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사주야(不舍晝夜)
밤낮으로 멈출 때가 없다는 뜻으로, 공자가 냇물을 보고 한 말인데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의미한다.
不 : 아닐 불(一/3)
舍 : 집 사(舌/2)
晝 : 낮 주(日/7)
夜 : 밤 야(夕/5)
(유의어)
천상지탄(川上之嘆)
출전 : 논어(論語) 자한(子罕)
논어(論語) 자한(子罕) 17장은 다음과 같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가 냇가에서 말했다. “가는 세월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흘러가는구나.”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천지의 조화는 갈 것이 지나가면 올 것이 뒤를 이어 한 순간의 멈춤도 없다. 그것이 도체(道體)의 본연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켜 나타내기 쉬운 것으로써 흐르는 시냇물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를 들어서 사람에게 보인 것이다. 이는 배우는 자가 때때로 성찰하여 터럭만한 간단(間斷)도 없게 하고자 함이다.”
朱子曰; 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然其可指而易見者, 莫如川流. 故於此發以示人, 欲學者時時省察, 而無毫髮之間斷也。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이는 도의 체(體)이다. 천운(天運)은 그치지 않아서 해가 가면 달이오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며, 물은 흘러서 쉬지 않고, 물(物)은 나서 다함이 없다. 이는 모두 도와 더불어 쳬(體)가 되어 주야로 운행하여 일찍이 그침이 없음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를 본받아 장강불식(自强不息)하는 것이다(周易 乾卦 象傳).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순수하고 또 그침이 없다.(中庸 26장)”고 했다.
程子曰; 此道體也. 天運而不已, 日往則月來, 寒往則暑來, 水流而不息, 物生而不窮, 皆與道為體, 運乎晝夜, 未嘗已也. 是以君子法之, 自強不息. 及其至也, 純亦不已焉。
또 정자가 말하기를, “한(漢)나라 이래로 유자(儒者)가 이 뜻을 몰랐으니 여기에서 성인의 마음이 순수하고 또 그침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순수하고 또 그침이 없는 것이 바로 천덕(天德)이니 天德이 있어야 왕도를 말할 수 있다. 그 요체는 다만 근독(謹獨)에 있다.”고 했다.
又曰; 自漢以來, 儒者皆不識此義, 此見聖人之心, 純亦不已也. 純亦不已, 乃天德也, 有天德, 便可語王道. 其要只在謹獨。
주자가 말하기를, “내 생각에는 여기부터 종편까지는 모두 사람에게 배움에 나가 그침이 없도록 면려한 말씀이다.”고 했다.
愚按; 自此至篇終, 皆勉人進學不已之辭。(論語集注)
공자의 탄식을 천상지탄(川上之嘆)이라고 한다. 川上은 냇물 위가 아니라 냇가다. 문제는 어떤 곳을 향해 간다는 逝라는 글자다.
맹자는 “샘이 깊은 물은 퐁퐁 솟아올라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간다.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야 흘러가 바다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고 영과(盈科)의 뜻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이나 도가 무너진 시대에 대한 탄식이라고 본 사람들도 있다. 한탄 차원을 넘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경우는 “냇물이 쉬지 않고 흐르듯 그렇게 노력하라”는 천류불식(川流不息)과 같은 뜻이라 하겠다. 세월에 대한 탄식이라는 해석이 더 와 닿는다.
불사주야(不舍晝夜)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 속도감을 느낀다고 했던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나이의 중압감에 허덕인 한 해가 가고 있다. 청춘의 젊은 시절도 예외가 아니다.
잠시의 젊은 시절이 분주한 경주 속에 지나가고, 일가의 가장으로서 동분서주하다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중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큰 등짐 몇 개 내려놓고 기지개라도 한번 켜 볼라 치면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은 쾌속의 세월 앞에 서게 된다. 허무함이다.
시선(詩仙)으로 일컫는 시인 이태백은 빠른 세월에 대해 ‘봄밤 도리원연회(春夜宴桃李園序)’에서 이렇게 읊었다.
夫天地者, 萬物之逆旅也, 光陰者, 百代之過客也。
무릇 천지라는 것은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이고, 시간이라는 것은 영원한 나그네이다.
而浮生若夢, 為歡幾何?
이 덧없는 인생은 꿈같이 허망하니, 그 기쁨을 즐긴다 해도 얼마나 되겠는가?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
옛사람들이 촛불 들고 밤에까지 노닌 것은 참으로 이유가 있었구나.
(이하생략)
또 천보(天寶) 13년(753) 가을, 이백이 선주(지금의 안휘성 선성)에 머물 당시 감찰어사로 와 있던 이운(李雲)과 사조루(謝脁樓)에서 전별하면서 지은 시 선주사 조류전별교서숙운(宣州謝眺樓餞別校書叔雲)에서는, “나를 버리고 간 지난 세월은 머물러 있게 할 수 없고,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현재의 세월은 번민과 근심이 많도다.” 라고 아픔을 노래했다.
