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행복을 얻고 싶다면 길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길을 향해 직접 여행을 떠나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답답한 집안을 벗어나 대자연 속으로 바퀴를 굴릴 때 비로소 가슴이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 다음으로 나를 온전히 지지해 주는 친구의 존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친구와 함께 취미를 즐기며 남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늙어간다는 시간을 낙천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최고의 비결이었다. 나에게 자전거는 그 소중한 인연과 행복을 이어준 최고의 선물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다.
그 시절 나에게는 간담상조(肝膽相照)하며 속내를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자전거 동반자, 바이크 손대장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2017년 그 해 추석 황금연휴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원래 계획했던 홍천 임도 라이딩이 가을비 예보로 취소되어 낙담하던 차에 손대장이 넌지시 건넨 춘천 라이딩 제안은 가을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낭보였다. 춘천은 낯익은 도시였지만,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호반의 속살을 제대로 느껴본 적은 없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코스에 마음은 벌써 소년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부평구청역에서 첫 전철에 몸을 싣고 상봉역에서 손대장을 만나 춘천행 열차로 갈아탔다. 강촌역에서 내려 시작된 라이딩은 의암호와 춘천댐을 거쳐 춘천역으로 이어지는, 대략 백리길의 여정이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페달을 밟기에 더없이 가벼웠다. 옛 강촌역을 건너자 곧장 북한강 자전거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수풀이 우거진 호젓한 길은 푸른 산과 맑은 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사천왕사를 지나자 지척에 의암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암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가히 절경이어서 마치 외국의 어느 낯선 호숫가를 달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곳곳의 아름다움을 눈과 사진에 담느라 손길이 분주해진 나를 보며, 친구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춘천 파크골프장을 지나 애니메이션 박물관에 다다르니 파란 하늘과 산, 의암호가 자아내는 풍광도 아름다웠지만, 섬과 나무숲이 거울같은 수면에 데칼코마(Decalcomanie)처럼 찍히는 모습은 눈이 황홀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특히 박물관을 지나 수면 위에 나무데크로 연결된 자전거 도로는 이번 여정의 백미였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를 둥둥 떠서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가던 길을 멈추고 쉬기를 반복했다. 경치를 감상하느라 눈이 호강하면서도 피곤할 줄을 몰랐다. 길은 서면의 도포서원 표지석으로 이어졌다. 박사를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박사마을의 유래를 보며 우거진 갈대숲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겼다. 신매대교를 지나 도달한 신매리와 서상리 마을 들판은 온통 초록빛 배추밭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지나 드디어 거대한 콘크리트 몸체를 가진, 쉰 두살의 춘천댐에 닿았다. 과거 군 시절 차량으로 무심히 지나치던 곳이었으나,
친구와 자전거를 멈추고 바라본 춘천호의 비경은 쏘가리만큼이나 깊고 푸른 맛을 품고 있었다. 춘천댐에서 다시 육림랜드 방향으로 접어드니 울창한 나무숲 터널이 시원한 그늘 터널을 내어 주었다. 가로수 단풍잎들이 조금씩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에서 완연한 가을의 숨결이 느껴졌다. 소양2교에 다다르자 소양강처녀 조각상이 애처로우면서도 늠름하게 가을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고 수많은 관광객이 현수교 위에서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오후 1시가 훌쩍 넘어 시장기가 들때 쯤, 소양강 스카이워크 맞은편의 식당을 찾았다.
바이커들의 아지트답게 벽면 가득 자전거족의 사진이 걸린 그곳에서, 1975년 춘천을 들락날락하며 애인과 함께 먹었던 추억의 대명사, 닭갈비와 막국수를 마주했다. 손대장과 마주 앉아 먹는 그 독특하고 매콤한 별미는 여전히 입안 가득 행복을 선사했다. 오후 3시 40분, 춘천역에서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실으며, 나는 이 낭만적인 여정을 선물해 준 손대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전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영원히 든든한 지원군으로 내 곁에 있어 줄 것 같던 그 소중한 친구는 2025년 6월10일 짦은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먼저 하직하고 말았다.
친구가 떠난 뒤 맞는 계절은 어딘가 서글프고 허전하다. 이제는 다시 전철에 몸을 싣고 상봉역에 내려도 나를 반겨주던 손대장의 환한 미소는 볼 수 없고, 춘천의 청명한 가을 바람 속에서도 그의 호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호수 위를 달린 듯 흐뭇했던 그 나무데크 길 위에는 이제 나 혼자만의 쓸쓸한 바퀴 자국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슬픔 속에서도 나는 기억한다. 친구와 함께 춘천 호반의 모든 것을 담고 즐겼던 그 뜻깊고 눈부셨던 하루를. 비록 친구는 먼저 저 세상의 길을 떠났지만 그가 내 삶에 선물해 준 자전거라는 반려와, 함께 나누었던 뜨거운 우정의 기억은 내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춘천은 여전히 매혹적인 호반의 도시지만, 이제 나에게는 그리운 친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추억의 성지가 되었다. 먼저 간 그곳에서도 친구가 자전거를 타며 환하게 웃고 있기를 바라며, 하늘을 향해 나지막이 고마움과 그리움의 인사를 건네어 본다. "손대장, 자네가 있어서 내 일생의 한 페이지가 참으로 눈부시게 낭만적이었네. 고마웠네, 내 친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