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 받으시는 동안 산 아래서는 귀신이 한 아들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만이 하나님의 권능을 누리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4-19절 귀신에 쩔쩔매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탄식하십니다. 얼마나 함께 있고 얼마나 참으리요 한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세상이 하나님을 업신 여기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우리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겉을 꾸며서 세상에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속사람을 믿음으로 단장하여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는 것입니다.
14-18, 28,29절 예수님이 산 위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동안 산 아래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무리의 조소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때 성공적으로 많은 귀신을 쫓아냈지만(6:13) 이번에 실패한 것은, 예수님이 곁에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음(기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의 부재 속에서 믿음 없는 무리의 책동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출 32장) 제자들은 변화산에 올라가신 예수님의 부재로 불안한 상황에서 의심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믿음을 잃었을 것입니다 (약 1:6-8). 과거의 성공적인 신앙 행적이 자동으로 오늘의 나를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관계이기에 늘 자라고 변하고 다져져야 합니다. 올 한 해 끝에 부쩍 자란 내 믿음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21-27절 귀신 들린 아이의 부모는 할 수 있거든 고쳐달라고 예수께 부탁합니다. 아이의 고질적이고 절망적인 상태 때문에 어느새 믿음이 소멸했고, 제자들의 치유 실패는 의구심을 더욱 부추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라는 예수님의 책망 섞인 도전을 듣고는 곧바로 믿음과 믿음 없음을 동시에 고백합니다. 얼마나 정직한 고백입니까? 이율배반적인 말이지만, 실제로 우리 안에는 믿음과 믿음 없음이 공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의심과 절망 속에 피어난 우리의 작고 가느다란 믿음, 불안정한 믿음에 깃들어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마 17:20)으로 불신의 시대를 이겨내기를 바라십니다. (매일성경, 2024.03/04, p.32-3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마가복음 9:14-29에서 인용).
① 산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 받으시는 동안 산 아래서는 귀신이 한 아들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만이 하나님의 권능을 누리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귀신에 쩔쩔매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탄식하십니다. 얼마나 함께 있고 얼마나 참으리요 한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세상이 하나님을 업신 여기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우리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겉을 꾸며서 세상에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속사람을 믿음으로 단장하여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이 산 위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동안 산 아래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무리의 조소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때 성공적으로 많은 귀신을 쫓아냈지만(6:13) 이번에 실패한 것은, 예수님이 곁에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음(기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의 부재 속에서 믿음 없는 무리의 책동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출 32장) 제자들은 변화산에 올라가신 예수님의 부재로 불안한 상황에서 의심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믿음을 잃었을 것입니다 (약 1:6-8). 과거의 성공적인 신앙 행적이 자동으로 오늘의 나를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관계이기에 늘 자라고 변하고 다져져야 합니다. 올 한 해 끝에 부쩍 자란 내 믿음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③ 귀신 들린 아이의 부모는 할 수 있거든 고쳐달라고 예수께 부탁합니다. 아이의 고질적이고 절망적인 상태 때문에 어느새 믿음이 소멸했고, 제자들의 치유 실패는 의구심을 더욱 부추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라는 예수님의 책망 섞인 도전을 듣고는 곧바로 믿음과 믿음 없음을 동시에 고백합니다. 얼마나 정직한 고백입니까? 이율배반적인 말이지만, 실제로 우리 안에는 믿음과 믿음 없음이 공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의심과 절망 속에 피어난 우리의 작고 가느다란 믿음, 불안정한 믿음에 깃들어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마 17:20)으로 불신의 시대를 이겨내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