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Beijing)여행기 : 이화원(고궁) - ㅡ여행'08.10.23-29일 기간중 27일 오후ㅡ |
◈ 이화원은 북경시 중심에서 15km 떨어진 서북쪽 교외에 있는
중국 최대 규모의 황실 여름 별장이였는데 지금은 북경서 가장 큰 공원이 되였다..
유네스코는 중국의 조경과 정원예술의 창조적인 예술을 빼어나게 표현하였다고 선언하고
1998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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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이화원의 동남쪽에 있는 신궁문(新宮門)도착 (오후 2시 10분)
오전에 천단공원(天壇公園) 을 구경하고 근처에서 식사후 식당서 오후 1시에 이곳으로 출발하였다.
이곳으로 오는 중에 가이드가 " 보석상에 잠간 들렀다 가자고" 하여 아무도 반대하지 않으므로 들렀다.
진주보석상으로 20여분 체류하였다. 물건을 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곳사진이 없어서 올리지 못하는데, 필요없는 사진이라 찍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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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매표소
가이드가 입장권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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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입장료 일람표
문표(門票)는 30元 이고 연표(聯票)는 60원이다.
연표는 불향각(佛香閣), 덕화원(德和院),소주가(蘇州街),문창원(文昌院)등의 입장료가 포함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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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이화원 입장표
4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개방시간 : 6:3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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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가이드가 표를 사가지고 오길 기다리는 일행
출입문엔 이화원의 편액이 달려있는데 가까이 가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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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이화원에 대한 설명
우측 안내판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
---설명을 들은 후 앞의 계단을 올라가 패루를 지나니 넓은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2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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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이화원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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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이화원 지도
우리는 ①번으로 들어가서 적선을 따라 호수가 풍경을 보며 걸었는데 지춘정(知春亭)까지 15분 걸렸다.
지춘정에 들려 주위 풍경을 보고 玉瀾堂(옥란당)이 있는 궁정(宮廷)을 둘러보고 장랑 으로 나와 ② 번 여기서 자유시간을 20분정도 주었다.
③번 불향각((佛香閣)은 코스에 없어서 몇이서 별도로 가보고, 모이는장소로 갔더니 조금시간이 지체되여 모두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미안하였다. 모두 모여서 인수문을 지나 이화원의 정문인 ④번 동궁문(東宮門)으로 4시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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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패루를 지나 호수변 도로에 서니 왼쪽 앞으로 보이는 풍경
이곳 호수는 인공호이며,호수 이름이 곤명호[昆明湖]라고 한다.
멀리보이는 다리이름은 17공교(十七孔橋) 라 하며. 끝에 있는 섬은 남호도(南湖島)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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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7공교(十七孔橋)
다리를 가까히 찍어봤다. 다리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점점으로 보인다.
교각과 교각 사이에 17개의 구멍이 있어 17공교(十七孔橋) 이다. 황제가 배를 타고 중앙으로 지날때 좌우에 황제의 상징 숫자인 9개씩 보이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곤명호 동쪽 제방과 호심의 남호도(南湖島)를 연결하는 대형 석교로서 총길이 150m이다. 교두와 난간 기둥에 도합 544마리 돌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형태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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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곤명호[昆明湖]와 만수산[萬壽山]
호수 앞 북쪽으로 보이는 산이 만수산[萬壽山]이며 일단의 건물이 불향각((佛香閣)이다.
이화원의 주위 둘래는 8km로 전체면적이 87만평(290ha)이다. 그 중 인공호인 곤명호[昆明湖]가 75%을 차지하고 있다.
만수산[萬壽山]은 이곳에서 파낸 흙을 쌓아올려 만든 높이 약 59m의 산이며, 12세기 금나라 때 이곳에 행궁(行宮)을 짓고 옥천산(玉泉山)의 물을 끌여들여 호수를 만든 것이라고 하며.
경내의 전각을 비롯한 건축물은 3,000여 칸이이고, 모든 건축물은 산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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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관광객들 태우고 다니는 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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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청나라(1644~1911)말기에 황제와 황후들이 이곳에서 청치활동을 하고 풍광을 즐겼다.
