닭실마을의 한과만큼은 아직도 5백년 전통의 맛을 이어오고있어 여 간 반가운 게 아니다.
봉화읍내에서 춘양면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왼쪽 마을 입구에 커다란 누각이 하나 서 있 어 범상치 않은 마을임을 눈치채게 해준다. 이 마을이 바로 오백년 내림 한과마을로 알려 진 봉화읍 유곡1리 닭실마을이다. 사실 이곳에서는 유곡1리보다도 닭실이란 이름이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닭실이라고 하는 것은 풍수지리학상으로 볼 때 금빛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금계포란형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다리를 하나 건너 왼쪽으로 길을 틀어 권충재선생 유적지로 가자면 곧바로 닭실종가 전통유과라는 간판이 붙은 슬레이트지 붕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바로 닭실마을 한과를 만드는 명소이다. 유곡1리 생활 개선부 유곡부녀회에 소속된 십여명의 주민들이 거의 매일 이곳에 모여 한과를 만든다.
찹쌀 반죽에 멥쌀 가루를 입히고 식용유로 튀기고 조청을 입히고 깨를 박는 과정들이 마 을 아낙네들의 섬세한 손길로 차근차근 이뤄진다. 한과는 제사 외에도 결혼, 회갑연 등에 꼭 등장하는 명물이다. 닭실마을 한과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이유는 5백년 전통의 내림 손맛이 살아 있고 하나같이 수작업으로만 만들어지는데다 반드시 주문에 의해서만 생산되는 때문이다.
닭실마을 한과 제조의 전통은 조선 중종 때의 재상인 충재 권벌(1478∼1548)선생의 종택 이 이곳에 자리잡음으로써 비롯됐다. 종택에서는 충재 선생의 불천위제사를 지금까지 지 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과를 만드는 전통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제사 음식 중 가장 정성을 들이는 것이 바로 한과. 모두 제 색깔을 내야 하고 모양이 좋고 맛이 좋아야 한다. 그같은 제조 기술이 마을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고 오늘날에 와서는 마을을 상징하는 사업 으로 커나갔다.
부녀회원들은 지난 1992년 생활개선부를 만들고 회관에 모여 공동으로 작업한 뒤 여기서 생산된 한과를 외지사람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부 한 두명 회원이 따로 독립해 나 가기도 했지만, 18명의 부녀회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전통의 맛을 지켜나간다. 중국 산 곡물들이 범람하는 요즘에도 그들은 꼭 토종만을 고집해서 한과 원료로 쓴다. 모양을 내는데 쓰이는 깨만 해도 국산 깨라야 노란 색을 제대로 발한다고 한다. 한과는 1년 내내 만들지 않는다. 음력 7월에는 날이 너무 무더워서 미리 만들어 놓지 않 는다. 주문 받으면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추석이나 설명절 때에는 선물용으로 많이 팔 리는데 손이 모자라서 주문량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이다. 가격은 바구니의 크기 와 한과의 종류에 따라 2만5천원에서 7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부녀회관까지 직접가서 한과 를 살 수도 있고, 안방에서 주문해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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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선비촌 |
유교문화 발상의 중심지로서 옛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선현들의 학문 탐구와 전통생활 모습의 재현을 통하여 관광자원화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광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며, 우리 전통적 고유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 부지면적 - 57,717㎡(17,460평) * 전시가옥 면적 - 2,651㎡(802평) * 주요규모 - 와가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정려각 2동, 성황당 1동, 곳집 1동, 원두막 1동, 저자거리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괴리현상을 해소시켜 보고자 충 효의 현장에 재현하게 된 것입니다.앞으로 소수서원과 연계되는 영주선비정신의 계승 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 그리고 역사관 확립을 위한 산교육장으로 활용 될 것이다. 선비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오감체험형전시와 참여형 이벤트, 전통문화체험의 기회가 수시로 제공되는 선비촌 의 각종 기획프로그램에서 옛 선비들의 당시 생활상을 통해 잊혀져 가는 수준높은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수신제가(修身齊家) 김상진家, 해우당고택, 강학당 '수신제가(修身齊家)'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올바르게 가꾼다는 뜻이다.선비들은 우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학문을 힘쓰며 일상의 생활윤리를 실천하는 일,곧 수신(修身)을 중요시했다. 이는 유학의 실천적인 학풍에 의한 것으로 선비들은 수신을 위해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하는일을 게을리하지 않 았다. 수신제가의 공간에서는 자기수양을 위해 노력했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육방식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입신양명(立身揚名) 두암고택, 인동장씨종가 '입신양명(立身揚名)'이란 사회에 진출하여 이름을 드높인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에게 과거시험을 통한 관료의 길은 수신제가(修身齊家)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즉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얻는 일이었다.입신양명의 공간에서는 중앙관직에 진출하여 다양한 활 동을 하였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거무구안(居無求安) 김문기家, 만죽재, 정사 '거무구안(居無求安)'이란 사는데 있어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살아갈 길을 고민하였다. 자연과 더 불어 풍류를 즐기는 것을 인격수양의 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무구안의 공간에서는 명상과 풍류를 즐기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지않고 현실의 잘잘못을 비판한 영주 선비의 굳은 기개를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김세기家,김뢰진家,장휘덕家.이후남家,김규진家,두암고택가람집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이란 가난함 속에서도 바른 삶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비록 살림 살이가 어렵더라도 잘사는 것에 욕심이 나서 선비의 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곤궁 함으로 인해 가볍게 스스로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우도불우빈의 공간에서는 가난을 부 끄러워 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선비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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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 한개마을 |
성주 한개마을은 성산이씨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촌락이다. 조선세종때에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이 곳에 이주하여 마을을 만들었다. 현재는 월봉 이정현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한옥 보존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는 영취산(331.7m)이 좌청룡 우백호로 뻗어 있고, 서남쪽으로 백천이 흐르고 있어 영남 제일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구한말 성리학자 이진상을 비롯, 응와 이원조 등 예로부터 이름난 선비를 많이 배출 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마을 내의 주택들은 문화재자료 제354호 ‘극와고택' 등 지방지정문화재 9동을 중심으로 전통한옥 구조가 잘 남아 있다.
