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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근원에서 난 자들. 一つの源から出ている者たち。( 2025년 2월 23일 주일예배)
본문: 히브리서 2:10~18
히 2:10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끌어들이실 때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으로써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12 그리하여 그분은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자매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미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13 또 "나는 그를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4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6 사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와주십니다. 17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18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10. というのは、多くの子らを栄光へと導くために、彼らの救いの創始者を数々の苦しみを通して完全な者とされたのは、万物の目標であり源である方に、ふさわしいことであったからです。11. 事実、人を聖なる者となさる方も、聖なる者とされる人たちも、すべて一つの源から出ているのです。それで、イエスは彼らを兄弟と呼ぶことを恥としないで、12. 「わたしは、あなたの名を/わたしの兄弟たちに知らせ、/集会の中であなたを賛美します」と言い、13. また、/「わたしは神に信頼します」と言い、更にまた、/「ここに、わたしと、/神がわたしに与えてくださった子らがいます」と言われます。14. ところで、子らは血と肉を備えているので、イエスもまた同様に、これらのものを備えられました。それは、死をつかさどる者、つまり悪魔を御自分の死によって滅ぼし、15. 死の恐怖のために一生涯、奴隷の状態にあった者たちを解放なさるためでした。16. 確かに、イエスは天使たちを助けず、アブラハムの子孫を助けられるのです。17. それで、イエスは、神の御前において憐れみ深い、忠実な大祭司となって、民の罪を償うために、すべての点で兄弟たちと同じようにならね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18. 事実、御自身、試練を受けて苦しまれたからこそ、試練を受けている人たちを助けることがおできになるのです。
지난 주일에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대신 지신 주님의 놀라우시고, 완벽한 복음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복음은 종교적 엘리트나 혹은 신앙심이 투철한 소수의 사람들이 겨우 쟁취하여 누리도록 높은 산 위나 혹은 깊은 바다 속에 감추어 두신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모든 삶의 영역 안에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게 하시는 보편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구원하셔서, 풍성하고 넉넉하게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지난 주일에 나누었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인데요. 특별히 첫 번째로 함께 주목하기 원하는 구절은 10절부터 13절 사이에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말씀하시는 자녀의 특권을 약속하시는 내용이구요. 다음은 14절 이하에 자녀된 우리들을 위해 도우시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첫 번째로 10절~13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지위를 다시금 자녀로 회복하시고, 그래서 거룩한 존재로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시는 성경적인 근거를 말씀하시는데요.
먼저 10절에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우리의 존재가치를 회복하는 첫 단추인 것을 믿습니다. 존재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과 성경적인 가르침이 있는데요. 전자는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지식이고, 후자는 창조론으로 대표되는 고백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차이를 간단히 규정하면, 먼저 진화론은 과학적인 지식과 사실적인 증거들을 근거로 세워진 이론입니다. 반면, 창조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세워진 이론이지요. 그래서 진화론은 오랜 시간동안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만드셨다는 성경을 기본전제로 그와 관련된 증거들을 찾아 주장하고 있지요.
두 이론 모두 나름대로의 증거와 이론적인 배경을 갖고 추측과 추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하기에 논쟁이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요.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인간의 이론이라는 점에서 각각의 설득력과 혹은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믿어야 할 것은 그 어떤 이론이든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현재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 즉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존재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종의 기원”을 1859년에 발표한 찰스 다윈도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성공회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한 연구와 자료수집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정리된 이론을 정리하여 출판한 것이 종의 기원이라는 논문이고, 이 책이 진화론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화론도 애초에는 창조에 대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창조를 설명하기 위한 연구와 학문의 결과로 나타난 자그마한 결과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창조론이나 진화론이나 모두 하나님의 창조를 증언하기 위한 인간 나름으로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진화론이나, 창조론은 우리가 믿고 신봉해야 할 신념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믿어야 할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께서 이 땅과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의 특별한 권능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고백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란 그저 우연의 연속으로 벌어지는 인과관계에 의해서 이 세상에 잠시 존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역시 우연한 이유로 세상에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유기체에 불과하다는 과학적인 이론에 지배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스스로의 가치를 사고력을 가진 ... 그래서 다른 생명체들보다 조금 더 나은 유기체 덩어리로 믿고 허망하고 허무하게 육신의 정욕만을 채우며 살다가 사라지고 마는 존재로 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그 약속인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영생하는 존재로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영적인 가치관의 전쟁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창조를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자신의 가치를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존재로 믿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존재로 믿느냐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6)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특히 마지막 요일 4:4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이겼다고 말씀하시지요. 그 이유가 바로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얼마나 큰 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난 주간에 재일감리교선교사 선교대회를 다녀왔는데요. 집회 중에 강사님께서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식탁에 내가 함께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권리이며 권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식탁에는 감히 천사라도 함부로 앉을 수 없습니다. 미가엘이나 가브리엘도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야만 겨우 배석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식탁에 자유롭게,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마음 놓고 앉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식사의 자리가 마련된 집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몰라도, 구원의 문을 열고 영생의 집 안으로 들어간 자녀라면 누구라도 그 식탁에 자유롭게 앉아 식사를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여기서 예수님께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접하여 모셔 드리는 사람은 곧 영생의 문을 열고 하나님 나라의 집 안으로 들어간 것과 같은 사람입니다. 나의 마음 문을 주님께 여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영생의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사람에게 오늘의 본문 11절은 또한 이렇게 증언하고 있지요. 다시 한 번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히 2:11, 새번역)
