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 Angie 엄니 | g1
작성자 : 김영순 (gamsun2)
10.4. 97 Angie 엄니
몇번이나 시도했다가 덮어버린 자기에게 향한 그리움의 창을 드디어 열어 보려고 하네 그려.
내 이름은 김 영순 그대 이름은 뭐더라? 나 잊어먹었어 미안해!
이름 모를 소녀도 아니고, 아줌마 이도 아니고, 부인, 여인, 아이고 모르것다 그냥 자기라고 부르는 게 편하구먼
내 자기를 처음 보았을 때 그 누구처럼 단테가 베아뜨리체를 본 순간이었노라고 3류로 말하지는 않겠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쉬폰<발음 맞는가? 스커트에 까만 쫄티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가없더구먼
난 완전 아줌마인데 자기는 숙녀로 보였다네 그리고 아주 말이 없고 쬐끔은 깍쟁이 같았고
아무튼 그대에게 흐르는 세련미는 나랑은 거리감을 느꼈었지.
그런데 그 거리감이 좁혀졌던 순간이 언젠줄 그대는 아는가?
각설이 타령에 맞춰 흔들어대던 자기의 몸짓 이었다네 거지들이 노니는 몸짓을 우린 함께 공감했고
마치 어릴 적 소꿉 친구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인연인냥
그 각설이 타령이 몇십 년의 벽같은 거리감을 허물어 버리고 말았다네.
치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 심금을 울리던 그 신비스러움은 그대로 간직하고있으니 안심 놓게나 그려.
우리들은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처럼 깊은 만남 또한 없을 걸로 아네
인생을 살아가자면 때론 각설이처럼 모든걸 벗어던저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건 바로 진실이 아닐까?
우리서로가 향하는 마음이 진실이었음을 굳게 믿나니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있어도 아름다운 중년우정을 꽃피워 보세나.
잘생기고 점잖으신 Angie아빠께 안부전해주시고 아이들에게도 안녕과 건강을 바란다고 전해주시길....
행복을 빌며 이만 안녕을.... Denver에서 영순.
dear mrs.오 5-15-99
곰팡내 진동하는 역촌동 집에서 향기로운 情이 넘쳐 났기에 몇 밤을 지냈는지 손을 꼽아보지는 않았지만
애교덩이 민선이 점잖아진 진모 그리고 그 집 안주인이 주는 포근함에
경록깡도 유영이도 두고두고 얘기꽃을 피운답니다
무엇보다도 오수복 女史의 넉넉함과 복스러움에 부러움마저 느꼈음을 새삼 고백하나이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과정이 그랬을까 어느때 갑자기 괴팍스러움으로 나타난 오빠의 모습에서
가슴에 감도는 공허로움이 아픔처럼 맺혀 있었는데
오 女史의 그 활짝 웃는 웃음 속에 화목한 가정으로 이끌어 나감을 보고 괜한 걱정으로 여기며(생각하며)
마음 뿌듯했었답니다
서로들 뭔지 모를 석연찮음에 거리감을 갖고 살아온 우리 형제들이
집안내력인 대머리가 너나 할것 없이 나타나고 흰 머리칼 희끗해지니
이젠__. 서로 감싸주고 자주 내왕해야 한다는 생각만 겹치는군요
올케 형님이라 하지 않고 민선엄마라 하는 게 불만인 줄 알고있지만
그럼 자기가 민선엄마지 현진엄마유?
난 곧잘 갈현동 올케 역촌동 올케 이렇게 호칭하는데 혹시나 잘못된 게 아닌가 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오빠나 동생의 wife라고 써 있더군요
그러니 올케 형님이라고 깍듯한 형님을 빼도 절대 손아래 사람에게 쓰는 명칭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았죠
올케든 민선 엄마든 아무렴 어때요
덧니 살짝 보이는 애교스런 미소에 그 모습 잃지 말고 세월아 네월아 올 테면 와라 하며 나이 들어갑시다
서울 깍쟁이 기질이 물씬 풍기던 새색시 시절의 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부덕함으로 나이 들어감은
남편 잘 만난 줄 아슈
선영이 결혼을 치르고 나름대로 여기저기 감사인사 한다고 했는데
너무도 허물을 초월한 사이로 여겼기에 유독 역촌동만 인사를 못했군요
유영아 편지해라 경록아 니가 해라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너무 늦어 버렸지만
갑자기 정다움으로 다가오는 오 女史의 모습이 떠올라 펜을 들어보았나이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간편하고 싸구려 티가 나지 않기에 선물한 옷을 다음날 당장 입고 출근하는
그 마음씀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센스가 넘치더이다
그 뒷모습에 내가 얼마나 흐뭇했는지 아요?
