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국물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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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있사옵니다
이근삼:작
[페이지] F02
스-탭
제작
기회
조연출
무감
미술
효과
분장
소품
의상
음악
조명
진행
[페이지] F02
등장인물
김상범.(회사원.후에 상무)
박용자. (김상학의 처)
사장 (제철 회사의)
배영민. (경리과장)
성아미. (사장의 며느리, 비서)
탱크. (현소희의 정부)
현소희. (탱크의 정부)
관리인. (김상범이 사는 아파트의)
김상학. (상범의 형)
김상출. (상범의 동생)
문여사. (박용자의 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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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어떤 아파트와 회사(會社) 사무실. 그리고 길거리를 다양하게 나타낼수 있는 무대. 무대가 구태여
사실적일 필요는 없다. 대체로 무대 우측은 아파트의 실내 좌측은 회사 사무실로 구분된다. 관객석과
가까운 무대 전면은 길거리. 복도. 또는 공원 구실을 한다. 관객석과 아파트의 실내 사이는 그대로 트여
있지만 그 사이에 벽이 가로 막혀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 실내 앞 무대는 또한 아파트의 복도도 겸한다.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 상황 이외에는 과거지사를 말하거나 재연 할 때는 공간처리에 구애될
필요가없다. 교회 종소리와 더불어 막이 오르면 아파트의 실내 모습이 나타난다. 종소리가 여전히 들려
오는 가운데 감상범이 아랫바지를 겨우 걸치고 윗 파자마는 그대로 어깨에 멘채 침실에서 나오며
하품을 한다. 이어 눈을 비비며 창문의 커어텐을 헤친다. 밝은 아침 햇살이 실내 가득 들어찬다. 상범은
크게 기지게를 하고나서. 이른바 실내 체조를 한다.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에 비해 이런 현상은 너무나 빨리 찾아 온것 같다. 다음엔 소파며. 마루에 흩어져 있는 잡지를 주워
모은다. 이어 무대 앞에 나와 관객을 향한다.
[상범] 오늘 일요일 아치 저 김상범은 몹시 피곤을 느낍니다. 밤새 잠을 청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이렇다할 근심이 있어서가 아니요. 뭐 그렇다고 해서 토요일 저녁에 보통 건강한 월급쟁이들이
그렇듯이 과음을 해서 그런것도 아닙니다. 이 잡지 때문입니다. 천일 은행 뒷골목에서 한 권에 2백원
주고 산 이 책이 영어잡지 말입니다. 영어 잡지 이기 때문에 물론 글은 읽을수가 없읍니다. 전
대학(大學)을 나오긴 했지만--- 영어(英語)하고는 관계가 없읍니다. 어학에 대한 소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요새 대학영어선생(大學英語先生)들의 교수방법이 나빠서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 정도의
구실이 --- 있어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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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부담이 안생기니까요. 요는 이 잡지에 실린 수많은 사진 때문에 잠을 못 자 젊은 여자(女子)들의
나체사진 나의 공상의 심지 슬슬 불을 붙여 주는 이 매혹적인 사진들 사진 한장을 보면서 한시간. 또는
두시간 공상을 합니다. 밤새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 닭이 울고 두부장사가 지나가고 이윽고 쓰레기차가
이 아파트의 입구에 와서는 나의 피곤한 공상속의미국여자들을무수한 쓰레기와 더불어 쓸어가지고
갑니다. 남은것은 (크게 하품을 하고나서) 이 하품뿐입니다. 이 잡지를 산 데도 이유는 있었읍니다. 어제
토요일에 영화관에 갔었지요. 가장 이상적인 즐거움은 남.녀가 같이 즐기는데 있읍니다. 하느님이
남여의 쌍을 지어 준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두 짝을 지어 구경가는데. 유독 저만은 혼자
갔읍니다.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죠. 영화 내용은 정열적인 사랑인데 보고 나오니까 마음이
이상해졌읍니다. 혼자서 종로를 바퀴 빙 돌고. 명동의 인파에 밀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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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드나드는 젊은 여자(女子)들의 얼굴이며 몸 덩어리를 슬슬 훔쳐 보다가 천일은행 뒤에서 저
영어(英語)잡지를 두 권 사들고 들어왔읍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세시까지 사진을 보면서 공상을 할수
밖에 없었죠. (다시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전 아직 총각입니다. 나이 스물 일곱에 이 사실이 자랑이
될수 없다는건 알고있지만, 그렇지만 이건 부득히 한겁니다. 여자를 가까히 할수있는 기회도 거의
없었고, 여자를 알고 찾아갈 용기도 없읍니다. 그러니까 저런 잡지나 볼수밖에 없지요. 가끔 기회가
있어도 영 용기가 안납니다. 이를테면 요 4층에 사는 미스 박과의 경우가 그렇읍니다.
(김치 단지를 든 박 용자가 무대 우측으로 들어와 상상적인 문을 노크한다)
[상범] 네? (김 상범이 상상적인 문을연다)
[용자] 안녕하셨어요?
[상범] 네. (어색한 사이)
[용자] 저---김치를 담가 왔어요. 자취를 하신다니까--- 어머니가 갖다드리라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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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 전 어머니 되는 분을 잘 모르는데요.
[용자] 네? --- 저희들은 43호에 살고있어요. 전 박용자라고 해요.
[상범] 네. 미스 박은 잘 압니다. 전 김상범입니다. 교회에서 방읍니다. 합창단에 계시죠?
[용자] 네. 저도 선생님을 교회에서 뵀어요. 그럼 이 김치---
[상범] (김치 단지를 받으며) 아이 이거 미안해서--- (김치단지를 받고서도 머뭇거린다)
[용자]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참말로 가을날씨 같아요.
[상범] 네, 오후엔 좀 흐릴지 모르겠지만, 오전엔 날씨가 괜챦지요. 몽고지방에 생긴 고기압권내에
들었기 때문엔---
[용자] 그럼 전 가보겠어요.
[상범] 네? (용자가 가 버린다) 아--- 저--- 이거 잘 먹겠읍니다. (관객에게) 네 이렇읍니다. 몽고
지방에 생긴 고기압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날씨가 좋다는건 이 방에 들어와 이야기나 좀 하자는건데.
남여간의 첫 대화는 어째서 "날씨가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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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지금 시간이 몇 시죠?" 따위로 시작이 되어야만 할까요? 저 나체 사진을 보면서 그렇게 짜 놓았던
여자 앞에서의 멋진 대사며, 연기가 실물 앞에선 맥을 못 춥니다. 하여간 43호에 사는 박 용자 라는
여자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 김치단지가 제방에 드나들게 되었읍니다. 이런참 벌서 열한시가 가까와
졌읍니다. 예배당에 가야겠읍니다. (상의를 입고 머리를 빗는다) 요 바로 아파트 뒷길에 교회가 하나
있읍니다. 한달전에 하도 심심에서--- 글쎄 일요일에는 왜 그렇게 심심한지요--- 하옇든 심시해서
교회에 가 봤지요. 교회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합창소리가 괜찮았거든요. 그래서 얼글 구경도 할겸
갔었죠. 뒷 자리에 앉아서 근처에 앉은 여자들. 그리고 합창단석에 앉은 젊은 여자들의 얼굴이며
몸덩어리를 감상하는 버릇이 생겼읍니다. 마치 이 나체 사진이 많은 잡지를 보는 기분이죠. 그런데
어느날. 아 예배당에서 우리 회사의 사장을 만났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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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사장이 그 예배당의 장로가 아니겠어요? 돈과 종교는 표리 일체로 붙어 다닌단 말인가요? 사장은
저를 반가히 맞아 주었읍니다. 기특한 사원이라는 칭찬도 했읍니다. 그래서 전 꼼짝도 못하고 교인이
되었읍니다,. 여자를 보러 가던 취미가 갑자기 의무로 돌변했읍니다. 사장이 매일 나오냐고 묻기에 가끔
나온다고 했더니 매 일요일에 나오라는 겁니다. 할수있나요? 뿐만이 아니라 사장은 저의 은인입니다.
절---임시 고원으로 있던 절 정사원으로 승격시켜 준 분이 바로 사장입니다. 사장과는 묘한 관계로
알게 되었죠. (뒷 주머니에서 휴지를 거내 보인다) 이 휴지로 맺어진 인연입니다. 코를 풀고 뒷간에서나
쓰는 이 휴지말입니다.
(무대 좌측 사무실에 조명이 던져진다. 과장석에 버티고 앉아 신문을 읽고있는 경리과장 배 영민, 그
옆 조그만 책상에 마주 앉은 (영민) 상범. 주판을 놓고 장부를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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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김군 담배 가지고 있나?
[상범] 네? 담배요. 저 담배는 못 피웁니다.
[영민] 저기있쟎아! 좀 갖다 줘.
[상범] 네. (상범이 일어나 응접 테이블 위에있는 세트에서 담배를 갖다 준다. 영민은 담배를 받아
유유히 라이터 불을 켜 불을 붙인다)
[영민] 담배는 못 피워도 피울줄 아는 사람에게 권할줄은 알아야지!
[상범] 앞으로 명심하겠읍니다.
[영민] 내가 누구지?
[상범] 네? --- 경리과장입니다.
[영민] 내 이름은 뭐지?
[상범] --- 배--- 배과장입니다.
[영민] 흥! 그것봐 제 아무리 자네가 임시 고원이라고 하지만, 자기 직속 상관의 이름은 알아야지. 내
이름은 배 영민이야.
[상범] 명심하겠읍니다.
[영민] 자네. 기합을 안 받는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네.
[상범] (잠시후) 저 과장님께서는 군대에 오래 계셨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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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오래 있었지. 소령으로 제대했어.
(상범은 일을 계속한다. 잠시후. 성 아미가 사장실 문을 열고 나온다. 영민이 반쯤 일어나 아미에게
인사를 한다)
[아미] (소파에 앉으며) 사장님이 저기압이예요.
[영민] 왜요?
[아미] 종로 경찰서 에서 전화가 왔어요. 우리 사원들이 술집에서 대판 싸움을 벌였대요. 유리창이
깨지고 밥상이 꺾어지고--- 형편없었나봐요. 지금 총무과장님 한테 전화를 하고 계세요.
[영민] 사장님은 교회의 장노이신데---
[아미] 그러니 체면이 뭐에요. 배 과장님 은 어제 그 술 좌석에 끼지 않았어요?
[영민] 난 잠깐 끼었다가 초 저녁에 돌아갔는데--- (문이 홱 열리며 사장이 나온다. 몹시 화를 내고
있다. 그러나 말이없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간다.) 변소로 가시는데. 노하시면 꼭 변소부터 먼저
가시거든.
[아미]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죠? 통행금지 시간대신 금주령이나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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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글쎄 말입니다. 술도 적당히 마시면 오히려 좋은건데--- 김군도 술을 마시나?
[상범] 네? 저는 술을 못합니다.
[아미] 김 상범씨는 어제 술 파티에 안나갔어요?
[상범] 저는 --- 아직 --- 그럴 자격이 없읍니다. 임시 고원이 되서---
[영민] 말끝마다 자기(自記)입으로 임시고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미] 사람을 채용하면 그대로 채용할 것이지. 임시 고원은 뭐예요? 왜 자꾸 등급을 만들려는지!
[영민] 그 임시 고원제도는 --- (아미의 눈치를 보며) --- 박 전무님께서 창안했읍니다.
[상범] 박 전무님이요?
(아미의 표정이 달라진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일을 계속한다. 이어 사장이 되돌아 온다)
[사장] 우리 변소엔 휴지도 없나! 있는것은 술주정뱅이 뿐이야. 회사의 질서가 말이 아니야! 왜 변소에
휴지가 없느냐 말이다.
(상범이 일어나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사장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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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국산 휴지이지만 --- (사장은 휴지를 움켜 쥐고 나가려고 한다. 다시되돌아 선다)
[사장] 애야!
[아미] 네?
[사장] 총무과장한테 전화를 걸어 유 봉일이라는 사원을 해고하도록 초치 하라고 해라. 지금 유치장에
있는 모양인데 아주 몹쓸 놈이야. 이 회사의 분위기를 망치는 놈이지. 벌써 몇번째야. 이 회사(會社)는
술도깨비를 먹이는 곳이 아니야.
[영민] 사장님 --- 저 유봉일군은 전국 주산대회에서 일등을 한 수재--- 경리관계의 사무에서는 제일
명령계통을 준수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한번만 보아 주시면---
[사장] (상범에게) 자네 이름은 뭐랬지?
[상범] 네. 임시고원 김 상범 입니다.
[사장] 자네 술을 얼마나 마시나?
[상범] 술은 전혀 못합니다.
[사장] (아미에게) 얘야. 이 청년을 정식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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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임명하도록 연락해라. (사장 나간다)
[상범] (관객에게) 그 휴지를 꺼내 보이며) 아셨죠? 5원짜리 이 휴지 덕분에 정 사원이 됐읍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교회에 여자 구경 나갔던 덕분으로 사장의 무안한 신임을 받게 돼었읍니다. "예측
못할것은 인생. 절망속에서도 희망은 솟는다" 나의 옛날 담임선생이 우리들한테 하던 말입니다. 그
선생은 본래 문학(文學)을 좋아하든 분입니다. 지금은 교직도. 문학도 내동뎅이치고 무교동에서 설농탕
장사를 하고 있읍니다만--- 글쎄 자기(自記)말마따나 예측 못할것은 인생이지만 절망의 설렁탕
그릇에서 무엇이 솟을는지 모르겠읍니다. 요 전번 일요일에는 글쎄 사장이 예배를 끝내고 이 방까지
왔읍니다.
