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곳은 숲이었다. 숲은 숲인데 그 높이가 상당한 곳이다. 그들은 현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올라와 있었고 주위는 어두웠다. 밤이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가툰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복면의 여성은 그가 입을 뗄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순간 가툰은 어떤 기척 하나를 느낀다. 그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가툰, 왜그러지?"
그는 말없이 미소를 띠운 채 마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그것을 어디다 감춰뒀을 것 같지?"
"네베트말인가?"
그 말에 드디어 가툰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복면의 여성은 흠칫 했다. 가툰은 민감해져 있다. 그의 눈빛은 마치 피에 굶주린 맹수처럼 사납고 잔인해 보인다.
"그녀에겐 없다. 그것만은 확실해. 그녀가 나를 속였다."
"그걸 어떻게 확실할 수 있지?"
"알 수있어. 순간적으로 기를 느꼈다."
가툰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는 숲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복면의 여성이 그의 팔을 붙잡았고 그를 돌려 세웠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그걸 누구한테 줬다는 말이지? 그녀에게 없다는 게 확실한가?"
"......그들에게 있다."
"...그들?"
여성은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툰의 하는 말은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툰은 그녀에게서 팔을 빼내었다. 그 둘은 모두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빨리 기를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지. 방법은 단 하나다. 힘이 없는 자에게 넘겨주는 것."
그제서야 여성은 그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그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다. 그들이다. 그들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때 그 여관에 있던 꼬맹이들을 말하는건가?"
복면의 여성이 눈을 빛내며 가툰에게 매달리다 싶이 간절하게 답을 요구한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한 가지였다. 목걸이의 행방이다. 그것만 안다면 그들에겐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 특히 그 애송이가 들고 있을 것 같군."
가툰은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그녀가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녀의 뺨 위로 가툰의 손이 올라왔다. 가툰은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쥔 채 얼굴을 가져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가르샨."
여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가툰은 무리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툰은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자신도 몸을 돌려 언덕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마을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나무들이 순식간에 그들 옆으로 마치 그림책을 넘기듯이 빠르게 지나간다. 맨 앞에서 달리던 가툰은 일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일제히 그 무리들이 그를 주목한다.
"가라!"
그 무리들은 멀리서 보이는 두 인영에게 몸을 날렸다.
"어...어디로 갈꺼야?"
숨이 벅차 올라 이베리안은 힘들었다. 짬짬이 했던 훈련 덕분에 체력이 늘었던 그였지만 이것이 그의 한계였다. 그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억지로 아리안의 손에 끌려 달리고 있었지만 그의 다리는 서서히 힘이 풀리고 있었다. 아리안은 답답했다.
"젠장"
아리안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그녀는 전혀 힘들어 하고 있지 않았다. 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은 그녀의 얼굴은 보송보송해 보이기 까지 했다. 순간 이베리안은 아, 라는 탄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꼬끄라 졌다. 한계다!
"내가 하나 둘 세..."
아리안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멈춰선 그들 주위로 어떤 무리떼들이 달려들었다. 아리안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어쩌면 이베리안에게는 일어설 힘도 없을 지 모른다.
그들 주위로 서서히 무리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베리안은 힘없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그에겐 너무나 익숙한 복장들이다. 이베리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건...그때 그 복면들이잖아."
아리안은 뭐 씹은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이베리안과 아리안의 앞으로 한 남성이 그 무리에서 걸어 나왔다. 이베리안은 예상했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 남성에게 시선을 던졌다. 가툰 역시 그런 그를 보며 웃는다.
"이런, 또 보게 되는군. 애송이."
가툰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때 아리안이 손으로 그런 그를 저지하며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지? 우리에게?"
위압적인 말투는 아니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아. 볼일? 그렇지. 너희들에게 볼일이 있었지."
가툰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옆에 있던 한 여성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가르샨이 앞으로 나왔다.
"그 목걸이를 돌려줘야 겠다."
가르샨은 손가락으로 이베리안의 목을 가르켰다. 그의 목엔 예의 그 빛이 없는 목걸이가 매달려 있었다. 이베리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걸이와 가르샨을 쳐다보았다.
"이 목걸이 말입니까? 이거요?"
"이베리안."
이베리안이 그들에게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아리안이 그를 조용히 불렀다. 아리안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약한다."
"응?"
"도약!"
이베리안이 놀랄 새도 없이 아리안이 순간적으로 손을 높이 쳐들자 그녀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몹시 놀라운 광경이었다. 가툰과 가르샨, 그리고 그 무리들은 일제히 그 광경을 쳐다보며 할말을 잃어버렸다. 아리안이 떠오르는 순간 이베리안의 몸도 떠올랐다. 그들이 떠오르는 속도 또한 빨랐다. 그들의 높이는 순식간에 한 저택의 꼭대대기 까지 다다랐다. 이베리안은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는 자신의 발 밑을 내려다보며 땀을 흘렸다.
"뭐,뭐야!"
"시끄러! 조용히 안하면 떨어뜨린다!"
이베리안은 아리안을 쳐다보는 순간 놀랐다. 그녀가 처음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한번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리안은 그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이마에 땀까지 맺혀있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그는 묻고 싶었다. 괜찮냐고. 그러나 힘들어하고 있는 그녀에게 더 짐이 될까봐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밑을 내려다보았다. 가툰을 포함한 그 무리들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이베리안은 깨달았다. 아리안과 이베리안이 날고 있었다. 그것도 그 높이는 이미 저택의 높이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어떻게 된거지?"
아무리 기억을 잃어 아무것도 모른 그라고 하지만 이베리안 역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보통 힘이 아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리안을 돌아보며 벙, 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리안...이건 대체..."
"내 힘이야. 후후, 세삼스럽게 놀랐어?"
그녀가 여유롭게 웃었지만 콧등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이베리안은 이제 밑이 까마득한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마법이야?"
"마법?"
아리안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인다.
"글쎄. 하지만 마법은 아닐걸."
"뭐야 그게. 글쎄라면서 마법이 아닌것은 또 뭐야."
아리안은 푸하하, 웃어 제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르켰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은 그녀에게 힘이 부치는 일이다. 이대로 갔다간 그 둘 모두에게 위험했다. 아리안은 애써 태연하게 웃었다.
"저기 위에서 쉬었다 가자."
그녀가 가르킨 곳은 또 다른 저택의 지붕 위였다.
한편 가툰과 그 무리들은 저택 밑에서 여전히 웅성거리고 있었다. 가툰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리안이 날아 올랐던 장면을 떠올렸다. 옆에서 가르샨은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올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도 안돼. 저런 건 처음 봐."
가르샨이 복면을 벗으려 했다. 그러자 가툰이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가르샨. 복면 써."
"아...!"
가르샨은 그의 부름에 정신이 번뜩 들어 다시 복면을 얼굴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가툰에게 다가갔다.
"저게 뭐지, 가툰?"
"저것은 마법이 아니야."
가툰의 두 눈이 가늘어지며 무언가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머리속에서 아리안이 날았던 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럼 뭐란 말이지? 마법이 아닌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시전없이 마법을 쓸 수 있을리가 없다. 저건 마법이 아니야."
가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역시 그것을 증명할 방도가 없었으며 마법이 아닌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당연했다. 저런것은 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듣지도 못했던 광경이다. 가툰은 생각치도 못한 변수에 화가났다. 가툰과 가르샨을 중심으로 일제히 무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들은 가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툰은 그들을 돌아보며 또다른 손짓을 한다. 한쪽 손바닥을 핀 채 한 바퀴 돌리는. 일종의 후퇴의 표시였다. 그 동작을 보며 무리들과 가르샨이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