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마르코복음 6,1-6)
- 매일미사 2024.1.31(수) https://missa.cbck.or.kr/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나자렛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왜 그분을 믿지 못하였을까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하느님의 힘을 보면서도 왜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그들 눈에 예수님께서는 그저 ‘목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가족들에 대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그분을 메시아로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하여 가장 모르고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선입견이 되어서, 그 사람에 대하여 더 알려고 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일들은 부모와 자녀, 부부와 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계에서 ‘들음’이 중단되지 않게 하십시오. 듣는 것이 멈춘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앎 또한 멈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것이 멈춘 신앙생활은 그분에 대한 앎이 멈춘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그분을 믿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임마누엘), 함께 계셔도 그분께서 누구이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그분을 알려고 하지 않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어 버립니다. 만일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듣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은 진실하게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 김재덕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천안 원성동성당 주임), 매일미사(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4.1.31 오늘의 묵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