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숲을 거닐다》in story
🍃 한국수필문학 이론과 창작의 미래
🍃정진권 선생을 추모하며
✒정정호(중앙대 명예교수)
나는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려 노력했고 자신의 글에 악의(惡意)가 스며들지 않도록 늘 경계했다. 내 글에 틀린 말이 많고 미워하는 소리가 섞여 있다면 그것은 내 재능과 인품이 모자라서이지 내가 노력도 경계도 안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정진권,「머리말」 『내 아내는 잘라 팔 머리가 없다』, 2006)
수필가 정진권 선생은 2019년 7월 3일 새벽 5시에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 선생은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신조를 지키신 분으로 여러 문예지에 다한 수필을 남겼다. 여러 학회나 문학단체에서 자리를 권했지만 자신은 많이 부족하여 자격이 없다며 끝까지 받지 않으셨다. 오로지 교수와 수필가 그리고 애주가로 단순, 소박하게 사신 분으로 우리 학계와 문단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수필 학계와 문단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필자가 정진권 선생을 처음 뵌 것은 55년 전인 1964년 봄이다.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 때 선생께 한국어와 문학을 배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뵌 것은 지난 5월 9일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개최된 「피천득 문학 세미나」에서이다. 마지막 강연이 된 자리에서 선생은 피천득 선생과 인연과 회고를 곁들여 피천득의 삶과 문학의 핵심을 찌르는 명강연을 했다.
필자는 1960년대 말 대학에 입학해서 피천득 선생에게 영시를 배웠다. 필자보다 오래 전에 같은 대학을 다녔던 정진권 선생은 대학 교양 영어 시간에 피천득에게 직접 배웠다. 그는 교재에 실렸던 “Fellow-Traveler”라는 글의 한 문단을 읽고 피천득은 “좋지? 제군은 내가 왜 글을 안 쓰는 줄 아냐? 이렇게 좋은 글이 있는데 내가 무엇하러 또 써?” 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였다. 이 말은 잘 쓸 자신 없으면 아예 글에 손을 대지도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후에 수필가 피천득을 흠모하고 좋아하셨다. 여기에서 정진권, 피천득 그리고 필자와 인연의 3각형(?)이 만들어 진다. 피천득 선생은 정진권 선생 수필「비닐우산」을 특히 좋아했다. 정진권 선생은 피천득 수필 「인연」을 가장 사랑하고 높이 평가했다. 편수관 시절 수필「인연」을 국어 국정 교과서에 게재해 피천득 수필을 널리 알리고 우리 시대에 국민수필가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피천득 선생과 정진권 선생 인연을 좀 더 캐보자. 1997년 계간『에세이 문학』을 발행하는 한국수필 진흥회(당시 회장 故김태길 교수)에서 제1회 수필문학상을 부상 100만원(지금으로는 1000만 원 이상) 과 함께 피천득 선생께 드렸다. 그러나 피천득은 그 상금을 진흥회에 도로 전액 희사하였다. 진흥회에서는 그 희사한 돈을 기금으로 신인상을 제정하였다. 그 다음에 본상 수상자는 일석 이희승 선생이셨고 첫 신인상 수상자는 정진권 선생이었다. 그때 상금 30만원(지금으로는 300만 원 이상) 이었다. 여기에서 피 선생과 정 선생과 인연이 계속된다. 그 뒤 정 선생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들을 교과서 읽듯 읽으면서 수필 쓰기를 공부”하며 수필가가 되었다. 언젠가 정진권 선생은 “작은 거인” 피천득 선생을 떠올리며 “금아 선생 글은 읽으면서 내 글은 생각할 때도 나는 늘 장송(長松) 아래 잔솔이었다” 고 생각하고 항상 겸손해했다.
정진권 선생은 피천득 수필을 한국수필문학의 정점으로 보고 피천득 수필을 중심으로「좋은 수필의 요건」이란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정진권 수필가의 선언문이기도 하다. 좋은 수필의 요건을 정리해보자.