(사장이 들어온다. 옆구리의 성경책이며 찬송가 책을 끼고서)
[상범] 좀 누추하지만 앉으시죠?
[사장] 음. 혼자사나?
[상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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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그러니까 미혼인가?
[상범] 네,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있으니 외롭지 않습니다.
[사장] 좋은 생각이야.
[상범] 커피라도 좀---?
[사장] 커피? 난 안피워. 자넨?
[상범] 저는 --- 마십니다.
[사장] 마셔? --- 아 커피 얘기군! 난 담배 얘기라고--- 괜챦아. 곧 가야하니까. 근데 고향은 어디지?
[상범] 서울 입니다.
[사장] 그럼 왜 여기에 사나?
[상범] 집은 창신동에 있지만--- 좀 독립생활(生活)도 할겸---
[사장] 부모님은 다 계시고---?
[상범] 네.
[사장] 춘부장께선 무슨 일을 하시나?
[상범] 네, 아버진 점을 칩니다.
[사장] 점을?
[상범] 네. 창신동 고갯길에서 "고갯집 거북이집"이라는 점치는집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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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우리 아버지가 하는 집입니다.
[사장] --- 응--- 점을 치시는군. 그럼 형제는 있나?
[상범] 네. 제일 큰 형은 인천에 있는 대학에서 공과 교수를 하고 있읍니다. 로케트를 연구하고
있다나요?
[사장] 로케트를? 한국에도 그런 연구가 있는가? 그럼 대학교수군.
[상범] 그렇읍니다. 그리구---? 둘째 형은 죽었읍니다.
[사장] 허허. 그거 안됐군. 하기야 사람이 죽고 사는건 하늘의 뜻이야. 나도 내 외아들을 잃었지. 바로
6(六)개월 전에 장가를 보내고. 8(六)개월만에 죽었어. 지금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는 미스 성이 내
며느리야.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나를 도와주는군. 하늘의 뜻이야.
[상범] 제 둘째 형님은 엽총을 오발해 죽었읍니다.
[사장] 엽총으로?
[상범] 네. 사냥을 참 좋아했읍니다.
[사장] 하. 나도 사냥을 좋아했는데. 사냥은 살생이 아니라---몸에 좋은 운동이야. 스포오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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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이 옆 방으로 들어가 엽총을 갖고 나온다)
[상범] 그건 잘 알고 있읍니다. 저희 형님이 쓰던 엽총을 보시렵니까?
[사장] 그 엽총을 자네가 가지고 있나?
[상범] 네.
[사장] 응. (엽총을 들고 일어서 그럴듯이 앞을 겨누어 보이면서) 좀 낡았군. 미제군. 미제야
[상범] 네. 미국 군인한테서 샀답니다.
[사장] 이것도 괜챦지만 내 것은 벨기에제야.
[상범] 벨기에제요?
[사장] 엽총은 벨기에 것이 제일이지. 자네 엽총을 다룰줄 아나?
[상범] 한두 번 쏴봤지만 아직도---
[사장] 손질을 할줄 아나?
[상범] 네, 손질은 간단해서---
[사장] 회사에 내 엽총이 있어. 가끔 손질을 해 주게.
[상범] 네. 알겠읍니다.
[사장] 엽총은 동물을 쏘라고 만든 것인데. 이 엽총은 어째서 사람을 쐈나!--- 그래 둘째형님은
그렇게됐고, 또 형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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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그 다음엔 접니다. 제 밑에 동생이 있읍니다. 지금 무슨 회사에 들어간다고 시험준비를 하고
있읍니다. 초급대학을 나오고 몇 차례 시험을 쳤지만 --- 아직 합격(合格)이 안돼서---
[사장] 노력하면 되겠지. 그래 형님들도 다 믿나?
[상범] 네?
[사장] 형님들도 다 하나님을 믿나?
[상범] 아---뇨. 저만---
[사장] (일어서며) 김군이 권해서 교회에 나오도록 해보지 그래. 교회에 나오면 이것저것 --- 잘 알지
않나? 이 사람아. 무엇보다 봉사 정신을 가르쳐 주니까. 봉사정신이 중요해. 봉사 정신이라는 말이
나왔으니말이지. 참 요새 회사의 분위기가 어떤가?
[상범] 글쎄요?
[사장] 사원들 사이에 또 무슨 말이 없던가?
[상범] 글쎄요?---
[사장] 블평이라든가 또는 네가 알수없는 무슨일이 있으면 나 한테 곧 알려주게. 자네가 나를 도울수
있는 길은 그런이야기를 알려주는거야. 봉사정신이지. 술을 먹는 사원들은 없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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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앞으로 조심해 보겠읍니다.
[사장] 자. 가볼까? (상상적은 문을 나서 무대 좌측으로 들어간다. 상범이 무대중간에서 큰 절을 한다)
[상범] 사장은 저한테 스파이 역을 떠 맡겼읍니다. 좀 쑥쓰럽지만 출세를 위해선 다시 없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태껏 늘 손해만 봤읍니다. 학교서, 그리고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했지만 늘
손해 나는 결과만 보았읍니다. 돈이 없어 기숙사에서 공부했는데 밤 열시면 불을 끄기 때문에 변소에
가서 시험공부를 했읍니다. 그러나 나하고 같은 방에 있던 친구를 한시간 을 소비해서 컨닝재료를
만들고서는 밤 아홉시면 자곤 했읍니다. 그래서 시험 결과는 저보다 항상 위였읍니다. 학교를 나와
인천에 있는 제철공장 총무과에 취직이 되어 있다가 불과 2년만에 파면당한것도 윗사람들이 시키는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또 손해를 봤죠. 철 공창 두개가 합친다나요? 그래서 어떤날 전 사원이 모여 두
공장의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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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반대한다는 성토 대회를 하고서 데모를 하기로 했지요. 그 성토대회에는 사장도 나와서 일장 연설을
했읍니다. 성토대회가 끝나고 데모로 들어가는데 어디 프래카드가 있어야죠. 총무과장이 저더러 빨리
프래카드를 만들어 오라고하기에 단골 상점에 가서 크게 만들어 가지고 왔죠. (상범이 무대 좌측으로
뛰어 들어가 "병합 결사 반대"라고 쓴 프래카드를 들고 나온다) 그랬더니 과장이 그걸 메고 앞에
서라고 하쟎겠어요. 시키는 데로 메고 시키는 데로 메고 시가로 들어 갔더니 반대 쪽에서 병합을
지지하는 데모대가 오지않겠어요. 뒤에서 밀어데는 바람에 밀려서 앞으로 갔더니 저쪽 반대파의 두목
비슷한 사람이 몽둥이로 후둘겨 패더군요. 저는 정신없이 쓰러졌지요. 얼마 있다가 깨서 보니 경찰서
유치장이 아니겠어요. 이럭저럭 석방은 됐지만. 이번 데모의 주모자급은 파면 하라는 통지가 왔는데.
총무과장과 사장이 절 더러 그만 둬 달라는 겁니다. 제가 왜 주모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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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일을 사무계통의 명령에 따라 사무적으로 했을 뿐입니다. 모범 사원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반문했더니 지금은 그걸 따질때가 아니라. 우선 그만둬 달라는겁니다. 대신 서울 어떤 회사에 취직을
시켜준다는 겁니다. 사장이 직접 나섰지요. 지금 일하는 곳이 바로 그렇읍니다. 그러나 악 보았더니
저는 임시고원으로 되어 있었읍니다. 경리과가 바쁘니 임시 도와준다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할수있어요?
실직한 놈이--- 자 그건 그렇고--- 정식사원이 되고 이렇게 아파트의 방을 하나 독차지 하고 있어도
손해 보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쳐 본 적이 없읍니다. 피해를 기쳐
이를 보려고 한 적이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손해만 봐야하는지 모르겠읍니다. 바로 이
옆방에 한 사나이가 살고 있읍니다. 직업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 방에 가끔 여자가 찾아와놀다 갑니다.
자고도 가고요,. 한국의 호텔이나, 아파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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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쉬고 생활하기 위해 만든것이 아니라 경찰의 임검을 받기위해 만든것 같읍니다. 방에는 아무
것도 없고 큼직한 침대만 있으니까요. 그 침대에는 늘 한쌍이 딩굴며 경찰의 임검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태연하게, 또는 초초하게. 옆방 사나이가 아침에 출근 하는 걸 아직 보지 못했읍니다.그런데 바로 그
사나이가 저에게 또 손해를 끼칩니다.
(세칭 탱크가 나와 상범의 도어를 노크함) 들어오세요. (탱크가 들어선다)
[탱크] 자. 우리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저 바로 이 옆방에 있읍니다.
[상범] 네. 전 김 상범이라고 합니다. 좀 앉으시죠.
[탱크] 다니는 회사가 어디요?
[상범] 종로에 있는 제철 회사입니다.
[탱크] 제철회사라니?
[상범] 철--- 쇠를 만드는 곳입니다.
[탱크] 아. 제철. 나도 알지. 나 담배 불좀 빌리러 왔수다. (현 소희가 역시 가운 바람으로 들어선다.
담배를 입에 문채, 아직도 졸린듯)
[소희] 불 좀 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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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저 김 상범이라고 합니다.
[소희] 전 미스 현이라고 해요. 이름은 소희고요.
[탱크] 자 불있으면 좀 주시오.
[상범] 네. (주머니에게 라이타를 꺼내 불을 켜준다) 탱크와 소희가 불을 붙인다)
[소희] 고맙읍니다.
[탱크] 자담배 한대 피우시지?
[상범] 전 못 피웁니다.
[탱크] 아니. 무엇때문에. 그럼 라이타는?
[소희] 탱크!
[탱크] 응?
[상범] 탱크요?
[소희] 이 사람 이름이 탱크예요.
[탱크] 흥. 내 이름이 탱크지. 근데 왜 불렀어?
[소희] 이분이 라이타를 가지고 계시던 안 가지고계시건 무슨 상관이예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탱크] 아이구 잘 났다.! 참 --- 성함이 뭐라고 했더라?
[상범] 김 상범입니다.
[탱크] 김형? 미안하지만--- 혹시 --- 먹다 남은 커피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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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커피요?
[탱크] 어젯밤 술을 좀 마셨더니 입이 좀 텁텁해서---
[상범] 네--- 있을겁니다. 부엌에 아침에 끓이다 남은것이 있을텐데---
[탱크] 이왕이면 커피(통)통좀 빌려 주시요. 우리끼리 한잔 끓여먹고 갖다 드릴께.
[상범] 그렇게 하세요. (부엌에 들어간다. 탱크는 소희에게 자기(自記)가 제일이라는 몸 시늉울 한다.
소희는 흩어져 있는 잡지를 보며 나체사진과 자기의 몸매를 겨누어 본다. 상범이 커피통을 들고
나온다.)
[탱크] 아 고맙습니다. 우리 자주 만납시다.
[소희] 탱크 설탕은 어디 있어?
[탱크] 아. 참 김형. 설탕도 좀 빌립시다.
[상범] 그렇게 합시다. (다시 들어가 설탕그릇을 갖고 나와 소희 에게 준다)
[소희] 혼자 사세요?
[상범] 네. 혼자삽니다.
[소희] 혹시 여자 친구들은 없어요?
[상범] (부끄럽게) 아--- 그런건 없읍니다.
(잡지를 치운다.당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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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이거 고맙읍니다.
(소희와 탱크가 다정하게 같이 걸어 나간다)
[상범] (관객에게) 보셨죠? 저는 이렇게 밤 낮 손해만 보고 있읍니다. 옆방에사는 정체 불명의 사나이
탱크나 그의 정부 현 소희만 저를 괴롭히는게 아니라. 이 아파트의 관리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관리인은
나하고 동창생입니다. 밤에도 무사할수 없읍니다. (젊은 관리인이 취한채 상범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다)
[관리인] 아 상범이! 너 안자는구나.
[상범] 안자는 것이 아니라 네가 와서 깨웠어.
[관리인] 아 그래. 인생은 짧아. 짧은 인생인데 어쩌자구 잠만자나? (신파조로) 눈을 감는다는건
죽는다는것, 눈을뜬다는것은 산다는것, 이게 누구의 말인지 아나?
[상범] 글쎄, 난 문학을 몰라서--- 누구의 말이지?
[관리인] 내가 한 말이야. 이 아파트의 관리인 --- 아비의 뜻을 받들어 억지로 관리인이된 이 젊고
똑똑하고 --- 결국 무능한
[페이지] 024
이 관리인이 한 말이야. 자네 수첩있지?
[상범] 수첩? 이렇게 쓰는거?
[관리인] 그래. 수첩이 있으면 이제 내가 한말을 기입하게 내 말을 하루에 하나씩 기록해 두면 한
五(오)년 후에는 성격책보다도 훌륭한 책이 생길거야. 지당한 말씀만 하니까.
[상범] 자네 굉장히 취했군, 그래.
[관리인] 나? 흥! 누가 할 소릴.
[상범] 난 술을 안 마셨어.
[관리인] 누가 술에 취했대? 넌 이 얼키고 얼킨 사회에 취했어! 사회가 뿌린 독소에 취해있어!
썩어빠진 독소에 취해서 기껏한다는게 초라한 회사의 평사원! 넌 취했어. 너희들 사회에 취한 놈들하고
나하고 구별하려면 술을 마시는 일 밖에 없어. 술을 마시는 일밖에 없어. 술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하고
유쾌하게 하고 즐겁게하고 이 말도 자네 수첩에 기록해 두게.
