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 4장 39절 - 42절
제 117차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된 임목사님은 올해 교단의 주제를 전도로 하였습니다. 뜨거운 신앙으로 크게 성장하던 우리나라의 교회들은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식어져 가고 교회성장도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를 통해서 교회로 모이는 것조차 어려워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교회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돌아가는 신앙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교회의 회복과 예배의 회복은 오늘 우리성결교회들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전도를 하고자 하지만 이젠 전도대상자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 동안 세상에 여러 가지 문제로 나쁘게 비추어 지고 인식된 결과로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을 세상사람들정도로 또는 그 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하는 상황입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족이 이동할 때 교회성도들은 당시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여성도들은 보증수표처럼 받아드려 졌습니다. 그래서 왕들이 교회처녀들을 배우자로 맞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하지만 교회를 향한 이처럼 나쁜 면에서의 인식은 전도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예수님시대와 사도들 시대에 이루어졌던 전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로 능력전도를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셔서 신앙의 기초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전도와 십자가의 복음이 바로 선포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능력전도를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임하였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여기서 능력전도란 하나님의 행하심 즉 성령의 역사를 통한 전도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전도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거나 파티를 열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전도를 하시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아버지의 행하심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하시는 그런 전도였습니다. 이런 일은 사랑의 관계에서만 이루어 진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능력전도를 행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즉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세가 세워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도하면 산빡한 방법을 찾고 그것을 실행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이고 열매가 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자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보이시고 우리로 그 일에 초청하시며 우리는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그 일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를 따르는 사도들은 주로 능력전도를 통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말씀을 전함으로 전도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서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능력전도와 말씀을 통해 전도하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나라의 말씀이신 것처럼 사도들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함으로 전도했습니다. 사도들은 회중들의 욕망을 만족시키므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회중들의 욕정을 만족시키는 말씀은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아니하며 듣는 자들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늘 날 어떤 설교자들을 보면 세상이야기로 웃기는 설교를 합니다. 회중들은 웃으면서 부담없이 듣는 그런 설교를 박수치면서 좋아합니다. 세상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부담없이 웃으면서 들을수 있는 설교를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웃기는 설교가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달리 사역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십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직접 행하시기도 하시지만 제자들에게 위임하시기도 하십니다. 이것이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구분하는 선 중하나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보통은 사마리아를 돌아서 가는 것이 유대인들의 하는 바였는데 예수님은 이때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십니다. 이것은 사마리아에서 하나님아버지께서 행하실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여자를 만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전도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전도의 접촉점을 마련하십니다. 바로 우물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유대인남자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사람들을 천박하게 취급하였고 여자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그에게 물을 구하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그래서 우물만을 생각합니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물은 우물물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생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수이심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그 여인의 비밀을 말씀합니다. 그 여자에게 남편이 여섯이나 있었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식합니다. 자기의 비밀을 안다는 말입니다. 그 여인은 선지자로 보이는 예수님께 평소 그 여인이 가졌던 예배장소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당시 사마리아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배의 문제를 말씀하시면서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기준을 선포하십니다. 바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옳은지를 그리스도가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 그 여인은 동네에 들어가 전도를 합니다. 그 여인에게 행하신 일들을 동네사람들에게 말하자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은 그 동네에 이틀을 머무시면서 하나님나라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나라의 말씀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받아드립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믿는 자들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배척하는 자들은 배척하고 듣는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