첫째, “그 사용된 언어가 정확하고 정서적이며, 때로는 함축적인, 그리고 쉽고 산뜻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그 짜임(구성)이 겉으로는 크게 폼 나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잘 짜여진 것이어야 한다.”
셋째, “화자의 목소리가 겸손하고 정다운 것이어야 한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할 때도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겸손함과 정다움이 흘러야 한다.”
넷째, “소재가 우리들 평범한 독자에게 친근한 것이어야 한다. 보통사람의 보통의 삶에서 선택한 소재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 밖에도 정진권 선생은 피천득 수필 「유순이」, 「빠리에 부친 편지」, 「장미」 등을 좋아했고 피천득 문학의 뿌리를 정(情)으로 보았다.
정진권 선생은 1967년 『현대문학』 11월호에「농담조 시험설」(弄談調 試驗設)이란 수필을 처음 발표하였다. 그 뒤 1973년에 첫 수필집『푸르른 나무들 저 붉은 해들』 (일지사)을 상재한 이래 타계 일주일 뒤에 간행된 유고집『옛 이야기가 있는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십수 권의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수필집을 냈다. 특히 정진권 선생은 현장 수필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 외에 특별히 국문학자로서 한국 수필의 역사와 이론에 관해 단행본 3권을 출간하였다. 『한국 현대 수필 문학 문학론』 (1983)과 『한국 수필 문학 연구』 (1996), 그리고 『수필쓰기의 이론』(2000)이 그것이다. 수필 문학의 이론과 실제에서 정진권 선생이 남긴 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라.
정진권 수필은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수필은 형식과 주제 면에서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언제나 작은 기쁨과 예지로 출렁인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직감으로 깨달았을 때 느끼는 놀람이나 경탄 같은 것이다. 이제부터 정진권 선생 수필을 몇 편 읽어보자.
우선 피천득 선생도 가장 좋아하셨다는 「비닐우산」일부이다. 일상생활의 사소한 물건에서 찾아내는 작은 기쁨이다.
비닐우산을 받고 위를 쳐다보면 우산 위에 떨어져 흐르는 맑은 빗방울이 보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이 빗방울들이 떨어지며 내는 싱그러운 빗소리가 들린다. 투명한 비닐덮개 위로 흐르는 그 맑은 빗방을, 묘한 리듬을 튕겨내는 그 싱그러운 빗소리, 단돈 백원으로 사기에는 너무 미안한 예술이다.
다음은 많이 사랑받는 서민적인 수필 「짜장면」일부이다.
짜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그 방은 퍽 좁아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깨끗지 못해야 하고, 칸막이에는 콩알만 한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어야 어울린다. … 그리고 그 집주인은 뚱뚱해야 한다. 머리에 한 번도 기름은 바른 일이 없고 인심 좋은 얼굴엔 개기름이 번들거리며 깨끗지 못한 손은 솥뚜껑만 하고 신발은 여름이어도 털신이어야 좋다.
위 수필들은 비교적 초기 작품들이다. 필자는 1990년에 발표한 수필「빛깔들의 합창」을 가장 좋아한다.
우리 집의 작은 뜰입니다. 밝은 햇볕 속에 잔디가 파랗습니다. 노란 개나리도 환히 피었습니다. 빨간 채송화, 하얀 딸기꽃, 모두 햇볕 속에 환합니다. 아, 연분홍 모과꽃은 좀 수줍은가 봐요. 푸른 잎새 속에 숨어서 얼굴만 조금 내보입니다. 모두 모두 다정한 표정들입니다.
빛깔들의 합창입니다. 갖가지 빛깔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뜰 하나 가득히 차서 넘칩니다. 지휘자는 하얀 나비 한 마리. 하늘하늘 춤을 추며 지휘를 합니다. 바둑이가 신기한 듯, 춤추는 지휘자를 바라보며 빛깔들의 합창을 조용히 듣습니다. 정말 평화로운 광경입니다.