棄我去者, 昨日之日不可留, 亂我心者, 今日之日多煩憂。
사실 나이 들어가는 시간을 누가 어찌 피할 수 있으랴. 제대로 몇 날 살아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장년이고, 어느새 귀밑머리 희어진 세월은 육십의 재를 넘어 칠순,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늘조차 편한 마음으로 묵시해 보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공자 같은 대성인도 어느 날 강가에 서서 도도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이렇게 탄식했다.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인가, 밤낮으로 멈출 때가 없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무심히 흘러만 가는 무상한 세월의 회한을 토로했다. 하지만 세월을 탓하고 감상(感傷)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젊은이라도 꿈과 소망이 없으면 병(病)의 시간이고, 늙은이라도 꿈과 소망이 있다면 생(生)의 시간이다.
물론 동적인 열정만이 큰 힘은 아니다. “눈 내리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고 묻는 시인이 관조하는 고요의 힘도 느껴 보자. 삶의 성숙을 기할 수 있으리라.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舍(집 사/버릴 사, 벌여놓을 석)는 ❶형성문자로 捨(사)의 간자(簡字), 舎(사)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혀 설(舌; 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余(여, 사)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余(여, 사)는 여유(餘裕) 있음을, 口(위)는 건물의 모양으로 뜻이 합하여 舍(사)는 '나그네가 머무는 곳', 또 '쉬다', '내버려 두다' 따위의 뜻에도 쓴다. 또한 舍(사)는 나중에 亼(집)과 十(십), 口(구)를 합(合)한 글자, 또는 人(인)과 舌(설)을 합(合)한 모양으로 생각되었다. ❷상형문자로 舍자는 '집'이나 '가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舍자는 舌(혀 설)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舍자는 舌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지만 '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舍자의 금문을 보면 집을 받치는 토대 위에 기둥과 지붕이 얹어져 있었다. 이것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간이 쉼터를 그린 것이다. 舍자에 아직도 '휴식하다'나 '여관'이라는 뜻이 남아 있는 것도 본래는 간이 쉼터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일반적인 '집'이나 '가옥'을 뜻하고 있다. 그래서 舍(사, 석)는 ①집, 가옥(家屋) ②여관 ③버리다 ④포기하다 ⑤폐하다 ⑥내버려 두다 ⑦개의(介意)하지 않다 ⑧기부하다 ⑨희사하다 ⑩바치다 ⑪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⑫놓다 ⑬쉬다, 휴식하다 ⑭화살을 쏘다 그리고 벌여놓을 석의 경우는 ⓐ벌여놓다(석) ⓑ풀리다, 의심이 사라지다(석)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가(家), 집 궁(宮), 집 옥(屋), 집 저(邸), 집 원(院), 집 호(戶), 집 헌(軒), 집 각(閣), 집 관(館)이다. 용례로는 집의 안채와 따로 떨어져 있어 바깥 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을 사랑(舍廊), 기숙사에서 기숙생들의 생활을 감독하는 사람을 사감(舍監), 정부 고관의 개인 소유의 저택을 사관(舍館), 남에게 자기 삼촌을 일컫는 말을 사숙(舍叔), 자기의 형을 남에게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사형(舍兄), 남에게 대하여 자기 아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사제(舍弟), 집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사옥(舍屋),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을 사음(舍音), 기숙사나 숙사 따위의 규칙을 사칙(舍則), 군영의 건물을 영사(營舍), 감옥으로 쓰이는 집을 옥사(獄舍), 풍치가 아름다운 곳에 지어 놓고 거처하는 정자 모양의 집을 정사(亭舍), 나아감과 머무름을 취사(趣舍), 관청의 건물을 청사(廳舍), 곳간으로 지은 집을 고사(庫舍), 정신을 수양하는 곳을 정사(精舍), 역으로 쓰는 건물을 역사(驛舍), 가축을 기르는 건물을 축사(畜舍), 승려가 불상을 모셔 놓고 불도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을 승사(僧舍), 관리가 살도록 관청에서 지은 집을 관사(官舍), 정당의 사무소로 쓰는 건물을 당사(黨舍), 객지에서 기거하는 집이나 딴 곳에서 온 관원을 대접하여 묵게 하는 집을 객사(客舍), 사람이 사는 집을 가사(家舍), 일정한 돈을 받고 여객을 치는 집을 전사(傳舍), 외국 사신을 머물러 묵게 하는 집을 관사(館舍), 학문을 닦는 곳 또는 그 건물을 학사(學舍), 집짐승을 기르려고 지은 우리를 목사(牧舍), 앓는 사람을 수용하는 집을 병사(病舍),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타인의 선행을 본떠 행함을 일컫는 말을 사기종인(舍己從人),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뜻하는 바가 천리에 어긋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불사명(志不舍命),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해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한데서 잠을 일컫는 말을 반수발사(反首拔舍), 논밭과 집을 구하고 문의하여 산다는 뜻으로 자기 일신 상의 이익에만 마음을 쓰고 국가의 대사를 돌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구전문사(求田問舍) 등에 쓰인다.