이 중에서도 통칭 천간낭하(千間廊下)라고 불리는 장랑(長廊)이 눈길을 끈다.
12세기 금나라 때 지은 작은 궁전을 시초로 명조(明朝) 중엽에 만들어졌으며,
청조(淸朝)의 건륭제(乾隆帝)가 많은 전각(殿閣)을 세우고 정원을 꾸몄다. 서태후(西太后)가 살았던 별궁으로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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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860년 천진[天津] 조약의 비준을 강요하는
영국·프랑스 연합군 8만이 베이징 서쪽 교외의 원명원(圓明園)을 불태웠을 때 이곳도 화재를 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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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1894년 서태후는 환갑 축하연을 베풀기 위해 해군증강용으로
영국에서 차용한 돈까지 개축을 위해서 횡류(橫流)하였는데, 이것이 청 ·일전쟁(淸日戰爭)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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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현재는 베이징 최고의 관광명소
호상에 떠 있는듯한 석주(石舟)와 석교(石橋), 해당화 ·난초 ·수양버들, 색채가 선명한 건축물과 장랑(長廊) 등이 경관의 조화를 이룬다. 1998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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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지춘정(知春亭)으로 이어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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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지춘정(知春亭) 에서 바라본 불향각((佛香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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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지춘정(知春亭)
호수안으로 들어가 지어진 2층 처마의 정자이다.
이화원의 봄 기운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하여 지춘정(知春亭)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는 앞으로 확트인 곤명호와 오른쪽으로 만수산의불향각,왼쪽으로 17공교와 이어진 작은 섬,멀리 곤명호를 건너 아름다운 하얀 옥대교가 보이는등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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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문창각(文昌閣)
성문 모양의 건물위에 십자형의 2층누각을 세운 것으로 그 안에 문창제군(文昌帝君)의 동상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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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문창제군(文昌帝君)
문창은 본디 별의 이름인데 점성가들에게는 매우 귀한 존재로 인식되어있고,도교에서는 공명이록(功名利祿)을 상징한다. 곤명호의 동쪽인 이곳에는 문신(文神)을, 그리고 곤명호의 서쪽에 있는 숙운첨에는 무신(武神)을 앉힘으로써 대경(對景)으르 이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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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주위를 깨끗하고 신선하게 보이는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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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궁정(宮廷)으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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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이화원의 궁정구(宮廷區)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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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옥란당의 부속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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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옥란당(玉瀾堂)
옥란당(玉瀾堂)은 사합원의 정전(正殿)으로 황제가 일상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라고 한다.
광서황제는 서태우가 자신의 아들 동치제가 죽은 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내세운 조카였다.
그러나 그가 무술변법을 시행하는등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자 그를 이곳에 연금시켰다.
옥란당이 바로 광서제가 10년간이나 유페되었던 장소로 당시 모습이 잘 보존되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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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우향사
옥란당의 서쪽에 있는 건물로서11대 광서황제의 침전이었다.
우향사에는 원래 뒷문이 있고 곤명호를 볼 수 있었는데 자희태후가 변법유산운동을 진압한 후 훈정(訓政)에 들어가면서 황제를 감시하기 위해 이 문을 막아버렸다.
광서황제는 할머니인 자희태후로부터 10년간 유페되었으며 나이 38세에 이곳에서 병사했다고 한다.
다음해에 자희태후도 병으로 죽었다. 현재 우향사의 내부에 진열되여 있는 물품들은 원래의 것 그대로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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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우향사의 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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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우향사의 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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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의운문 (宜蕓門)
의운관(宜蕓館)의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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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의운문(宜蕓門)의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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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의운관(宜蕓館)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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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의운관(宜蕓館)
광서황제의 황후인 융유(隆裕)의 침전이다.
융유는 자희태후의 조카딸이다.
자희태후는 광서황제를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친정쪽 조카딸을 손자황제의 황후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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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의운관(宜蕓館) 의 측면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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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낙수당(樂壽堂)으로 통하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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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낙수당(樂壽堂) 내경
너무나 많은 사람이 붐빈다.
낙수당 정원은 이화원에서 가장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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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낙수당(樂壽堂) 내경
괴석들로 조경을 해 놨다.
