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문에서 한탄한다는 뜻으로, 궁한 나머지 어쭙잖은 벼슬자리에 나아가기는 하였으나 뜻을 얻지 못함을 한탄함을 이르는 말이다.
北 : 북녘 북(匕/3)
門 : 문 문(門/0)
之 : 갈 지(丿/3)
嘆 : 탄식할 탄(口/11)
(유의어)
북문지탄(北門之歎)
출전 :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재능을 지니고서도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 뜻을 펴지 못함을 비유한 이 성어는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편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진(東晉)의 이홍도(李充의 자)는 늘 능력이 있는 자신이 등용되지 않음에 한탄했다. 은양주(殷揚州)가 이홍도가 처지가 딱함을 알고 물었다. “그대는 백리의 작은 고을이라도 맡아 보겠는가?”
李弘度常歎不被遇。殷揚州知其家貧, 問:君能屈志百里不。
이홍도가 말했다. “ 뜻을 얻지 못함(北門之歎)을 이미 오래전에 알고 계시리라 여겨집니다. 곤궁한 원숭이가 숲으로 달아나면서 어찌 나무를 선택할 수가 있겠습니까!”
李荅曰:北門之歎, 久已上聞。窮猿奔林, 豈暇擇木。
그래서 섬현(剡縣)의 수령을 제수 받았다(遂授剡縣).
(世說新語/言語)
🔘 이충(李充)
동진(東晉) 강하(江夏; 호북성 雲夢) 사람으로 자는 홍도(弘度)다. 젊어서 형명학(刑名學)을 좋아했고, 해서(楷書)를 잘 썼다.
승상(丞相) 왕도(王導)가 불러 연(掾)으로 삼았고,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옮겼다. 부화(浮華)한 선비를 몹시 싫어했으며, 대저작랑(大著作郞)으로 옮겼다.
당시 전적(典籍)들이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는데, 그가 정리를 맡아 번다하고 중복된 것들은 제거하는 일을 했다.
영가(永嘉) 이후로 전란이 잦아지자 전적이 산일(散失)될 것을 염려하여 갑부오경(甲部五經), 을부사기(乙部史記), 병부제자(丙部諸子),정부시부(丁部詩賦) 네 부분으로 나누어 조리 있게 정리했다. 중서시랑(中書侍郞)까지 올랐다.
상서의 주(注)와 주역지(周易旨)를 지었다. 한림론(翰林論)과 학잠(學箴) 등도 지었지만 없어졌다.
(용례)
현종실록 권제18, 1장 앞쪽, 현종 11년 1월 2일(경인)
우리 나라는 토지 문서가, 병란에 거의 다 불타 없어져, 세입이 크게 감소되었는데, 여러번 기근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녹봉을 줄였다.
我國田籍, 蕩失於兵火, 歲入大縮, 累經饑饉, 輒減俸祿.
그리하여 직위가 높은 자는 북문의 탄식이 있게 되었고, 관직이 낮은 자는 벼슬의 즐거움이 없게 되었다.
位高者有北門之歎,
官卑者無代耕之樂.
사대부들 간에 청렴한 풍조가 점점 쇠퇴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으니 매우 애석하다.
士夫廉風, 職此漸衰, 可勝惜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