[상범] 너무 취했어. 그렇게 취해서 작품은 언제 쓰나? 뿐인가 자넨 심장이 약하지않나? 일전에도
심장마비 때문에 입원을 했지 않나! 자, 어서 가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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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아직 내 말은 다 안 끝났어--- 자네 날 더러 작품은 언제 쓰냐고 했지?
[상범] 응, 그래서---?
[관리인] 자넨 똑똑해 이름은 평범해요. 나의 작가로서의 재능을 평가 해 주니까! (안 주머니에서 돈
뭉치를 꺼낸다) 이걸(만) 봐 5(五)만원 오늘 출판사에서 받았어. 원고지 2천 5백매에 돈 5만원. 원고지
한장에 20원 20원! 옛날 20원이면 땅도 살수있었는데. 그러니--- 내가 무슨말을 하려고 했지? 자네
기억나나?
[상범] 술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하고 유쾌하고 즐겁게 하고---
[관리인] 그렇지. 그리고 --- 술을---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상범이 몹시 당황해 한다)
[상범] 자. 그러지 말고--- 심장도 약한데---
[관리인] 술은---눈물을 자아내고---
[상범] 알았어. 알았어.
[관리인] 나 여기서 좀 재워줘.
[상범] 안돼. 안돼. 자네 처가 기다리고 있는데
[관리인] 그게 날 기다리고 있어? 들어가기가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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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을 앗아갈걸!
[상범] 밖에서 벌어 온 돈은 마누라 에게 주는것이 타당한 일이 아닌가?
[관리인] 주는것하고 뺏기는 것 하고는 달라! 내 심장이 또 고장이 나 싹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내
마누란--- 애라 그만두자. 하옇든 나는 여기서 잔다. 알겠지? 네가 이 방을 쓸수있는 것도 내
덕분이거든?
[상범] 글쎄. 돈은 내는데---
[관리인] 돈이 문제야? 나가라면 나가는 거지. 하기야 자네 같이 착한 친구를 왜 나가라고 하겠어! 자.
이 돈좀 맡아둬. 그렇지. 나 좀 잘께--- 왜 이렇게 일이 안되지? 작품도 시시해. 아파트 관리도
엉망이야. 마누라도 그 꼴이고--- 난 뭣을 잡을려고 하는데도 하나도 안잡히고--- 하기야 뭣을
잡으려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져 이렇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마누라 한테 못 들어 간다고
전화(電話)나 해 볼까?
[상범] 난 자네의 친구의 입장에서 말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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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친구의 입장에서---? 자네는 나의 친구지. 친구. 까다로운 것이 친구야. 친구란 항상
먼거리에 두고 대해야만 친할 수 있지. 너무 가깝게 대하면 원수가 돼. 친구의 친자는 친할 친자가
아니고. 멀 친자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귀는 것이 진짜 친구야. 너무 가까이 사귀면 금이가. 뿐인가?
친구란 시시한 물건이야. 밤낮 자기(自記) 칭찬을 해줘야 좋아하는 놈들! 싫은 말을하면 멀어지는 놈들.
한국이라는 나라의 친구란 마음의 부담만 줘. 친구를 사귀려면 거리를 둬라. 거리를! 자 마누라한테
전화나 걸까? 뭐 기다리지도 않겠지만. (상범은 관리인을 끼고 옆방으로 침실로 간다. 잠시후 땀을
뻘뻘흘리면서 나온다. 티 테이블 위에 있는 돈 보따리를 들고 관개을 향(向)한다)
[상범] 이 돈보따리까지 제가 간수해야만 합니다. 암만 해도 저는 결혼을 해야 할 것같읍니다. 혼자
사니까 더욱 손해를 보는것 같읍니다. 장가 갈 밑천을 거의 없는데도 요 윗층에 사는 미스 박은 저한테
굉장한 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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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고 있읍니다. 뿐인가요? 그 박 용자의 어머니도 상당히 저를 좋아하는 것 같읍니다. 가끔 밤에 두
모녀가 젓가락이 돼서 꿈속에 나타납니다. 박 용자씨하고 그의 모친이 (두 손가락을 내 보이며) 이렇게
두 젓가락이 돼서 저를 집으려고 하는 꿈이죠. 박 용자씨는 밤에도 저의 방에 찾아 올 정도로 가까와
졌읍니다.
(박용자가 상상적인 도어를 노크하고들어옴)
[용자] 군밤 가지고 왔어요? 군밤 좋아 하세요?
[상범] 좋아하기는 진빵을 더 좋아하지만, 군밤도 괜챦읍니다. 앉으세요. (용자는 앉아서 군밤을 깐다)
이거 사온겁니까?
[용자] 아뇨. 집에 있던걸 제가 구워 왔어요.
(용자가 군밤을 까서 상범에게 준다)
[상범] 괜챦읍니다.
[용자] 드세요.
[상범] 드세요. 괜챦읍니다.
[용자] 아니 난 몰라요. 드세요 (상범이 어색하게 집어 먹는다) 맛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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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좀 덜 구워졌지만 괜챦은데요.
[용자] 저 오늘밤 바쁘세요?
[상범] 아뇨.
[용자] 그럼 구경가요. 영화구경이요. 엄마가 어디서 영화표를 석 장 구해 오셨어요.
[상범] 무슨 영환데요?
[용자]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표를 갖고 있어요. 이제 곧 엄마도 이리로 오실거예요. 옷 갈아 입고
계세요.
[상범] 그 영화가 재미 있을까요?
[용자] 글쎄요. (상범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그게 뭔데요?
[상범] 5원짜리요. 점을 쳐 보는 겁니다. 오늘 영화가 재미있는지 시시한지 이걸 던져 보면 됩니다.
(상범이 동전을 던져 손바닥에 받고서 본다) 아 앞쪽이 나왔군요. 재미있을겁니다.
[용자] 그렇게 점을 쳐도 맞는가요?
[상범] 대개 맞읍니다. 우리 아버지는 철학적으로 점을 치지만,저는 이 동전으로 점을 치지요. 가끔---
(이때 김상학이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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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으로 부터 들어와 노크를 한다) 벌써 오셨네. (용자가 일어서 문을 연다 상학이 들어온다.)
[용자] 어머나!
[상학] 실례했읍니다.
[상범] 아 형님.
[상학] 아 상범이 너 있었구나.
[상범] 인천서 언제 왔수?
[상학] 저녁 차로 왔어 내일이 개교기념일이 되서 이틀 놀거든.
[상범] 미스 박. 저의 형님입니다. 인천에서 대학 교수를 하시죠.
[상학] 처음 뵙겠읍니다. 김 상학이라고 합니다.
[용자] 전 박용자라고 해요.
[상학] 그저 심심하기에 동생이나 좀 만날까 해서---
[상범] 형님! 저녁은 드셨수?
[상학] 응, 나 인천서 먹고 왔어.
[상범] 그럼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상학] 그래.
[용자] 제가 끓이죠.
[상학] 아니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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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 두 분이서 얘기나 하세요.
(용자가 옆방으로 들어간다.)
[상학] 이거 안됐는데 그럴줄 알았으면 안 올것을---
[상범] 아냐. 아냐. 요 윗방에 사는 여잔데--- 나하고는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 어머니랑 구경간데.
그래 형님은 어떻게 지내요?
[상학] 나야 뭐 그렇치.
[상범] 로케트 연구는 아직도 하고 있어요?
[상학] 그래. 이단계 발사까지는 했는데--- 연구비가 모자라서 --- (용자의 모친 문여사가 와서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뮨여사] 아니--- 우리 용자는?
[상범] 들어오세요. 부엌에 계세요.
[문여사] 부엌에요?
[상범] 커피를 끓이신다고---
[문여사] 아--- 시집갈 나이니까 부엌일도 배워야지.
[상범] 저의 형님입니다. 인천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읍니다. 아까 미스 박의 어머님이셔.
[상학] 처음 뵙겠읍니다. 김 상학이라고 합니다.
[문여사] 네---? 형제분들이 다 훌륭하셔.
(용자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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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 곧 물이 끓을거예요. 참. 엄마 그 영화(映畵)이름이 뭐랬죠?
[문여사] (핸드백에서 표를 꺼내며) 아---이게---
[용자] (표를 뺏듯이 가로채서 읽는다) "아파트의열쇠"
[상범] "아파트의 열쇠"? 그 영화(映畵)는 봤는데. 지난 토요일에요. 괜챦은 영화예요. 재크레몬이 익살
부리죠.---
[문여사] (맥이빠져) 벌써 보셨어요?
[상범] 아 참. 형님. 이 영화 보았수---?
[상학] 나? 내가 언제 영화 볼 시간이 있었니?
[상범] 내가 두번 볼수는 없쟎아요? (문여사에게) 우리 형님도 못 봤대요. 형님 하고 같이 가시지요?
[문여사] --- 네. 벌써 보셨다니까--- (상학에게 마지 못해) 같이--- 가시죠.
[상범] 거 잘 됐는데. 그럼 영화 보고 이리로 오세요. 같이 갑시다. 미스 박. 형님하고 같이 가도
괜챦죠?
[용자] 네.
[상학] 그럼. 가 볼까. (세 사람은 문 밖으로 나간다. 상학이 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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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아. 내게도 돈이 몇 백원 있지만--- 혹시 또 알겠니. 돈이 있으면 몇 백원 다오.
[상범] 내게도 좀 있을걸. (호주머니를 뒤져 몇 백원 꺼내준다)
[학] 그럼--- 갔다 올께. 영화(映畵)좋든?
[범] 아 참 재미나요. (상학이 나간다) (관객에게) 그날 밤 저는 형님을 위해 영화관에서 돌아오자
먹지도 못하는 술까지 한턱 냈읍니다. 형님의 나이는 설흔 다섯 이지만, 공부에 바쁘고--- 또 돈도
없고 해서 아직도 장가를 못 들고 있읍니다. 제가 먼저 미스 박하고 결혼한다는 것이 좀
안됐지만---암만해도 결혼을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돈을 한푼한푼 모으기 시작했읍니다. 가만 눈치를
보니 미스 박도 결혼을 위해 꽤 많이 준비를 한것 같읍니다. 그후 한달이 지나는데 어떤날 저녁에
형님과 내 동생 상출이가 왔읍니다. (상학과 상출이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범] 그래 준비 많이 했니?
[출] 하루에 다섯시간 밖에 안자고 공부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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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 워낙 지원자들이 많아서---
[상학] 그 회사(會社)의 직원으로 취직이 되면 봉급이 얼마나 되니?
[상출] 모르겠어. 봉급의 액수가 문제야. 합격이 되고 취직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中要)하지.
[상학] 꼭 시험에 합격해야만 시원 하겠니?
[상출] 그럼 어떻게? 취직 할 데가 또 어디있어?
[상범] 그래 이번엔 될것 같아?
[상출] 아버지가 친 점괘로 보아서는 될 것도 같은데
[상범] 아버지의 점? 미친소리마. 아버지의 점은 그것이 직업이야. 넌 아직 몰라서 아버지한테 그런걸
물었니?
[상출] 하기야 요새 아버지 한테 찾아오는 손님의 수가 퍽 줄었어.
[상학] 점치는 사람의 아들이 로케트를 연구하니. 되겠니? 상범아. 우리가 온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한달후면 아버지의 환갑이다.
[상범] 환갑? 벌써 그렇게 됐나?
[상학] 세월도 빠르지---
[상출] 그래서 셋이서 환갑 잔치에 (대해서) 대해서 상의 좀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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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그렇지. 아버지의 친구되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졌으니---
[상출] 어머니 계산으로는 한 3만원쯤은 있어야겠다는데---
[상범] 3만원?
[상출] 그게 최소한 이래.
[상범] 형님 어떻게 하지?
[상학] 글쎄 --- 내 봉급이라는 게 이것저것 다 제하고 보면. 만원 밖에 안 들어오는데 거기서
하숙값은 빼면 한 5천원 남을까?
[상범] 나 같은 말단 직원대의 봉급은 더 형편이 없는데---
[상출] 손님들 한테 초대장을 내지. 뭐 한 백명만 오면 한 사람에 3백원씩의 잡아도 벌써
3만원이거든---
[상학] 손님들? 백 명? 쓸데없는 소릴랑 마.
[상범] 그럼 어떡하지?
[상학] 글쎄---(잠시 어색한 사이)
[상출] 형들 어제 윤 강천이하고 사루마하고 권투하는거 중계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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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난 못들었는데?
[상출] 멋 있었어. 기가 막히던데.
[상학] 난 하숙집에서 들었지. 2회에서 사루마가 다운됐지?
[상출] 아. 윤강천이 참 잘 하던데요.
[상학] 그거 참. 한국에서 그런 멋있는 선수가 다 생겼으니.
[상범] 그 선수가 불과 열 아홉살이라면서요?
[상출] 아니야. 스므살이야.
[상학] 우리 학교에 권투하는 애가 있는데--- 스물둘이래.
[상범] 우리 경리과장이 권투광인데 그 양반의 말로는 열 아홉살이래.
[상출] 알지도 못하면서! 스므살이야. 그때 신문에 났었어!
[상학] (내 생각하고) 내 학생은 윤 강천이 하고 같이 권투를 배웠대. 틀림없이 스물둘이래.
[상출] 참 권투중계라 하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는데--- 윤강천을 스믈이야. (또 어색한 사이가
계속된다) 이번 미스유니버스는 월남 여자가 됐더군.
[상범] 난 태국여잔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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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학] 태국여자건 월남 여자건 동양(東洋)여자엔 틀림없어. 이젠 서양 여자의 뺨을 치겠어.