▶️ 晝(낮 주)는 ❶회의문자로 昼(주)의 본자(本字)이다. 하루(一)종일 해가(日) 떠 있어 책을 읽을 수 있는(書) 동안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낮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晝자는 '대낮'이나 '정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晝자는 日(해 일)자와 一(한 일)자, 聿(붓 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붓'이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붓을 그린 聿자에 日자가 결합한 晝자는 글공부하기 좋은 시간대라는 의미에서 '대낮'이나 '정오'를 뜻하고 있다. 참고로 晝자는 書(글 서)자와 매우 비슷하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晝(주)는 ①낮 ②정오(正午) ③땅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밤 야(夜), 밤 소(宵)이다. 용례로는 낮과 밤을 주야(晝夜), 밤과 낮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주소(晝宵), 낮 동안을 주간(晝間), 점심으로 먹는 밥을 주식(晝食), 낮에 활동함을 주행(晝行), 낮잠을 이르는 말을 주침(晝寢), 낮에 하는 근무를 주근(晝勤), 주로 학교 같은 데서 낮에 배우는 공부를 주학(晝學), 낮 동안의 시각을 주각(晝刻), 낮에 망을 보는 일 또는 낮에 망을 보는 곳을 주망(晝望), 한낮에 출근함을 주사(晝仕), 점심으로 차려 먹는 음식을 주선(晝饍), 낮에 순찰함 또는 그 순찰을 주순(晝巡), 점심을 먹음 또는 그 점심을 주점(晝點), 대낮을 백주(白晝), 아침부터 낮까지를 단주(旦晝), 바로 그 날의 낮을 당주(當晝),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뜻으로 바쁜 틈을 타서 어렵게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말을 주이계야(晝而繼夜),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늘 잇따른다는 말을 주야장천(晝夜長川), 낮에 생각하고 밤에 헤아린다는 뜻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깊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주사야탁(晝思夜度), 춘분이나 추분에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음을 이르는 말을 주야평균(晝夜平均), 낮에 자고 밤에 머리를 빗는다는 뜻으로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면 몸에 좋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주침야소(晝寢夜梳),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아니함으로 매우 열심히 함을 이르는 말을 주야불식(晝夜不息), 입신 출세하여 부귀를 고향에 드날림 또는 고향에 돌아감을 금의주행(錦衣晝行),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조금도 쉴 사이 없이 일에 힘쓴다는 말을 불철주야(不撤晝夜), 밤에 시작하여 낮까지 계속함의 뜻으로 어떤 일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한다는 말을 야이계주(夜以繼晝) 등에 쓰인다.
▶️ 夜(밤 야, 고을 이름 액)는 ❶형성문자로 亱(야, 액)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저녁 석(夕; 저녁)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亦(역, 야)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亦(역, 야)는 사람 몸의 양 겨드랑, 夜(야)는 하루를 사람의 몸에 비겨 그 옆구리에 달을 그린 모양으로 새벽녘을 이른다. 夕(석)은 月(월; 달)과 같다. 나중에 해질녘에서 새벽까지의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는데 낮에 대하여 밤은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❷회의문자로 夜자는 ‘밤’이나 ‘저녁 무렵’, ‘한밤중’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夜자는 夕(저녁 석)자와 亦(또 역)자와 결합한 모습이다. 亦자는 사람의 겨드랑이에 점을 찍어놓은 모습을 그린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夜자는 이렇게 겨드랑이를 가리키고 있는 亦자에 夕자를 더한 것으로 깜깜한 ‘어두움’을 뜻하고 있다. 금문에 나온 夜자를 보면 사람의 겨드랑이에 夕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두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夜(야, 액)는 성(姓)의 하나로 ①밤 ②저녁 무렵, 새벽녘 ③한밤중, 깊은 밤 ④침실 ⑤어두워지다 ⑥쉬다, 휴식하다 그리고 ⓐ고을의 이름(액) ⓑ진액, 즙(액)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밤 소(宵),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낮 주(晝)이다. 용례로는 밤중을 야반(夜半), 밤 사이를 야간(夜間), 밤중을 야중(夜中), 야광주 따위가 밤 또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내는 빛을 야광(夜光), 밤중을 야분(夜分), 밤에 내리는 비를 야우(夜雨), 밤의 경치를 야경(夜景), 밤에 하는 싸움을 야전(夜戰), 밤에 곡함을 야곡(夜哭), 밤에 하는 일을 야근(夜勤), 낮과 밤을 주야(晝夜), 깊은 밤을 심야(深夜), 어떤 일을 하느라고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것을 철야(徹夜), 한밤중을 반야(半夜), 깊은 밤을 중야(中夜), 가을 밤을 추야(秋夜), 새벽녘을 잔야(殘夜), 이슥한 밤을 모야(暮夜), 어젯밤을 전야(前夜), 한밤중에 몰래 도망함을 야반도주(夜半逃走),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으로 공명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야행피수(夜行被繡), 밤에 시작하여 낮까지 계속함의 뜻으로 어떤 일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한다는 야이계주(夜以繼晝), 밤에 세상을 밝혀 주는 밝은 달을 야광명월(夜光明月), 밤에 대문을 닫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태평하여 인심이 순박하다는 야불폐문(夜不閉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