우리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그렇게 인정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하는 삶을 살고 있는 지의 여부는 주님께서 인정하시는지의 여부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이렇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2)
예수님을 대외적으로 시인하는 것이 또한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또한 스스로 개인적으로 확인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진정한 축복과 풍요함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믿고 그 권세를 누리며 생활할 때 체감되는 것을 믿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2절~13절에 복음을 믿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는 우리를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주님께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감추지 않으시다는 근거가 되는 구약의 구절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14절 이하에는 지난 주일과 같은 맥락의 내용으로서 구원의 대상인 우리가 살과 피를 가지고 있기에,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살과 피를 가지신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나셔야 했다는 영적인 배경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육신적이고 가시적인 활동의 이면에 영적인 이유(동기)가 있었음을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14절에는 악마를 멸하시기 위해서 육신적인 삶을 받으셨다고 하십니다.
15절에서는 죽음의 공포로 인해 악마에게 종노릇 하는 데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셨다고 하시지요.
18절에는 시험을 받는 사람을 위해서 시험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제 인용한 것 세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의 현실에서 경험하는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 죽음, 그리고 시험.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을 때, 생존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세 가지를 이용해서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형상, 곧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본문에도 표현되어 있지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염려로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리로 밀어 넣습니다. 또한 인생의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을 던져 주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축복을 의심하고 거절하게 만들고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모습과 재질로 이 땅에 태어나신 후에 인생을 사시면서 그 모든 유혹과 시험, 그리고 생존에 묶이지 않으시고 진정한 구세주의 사명을 완성해 내셨지요. 대표적인 예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첫 번째로는 광야에 널브러져 있던 수많은 돌들을 빵으로, 즉 밥 혹은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다음으로 성전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신 것을 증명해 보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7)
세 번째로 마귀의 권세를 인정하면 세상을 소유할 권한을 넘겨 주겠다는 유혹을 받으셨을 때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0)
이 세 가지 시험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바로 우리가 생존의 압박과 두려움, 염려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본보기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먹을 것, 생존을 위한 종교, 생존을 위한 유혹. 이 세 가지는 지속적으로 우리의 존재가치를 의심하게 만들고, 오해하고 왜곡하게 만듭니다. 생존을 위한 생존은 우리의 가치를 상실하게 만들고 있지만, 오히려 육신으로 오셨어도 생존에 얽매이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는 권세를 소유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신 식탁에 자연스레 앉아 그 분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자녀의 권세와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한 것에 대해 당당하게 명령하여 물리칠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악한 것과 병든 것과 추한 것을 모두 물리치셨지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 오라고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시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4-6)
예수님께서 당신의 정체성을 밝히실 때 인용하신 구절은 이사야서 61장에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예언하는 구절입니다. 위 말씀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속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처지와 형편을 모두 알고 계시며, 회복하시고, 가장 온전히 해결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금 강조하고 또한 고백하는 내용의 말씀인데요.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육체의 존재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사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안심하고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 그리고 걱정과 염려의 어두움에 머물지 말고 빛나고 밝은 영광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세속의 모든 가르침과 설득력이 강한 지식들에 굴복하지 말고, 오직 영광의 빛 가운데 당당히 서 있으라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늘 주님과 동행하고, 그 가르침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삶의 태도를 갖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한 주간에 첫날에 나와 예배할 때는 감사와 찬양과 기도의 고백으로 주님의 손길을 체감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이토록 고난 받고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는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십니다. 우리와 같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이 가진 육신의 한계, 죽음이 두려워 죽음의 종이 된 모습, 그리고 시험으로 고난받는 인생 가운데 발생하는 생존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천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우리를 위한 역사이며,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자매로 부르시며 천국의 식탁으로 인도하셔서 우리와 먹고 마실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님의 복음,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을 믿어 자녀의 권세로 담대히 하나님 나라의 영광으로 충만한 천국의 식탁에 기쁨으로 앉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주님의 형제와 자매로서 참된 풍족함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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