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앙뚜아네트 왕비에 대한 해명..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으로...영국이 막강해지고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도 후발주자로 강해지고...가운데 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서로 한일관계처럼 오랜세월 사이가 원수지간이면서...전략적 동맹을 위해 결혼동맹을 한다. 오스트리아 공주를 프랑스왕세자에게 시집을 보낸다...그녀는 검소했고...가난하고 힘든 프랑스 서민들을 애민정신으로 보살피려고 애를 썼지만...프랑스 혁명군은 왕(루이16세)을 몰아내기위해...오스트리아 원수의 나라에서 온 왕비를 온갖 입에 담을 수없는 소문으로 모함하여...백성들의 공분을 유도하여 루이16세 왕을 사형시키고...왕비도 최종적으로 교수형으로 처형한다.
호화사치도 왕실내 다른 왕족인 여성들이 했음에도...혁명군들은 마리앙뚜아네트에게 다 뒤집어씌우는 소문을 퍼트렸고... 8살짜리 아들을 성폭행했는 소문까지 퍼트려... 아들을 협박해서 자백받게하고... 마리앙뚜아네트는 아들을 살리기위해...그렇게했다고 시인하면서 세기의 악녀로 낙인찍히며..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