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영흥리 98-1번지. 도로변
포구 확장 공사로 인해 영흥리 주민들이 모여 항쟁했던 절골포구의 원래 모습은 멸실되었다.
정의 1932년 추자면 영흥리 어민들이 일본인 배에서 어로 도구와 그물을 끌어내리며 일제의 어업 정책에 항거한 곳
관련 사건 1932 사와다 그물망 사건
관련 인물 김봉수(金奉守), 박병석(朴炳碩), 이사문(李仕文), 추남수(秋南洙), 김득수(金得守), 박천석(朴千石), 원일개(元一凱), 고일주(高日柱), 원용현(元容賢), 박복순(朴福順), 고태욱(高泰旭)
관련 내용 1930년대 추자도는 어업과 상업이 일본 이주어민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었다. 일본 어민들에 의해 분기초망어업과 유자망어업이 이루어지면서 대량으로 잡힌 멸치와 삼치가 싼 값에 판매되어 버려 추자도 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왔다. 특히 어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생활하던 영흥리 어민들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받게 되자 영흥리 어민 100여 명은 절골포구(현 영흥리 마을회관 앞 공터)에 모여 유자망어업을 나가는 사와다[澤田]의 배에서 어로 도구와 그물을 끌어내리며 추자면 내수면에서의 유자망 어업금지를 외치면서 항거했다. 이 사건은 일명 '사와다 그물망 사건'으로 알려졌으며, 관련 주동자들이 검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