우리 집의 작은 뜰에 목소리가 서로 다른 여러 빛깔들이 함께 삽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내 목소리를 닮으라고 말하는 일이 없습니다. 목소리가 서로 달라야 아름다운 합창을 빚어낼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제 목소리만 크게 내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면 합창이 깨지겠지요? (전문)
정진권 선생은 성북구 미아리 단독주택에 오래 사셨다. 마당에서 가꾸던 “작은 뜰”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시각(색깔들)과 청각(합창) 즉 광경(장소)과 소리가 나선형의 조화를 이룬다. 그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지상의 “작은 뜰”이 갑자기 비약하여 평화로운 천국으로 변형된다. 이것이 수필가 정진권의 놀라운 변형의 전략이다.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이 어느 순간에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된다. 이것은 마치 대기의 수증기들이 밤사이에 나뭇잎 위에서 하나로 응결되어 새벽에 진주 같은 이술이 맺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또한 비온 뒤 홀연히 눈부신 무지개가 낮은 하늘에 드리워져 우리에게 엄습해 오는 것과 같다.
정진권 선생은 특히 한국 고전 시와 산문을 수필 주제로 자주 다루었다. 이것도 그의 특별한 업적이며 한국 고전 문학과 현대 수필을 연결시키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한시(漢詩)가 있는 에세이』 (2002), 『옛시가 있는 에세이』(2003) 그리고 마지막 유고집『옛이야기가 있는 에세이』(2019) 삼부작이 그것이다.
정진권 선생은 이미 한문으로 된 다수의 한국 고전 시와 산문을 번역, 소개, 출간한 바 있다. 또한 한국수필 문학사에서 정진권 선생이 과감하게 제기한 주제들도 있다. 그것이 바로 수필에서 사실과 허구의 문제와 동(童)수필(아동수필)의 활성화 문제이다.
한때 수필문학계에서 ‘사실’과 ‘허구’ 문제가 뜨거운 논쟁이 된 적이 있었다. 선생은 수필에서 사실에만 얽매이기보다 문학 작품 특성인 허구성(창작)을 더 중시하셨다. 수필에서 허구의 적절한 도입은 일상성에 함몰되기 쉬운 생활문학으로서 수필을 한 단계 승화시켜 시와 소설과 같은 창작문학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 문학에서 ‘사실’보다 ‘있음직함’ 즉 개연성이 더 중요하다. 이 개연성이 바로 ‘진실’로 가는 길이다. 문학이 과학, 역사, 철학과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진실을 보여주고 허구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허구 세계는 ‘진실’을 타고 넘어 영원한 상상의 세계로 가는 길이다. 예를 들어 문학에서 꾸민 상상의 여인은 영원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구원의 여인이 아닌가?
정진권 선생이 특별히 강조하신 것은 동수필(童隨筆) 즉 아동수필이다. 그는 동시, 동화처럼 어린이를 위한 동수필을 실제로 많이 썼다. 정 선생은 자신이 동수필을 쓴 것은 “어린이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잠시나마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해서” 이며 “문학적으로든 교육적으로든 동수필은 매우 유용한 장르”로 “동시, 동화와 함께 빛나는 앞날”을 믿었다.
정진권 선생은 2000년 한 대담에서 한국 수필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우선 그는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인생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창조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활자화하기에 앞서 수련기간을 가지고 충분히 준비해야 하고 창작에도 도움이 되는 객관적이고 양심적인 수필 비평의 필요함을 주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필가는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한국 수필 문학사 나아가 한국 문학사에서 정진권의 수필 이론과 창작이 남긴 유산을 제대로 정리하고 평가해서 합당한 자리매김을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고교 은사이신 정진권 선생이 고인이 되시고 나니 아둔한 제자로서 선생의 삶과 문학을 항상 생각하며 나의 나머지 생애를 더욱 겸손하고 소박하게 살고자 조용히 다짐해 본다. 가톨릭 신자이셨던 “베네딕도” 정진권 선생님,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강을 누리소서!
* 정정호. 문학비평가. 국제PEN한국본부 번역원장. 중앙대 명예교수
『피천득 평전』, 『비교세계문학론』, 『재난의 시대를 위한 희망의 인문학』등
*<계간 에세이문학 가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