[상출] 왜?
[상학] 뭐--- 바스트가---
[상출] 뭣이?
[상학] 아--- 이 (손으로자기 앞가슴을 가리키며) 여기 말이야.
[상출] 아. 젖.
[상학] (36) 36인치래.
[상범] 아니야 35인치야. 신문에서 봤는데.
[상학] 난 타임지에서 읽었어. 36인치래.
[상춤] 다 틀렸어. 38인치야
[상학] 38인치? 너 정신있니? 38인치면 얼마나 큰줄 아나?
[상출] 그러니까 미스 유니버어스지.
[상범] 아마 35인치 일꺼야.
[상출] 아니라니까. 38인치야.
[상학] 너는 자꾸 38선을 생각해서 그래 37이야
[상출] 38이래두. (또 어색한 사이가 흐른다)--- 근데 아버지의 환갑은 어떻게 한다지? 삼만원을
어디서 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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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학] 자 늦었는데 가 볼까?
[상출] 언제 또 모이지요?
[상범] 글쎄 --- (상학이 일어나 문으로 간다)
[상학] 자, 가보자. (상출이도 따라나간다) 상출아. 너 먼저나가. 밑에서 기다려. 나 상범이 하고 얘기
좀 할게 있어서---
[상출] 알았어요. 상범이형 잘있어 (상출이 나간다)
[상학] 자. 아버지 환갑도 지내야겠고---
[상범] 정말 큰일이예요.
[상학] 나--- 이제 한달후에 결혼을 하게 될것 같아.
[상범] 네? 결혼이요. 아 축하해요. 벌써 장가를 들어야 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나도 결혼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던 참인데. 암만 해도 형님보다 앞서 장가 간다는 것이 좀 이상해서--- 참 잘됐어요!
[상학] 그러니 말이야 아버지 환갑에 손님을 좀 초대하고도 싶지만 한달후엔 내 결혼식이 있으니
같은 손님들을 두번 청할 수도 없고---
[상범] 거야. 그렇지---
[상학] 암만해도 이번 아버지 환감은 네가 좀 주동이 되서 (도)도와 주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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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그렇기도 하군요. 사장님 한테 직접 사정 말씀 드리면 될까?
[상학] 잘 알아서 해 주렴.
[상범] 근데 아주머니 될 사람은 누구예요?
[상학] 너도 잘 아는 여자지.
[상범] 저도요?
[상학] 요 윗층에 있는 미스 박 말이야. 가정주부로선 그만이기에---
[상범] 아니? 박 용자씨 말입니까?
[상학] 그래. 아마 너도 반대는 안할게다.
[상범] 저요? 아니요--- 아니요---
[상학] (팔목 시계를 보더니) 이런. 시간에 늦겠다. 그럼 내 2,3일 내에 연락할께.
[상범] 박 용자씨 하고는 얘기가 다 됐어요?
[상학] 그럼 인천에도 몇번 놀러 왔었고. 약혼식은 생략하기로 했어. 결혼식도 간단히 하기로 하구.
그때 같이 영화구경 간 것이 인연이 돼서--- 그럼. 몸 조심해. (상학이 걸어 나간다. 상범은 움직이지를
못한다. 잠시 그대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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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체념 하기에는 너무나 억울하다는 듯이, 또한, 태도로) 이거--- 결혼 상대자를 떼운데다가
아버지 환갑 잔치 비용도 내가 주선 해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이제 할 말이 없읍니다. 저의 나이는 스물
일곱입니다. 앞으로 살아봤자 20년---나머지 20년 마저 밤낮 손해만 보는 세월일것이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저는 여태까지의 모든 생활을 제가 아는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해 왔읍니다. 그러나
제가 배우고 믿어 왔던 상식적인 생활은 저에게 손해만 끼쳐 왔읍니다. 저는 결국 상식적인
생활(生活)태도란 늘 손해만 갖고 온다는 새 상식을 얻었읍니다. 인천(仁川)에서 근무 할 때의 일입니다.
여름에 하도 무덥기에 해수욕장에 나갔읍니다. 벌거 벗은 여자들의 알몸을 밀짚모자 밑으로 감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쪽 바위밑에 옷을 입은채 기어 들어가는 젊은 여자를 보았읍니다. 물에서 나오질
않읍니다. 틀림없는 자살입니다. 밑짚모자를 내 던지고 달려가 그 여자를 끌어냈읍니다. 얼굴도 예쁜데
왜 자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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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 했는지. 모래 위에 끌어내서 살렸더니 그 여자는 고맙다는 말 대신에 저의 뺨을 갈겼읍니댜.
그러니까 경찰은 저를 파출소로 연행하던군요. 이 사회에선 저의 상식이 통용 안는것 같읍니다. 저는
이제부터 새 상식을 배우렵니다. 물에 빠진 놈에겐 돌을 안겨 줘야 되겠읍니다. 자리를 양보하느니 발로
걷어차 길을 터득해야겠읍니다. 즉 기존 상식을 거부하는겁니다. 우선 새 상식을 회사에서 한번 실험해
보았읍니다. (무대 좌측 사무실에 불이 켜진다. 상범이 엽총을 들고 들어와 손질을 한다)
[아미] 조심하세요. 총알은 다 빼고 하세요?
[상범] 네 실탄은 다 뺐읍니다.
[아미] 가끔 사냥도 가세요?
[상범] 사장님이 가자면 가끔 따라 다닙니다.
[아미] 상범씨는--- 아직 독신이세요?
[상범] 아직 장가를 못갔읍니다. 근데 비서님은 결혼 안하세요?
[아미] 저요?---저의 남편이 돌아가신지 8개월밖에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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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사장님의 아드님 말이죠?
[아미] 결혼 얘기를 꺼내 저의 마음을 괴롭히지 마세요. 아직 그 분을 못 잊고있어요.
[상범]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읍니다. (전화벨이 울린다. 엽총을 죈채상범이받는다) 네. 네?
성아미씨요? 계십니다. (수화기 대신 엽총을 내밀며) 박 전무님 입니다. 아. 실례했읍니다. (수화기를
준다)
[아미] 네. 저예요. 그 분이요? 경리보는 김상범씨 예요. 괜챦아요. 네. 지금이요? 혼자서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네.
(수화기를 놓고 시계를 본다. 이어 사장실로 들어간다.)
[상범] (관객에게) 8개월 전에 죽은 남편을 잊을 수가 없다던 저 여자입니다. 박 전무가 전화를
하니까 대낮에 나갈 생각입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을 할수가 없읍니다. 저도 저런 친구들의
상식. 즉 내가 새 상식이라고 부르는 상식으로 살아 갈 생각입니다. (아미가 나와 핸드백을 들고
무대밖으로 나간다. 상범은 총구를 그의 등에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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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며 사장이 나온다. 상범은 총을 돌려 뜻하게 않게 이번에는 사장에게 총구를 들여댄다.)
[사장] 에이크. 이 사람아.
[상범] 아이, 미안합니다. 손질을 하고 났더니 갑자기 한번 쏘구 싶어서---
[사장] (총을 받으며) 응, 수고했어. 경리 과장은 어디갔나?
[상범] 네 배 과장님은 돈 5천원을 가지고 요 앞에있는 바구니 다방으로 가셨읍니다.
[사장] 5천원? 회사 돈을?
[상범] 네. 저 보고 5천원을 달라고 해서---
[사장] 다방엔 무엇하러 갔나?
[상범] 어떤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 성 비서님은 방금 여기에 계셨는데---
[사장] 아 비서는 이빨이 아파 치과에 갔다 온다고 나갔어. --- 배 과장이 가끔 돈을 가불하나?
[상범] 글쎄--- 가불증을 안쓰고 가끔 돈을 가지고 가시니 --- 그 돈이 가불인지 모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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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배 과장이 쓰는 돈을 잘 알아 두도록 해.
[상범] 네.--- 계산을 해 놓겠읍니다.
[사장] 그 다방에 있는 여자가 술집 여자 인가?
[상범] 모르겠읍니다. 하기야. ---
[사장] 하기야---?
[상범] 배 과장님이 약주를 참 좋아 하십니다. 점심때도 가끔 한 잔씩 하시긴 합니다.
[사장] 회사의 돈을 맡고 있는 사람이---!
[상범] 사장님 저--- 제가 이런 말씀을 올렸다고 --- 저는 사장님을 존경하고 회사의 발전(發展)을
무엇보다고 기뻐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말씀을 올렸읍니다. 교회에서 사장님의 지도를 받고---
[사장] 알았어. 자네의 심정은 이해 할수있네. 잘 해보도록 해. (사장이 엽총을 들고 들어간다 잠시 후
배 영민이 들어온다.)
[영민] 무슨 일 없었나?
[상범] 아뇨. (영민이 자기 (自記)주머니에 담배를 찾고 있음을 본 상범이 재빨리 티 테이블에 있는
담배를 집어 영민에게 주고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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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사장님은?
[상범] 계시는 모양입니다.
[영민] 아. 이거 여편네 성화에 못살겠군! 여편네 친구가 갑자기 맹장염에 걸려 입원했는데 5천원을
좀 빌려 달라는 거야.
[상범] 아까 그럼 다방에서 전화하신분이--- 사모님이신가요?
[영민] 그래. 여편네 들이 자꾸 남편의 직장까지 찾아오면 곤란해. 재수가 없어. 재수가!
[상범] (관객에게) 네. 재수가 없죠. 재수가 없읍니다. 그 후 한달있다가 경리과 장은 강원도 지사로
별령을 받아 전출했고 저는 경리과장이 돼었읍니다 회사에서는 저의 출세가 이렇게 빠른 것을 보고
감짝 놀랬읍니다. 내가 아는 상식을 버리고 새 상식에 의해 행동한 첫 효과였읍니다. 제가 할일이 또
하나 있읍니다. 사장의 며느리요, 과부요, 또한 비서인 성아미와 박 전무와의 관계를 적당히 이용하는
겁니다. 이리하여 모든 가능한 출세의 문을 내 손으로. 내 이 두발로 젖히고 차서 활짝 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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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의 불이 꺼지고 아파트의 내실이 밝아진다. 상범이 들어와 손에 들고 있는 큼찍한 십자가를
벽에 단다. 문여사가 나와 그어 도어를 노크한다. 상범이 문을 연다.)
[상범] 아 안녕하셨어요?
[문여사] 계셨군. 내 정신좀 봐. 우리 용자 시집갈 준비하는라고 그 동안 김치도 제대로 못 담갔네.
[상범] 괜 챦읍니다. 바쁘실텐데.
[문여사] 아직 못들었어요?
[상범] 무엇을 요?
[문여사] 아. 글쎄 이 아파트의 그 젊은 관리인이 돌아가셨대요.
[상범] 네? 관리인이요?
[문여사] 본래 심장이 약하신 분이었는데---
[상범] 그럼 또 심장마비로---?
[문여사] 그래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참 안됐어요. 식구도 많은데--- 그래서 우리 아파트에
들어 있는 사람들끼리 돈을 좀 모아사 조위금이라도 갖다 드릴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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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요사] 여유가 있는대로 (아침에) 아침에 저의 방으로 갖다 주세요.
[범] 그러죠. (문 여사가 나가려고 한다) 저 어떻게 돌아가셨다죠?
[여사] 식사를 하다가 그대로 쓰러졌다는걸요.
[범] 마지막에 남긴 말도 없이--- 유언도 없으셨겠군요.
[여사] 유언이 다 뭡니까 그대로 푹 쓰러졌다는데.
[범] 그대로 푹 쓰러졌군요.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읍니다.
[여사] 네. 전 이방 저 방은 좀 돌아 다녀야 합니다. (문여사가 나간다. 상범은 소파밑에서 관리인이
메낀 돈 보따리를 꺼낸다.)
[범] (관객에세) 이 돈! 5만원 관리인이 저한테 맡긴 귀중한 돈입니다. 자 이돈을 어떡하지? 밥 먹다
푹쓰러 졌다니 이 돈에 대해 말할여유도 없었을겁니다. 아니 도대체 이돈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까
이 돈에 대해 말을 했을리가 없어 내 옛 상식에 따를 것 같으면 이 돈은 관리인의 미망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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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줘야 하겠지만--- 아니지. 이미 내 생각은 버리고 새 상식에 따라 생활을 하고 있는 이 마당에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어. 본시 관리인은 자기의 아내를 싫어 했으니까. 오히려 나를 좋아했어. 그러니
이 돈을 내가 쓰는것을 더 좋아할거야. 질서정연한 돈이야. (또 다시 관객에게) 그래서 이 돈을 제가
쓰기로 했읍니다. 다음 난 내 동생 그 이상한 이름의 회사에 시험준비에 골몰하는 내 동생은 시내 어떤
다방에서 만났읍니다. (상출이 무대전면 우측에 의자를 들고 들어와 앉는다. 현소희가 조그만 티
테이블을 들고 들어온다)
[소희] 무슨 차 드릴까요?
[상출] 저 --- 사람을 기다리는데--- 그 사람이 온 다음에 같이 들겠읍니다.
[소희] 좋도록 하세요. (소희가 들어간다. 상출은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연필로 줄을 그며 읽는다.
시험 준비다. 잠시후 상범이 의자를 갖고 들어와 앉는다)
[상범] 오래 기다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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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출] 아니.
[상범] 다방에서도 시험 공부야?
[상출] 할수있나?
[상범] 차 들었니?
[상출] 형이 안오면 혼날라구? 주머니엔 버스표 두장 밖에 없어. 근데 왜 나오라고 했어?
