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사 (덕수궁 중명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오늘은 여든 번째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먼저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열들의 명복을 빕니다.
항일 비밀결사 ‘독서회’를 만들어 활동하다 체포돼 옥중에서 순국하신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자 고 권태용 님, 비밀결사 ‘무등회’를 조직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옥고를 치르신 애족장 수훈자 고 신균우 님을 비롯한 수상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일본인 교사의 민족차별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르신 대통령 표창 수상자 지익표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 이동일 회장님을 비롯한 유가족과 독립유공자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도와주신 김원웅 광복회장님, 박삼득 국가보훈처장님, 함께해주신 손학규 대표님, 고맙습니다.
‘순국선열의 날’을 우리는 오늘 처음으로 이곳 중명전에서 엽니다. 중명전은 망국의 통한이 서린 곳입니다. 1905년 오늘 이 자리를 일제는 총칼로 에워싸고 을사오적을 앞세워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았습니다.
그 을사늑약을 황제는 거부했으나, 무기력했습니다. 대신은 반대했으나, 중명전 마루방에 갇혔습니다. 늑약 소식에 선비들은 자결했고, 백성들은 의병으로 봉기했으며, 상인들은 철시했습니다. 끝내 나라는 1910년 8월 29일 병탄을 당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망국의 치욕과 선열들의 피어린 투쟁을 기억하며, 나라와 겨레를 다시는 위태롭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위해 이곳 중명전에서 ‘순국선열의 날’을 기념합니다.
올해 ‘순국선열의 날’의 주제는 ‘들꽃처럼, 불꽃처럼’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열들은 들꽃이셨습니다. 농부와 상인, 기생과 지게꾼 등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았으나 질기게 살던 들꽃 같은 백성들이 항일투쟁의 맨 앞줄에 서셨습니다.
그러나 선열들은 불꽃이셨습니다. 불꽃처럼 싸우다 스러지셨습니다. 방방곡곡에서 낫과 곡괭이라도 들고 의병으로 일어서셨습니다. 중국과 연해주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군으로 싸우셨습니다. 죽음의 위협에도 무릎 꿇지 않고 의사와 열사로 의거를 결행하거나 독립 만세를 외치셨습니다.
순국선열들의 피를 딛고 조국은 빛을 되찾았습니다. 그런 조국에서 지금 우리는 풍요와 안락을 누리며 삽니다. 그래도 우리는 선열들의 수난과 희생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조들의 애국애족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정부도 다양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정부는 순국선열들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 합당하게 예우해드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는 역대 최대인 육백마흔일곱 분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포상해드렸습니다. 그 가운데는 그동안 잘 모시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백열세 분도 포함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백일흔일곱 분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찾아 포상했습니다.
국외에 잠들어 계시던 독립유공자들의 유해를 지속적으로 국내에 모셔오고 있습니다. 항일 유적지 보존에도 공을 들여 올해는 중국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를 복원했습니다.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재개관했습니다. 러시아 우스리스크에 최재형 전시관을 열었습니다. 특히 서울 서대문형무소 옆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할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국은 광복과 함께 남북으로 갈렸습니다. 선열들은 조국이 둘로 나뉘어 후손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남북은 모든 어려움을 넘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며 언젠가는 이룰 통일을 향해 한 걸음씩이라도 다가가야 합니다. 다시는 전쟁 하지 않을 항구적 평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독립 조국을 꿈꾸셨을 선열들에 대한 후손의 도리라고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밖으로 당당하고 안으로 공정한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번영의 과실을 조금씩이라도 나누는 포용 사회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것이 들꽃처럼 사셨으나 불꽃처럼 싸우다 스러지신 선열들에 대한 후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망국의 현장 중명전에서 순국선열의 영전에 다시 맹세합니다. 114년 전과 같은 통한을 다시는 겪지 않을, 힘차고 미더운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 후대에 남기겠노라고 약속합니다. 벌써 70년을 훌쩍 넘긴 분단을 지혜롭게 극복해가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착실히 나아가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첨부 : 제80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