앞에 보이는 큰돌의 이름이 패가석이라는 설명에 이 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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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패가석(敗家石)
거대한 정원석은 패가석(敗家石)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설이 많은데 .일설에 의하면 집안을 망하게 한 돌이라는 이 정원석은 청나라때 미(米)라는 관리가 북경의 방산 부근에서 발견하여 자기집 정원으로 옮기려다 도중에 운반비용이 너무 많이 나가 파산한데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후에 황제가 그돌을 이곳에 운반해 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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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낙수당(樂壽堂) 서태후의 안채
자희태후의 침궁, 붉은 기둥에 회색기와가 얹힌 이 건물의 조형은 독특한데가 있다고 한다..
마당에는 학 사슴등 장수한다는 동물상이 늘어서 있다. 내부는 공개되지 않아 창으로 통해서만 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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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자희태후(서태후西太后)..덕화원 안에 있는 사진
자희의 성은 엽혁나라, 청나라 제7대 황제 함풍(1851년~1861년 재위)의 귀비로서 함풍이 죽은 후 "수렴청정"의 명의로 48년 동안이나 조정의 대권을 독점하였다. 1905년 네덜란드 화가 Hubert Vos가 초청에 의해 자희태후의 초상화를 그렸다.이해 그의 연세 70을 넘었다. 화상은 현재 덕화원 내에 보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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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이문을 나서면 장랑으로 가는 문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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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요월문(邀月門)
요월문(邀月門)은 장랑 복도가 시작되는 동쪽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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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장랑(長廊) 장랑(長廊)은 지붕이 있는 좁고 긴 복도로 건물과 건물사이를 잇는 통로역활을 한다.
이화원의 장랑은 양면이 트여 있다.
이곳 장랑은 동쪽의 시작은 요월문이고 서쪽의 끝은 석장정(石丈亭)인데 그 길이는 750여m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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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장랑(長廊)의 회랑으로서의 역활 장랑의 기둥과 칸마다의 들보에는 꽃과 새, 나무와 돌, 산수,인물 등 광범위한 소재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회랑으로서의 역활도 하고 있다. 당초에는 건륭황제의 뜻에따라 항주(抗州)의 서호(西湖)풍경 546폭이 그려져 있었는데, 옛날에 그린 풍경에 더하여 1960년대 중국정부가 1,400여 폭의 민속화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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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유가정(留佳亭)
장랑을 걷다가 이곳으로 비켜나와 호수의 풍경을 가가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장랑은 또한 유가(留佳) 기란(奇瀾) 추수(秋水) 청요(淸遙) 등 4계절을 상징하는 4개의 팔각정을 차례로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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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장랑(長廊)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우리 일행이 도로 우측에 보인다. 가이드가 장랑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여기서 자유시간을 20분 주었다 ★
만수산의 불향각((佛香閣)은 계획에 없다고 하여 셋이서 가 보기로 하고 속보로 가기 시작하고,
나는 사진을 찍으며 내내 뛰어 따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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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기란정(奇瀾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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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장랑(長廊) 복도를 걷고 있는 예쁜 아가씨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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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 배운문 앞의 패루앞에서 멀리 있는 문창각(文昌閣) 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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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배운문(排雲門) 앞의 패루가 있다.
패루 아래에 사람이 많아 앞쪽으로 호수경치가 보이지를 않아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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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운휘옥우(雲輝玉宇)
패루의 앞쪽에는 화사한 구름속의 하늘에 있는 궁전이라는 의미의 네글자 운휘옥우(雲輝玉宇), 뒷면에는 별들이 에워사고 있는 성스러운 곳임을 표현하는 성공요추(星拱요樞) 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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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 배운문(排雲門)
장랑의 중간에 있는 배운문까지 왔다. 이를 기준으로 한 동서 장랑에는 각각 호수면에 연접해 지은 정자 구방현과 어조현이 있다
시간이 없어 이곳에서 서쪽의 장랑끝까지 가는 것은 포기하고 불향각((佛香閣) 을 보기로 하였다.
다음편 북경여행기 20 에서 "이화원" 계속됨니다.
<참고:북경여행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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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