[상범] (뒤로 몸을 돌려 소리지른다) 여보시오 파인쥬스 두 잔만 부탁합니다.
[상출] 한잔에 50원인데---
[상범] 괜챦아. 나--- 경리과장 됐다.
[상을] 뭐? 형이? 경리과장? 굉장한데. 어떻게 벌써?
[상범] 사장이 날 신임했지. 또 --- 나도 잘살수 있는 비결을 배웠고---
[상출] 봉급도 두 배쯤 오르겠네?
[상범] 봉급이 문제야? 그런데---너도 그 입사시험인가 하는데 합격이 되려면 --- 운동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상출] 무슨 운동?
[상범] 돈을 좀 써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다 그런거야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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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출에게 쥐어준다) 이거 5천원인데.
[상출] 5천원?
[상범] 돈을 좀 쓰란 말이야. 세상이 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단다. 문제는 방안에 들어가야 하는거야
앞문으로 들어가건 뒷문으로 들어가건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 해서든지 그저 들어가면 돼.
[상출] --- 아이--- 나 자신 없는데. 이 돈을 가지고 누굴 찾아가 뭣을 어떻게 해?
[상범] 그건 네가 좀 연구해 봐야지.
[상출] (돈을 테이블 위에 도로 내밀면서) 그럼 더 복잡한데. 공부하기도 바쁜데 그일까지 하려면
형편없이 복잡해 지겠는걸.
[상범] 공부를 작작하면 하면 되지 않니?
[상출] 공부 안 하면 어떻게 시험을 치지?
[상범] 앞뒤가 막혔군. 너도 새 상식이 필요해--- 새 상식이.
[상출] 뭐?
[상범] 됐어. 됐어. (현 소희가 파인 쥬스를 갖고 나온다.)
[소희] 어머나 이 돈좀봐! 돈이 막 굴러 다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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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출] 우리 형님 거예요. 그대도 둬 두세요.
[소희] 이 손님 어디서 뵈었는데요?
[상범] 네? 아--- 어디서 뵈었는데요.
[소희] 아--- 자주 좀 오세요. (소희가 돈뭉치를 보면서 나간다. 상범과 상출은 글라스를 들어 쥬스를
마신다) 참! (주머니에서 돈 뭉치 셋을 꺼내 상출에게 내밀며) 이거 삼만원인데--- 어머니 갖다
드리도록 해. 아버지 환갑잔치에 3만원 든다고 했다니까?
[상출] 이 돈 어디서 났어? (받아 넣는다)
[상범] 어떤 고마운 분이 주더라. 죽기전에. 이 돈을 넣어. 사람들이 본다.
[상출] 이 五(오)천원 나 자신 없어! 형님이 넣어 둬.
[상범] (돈을 집어 그 중 몇장을 상출에게 쥐어준다) 구경이나 가라.
[상출] 구경 갈 틈이 어디 있어?
[상범] 이 돈은 내가 도로 갖겠다. 너도 좀 있으면 세상을 알게 될거다.
[상출] 응? (이들을 비치던 조명이 사라지고 아파트 쪽이 밝아진다. 상범이 무대정면 중앙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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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관객에게) 죽은 관리인 영감은 아마 저한테 맡긴 돈 5만원의 사용처에 대해 만족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저의 새 상식에 의하면 말입니다.저의 동생 상출은 아직도 이 새 상식을 이해 못하고
있읍니다. 때가 되면 그 필요성을 느끼게 될줄로 믿읍니다. 하얗든 얼마전에 아버지의 환갑도 무사히
보냈고 곧 이어서 형님의 결혼식도 끝냈읍니다. 저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를 박 용자씨는 "아파트의
열쇠"라는 영화 때문에 이제는 저의 형수가 됐읍니다. 어떤날 회사의 일을 끝내고, 아파트에 돌아
왔더니 괴상한 사건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상범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무대 우측에서 현 소희가 나온다) 안녕하셨어요?
[소희] --- 네? 네--- 안녕하셨어요? (현 소희는 다시 몸을 돌려 우측으로 갔다가 되돌아 온다.
분명히 탱크를 기다리고 있는모양이다)(상범은 자기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소희는 서성거리며
탱크가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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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이 상상적인 문의 열쇠구멍으로 소희의 행동을 내다본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딱고 있는 소희의
모습을 보고 지극히 놀란다. 덩달아 마음이 어수선해진 상범도 자기(自記)방안에 왔다 갔다 한다. 이어
책상 한구석 에 있는 수화기를 들어 다이알을 돌린다.
[상범] --- 아 교환이요? 저 아파트 관리실 좀 부탁합니다. 네 관리실이요--- 아. 여보세요?
관리실이죠? 좀 물어 볼 말이 있어서 그런데요. 저 --- 28호실에 사시는 --- 네? 그렇죠. 탱크라고
하더군요. 아침에 짐을 꾸리고 이사가는 것을 봤는데요? 그럼 완전(完全)히 이사를 갔단 말입니까?
어디로 갔을까요? 그건 몰라요? 그럼 그 방은? 비어 있어요? 네 고맙읍니다. (상범은 수화기를 놓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연다) 저---
[소희] 네?---
[상범] 탱크를 기다리시죠?
[소희] 네.
[상범] 그분--- 오늘 아침에---관리실에 전화(電話)를 걸었죠--- 오늘 아침에 보따리를 꾸려가지고
나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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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이사간지도 모른다는 걸요.
(소희는 이 말을 듣자 그대로 뒤로 쓰러지려고 한다. 상범이 서툰 솜씨로 그녀를 앉는다)
아---이거---여보세요--- 저 --- 미스--- 미스 현--- 이거. (상범은 소희를 안으채 자기 방으로
들어와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소희] 저---물을 좀--- 물---
[상범] 물? 네. (상범은 옆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 사이에 소희는 핸드백에서 알약을 꺼내 손에 쥔다.
상범이 글라스에 물을 떠 가지고 들어와 소희에게 준다. 소희는 글라스를 받기가 무섭게 알약을 입에
넣으려고 한다. 상범이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약을 뺏는다. 글라스가 마루에 떨어진다. 상범은 어색한
태도로 소희를 안고 있다.)
[상범] 진--- 진정하세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돌아가시면 내 신상에도 좋치 않읍니다.
[소희] 속았어요! 속았어요!
[상범] 자 좀 진정하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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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상범의 몸안에서 빠져나오며) 개새끼!
[상범] 네? 미안합니다.
[소희] 선생님 한테 한 이야기가 아니예요.
[상범] 알겠읍니다.
[소희] 그런 악질이 어디 있어요? 저의 돈은 물론, 친구의 똔까지도 전부 맡아 가지고 도망갔으니!
강도지 뭐예요. 저는 이제---마지막이예요. (소희는 울기시작한다)
[상범] 울지마세요. 울지마세요.
[소희] 저는 --- 죽어야 해요.
[상범] 그래도 이 방에서 야---
[소희] 아 답답해. 속았어요! 속았어요! (상범이 다시 옆방에 들어가 술병을 들고 나온다)
[상범] 이거--- 술인데--- 우리 형님이 와서 마시다 남은건데---진정제로는 술이제일이라면서요?
조금만 드시죠?
[소희] (술병을 받으면서) 어차피 선생님은 저를 천한 여자(女子)라고 생각하실 테니까 술도 사양도
않하겠어요. 탱크 같은 깡패한테 속은 여자 니까요. 그렇지만 실컷 취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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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저도 탱크한테 빌려 준 커피 한 통하고 설탕을 아직 못 받았는데.
[소희] 그럼 선생님도 저 처럼 미련하군요.
[상범] 글쎄 --- 얼마전 까지는 그랬지만, 이젠 저의 인생관은 달라졌읍니다. (소희는 병째 들고
나팔술을 마신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상범은 슬며시 의자에 앉는다. 술을 마시기가 무섭게 기침을
요란하게 한다. 소희가.상범 근심이 되어 다시 일어난다.) 저--- 미스현--- 괜챦읍니까?
[소희] --- 이 등--- 이 등을 좀 두들겨 주세요.
[상범] 등이요? (상범은 한 손으로 소희를 안고서 그녀의 등을 두들긴다) 좀 괜찮읍니까?
[서희] 아아 답답해. 좀 안아줘요. 몸이자꾸 떨려요. 꼭 안아줘요.
[상범] 이렇게요?
[소희] 네. 아이 미안해요. 몸이 추워져요. 좀안아줘요. 꼭꼭--- 아 그 개새끼땜에.
[상범] 네? 네---
[소희] 잠간만 --- (다시 술을 마신다)
[상범] 아하 너무 마시면 나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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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어차피 버린 목인데---실컷 취해나 보겠어요. 아이 답답해. 남자란 다 마찬가지에요.
[상범] 미안합니다.
[소희] 선생님만 제외하고선요 (고개를 들고) 왜 이렇게 저를 친절히 대해 주시죠?
[상범] 저의 경험으로 여자에겐 적극적으로 친절하기로 했읍니다.
[서희] 몸이 떨려요. 안아 주세요.
[상범] ---네. 이렇게요?
[소희] 네 그렇게요. 아이 답답해.
[상범] 이번엔 답답합니까?
[소희] 이걸 좀 풀어줘요.
[상범] 이거요? (상범의 손이 서툴게 소희의 등으로 갈때 방의 조명이 어둬워진다. 이어 경쾌한
음악(音樂)과 더불어 다시 불이 껴지며 두부장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아침이다. 옆방에서 상범이 잠자를
들고나와 쓰레기통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서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본다. 명랑한 표정을 한 소희가
커피를 들고 나와 상범에게주고 그의 볼에 키스를 하고 다시 안방으로 사뿐히 날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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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커피를 마시고나서, 관객에게) 생전 여자가 끓여주는 커피는 처음 마셔 보았읍니다.
(일어서서) 저는 어젯밤 현 소희와 동침했읍니다. 찬스는 잡아야 합니다. 자리를 양보하느니 보다는 그
자리에 앉아야죠. (쓰레기 통을 가리키며) 덕분에 매일 밤 이불속에 들어 가서 보던 저 잡지가 이젠
소용이 없게 됐읍니다. 꿈에서나 겨우보던 미인이 불과 몇분만에 제 것이 됐읍니다. 현 소희는 저의
커피와 설탕 대신에 탱크가 남기고 간 분에 넘치는 선물인지도 모르죠. 이 방은 꽃밭이 됐읍니다.
뿐만인가요? 사장은 동남아경제 시찰단에 끼여 이틀전에 김포공항을 떠났읍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윗사람이 없읍니다. 만족과 해방감 속에서 27년만에 처음 즐거운 생활(生活)을 하고 있는 셈이죠.
(소희가 옆 방에서 나온다. 소희의 손을 잡고서 마치 춤이나 추듯 방안을 돌아다니며 중얼거린다. 아!
인생! 나의 사랑! 나의장미! 꿈! 행복(幸福) (소희가 상범의 손을놓고 미소를 던지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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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하루가 어떻게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저의 수입도 늘고, 재산도 늘었읍니다.
(케비넷에서 카메라와 망원경을 꺼낸다) 카메라도 샀고---망원경도 생겼읍니다. 어떤 토요일, 우리는
멀리 우이동으로 놀러갔읍니다. (소희가 코트를 걸치고 나와 상범의 팔을낀다. 두 사람은 서서히 무대
앞으로 나온다. 상범은 색 안경을 끼고 망원경과 카메라를 멘체 걸어 나온다. 방안의 불이 어둬워지자
무대전면중앙이 밝아지며, 새소리와 더불어 전원의 풍경을 상징하는 음악(音樂)이 들린다.
[소희] (상범의 팔을 끼고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예요. 진짜 행복이란것이 이런 건가 봐요.
[상범] 글쎄--- 오래간만에 교외로 나오는 기분도 괜챦은데. (망원경을 쥐고들여다 본다) 밤나무에
오르내리는 다람쥐도 보이는데--- 저런 ---박 전무가---아니 미스성이--- 우리 사장(社長)의 며느리.
아니 비서말이야. 박전무하고 미스 성이 망월각호텔二(이)층 테라스에 나와 앉아 있는데---맥주를
마시고---박전무가 미스 성의 허리를 껴안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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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사람들인걸.
[상범] 사람?
[소희] 사람들이란 다 같은거지 뭐.
[상범] 그렇지만 우리 박 전무는 애가 다섯에--- 물론 부인도 있고---
[소희] 남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예요?
[상범] 그렇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중요(中要)한 문제야.
[소희] 우리도 호텔로 돌아가요.
[상범] 먼저 돌아가. 나 저 망월각 호텔에 좀 갔다올께.
[소희] 뭣 때문에요?
[상범] 내 곧 갈테니까 우선 요 밑에까지는같이 가기로 하고. (두 사람은 무대좌측으로 나간다. 이어
전무실에 조명이 던져진다. 성 아미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잠시후 사장실의 문이 열리며
상범이 엽총을 들고나와 손질을 시작한다)
[아미] 또 엽총이군요?
[상범] 자꾸 닦으면 정이듭니다--- 저 사장님한테 무슨 소식이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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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지금 싱가폴에 계세요.
[상범] --- 성 비서님은 싱가폴에 가 보셨던가요?
[아미] 그쪽엔 아직 못 갔어요. 미국엔 한 이년있다가---
[상범] 아. 그럼 돌아가신 그분 하고는 미국에 계실때
[아미] 그래요.
[상범] 아 참!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며) 이 계산서 말입니다.
[아미] 그게 무슨 계산서인데요?
