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서
대전 한밭중학교 대전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충남대학교 건축공학과에 1년 다니고 집안이 어려워 못 다녔습니다.
형님의 국수틀 솜틀 방앗간을 도와주고 아버지 농사일을 도와주다가 서울 청량리 철도 부지 판자집 솜틀 하는 집을 사 이사를 왔습니다.
전기도 수도동 화장실도 없는 집입니다. 공동 수도에서 물을 기려다 먹고 석유 배급으로 등잔 불을 키고 살았음니다
청량리역에는 차가 없고 리야까 꾼 지게꾼으로 짐을 운반했습니다.
물론 서울역에도 리아카꾼 지게꾼이 짐을 날랐습니다.
솜틀을 해서 먹고 살 수가 없어서 금호동으로 이사 왔습니다.
금호동에는 평지에 만 기와집이 있고 이층집도 없고 산 3꼭대기는 반지하 움막집이 많이 있었지요.
금호동 이사 와서 국수틀 국수 만드는 장사를 햇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밀가루 배급제도가 있어 조금 형편이 나아 젖을때는잠시뿐 그래서 먹고 살길이 없어. 남의집 연탄 배달 일꾼으로 3년 일 했습니다.
3년간 저축 작은집을 월세 얻어 연탄장사와 국수 장사를 처음시작했습니다.
쉬는날 없이 363일 일을 하니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아래 집을 판다고 하여 처음 집을 10년만에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집을 산 것이 얼마나 기쁜지 매일 그 집을 보면 어떻게 할까 궁리했지요
담장을 모두 헐고 남대문시장 25 인용 군인 헌 천막을 사서 천막 점포를 만들어 한 칸은 국수 장사 한 칸은 연탄 장사를 했습니다. 연탄 불을 만들어서 시장 노점장사에게 팔았습니다 한 장 팔면 2장 값이 됩니다
동전이 많아 밀가루 푸대에 담아두었다 저울로 달아서 은행에 저금 했지요
하루에 네 시간 잠을 자고 일을 많이 했습니다.
혼자 배달할 수가 없어 일꾼을 3명 고용했지요
여름에는 연탄이 반 밖게 팔리지 않아 일꾼들 놀릴 수가 없어 무력가계 세맨트 모래 벽돌장사를 했지요
그때는 손으로 찍은 벽돌 브로구지요 시멘트 모래장사를 했음습니다.
헌 집을 사서 일꾼을 데리고 가서 수리해 월세도 놓고 팔기도 했습니다.
집 장사를 했습니다 일꾼들 일자리를 만든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