이 마을의 담장은 크게 외곽담과 내곽담으로 나눌 수 있다. 외곽담은 마을의 가옥이 대체 로 경사지에 위치한 관계로 산지에 접한 담과 주택동 쪽의 측면담은 높은 반면 앞뒤 주택 의 영역을 구획하는 담은 낮게 되어 있다. 내곽담은 주거건물의 처마보다 낮아 담 양측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차단 또는 연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마을 담장의 주류인 토석담은 전통 한옥들과 잘 어우러져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마을 속에 잘 동화되어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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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양동민속마을 |
양동 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마을로,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국보, 보물, 민속 자료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는데, 마을의 규모 및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성 등 볼거리가 많아 1993년 영국의 찰스황태자도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양동마을의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골짜기와 능선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포함하여 500여년의 전통의 향기를 품은 총 160여호의 고가옥과 초가집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있다. 또한 옛 명문대가의 영광스러운 자취와 선조들의 삶이 배어 있는 200년 이상된 고가 54호가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의 다양하고 특색있는 우리나라 전통가옥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전에 마을의 배치와 답사 코스를 파악하고 문화재의 소재를 확인한 후 답사 하는 것이 좋다. 단, 마을을 둘러볼때는 집안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 양동마을의 문화재 1) 국보 1점 - 통감속편 (通鑑續編, 283호) 2) 보물 4점 - 무첨당 (無添當, 411호), 향단(香壇, 412호), 관가정 (觀稼亭, 442호), 손소영정(孫昭影幀, 1216호) 3) 중요민속자료 12점 - 서백당 (書百當, 23호), 낙선당 (樂善當, 73호), 사호당 (沙湖當, 74호), 상춘헌 (賞春軒, 75호), 근암고택 (謹庵古宅, 76호), 두곡고택 (杜谷古宅, 77호), 수졸당 (守拙當, 78호), 이향정 (二香亭, 79호), 수운정 (水雲亭, 80호), 심수정 (心水亭, 81호), 안락정 (安樂亭, 82호), 강학당 (講學堂, 83호) 4)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7점 ▶유형문화재 - 적개공신논상록권 (敵愾功臣論賞錄券, 13호) 손소선생분재기 (孫昭先生分財記, 14호) ▶기념물 - 양동의 향나무 (8호) ▶ 민속자료 - 대성헌 (對聖軒, 34호) ▶ 문화재자료 - 손종로정충비각 (孫宗老旌忠碑閣, 261호) ▶ 향토문화재 - 경산서당 (景山書堂), 두곡영당 (杜谷影堂)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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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청학동 |
지리산 삼신봉의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 산비탈 자락에 자리잡은 청학동에 는 현재 30여 가구 2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유교.불교.기독교 사상에서 좋은 점만 모아 민족종교와 접 목시킨 유불선 합일 갱정유도교를 믿으며, 우리 고유의 흰색 한복을 입고 상투를 틀 고 있는 등 독특한 생활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일명 도인촌으로도 불린다. 청학이란 털빛깔이 푸른색인 학을 이르는 말이며, 이곳은 나라 안에 아무리 큰 난리 가 터져도 전혀 해를 입지 않는다는 명당터 10군데, 즉 십승지지 중 한 곳이라는 기 록이 전해내려온다.