[상범] 일전에--- 그러니까 사장님이 떠나시기 이틀전---3인치 직경의 강철을
계약하시던날---반도호텔에서요. 성비서님은 그때 미국 사람하고 우리 사장님이 밤에 쓰신돈이---선물
값도 합쳐서말입니다. 합계 십이만삼천 원 이라고 하셨죠? 십이만삼천원입니다.
[아미] 그래요---
[상범] 그래서 제가 그 돈을 드리지 않았읍니까?
[아미] 그래서요?
[상범] 그렇지만 제가 그 호텔.그리고 상점에 다니면서 다시 영수증을 떼었더니 합계 육만이천원이
나왔읍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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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만이천원이 성 비서님한테 더 간폭이 되는데---
[아미] --- 그건---그건---내가 그 미국인한테 --- 사장님을 대신해서 물건을 또 하나 사서
선사했어요.
[상범] (일부러 억양을 높여) 아--- 그렇읍니까? 알겠읍니다. 일전에 성 비서님이 청구하시는
금액하고 영수증하고 꼭 같았었는데--- 혹시나 하고요---(잠시 어색한 사이가흐른다) 저--- 우리 박
전무님도 미국에서공부하셨죠?
[아미] --- 그렇다는군요.
[상범] 박 전무님이 지금---마흔 여섯이니까---퍽 오래전이시겠군요.
[아미] 무엇이 오래라고요?
[상범] 박전무가 미국에서 공부하신 때가 말입니다.
[아미] 글쎄요.
[상범] 성 비서님은 지금 스물 일곱이시니까---
[아미] 여자의 나이를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거 아닙니다.
[상범] 그런 뜻이 아니고---하옇든 박 전무님 하고는 한 20년 차이군요.
[아미] 글쎄---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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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박 전무님하고 저하고도 20년 차이고요.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상범은 한손에 총을 쥔채
수화기를 든다) 아. 여보세요 네? 아 박전무님이세요? 네. 경리과장입니다. 네? 네? 그렇읍니다.
우이동에 있는 망월각 호텔에 2만원을 물어주었읍니다. 망월각 호텔에서 전화(電話0가 왔던대요. 누군지
모르겠읍니다.그래서 제가 직접(直接)나가서 계산서를 보고 2만원 냈읍니다. 네? 여기 계산서를 가지고
있읍니다. 네? 사장님이 가끔 가족동반 하시고 그 호텔에 가셔서 휴양을 하신다고 했읍니다. 네.
다음부터 전무님께 말씀드리고 물도록 하겠읍니다. 네. 안녕히계십시요. (전화(電話) 새파랗게 질려있는
아미가 다시책을 보는 척 한다) 박 전무님은 참 가족적이야 틈만 있으면 가족을 데리고 교회로 나가서
휴양하시나봐요. 아따! 이거 기름이 떨어졌네. 사장실에 들어가 할까? --- 임시--- 한 五(오)분 동안
임시 사장이나 해볼까. 하핫 ---(상범은 총을 쥐고 여기저기 겨누어 보다가 슬쩍 아미도 겨누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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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가 놀란다. 상범은 사장실로 들어간다. 아미가 일어나 수화기를 들고 돌린다.)
[아미] 저예요. 급히 좀 만나요. 저 그리로 갈께요. 네? 글쎄 그 호텔주인(主人) 못쓰겠어요. 네.
(수화기를 놓고 아미는 방을 왔다 갔다한다. 이어 핸드백을 쥐고 사장실(社長室)의 문을연다.) 김 과장
저 치과에좀 갔다 오겠어요.
(사장실에서 나오는 상범의 손에는 여전히 엽총이 붙어있다)
[상범] 치과에요? 네 갔다 오십시요. (아미가 뾰르퉁한 표정으로 나간다.) (관객에게) 박 전무와 성
아미의 꼬리를 붙들었읍니다. 저하고는 전혀 바탕이 다른 잘란 사람들입니다.만. 꼬리를 잡히면 저렇게
당황합니다. 망월각 호텔에서 돈을 청해온 일이 없읍니다. 제가 갖다 주었읍니다. 가만 --- 저에게 또
한가지 욕심이생겼읍니다. 이 나이에 회사의 역사상 제일 빨리 경리과장(經理課長) 자리에 앉았지만
좀더 높은 자리에 기어 올라가고 싶어졌읍니다. 휴지 조각과 교회에서의 인연. 그리고 배 영민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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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으로 딴 이 자리에 만족할 것 없이 박 전무와 성 아미라는 큼직한 미끼를 낚시대에 딱 껴놓고
출세(出世)라는 탐스러운 금붕어를 나꾸어 내는 겁니다. 정상적인 인생(人生)의 코오스를 가다가는
우리같이 평범한 족속들은 출세(出世)의 문턱에도 못 갈겁니다. 세 상식(常識)을 따라야 겠읍니다. (무대
전면에 나서며) 출세에 골몰하고 있노라니 벌써 두 달이 지났읍니다. 그런데 내가 바같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중에 저의 안 일에 큰 변동이 생겼읍니다. 어떤날 자녁, 나의 보금자리요 사랑하고있는
아파트에 돌아갔더니---
(상범이 무대앞을 걸어 자기(自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방안의 불을 킨다. 십자가 밑에서 서로
껴안은채 딩굴고 있는 현 소희와 탱크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니---이게---?
(부시시 일어나는 두 사람은 지극히 취해 있다. 티 테이블에 있는 술병이며 글라스가 굴러있다.)
[소희] 아--- 돌아왔구려.
[탱크] 아--- 김형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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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는 일어서면 넥타이를 다시 메며 상범에게 악수를 청한다. 상범은 악수를 거절한다)
[상범] 당장 나가! 개 같은 것들!
[소희] 그러지말고 한 잔 드세요. (상범은 홧김에 소희의 뺨을 후려 갈기려고한다. 그러나 탱크의 손이
그의 팔을 잡는다.)
[탱크] 약한 여자한테 폭력을 쓰면 되나요?
[상범] 이 도둑놈같은게! 넌 뭐냐!
[탱크] 내가 도둑놈? 이것 참. 누가 도둑놈인지 모르겠어. 내가 없는 사이에 내 아내를 훔쳐낸 놈은
누구지?
[상범] 너의 아내?
[소희] 그래요. 저의 실질적인 남편은 탱크예요. 법적인 남편은 당신이지만.
[상범] 내가 너의 법적(法的)인 남편? (소희가 일어서서 핸드백을 열어 봉투를 꺼내 그 안에서
종이조각을 뽑아쥔다)
[소희] 이거 보세요. 당신과 나와 결혼했다는 혼인신고서의 사본이예요.
[상범] 혼인신고? 내가 언제?---
[소희] 당신이 바쁠것 같아서 대신 제가 신고(申告)를 했죠. 일주일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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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난 너하고 결혼한 적이 없다.
[탱크] 결혼식이 문젠가? 신고(申告)하면 부부지. 내가 증인이지.
[상범] 너 같은 악당이 증인?
[소희] 하얗든 걱정 마세요. 법적이 없는 남편이 없는 틈을타서 정부하고 간통하다 들켰으니
이혼감이지요? 이혼을 요구하면 당장 이혼동의서에 도장을 찍겠어요. 여기 이혼동의서도 있어요.
(핸드백에서 종이를 또 꺼낸다.)
[탱크] 앞으로 어떻게 하겠소?
[상범] 흥! 물론 이혼이지. 나도 모르게 혼인신고를 했다.! 핫! 악당들!
[소희] 그렇지만 --- 이혼하는데 조건이 있어요.
[상범] 조건?
[소희] 그래요. 위자료 50만원을 요구해요.
[상범] 이 날강도! 갈보! 5(五)십만원?
[소희] 그럼 할수 없어요. 저는 여기 눌러앉아있겠어요.
[탱크] 아아. 그렇게 감정이 앞서면 못써. 다 큰사람들끼리---뭐 50만원이면 많지도 않을텐데---
[상범] 단돈 5원도 못내겠다. 이 갈보가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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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먹을 밥값을 도로 받아도 시원치 않아?
[소희] 흥! 나 같은 여자를 밤새끼고 자려면 최소한 하루에 2천원 들게 아니요? 난 3개월동안 한푼도
못받았어. 또 나같은---
[탱크] 그렇지 소희 같은 미인(美人)을.
[소희] 나 같은미인(美人)을 석달이상 부려먹었고--- 또---낮에는 꼼짝못하고 집을 지켰고---
50만원이 많은것은 아닌데---당신은 경리과장이 아니요? 하루에도 몇 백만원씩 주무르면서 그까짓
五(오)십만원이 문제가돼요?
[탱크] 여보. 김형! 미스 현은 가끔 신경질도 부려요. 혹시 미스 현이 당신의 사장에게 3개월 동안에
일어났던 사실을 얘기하면 어떻게 할 작정이요?
[소희] 교회에 나가는 교인? 총각 잘 생각해서 50만원을 내 놔요. 이틀 동안 여유를 드리겠어요.
그떠까지 소식이 없으면 회사에 찾아가 사장한테 얘기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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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관객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죠? 저 악당들의 상식이 무섭읍니다. 저는 그대로
뛰어나와 거리에 나섰읍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읍니다. 하룻밤을 회사 사무실에서 잘수밖에 없었죠.
(상범이 무대를 가로질러 사무실로 간다. 사무실에서 남자의 웃는소리가 들린다. 비스듬히 문을 열고
들여다 본 상범은 깜짝놀라 문을 닫는다) 지금 이 시간에 박 전무하고 성 아미가 사장실 쇼파에
앉아있어요,. 물론 그대로 앉아 있는것은 아닙니다. 저의 아파트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저는 결국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손해만 보고있는 초라한 존재일까요? 언제까지 손해를
볼수없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새 상식에 따라 무슨 도리를 발견해야 겠읍니다. (전화 벨이 울린다.
몇차례 울릴때까지 그대로 내 버려둔다. 머리칼과 옷자락이 흩어진다. 성 아미가 문을 열고 나오다가
상범을 보고 깜짝 놀란다.)
[상범]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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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상범입니다. 탱크요? 개 같은놈!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줄알고---? 뭐 나 가는 곳은 뻔하다구?
그래서? 그래서? --- 몇시---? 열쇠---? 좋아. 간다. (수화기를 놓고 아미에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미] (옷자락 이며 머리를 만지고 나서) 김과장 님은 언제부터 저희를 감시하기 시작했죠?
[상범] 전 --- 무슨말씀인지---? 하던일이 남아서 밤에 해치우려고 왔을뿐인데---
[아미] 혼자서요?
[상범] (잠시 생각을 하더니) --- 아닙니다. 저의 친구하고 왔다가---
[아미] 친구하고요? 그래--- 그 친구는?---
[상범] 네---저--- 사장님 방에 성비서님이 계시는걸 보고 돌아가라고 했죠.
[아미] 그러니까 그 친구되는 사람도 저희를보았다--- 이거죠? 증인이란 말이죠?
[상범] 전 --- 무슨 말씀인지?---
[아미] 저희들에게 관해 김 과장은 무엇을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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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저는---아무것도 모릅니다. 방금친구한테 전화가 왔읍니다. 나가 봐야 겠읍니다. 저 박전무님
한테 인사도 못드리고갑니다. 문안 전해 주세요. (상범이 나간다. 아미가 팔짱을 끼고 그대로 서 있을때
사무실의 불의 꺼진다. 상범이 무대좌측에서 긴 의자를 끌고나와 무대전면에앉는다) 저는 탱크와
소희라는 악당놈들의 협박을 받고있는 몸입니다. 그 대신 저는 박전무와 성 아미를 협박하고 있읍니다.
쫓기고 쫓는 몸이 되었읍니다. 얼마 전 탱크한테 전화가 왔는데 이 파고다 공원에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좋은 해걸방법(方法) 이 있다는 겁니다. (탱크가 담배를 물고 옆에 와 앉는다.)
[탱크] 조용하군.
[상범] 자. 본론으로 들어가지.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탱크] 여자를 그렇게 대해서는안돼. 슬슬 다뤄야지.
[상범] 자네의 설교를 들으려고 나온 것은 아니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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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을 털어놔봐.
[텡크] 오늘이 23일이니까--- 오---라--- 내일은 24일이군. 그러니까 봉급전날이 아니야? 봉급날은
25일이지.
[상범] 너도 취직을 해 본일이 있나?
[탱크] 그건 상식(常識)이지---그러니까 내일 24일은 퇴사원들의 봉급을 지불하는 준비에 무척
바쁘겠군. 경리과장이니까 봉급은 25일 오후 한시부터 지급한다. 현 소희가 얘기하던데. 그러니 경리
과장하고 비서는 다른 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로나가는데도 꼬박 방에 앉아 봉급을 지불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거야. 사백이십팔만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책상위에 놓고. 사백이십팔만원이라! 큰 돈이야 내가
낮에 열두시반 정각에 자네 방에 들어가 권총이나 다름 폭발물로 위협하면 할수없이 그
사백이십팔만원은 나한테 넘어 오겠지? 이건 경리과장으로서 불가항력이야. 사장도 그렇게믿을거야.
대신 내 선심을 쓰지. 소희가 다시는 자네앞에 못 나타나도록 책임을 지겠네.
[상범] 소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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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50만원으로 소희가 떨어질 여자 같은가? 일생 괴롭힐걸. 자네 그 50만원을 구하려면 어차피
경리부정을 저지를것이 아닌가? 그건 곤란해. 차라리 볼가항력앞에서 사백이십팔만원 이라는 공금을
강탈하는 편이 나을걸. 겸해서 소희도 영 안나타난다는 보증을 받고. (탱크가 일어서서 피우던 담배를
버린다) 그럼 25일 12시 25분에 가겠네. 알아두게.
