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국 냄새는 창문을 넘고
―달팽이
박재숙
꿈에 본 그 녀석일까?
6일간 냉장고 야채실
아욱 담은 비닐봉지 속에서
살아남은 달팽이 한 마리
저 느린 걸음으로
얼마나 아욱 줄기를 헤맸던 것일까?
없애야지 싶다가도
텃밭 야채 걱정되어도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생각에
화단에서 꽃향기 맡으며
소풍처럼 남은 생 더 살다 가라고
창문 열고 꽃기린 잎새에 놓아주었는데
장맛비 온종일 뿔을 적시고
저녁이 되어도 집 한 채 둘러메고
그 자리 떠나지 않고 있다
어디로 가다가
문득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먼 천둥소리
아욱국 냄새는 창문을 넘고
오솔길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ㅡ시사진집『천 년쯤 견디어 비로소 눈부신』(詩와에세이, 2022)
언젠가 상추를 먹다가 달팽이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시골에서 뽑아왔다고 주었는데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참 난감하였다. 온 곳을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주변에 상추밭이라도 있다면 가서 놓아주겠는데 할 수 없이 도심 골목 한쪽에 자라고 있는 까마중 이파리에 놔주긴 했는데 과연 이게 잘한 일일까 의구심이 든다.
송충이 솔잎만 먹고 호랑나비 애벌레는 산초잎만 먹는다고 신갈나무나 팥배나무 잎을 먹이로 하는 나방의 애벌레들도 있듯이 나뭇잎을 먹이로 하는 벌레들도 각기 고유의 식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추를 주식으로 하는 달팽이를 까마중 잎에 놔 주는 것은 서서히 굶어죽으라는 고문밖에 안 될 것 같다.
가소로운 연민은 나의 합리화, 위로밖에 안 되겠지만 어쨌든 시 속의 달팽이의 생명력은 놀랍기만 하다. 야채칸에서 6일이라니...사람 같으면 저체온증에 걸렸을 것 같은데 시 속의 화자 역시 잔인한? 살생자가 되기 싫어서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을 못 하고 너의 집 찾아가라고 꽃기린 잎에다 놓아주었는데 웬일인지 장맛비 내리고 날은 어두워지는 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생명이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또 어떤 무슨 인연이 있어 하나는 사람으로 하나는 벌레로 만났단 말인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훗날 이 지구별의 먼지로 사라진다고 해도 무릇 생명이란 큰 동물이든 작은 미물이든 다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시집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시집 출간을 축하 드리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시집이 되기를요.
선생님께서도 저 처럼 달팽이와 인연이 있으셨군요..
지금은 달팽이 대신 저희 홈카페엔 청개구리
두마리가 화분 속에 살고 있답니다.
시 읽기 35로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