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늙지 않은 비결☆
인간의 존재와 삶, 사랑과 행복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온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입니다. 월간 《샘터》
창간호 특집 '젊음을 아끼자'에
필자로 참여해 젊음을 정신적인
자아를 육성하는 계절이라고
표현하며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백 세를 넘긴 지금도
강연과 저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미래 세대에게 인생의
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한 세기 전,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자신의 모국이었던 영국을 방문하고 영국과 유럽은 늙었기 때문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아메리카가 노쇠하면 세계 역사의 무대가 아시아로 이전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개인의 일생도 그렇다. 우리가 늙어 버리면 민족과 국가의 장래도 사라진다. 우리들의 젊음이 국가의 번영과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젊음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늙기 마련이다. 어떻게 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늙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 자신을 젊게 키워 가는 일이다. 그건 곧 정신적인 젊음을 의미한다.
나 자신도 스스로 물어볼 때가 있다. 늙지 않았는가, 라고.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느냐는 자기반성이다.
내 인생의 4분의 1은 일제 강점기에서 보냈다. 일찍이 철학을 공부해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려는 꿈을 가졌지만 내 나라가 아니었다. 절망적인 나날 속에서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무력감에 빠졌을 때 마침내 해방되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나의 사회적 성장이 처음 시작된 곳은 중고등학교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나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나보다 유능하고 훌륭한 제자들을 양성할 것, 사람은 아는 만큼 일할 수 있기에 계속해서 공부하고 철학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 마지막으로 사람은 자신의 인격만큼 성장하므로 인격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
그 뜻과 노력은 버림받지 않았다. 6·25전쟁 이후 30여 년 동안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꾸준히 성장했다. 사랑이 있는 교육, 역사적 식견을 갖춘 지식, 인격 육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교육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덕에 중고교 교사 때보다 더 넓고 높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60대에 맞이한 인생의 황금기
나는 65세에 정년퇴직을 했다. 강물에 살던 물고기가 바다로 나오니 변화가 생겼다. 교수로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일이 내게 주어졌다. 그때 나는 실감했다. 타인을, 사회를, 국가를 위해 일했을 때 성장의 열매를 크게 맺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60세부터 80세까지는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신체적 연륜과 더불어 정신도 성숙하는 과정이었다. 만일 내 인생에서 60부터 20여 년을 제외한다면 내 사회적 인생은 사라졌을 것이다.
여든부터는 성장은 못하더라도 지금의 내 위상을 아흔까지 연장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다. 그때 나에게 도움을 준 두 친구가 있었다. 나와 같은 철학도이면서 나이도 같은 안병욱 교수, 김태길 교수였다.
두 친구는 나보다 더 높은 애국심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껏 이뤄온 정신적 성장을 나라에 바치고 싶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열정을 품었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젊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우리 셋은 사회를 위해 지금의 학문적 노력을 죽을 때까지 연장하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아흔까지는 족히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노욕 같은 희망은 버림받지 않았다. 두 친구는 정신적 젊음을 빼앗기지 않고 약속대로 구순까지 일했다. 그러나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노인 대접을 할 만큼 나도 늙었기에 주어진 일들을 정리하고 나를 위한 노년기를 보내며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몸이 힘들었다.
그 순간, 두 친구가 남긴 유언에 가까운 권고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남기고 간 일'을 마무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일은 끊기지 않고 계속 주어졌다. 95세가 되면서는 신체적 노화 현상이 뚜렷해졌고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능력도 떨어졌다. 그래도 강연과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나의 의무를 저버릴 수 없었다.
97세 때였다. 한 일간지에서 그해 사회·문화 분야에서 큰 공헌을 남긴 인물 10인을 선정했는데 그중 내가 포함 돼 있었다. 나 스스로 늙었다고 자인하지 않고 정신적 노력을 계속해온 데 대한 인정을 받은 셈이다.
형용사도 풍부하고 독자들과의 감정적 교감이 충분히 이뤄졌던 과거의 책들에 비하면 지금 출간하는 저서들은 그만하지 못하다. 대신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건 사상(思想)은 현재의 내가 현저하게 앞서있다는 사실이다.
성장은 젊음을 지탱하는 힘
나는 지금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에서 열린 독후감 경진대회 시상식에 참석했고 3월에는 '인류의 진화'를 주제로 각 분야 석학들과 함께하는 강연을 앞두고 있다. 또 100세가 넘어 쓴 책 한 권이 중국어로 번역되는가 하면 내가 '세계 최고령 저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가장 연로한 나이에 저서를 남기는 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1월이면 만으로 106세가 되지만 나는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늙음은 성장을 멈췄을 때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사람은 평생 젊게 산다. 인간적 성장을 포기하는 것은 젊게 사는 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보통 60대가 되면 직장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온다. 이는 자녀들이 독립해 집을 떠나는 시기와도 맞물린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하거나 배움을 시작할 단계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사회적으로 연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더 없이 좋겠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를 권한다. 사회인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으면 여생을 보람과 행복으로 채워갈 수 있다.
시작에 늦은 나이란 없다. 시작을 가로막는 노쇠한 정신만 있을 뿐이다. 노년기에 우리는 다시 출발선 앞에 서야 한다.
♡김형석(金亨錫)교수(敎授)의 인생(人生) 조언(助言) 6가지♡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1920년 7월 6일생으로 올해 만으로 106세이지만
아직도 정정하시어 출강과 집필을 하시는데 그 분의 노익장은
유약한 현대인들에겐 로망이다.
1. 웃지 않아도 하루가 가고
웃어도 하루가 간다면 웃는 게 낫습니다
2. 나이가 들수록 많이 걸어야 합니다
걸어야만 행복(幸福)을 향(向)해 가는 다리에 힘이 생깁니다
3. 백 년(百年)을 살아보니
고생(苦生)이 있는 행복(幸福)이 제일(第一 ) 큰 행복(幸福)이고
고생(苦生)의 짐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인생(人生)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고생(苦生)이 인생(人生)이라고 나는 믿고 있어요
4. 90세(歲) 이전(以前)에는 늙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이 60에 조금 철이 드는 것 같았고
75세(歲) 까지는 성장(成長)하는 것 같았습니다
5. 나 자신(自身)과 내 소유(所有)를 위(爲)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집니다
남을 위(爲)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6. 인생(人生)의 마지막 목적(目的)은 감사(感謝) 인사(人事)를 받는 삶입니다
감사(感謝)를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인생(人生)의 행복(幸福)한
의미(意味)입니다
한편 1920년생인 김형석 명예교수는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미국 시카고대학교·하버드대학교 연구교환교수를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유일한상, 백범상 국민통합상 등을 수상했으며, 103세 251일에 책을 펴내 ‘세계 최고령 저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金亨錫(延世大學校名譽敎授,哲學者)
출처:daum 안터넷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