[상범] 그럼 소희가 가지고 있는 결혼신고서하고 이혼 동의서를 나한테 주겠나?
[탱크] 사백이십팔만원 을 받은 다음에.
[상범] 어디서 주겠나?
[텡크] 네 사무실에서 25일 12시 25분에 만나지. 현 소희는 이 시간부터 자네앞에 안 나타날걸. 혹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잡아떼면 돼. (탱크는 유유히 퇴장한다. 사무실이 밝아지며 돈을 사놓고
세고있는 아미를 드러낸다. 사장실에서 결재서류를 든 상범이 나온다.)
[상범] 수고하십니다. (아미는 데꾸를 않고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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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세서는 봉투에 넣는 작업을 계속한다. 상범이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본다. 사장이 나온다. 상범은
반사적으로 일어나절을한다)
[사장] 봉급이 제 시간내에 지불이 되겠지?
[상범] 네. 한시부터 틀림없이---
[사장] 나 요 맞은편 통파옥에서 윤 박사하고 점심을 먹을테니까---
[상범] 네.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읍니다. (사장이 나간다. 상범도 안절부절못한채 무대위를
왔다갔다한다.) 저--- 성 비서님 점심을 안드세요?
[아미] 점심을 먹게 됐어요?
[상범] 제가 할 테니 성 비서님은 사장님하고 같이 점심 식사를 하시죠?
[아미] 김 과장은 혼자서 이 돈을 언제 정리할 수 있어요?
[상범] --- 지금 시간이---(팔목 시계를 보고나서) 내 시계는 12시 25분인데--- 저 성비서님 의
시계는 몇시죠?
[아미] (귀챦다는듯이 자기의 시계를 힐끔보고나선) 12시 25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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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도로 책상에 마주 앉으며) 25분 ---
(모자를 깊히 눌러 쓴 탱크가 들어온다) 아미가 하던 일을 멈추고 탱크를 본다)
[아미] 저--- 누구를 찾으러---? (탱크는 데꾸 대신 권총을 쑥 내민다. 아미는 펄떡일어났다 그대로
주저 앉아 기절을 한다.)
[탱크] 저 방엔---? (상범이 머리를 흔든다)
[탱크] 자 이 가방에 집어 넣어.
[상범] 흥. 그 시간에 꼭 왔군!
[탱크] 신사는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지. (상범이 책상에 쌓인 돈을 가방에 넣는다)
[상범] 자네가 신사라니 그럼 약속도 지켜야지.
[탱크] 무슨 약속?
[상범] 현 소희의 혼인 신고서 하고 이혼 증명서.
[탱크]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보이며) 이거말이지? 약속대로 그 돈을 다 받고나서 주지.
(상범이 돈을 다 넣고서탱크에게 가방을 내민다)
[상범] 자. 교환하자. (두 사람은 서로 교환한다.)
[탱크] 난---한국에 안있어.그리고--- 또 한가지 약속이 있지---(안주머니에서 여자의 양말을
꺼내며) 이것도 기념으로 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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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그럼 현 소희를 ?---
[탱크] 난 약속을 지킨다니까.
[상범] 이걸로 목을---?
[탱크] 쯔쯔! 그런 소릴? 지금쯤 천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있을거야. 수고했네. (탱크가 가방을
들고 유유히 나간다. 상범은 봉투와 긴 양말을 조각을 쥐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봉투는 안주머니에
그리고 양말은 즈봉 주머니에 쓸어넣고 자기 책상 밑에서 엽총을 들고 뛰어 나간다. 잠시후 요란한
엽총소리가 두번 터져 나온다. 엽총을 들고 다시 들어 온 상범은 소파에서 정신을 잃고있는 아미의
곁으록 가 반신을 일으켜 안아준다. 이어, 서서히 힘을 주어 포옹한다. 잠시후 사장이 허둥지둥 뛰어
들어와 두 사람을 보고 놀랜다.)
[사장] 음.음! 어디 다친덴 없나? (상범은 아미를 내려놓고 그녀의 몸을 흔든다. 아미가 눈을뜨고 펄떡
일어나 주위를 본다.)
[상범] 놀랐지요? 잡았읍니다.
[아미] 강도를?
[사장] (상범의 손을 덥썩 잡고) 이사람아. 수고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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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네! 사원들이 뛰어와 강도가 들었다 하기에---얼마나 놀랬는지. 용감해. 용감해. 이거 모두
하나님이 도우신거야
[상범] 그놈 완전히 죽었어요?
[사장] 죽었어. 죽었어! 아. 수고했어. 수고했어!
(아미가 비틀거리며 출구로 가려고 한다. 상범이 달려가 성 비서를 잡는다)
[상범] 성 비서님 괜 찮으세요?
[아미] 도적은? --- 도적은?
[사장] 잡았다니까. 죽였어.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미] 누가 잡아요?
[사장] 저기 김 과장이.
[아미] (믿을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저--- 화장실에 좀. (다시 몸이 흔들린다. 상범이 한 손엔
엽총이 든채 남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낀다. 사장은 이 모습을 보고 머리를 끄떡인다. 이윽고 아미는
상범의 몸을 밀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상범]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도적을 미연에 방지못해서
[사장] 천만에! 초 인간적이야.자. 빨리 경찰에 신고(申告)나 하자. (상범으로부터 엽총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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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적 행동이야---근데--- 성 비서하고는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됐나?
[상범] 네?--- 뭐--- 그저---
[사장] 그래 김 과장은 성 비서를 좋아하겠지?
[상범] 그거야. 물론---
[사장] 성 비서도 물론 김과장은---?
[상범] 글쎄---
[사장] 알겠어! 알겠어! 이해 할 수 있지. 자네는 성실하니까. 나도 성 비서를 언제까지 며느리라고
붙들어 둘수는 없지. 죽은 내 아들도 오히려 성 비서가 재혼 하기를 원할 거야. 이해할수있어! ---
하옇든 회사를 위해. 큰 수고했어.
[상범] (관객쪽으로 걸어나오며) 일이 오히려 잘 되어나가니 정신이 아찔합니다. 뿐인가요? 다음날
사장은 전 사원을 집합시켜 놓고 저를 한 바탕 칭찬하고 나서는 상금으로 50만원을 주었읍니다.
사백이십팔만원을 지켰다고 해서요. 뿐인가요? 저는 이 대제철 회사의 상무로 취임했읍니다. 서울시내의
신문이 저에 관한 기사로 가득찼읍니다. 저는 회사의 그리고 서울 시민(市民)의 영웅이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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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회사(會社)의 장사도 잘 돼니다. 여기저기 물품 주문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읍니다. 확실히
탱크는 실패했읍니다. 자기(自記)가 현 소희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사실을 알렸기 때문에 실패했읍니다.
현 소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눈치 채자 저의 새 常識(상직)이 발동했읍니다. 결국 두 사람을 죽였는데도
마음에 불안(不安)이 하나도 없읍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다음 일요일에 예배당에 가서 억지로 속죄
비슷한 기도를 올릴까(?) 했는데도 영 그런 기분의 근처에도 갈수가 없었읍니다. 이런 일이 있은후 며칠
있다가 저는 성아미를 저의 호텔로 불렀읍니다. 저한테 꼬리를 잡힌 가련한 인형은 꼼짝도 못하고 저의
방에 나타났읍니다. (성 아미가 무대 좌측에서 나와 무대전면을 통(通)해 아파트의 방문 앞까지 와 선다
분명 노하고 있는 모양이다. 잠시후 할수없다는 듯이 노크를 한다)
[상범] (일어서며)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아미는 그대로 서 있다.) 어서 들어오세요. (아미는 말없이
들어와 선다) 여기 앉으세요.
[아미] 괜찮아요. 어서 말씀해 보세요. 저는 시간이 바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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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그래도 좀 앉으셔야지---
[아미] 저 5(五)분만 있다가 가겠읍니다. (아미가 앉는다)
[상범] 왜 그렇게 바빠요? 박 전무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미는 대꾸를 않는다) 커피를
드릴까요?
[아미] 그 중대한 얘기나 빨리 하세요?
[상범] 그럽시다.
[아미] 어서하세요. 요새 김 과장은---
[상범] 아. 김 상무 입니다.
[아미] 요새 김 상무는 천당에서 사는것 같겠죠. 신문에도 크게나고 그 나이에 출세를 하고--- 상금을
50만원이나 받고---
[상범] 말씀 감사합니다. 그걸로 좋은엽총이나 살까합니다.
[아미] 어서 그 중대하다는 얘길 하세요.
[상범] 그럽시다. 성아미씨는 미국에가서 공부하신 학식있는 분입니다.
[아미] 그래서요?
[상범] 퍽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아미] 고맙군요,
[상범] 누구보다도 똑똑한 분입니다.
[아미] 아니 도대체 이분이---
[상범] 잠깐. 그리고 박 전무님 하고 굉장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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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읍니다. 부인이 있고 애까지 있는 남자(男子)와 말입니다. 저는 두분이 호텔에서 동침하고 있는
광경도 보았읍니다.
[아미] 거짓말이예요!
[상범] 그럼 그 광경을 몰래 찍은 사진을 보여 드릴까요? 통신사(士)를 시켜 조사한 (고) 서류하고
사진이 얼마든지 있읍니다. 남편이 죽은지 8(八)개월도 못돼서 탈서하기 시작했읍니다. 제가 이
세상(世上) 어서 사라져도 성 비서님과 박 전무님의 그런 관계를 실증할 만한 사람이 또 한분 있읍니다.
저의 친구죠. 그러니까 저를 저세상에 보낼 생각은 아예 마십시요. 또 한가지 말씀 드리죠.
회사(會社)돈이 굉장히 그 핸드백속으로 들어갔읍니다. 시아버님의 돈이니까 마구 쓰는가요? 쉽게
말하면 돈을 훔친거예요.
[아미]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겠어요. 그래 김 과장은 --- 아니. 김 상무는 얼마를 요구하죠? 금액을
말하세요.
[상범] 글쎄--- 당신의 죽은 남편---그러니까 사장님의 아들은 자기(自記)앞으로 있던 재산을 죽기
며칠전 사장(社長)에게 일임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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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펄떡 일어서며) 그건 어떻게 알아요?
[상범] 사장님의 변호사의 사무실(事務室)에서 내 몇 차례 심부름을 갔읍니다. 뿐인가요. 저는 그 보다
더 큰 사실도 압니다. 성 비서가 재혼 할 경우. 사장님이 성비서의 남편이 될 남자의 인격(人格)과
능력을 인정하면 그재산은 다시 성 비서와 재혼할 남자(男子)앞으로 돌아옵니다. 죽은 성비서의 남편은
죽은 예수님보다 더 인자했던분입니다.
[아미] 당신같은 악당 하고는 달라요?
[상범] 당신같은 간부에게는 아까왔지.
[아미] 도대체 저를 여기에 끌고 와서 어떻게하겠다는 말이요?
[상범] 성 비서와 결혼하고 싶읍니다.
[아미] 아니---뭐요?
[상범] 성 아미와 결혼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아미] 당신같은 ---? 아이. 어이가 없어!
[상범] 어이가 없어요? 그것이 인생(人生)입니다. 결혼은 하지만 --- 저도 죽은 성 아미씨의 남편못지
않게 관대한 남편이 될 생각입니다. 당신한테 딸린 가족 여섯을 그대로 살릴 수 있겠다. 동생들이
마음놓고 대학(大學)까지 갈수 있겠다. 재산이 쏟아져(풀어) 들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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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은퇴 하시면 자연 새 사장의 아내가 될것이고---
[아미] 아니? 뭐요?
[상범] 제가 사장이 될께 뻔한 일이 아닙니까? 하옇든 --- 저하고 결혼하면 사장님의 신임도
받을것이고---
[아미] ---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 작정이죠?
[상범] 거절이요? 성 아미씨 같은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이 기막힌 조건을 거절해요? 저도
성아미씨하고 가끔 동침하고 싶거든요. 예쁘고---
[아미] 듣기 싫어요! (아미는 분연이 일어서서 문간으로간다)
[상범] 잘 생각하세요. 싫으면 그대로 나가시고--- 응하신다면 다시 여기 앉으세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의자에 앉는다. 불이 점점 어둬워질때 상범은 무대정면으로 나와 관객을 대한다)
[상범] 그래서 저는 그날밤 성 아미와 동침했읍니다. 현 소희와 첫날밤을 지내던 때하고는 달리
감격도 흥분도 없었읍니다. 있는것은 무섭게 느껴지는 정복감. 승리감 뿐이었읍니다. 얼마있다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떤날. 저는 성 아미와 결혼식을 올렸읍니다. 가까운 사람만 몇분 불렀죠. (사장, 상학,
배영민, 문여사, 용자, 그리고 아미가 손에 글라스를 들고 나와 즐거운 표정으로 얼굴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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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우리는 박 전무도 초청했읍니다. 그러나 아침부터 심한설사를 해서 몸이 불편 하다나요?
[사장] 자 몇시 비행기로 떠난다고 했지?
[상범] 두시 반 이요.
[사장] 그럼 빨리 가 봐야겠군. 알겠나. 호텔 뒷산이야. 야산인데 노루 사냥으론 그만이야.
신혼여행이라고 해서 방안에만 묻혀있지말고 사냥을 잊지 말게. 돌아올때는 노루나 토끼를 한 서넛마리
가지고 오게. (배과장에게) 나 자네에게 특별선물을 하나 하려고.