* 삼성궁 - 이곳은 환인, 왕웅, 단군 등 우리 겨레의 세 성인을 모신 성전이다. 이 삼성궁을 일구고 가꾼 이는 한풀선사로, 지난 20여년간 제자들과 함께 약 1,000개에 달하는 솟대를 세웠다. 이곳의 솟대는 기러기 모양을 깎아 긴 삭대 끝에 꽂아 마을입구에 세우 던 원래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전북 진안 마이산돌탑과 비슷한 것이 있는가 하면 항아리 혹은 맷돌로 쌓은것 등 다양한 형태의 솟대가 뜰 이곳저곳에 우뚝 서 있다. 3,333개가 될 때까지 꾸준히 쌓아나갈 예 정이라고 하며, 현재에도 계속 공사를 실시하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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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 황산전통한옥마을 |
거창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에 황고(黃皐) 신수이가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 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귀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폭 5m 이상, 높이 15m 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이 고목을 안정좌 (安亭座)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며 마을 동측에 흐르는 호음천을 중심으로 큰땀과 동촌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규모와 형식면 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시도민속자료 제17호 ‘거창 황산마을 신씨고가' 등의 지정문화재는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한 마을 전체가 모두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은 이른바 씨족부농촌으로 소작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 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雨水)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석으로 메쌓기 한 위에는 하부의 자연석보다 작은 20㎝ 내외의 돌을 담 안팎에 사용 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으며 또한 근년에 쌓은 담장은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하였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 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이 아닌 원지방도형(圓池方島形)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매우 고즈 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 토담길이 약 1,200m의 돌담, 하부가 돌담 구조인 토석담 * 마을형성 - 600년전 형성, 현 59세대 (136명) 거주 * 문화재 - 거창 대정리 신씨고가(경남 민속자료 17호) 3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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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 남사마을 |
남사예담촌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잇어 표면적으로는 옛 담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부터 경북하면 안동 하회마을이요, 경남하면 산청남사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농촌전통테마마을 남사예담촌은 변화하는 현재속에서 옛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는 배움의 휴식터로 자리하고자 한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기운을 품고 있는 남사예담촌 마을은 산청의 대표적인 고가마을 중 하나이다. 마을을 방문하면 끝없이 펼쳐진 흙돌담길과 고풍스런 기와집들, 오래된 나무들로 인해 마치 옛날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흙과 돌로 쌓아진 마을 담장은 전체 5.7km 정도에 이르는데 이중 3.2km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전통 목조 한옥이 85채나 되는 마을은 전체가 문화재나 다름없다. 군불을 때는 전통가옥에서 하룻밤 머물고 싶다면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전통 혼례체험, 종이한옥 짓기 등 고풍스러운 체험도 즐길 수 있다.
남사예담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전통 부락이름인 ‘남사마을'에 옛날 담을 뜻하는 ‘예담'을 합하여 만든 말이다. 마을은 사수강을 사이에 두고 남사마을과 상사마을로 나뉘어져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곳 마을이 중국 산동성의 곡부현에 있는 공자의 탄생지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하여 지명까지 같다는 것이다. 마을을 흐르는 사수강이라는 이름도 중국과 같고 우뚝 솟은 니구산도 같다. 옛날에는 크게 3개 성씨 박씨, 이씨, 정씨가 마을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지금도 이들이 몰려 사는 곳을 지칭하여 ‘박촌',‘이촌',‘정촌'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다른 성씨를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서 다성촌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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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읍민속마을 |
표선리에서 북쪽으로 8km쯤 가면 한라산 기슭 아래 성읍마을이 있다. 성읍리는 원래 제주도가 방위상 3현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을 때(1410-1914) 정의현의 도읍지였던 마 을로서 제주도 옛 민가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유형, 무형의 많은 문화 유산이 집단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옛마을 형태의 민속경관이 잘 유지되어 그 옛 모 습을 계속 유지하고자 민속마을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옛민가, 향교, 옛관공서, 돌하루방, 연자방아, 성터, 비석 등의 유형 문 화유산과 중산간 지대 특유의 민요, 민속놀이, 향토음식, 민간공예, 제주방언 등의 무형 문화유산이 아직까지 전수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161호인 느티나무, 팽나무 등은 오백년 도읍지로서의 긍지를 엿볼 수 있다.
* 이재수의 난 촬영지 이 영화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민란측과 관측의 전투장면이 아닌가 싶다. 그 전투장면의 배경이 된 곳은 다름이 아닌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정의현의 옛 성터 이다. 옛 성터에서 벌어지는 전투장면은 중견 배우들의 몸을 아끼지 않은 연기를 비롯 단연코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제주 옛 정의현의 도읍지로 성읍민속마을이 있 기도 한곳이다. 제주 초가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민속마을로 실제로 제주 초가에 살고 있는 성읍리 주민들과 제주의 전통 화장실인 '통시'를 만나 볼 수도 있다. 특히 마을내 고목과 돌담 그리고 옛 성벽등이 어우러진 고풍스런 모습은 오백년 도읍지의 역사를 그대로 말해준 다. 이 밖에 민란측의 처음 봉기를 결의 하였던 단산 밑에 위치한 대정향교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주변에는 옥황상제가 던져버려 생겼다는 전설속의 산방산을 비롯한 용 머리 해안 그리고 송악산까지 이어지는 사계해안도로가 있어 서귀포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관광지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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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우리에게는 한옥이 운치가 있어좋은데 지금은 자꾸 새것으로만 바궈가고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안타깝고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