어느 대갓집 정원 못지 않은 앞마당에서 지금도 불고기 파티는 잘하시는지
전에 비디오 찍은 거에(오빠 생일상 차려 놓고)찌개를 떠서 자기 입으로 들어가고
고기를 싸서 것두 자기 입으로 들어가고 그래서 내가 배꼽을 쥐고 웃었는데
여전히 그러시는지 다시 한번 비디오를 찍어 봐야 겠네요
굳이 멀리 꽃구경가지 않더라도 앞마당만 바라보면 사계절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니
각박한 서울 생활에서 그것 또한 여유로움이요 우리 영달 오빠와 수복 올케의 멋스러움이라 느낍니다
처음으로 쓰는 편지이기에 혹시 감정에 쏠려 아부성 이라던가 괜한 눈물잡이가 될까 염려 되여
밤에 쓰는 것을 피하고 화창한 대낮을 택해 씁니다
손가락 몇 번만 누르면 목소리 들을 수 있겠지만 짧은 시간에 내마음 다 전하지 못하겠기에
멋적은 마음 뿌리치고 서신 드리오니 옛날 오빠 중동 갔을 때 편지 썼던 실력 발휘하여 나한테도 소식좀 줘봐요
그때 한 말이 '내가(올케자신) 생각해도 난 편 지를 잘 써요'하며 날마다 이지 싶게 오빠한테 편지 쓰노라고 자랑하던 말
난 잊지 않았다우 영달 오빠! 내친김에 한마디합시다 진모가 잘 생겼다 하지만 뉘 아들이요
그건 오빠의 어렸을 적 모습을 쏙 빼닮았잖소 좀 더 잘생긴 김영달이라 느낀 것은 오 女史미모가 조금 들어갔고
우린 함평에서 가난한 세상 속에 좋은 옷 한번 못 입어봤고 지금 진모는 갖은 멋 다부리는 일류 멋쟁이 이길래
때 빼고 광낸 어릴 적 김영달이 아니겠소 그러니 오빠올케 한번 생각해 봐요
내친구들이 잘생긴 오빠의 팬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몇 십년만에 만난 양반은 양복도 안 입고 인상만 쓰고 다녔다니
난 변명을 하려 해도 화가 납디다
미국생활에 익힌 나는 세련되어(?) 양복타령은 안 합니다만 어디 한국 인식이 그러요? 다
음엔 어느 결혼식을 가더라도 정장차림으로 가시라구요 없으면 내 한벌 사드리리다
그 옛날 전 재산 털어서도 해드렸는데 그까짓것 못하겠소 내가 날마다 돈을 버는데...
지나간 얘기 웃자고 했으니 어떤 빌미를 붙여서라도 (너가 버스에서 먼저 내렸느니 기다렸느니 걸었느니 ) 싸우지 마시고
그냥 웃으며 읽어 주세용
민선이가 재수하는 고행의 길을 가고 있다 들었어요
누구나 겪는 그 시기는 왜 아픔이 많은 자가 나중엔 더 큰 성공을 갖어오지 않던가요
진심인데 민선이 이곳에 한번 보내지 않을 라요? 여행 삼아 머리도 식힐 겸 말이에요
우리 민선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요 엄마랑 함께 오면 더욱 좋고...
어릴 적(젊었을 적)에 여행을 많이 하여 멋진 추억을 듬뿍 만들어 놓으면
일생을 통해 두고두고 그 멋을 느낄 수 있더이다 잘해준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그냥 고모 사는 것도 보고 언니 동생하고도 정이들 수 있고 미국을 나름대로 느낄 수 있을 테니
부담 없이 놀러왔다 가면 좋겠소
끝으로 고3을 벼슬처럼 여기는 한국실정에 또 장마철 집안 구석구석 베어있는 곰팡내를 핑계하여
우리들을 거부할 수도 있었으련만 그런 것 아랑곳 하지 않고 무조건 집으로 오라는 넓은 아량에
깊은 情을 느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감사인사 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덴버에서 영순 시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