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은 충남 공주시와 논산시, 대전광역시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서,
조용한 산줄기 곳곳에 울창한 수림과 함께 기암절벽과 암봉 등이 있어서 경관이 무척이나 수려한 산이다.
현재 정상인 천황봉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서 관음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 정상부 능선에 오르면 조망이 무척이나 뛰어나다.
특히 삼불봉의 경치는 "계룡 8경중 제 2경"에 해당할 정도로 가히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으며,
삼불봉에서 관음봉에 이르는 1.8km 구간의 자연성릉은 빼놓을 수 없는 계룡산의 백미이다.
자연성릉이란 "자연스런 성곽의 능선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산기슭 곳곳에 여러개의 고찰과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동쪽 기슭에 있는 동학사와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 동남쪽의 용화사는 계룡산의 4대 고찰이다.
이 중에서 동학사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고려말 충신인 삼은(三隱.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을 모신 삼은각(三隱閣)과
매월당 김시습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낸 숙모전(肅慕殿)이 함께 있다.
동학사라는 이름은 "절 동쪽에 학바위가 있어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계룡산은 조선초에 왕도를 건설하다가 중단한 신도안(新都)이 있으며,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남매탑을 품고 있다.
남매탑은 고려시대에 세워졌다고 전하나, 백제 석탑양식으로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백재의 왕족 하나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고 있을 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호랑이를 구해 주었다.
그러자 며칠 뒤 호랑이는 예쁜 처녀를 업고왔다.
왕족은 그 처녀를 집으로 고이 돌려보냈으나, 그 부모가 딸을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낼 수 없다고 하고 다시 왕족에게로 보냈다. 왕족은 어쩔 수 없이 그 처자를 아내가 아닌 누이로 맞이하여 남매가 함께 수도하였고, 마침내 성도하였다. 그 후 그들이 죽은 뒤 몸에서 많은 사리가 나와 사람들이 이 탑을 세워 오누이를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계룡산은 지리산과 경주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관광지로도 제5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풍수지리에서도 우리나라 4대명산으로 꼽히고 있는데, 정감록(鄭鑑錄)에 의하면 미래의 도읍지와 피난지의 하나로 적혀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 신도안을 중심으로 수많은 신흥종교와 유사종교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계룡산이라는 이름은 "주봉인 천황봉에서 쌀개봉과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벼슬을 쓴 용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