[상범] 이미 주신 선물도 태산같은데---(배영민이 엽총을 하나 들고 들어온다)
[배영민] 김 상무님 축하합니다. 헤 헤---
[사장] 이거야. 이거! 벨기에서 만든 진짜 연발총이야! 신혼여행 선물로는 그만이야. 이걸로 신부도
보호하고---짐승도 잡고---
[상범] 감사합니다. (상범이 총을 받을때 상출이 뛰어 들어온다)
[상출] 형! 형!
[상범] 상출이구나.
[상출] 늦어서 미안해. 나 됐어! 됐어!
[상학] 뭘? 아. 시험에 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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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출] 그래 합격(合格)했어! 합격(合格)!
[사장] 자. 시간도 없는데---우린 형제만 남기고 먼저 나가 밑에서 기다릴까? 할말도 많을텐데. (세
형제만 남기고 모두나간다)
[아미] 그럼--- (아미도 나간다)
[상범] 수고 했구나!
[상출] 3년만이야 3년---
[상학] 아뭏든 반갑다 나도 합격(合格)했단다.
[상범] 형님도요?
[상학] 나 대학선생(先生)집워 치웠다.
[상범] 언제요?
[상학] 장가까지 갔는데 가정도 돌봐야지 대학(大學)에 있어 가지곤 밥도 못 먹겠어. 특히 로켓트나
주무르고 있으면 말이야. 그래서 국민학교선생(國民學校先生)이 됐다.
[상출] 국민학교선생(國民學校先生)이요?
[상학] 그렇지만 사립국민학교 선생말이다. 내가 받던 봉급에 배는 주더라. 참 세월도! 국민학교선생
벌이가 대학선생 벌이보다 낫다니! 옛날 사범 학교를 나온 덕분에. 교장이 내 친구야. 자기(自記)에
알맞는 자리로 가는 것이 중요(中要)해 오히려 요즈음은 편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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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글쎄요.
[상학] 자. 늦겠다 가 봐라.
[상출] 아버지는 안 오신데. 형이 처녀도 아닌 여자하고 결혼한다고.
[상범] (상학이 상출이 나가자) (관객에게) 저의 동생 상출이 행정계통의 밑바닥 일을 맡아볼 견습
직원이 되었읍니다. 3년 동안에 걸친 피와 땀의 결실(結實)입니다. 상식세계의 관문을 겨우 통과한
격인데 물론 장래는 막연합니다. 그러나 본인은 퍽 행복(幸福)을 느끼고 있는것 같읍니다. 반면 형님은
위에서 스스로 떨어져 사립국민학교의 선생이 되었읍니다. 그래도 행복(幸福)을 느끼고 가정을
꾸며나가는데 의욕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는---? 돈과 지위와--이런 모든것에 불만이 없는
제철회사의 거물이 되었읍니다. 앞으로--- 글쎄--- 저의 앞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미가 의자를
두개들고 나와 무대 전면에 나란해 묻는다. 상범은 아미와 앉는다) 강원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신혼부부는 할말이 없었읍니다. 그저 무안한 허공을 향해 한 없이 날아가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읍니다. 비행기가 땅에 닿기전 아미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읍니다.
[아미] 여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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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얼굴색이 좋지 않은데--- 어디 편치 않아?
[아미] 아뇨. 저---임신했어.
[상범] 임신? 그럼 어린애를?
[아미] 그래요.
[상범]--- 몸 조심 해야겠군.
[아미] 벌써 다 왔군요.(아미는 의자에 붙은 상상(想像)의 벨트를 맨다.. 상범은 그대로 멍청하게
앉아있다)
[상범] 저의 마음은 어지러웠읍니다. 아미의 배안에서 새 생명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호텔에
들어가서도 저의 마음은 평정을 찾을수 없었읍니다. (아미가 일어서서 나간다.) 아미의 몸에서 태어날
새 생명! 어떻게 해야좋을지--- 그애가 나의 것일리는 만무합니다. 하옇든 누구의 것이건 법적으로는
나의 애가 되어서 태어날것입니다. 내것도 아닌 아들이. 혹은 딸이 빽 소리를 지르며 떨어질때 나의
표정은 어떠할지--- 내얼굴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멀리 박 전무의 품으로 달려 갈 아미의 표정은
어떠할지--- 늑대와 여우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 난 그 강아지를 늑대로 믿어야 합니다. 나를 꼭
닮은 강아지라고 믿어야 합니다. 진짜 부모인 숫놈의 여우와 암놈의 여우가 멀리서 우리의 모습을
[페잊] 088
지켜보며 냉소를 던지는동안 우리는 서로닮았다고 좋아해야 합니다. 저는 저쪽 의자에 앉아있기가
고통스러워 이쪽 의자로 옮겼읍니다. 소위 새 상식(常識)이라는 바람을 타고--- 그러나 결국 ---
위치만 달랐지. 만찬가지 입니다. 불안(不安)과 근심이 뒤따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인지 땀을 뻘
뻘 흘리면서 흥분속에서 일을 하게될 동생 상출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린애들하고 노래를 하며 웃고
있을 형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직도---사회를 모르는 그들--- 글쎄 너무나 잘 알아서 그럴까? 다음
날 밤. 이 산골로 정배온 배영민이 찾아왔읍니다. (꽃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온다)
[배영민] 안녕하셨읍니까? 김 상무님. 이거 밤에찾아와서--- 사모님은 어디 계시죠?
[상범] 목욕탕에 들어가 있겠지? 그 꽃은 나한테 줄거요? 내 사랑하는 아내한테 줄거요?
[배영민] 이거요? 그거야 물론 두분한테 다 --- 근데 이 호텔을 어떻읍니까? 조용합니까? (상범으로
부터 반응이 없다) 분위기가 퍽 로맨틱합니다.
[상범] 감상적이죠.
[배영민] 그거 좋은 표현입니다. 분위기가 퍽 감상적입니다.
[페이지] 089
[상범] 아니지. 희극적이지.
[배영민] --- 그렇죠. 희극저기죠.
[상범] 글쎄--- 로맨틱하다는 표현이 좋을것 같군.
[배영민] 그렇군요. 로맨틱합니다.
[상범] 아니야. 암만해도 인상적이라는 표현이 맞을것같아요.
[배영민] 아---인상적인 분위기가! 그거 좋은 표현입니다. 참 문학적입니다. 이 산골에 와 있으니까
제대로 독서도 할수 없고해서 --- 본래 문학(文學)을 사랑하지만--- 이 산골에 온 뒤로는 책을
읽을수가 없어서---
[상범] 산에 오르면 독서하기가 더 좋을텐데---
[배영민] 저는 생리상---그리고 가족형편상 암만해도 서울에서 근무하는것이---(이때 욕실에서
아미가 나온다. 배영민이 당황한다.) 저. 이 꽃가지고 왔읍니다. 축하합니다. (꽃을들고 망설이다가
상범에게 떠 맡긴다.) 저는 밑에 다방에서 기다리겠읍니다. (배영민이 나가버린다)
[아미] 저 배씨가 언제 왔어요? 그리고 뭣을 축하 한대요?
[상범] 글쎄---아마 당신 몸 안에있는 애기한테 하는 말이겠지.
[아미] 흥! 당신도 무던히 애를 사랑하시는군요.
[상범] 사랑의 결실인데! 그 까운 바람으로 있으니까 퍽 예쁘군.
[아미] 감사해요.
[상범] 그거 이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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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무엇이요?
[상범] 글쎄 여자는 옷을 입는것보다 벗은것이 더 예쁘니.
[아미] 위대(偉大)한 발견(發見)이군요. (이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받아 보세요)
[상범] 아랫층 다방에서 서울의 거리를 상상하고 있는 배영민의 호출이겠지 (상범이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서울서 온 장거리 전화요? 누굴---? 성아미씨요? 잠간기다리세요. 서울에서 장거리 저화가
왔군. (수화기를 넘긴다)
[아미] 여보세요? 네? 바꿔주세요---아 (상범의 얼굴을 힐끗본다) 네. 잘있어요. 안녕하셨어요?
걱정마세요---지금 서울도 추워요? 네. 괜챦아요. 참아나가는거죠. 뭐. 몸조심하세요. 서울 올라가서
뵙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아쉬운듯 수화기를 끊는다) 어머니 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상범] 아. 어머니한테? 어디 사위도 잘 있느냐구 물어요? 어머니 기력도 좋으셔. 나이 70에 장거리
전화를 다 거시니 당신도 소리를 그렇게 크게 내야 하는 장거리 전화를 70노인이--- 왜 좀더 길게
통화하지 않고--- 우리가 돈 때문에 걱정할 신세는 아닌데
[아미] 저 옷좀 갈아 입고 나 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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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상범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있다. 배영민이 다시들어온다)
[배영민] (손에 든 쪽지를 내밀며) 김 상무님. 제 정신좀 보세요. 본사에서 전보가 왔읍니다. 김상무님
앞으로. 깜빡 잊었었죠.
[상범] 무슨 전보인데?---
[배영민] 내일 저녁 5시에 부산으로 오시랍니다.
[상범] 부산으로?
[배영민] 동래 태종 호텔로요. 사장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대신 김 상무님이 부산에 가셔서
제3제철공장 건설에 관한 문서에 계약을 하시랍니다.
[상범] 내 신혼여행은 일주일 예정인데---
[배영민] 아 부산서 신혼여행을 계속 하시죠. 뭐.
[상범] 자. 우리 아랫층 바에 내려가 술이나 합시다. 내가 한턱내지
[배영민] 김 상무님은 술을 전혀 못하실텐데---
[상범] 이제부터 배우는거지. 술을 마시면서 배과장의 서울지점 전직 문제도 얘기 합시다.
[배영민] 네! 감사합니다.
[상범] 내가 할수있는건---술이나 마셔서---그럼 먼저 내려가요. (배영민이 먼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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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여보! 아미! 아미! (거의절규에 가까운 소리로) 성 아미! (성 아미가 옷을 반쯤 걸친채 놀라서
뛰어나온다)
[아미] 아니 무슨 일이예요? 이름을 마구 불러대면서---?
[상범] 보고 싶어서. 그대 행복(幸福)하오?
[아미] 네?
[상범] 흥! 나 내일 사장님 명령으로 부산으로 가게 됐는데---배과장 앞으로 전보가 왔어. 곧
부산으로 오라고. 그래. 당신은---?
[아미] 저요? --- 글쎄 --- 몸도 불편하고---
[상범] 그럼 먼저 서울로 돌아가 있겠소?
[아미] 그게 좋을것 같아요. 부산엔 며칠 동안이나 계시죠?
[상범] 글쎄. 며칠이나 있으면 좋겠소?
[아미] 그거야 내가 어떻게?
[상범] 내가 부산에 내려가 장거리 전화로 연락을 하지. 예쁘군.
[아미] 싱겁게.
[상범] (아미를 안으며) 우리 애는 언제?
[아미] 내년 8(八)월에 낳을 거예요.
[상범] 우리 애 참 예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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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의 결실인데. 난 행복(幸福)해! 돈도있고 지위도 있고. 예쁜 아내고 있고. 애도 생길것이고.
[아미] 흥! --- 아니 당신 눈물을---남자가 실없이 눈물을 흘려요?
[상범] 행복해서 그래! 행복해서! 자 나는 밑에 내려가서 배과장하고 술이나 좀 마실 생각인데. 당신도
내려 오겠소?
[아미] 저는 --- 몸도 그렇고---
[상범] 그럼 쉬어. 나는 오늘부터 술을 배울 작정이니까. 당신은 서울에 장거리 전화나 걸지.
[아미]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상범] 아 신혼여행의 계획이 바뀌었으니까 걸어야지 당신도 곧 서울로 가야하니. 우리의 보금자리를
잘 정리하도록 연락해.
[아미] 그렇게 하죠. (상범이 나간다. 잠시후 아미는 전화통을 든다) 여보세요. 서울 부탁합니다.
70국에 3838. 박 호필씨요. 빨리요. (전화통을 내려 놀때 주무대의 불이 꺼지며 이어 스포트라이트가
던져지고 의자에 앉아 있는 상범을 나타낸다. 손에는 엽총을 쥐고 있다. 기차소리. 이어 심한 눈보라
치는 소리도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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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범] 기차를 몇 차례 갈아타고 저는 지금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읍니다. 밖에서는 심한 눈보라가
미친듯이 휘몰아 치고 있읍니다. 밤새 마신 술 때문에 이 머리는 깨질것 같읍니다. 이 엽총! 왜 그런지
불안(不安)합니다. 그래서 이 엽총을 들고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아내 아미는 서울로 떠났읍니다. 내가
할일은---? 까짓것 생각하면 뭣해요? 성아미 즉 나의 신부의 배에 들어있는 애가 내것일는지도 모르죠.
내년 8(八)월에 나온다는 어린애가 진짜 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억지로 해 봅니다. 아니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점을친다) 하하! 이거 앞쪽이 나타났읍니다. 내 것인지도 모르겠는데요.
믿어 보는거죠. 이런 경우 어떻게 하겠읍니다? 믿어 볼수 밖에. (태풍 소리가 더욱 요란해지며 기차는
속력을 최대한으로 내는 듯 기적의 목이 쉬어라 하고 절규 할때 서서히 Light out되면서 막(幕) 이
내린다.
-The End-
극단(劇團) 아카데미 제작부
필경:황순선
등사:노신균
75.3.29.
카페 게시글
예술/문화- 상식
지난번공연했던작품임돠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파크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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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2
01.08.2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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