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봉 (李玉峰) 시 모음
‘옥봉집(玉峰集)’은 조선 선조 때 왕실 종친으로서 옥천 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庶女)로 태어나 조원 (호는 雲江, 자는 佰玉) 의 소실(小室)이 된 숙원이씨 이옥봉의 시집이다. 조원․조희일․조석형 3대(代)의 시문(詩文)을 묶은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유교적 가부장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서출(庶出)로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것 때문에 시를 마음껏 써보지 못하고, 또 시 쓰는 일 때문에 남편과 영원히 헤어져 살아야 했고 끝내 자신이 쓴 시를 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류 시인 이옥봉. 그가 남긴 32편의 한시는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閨情 규정 여자의 속마음
平生離恨成身病 평생이한성신병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 주불능료약불치 (술로도, 약으로도 못 고칩니다)
衾裏泣如氷下水 금리읍여빙하수 (이불 속 눈물 얼음 아래 물같아)
日夜長流人不知 일야장류인부지 (밤낮을 흘러도 사람들 모르리라.)
규정(閨情) 여자의 마음
有約來何晩 유약래하만 (돌아온다 언약해놓고 어찌 이리 늦나요.)
庭梅慾謝時 정매욕사시 (뜰에 핀 매화는 벌써 시들려 하는데)
忽聞枝上鵲 홀문지상작 (문득 가지 위의 까치소리 듣고서)
虛畵鏡中眉 허와경중미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매화 필 무렵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님을 기다리면서 까치 소리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화장을 하는 여인의 마음을 노래한 작품
별한 (別恨)
明宵雖短短 명소수단단 (임 떠나는 내일 아침이야 짧고 짧아도,)
今夜願長長 금야원장장 (임과 함께 한 오늘 밤일랑 길고 길었으면)
鷄聲廳欲曉 계성청욕효 (닭 우는 소리 들려오고 날이 새려니)
雙瞼淚千行 쌍검루천행 (두 뺨에는 천 가닥 눈물이 흘러내린다)
다음 날 헤어져야 하는 님에 대한 이별의 정을 그린 작품
寧越道中 영월도중 영월가는 도중에
五月長干三日越 오월장간삼일월 (오월 긴 산을 삼 일만에 넘어서니)
[五日長干三日越 오일장간삼일월 (닷새는 강을 끼고, 사흘은 산을 넘었지.]
哀歌唱斷魯陵雲 애가창단노릉운 (노릉 (단종의 무덤) 의 구름에 애처로운 노래 끊어진다)
[哀飼吟斷魯陵雲 애사음단노릉운 (노릉의 구름 속에서 슬픈 노래도 끊어지네.]
妾身亦是王孫女 첩신역시왕손녀 (내 몸 또한 왕가의 자손이라)
此地鵑聲不忍聞 차지견성불인문 (이 곳 두견새 우는 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
계미북란 이후에 운강 조원은 삼척부사로 부임을 하고 옥봉이 남편을 찾아간다. 시1구에서 말한 것처럼 닷새를 강을 끼고, 사흘은 산을 넘어 영월에 도착하여 구름도 쉬어가는 단종의 노릉 앞에서 비문에 새겨진 애사를 읽는다. 옥봉도 왕손의 자부심을 가진다. (부친 이봉은 선조의 부친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이다)
시4구에서는 비운의 어린 단종이 고독과 슬픔과 두려움에 두견새가 밤을 새워 우는 것처럼 피를 토하며 울고 있다.
夢魂 몽혼 꿈속의 넋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비단 창에 달 비치면 저의 한도 짙어집니다.)(그리움을 달빛에 비추어 하소연함)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님의 집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겠소.)
(꿈 속의 발자취가 현실로 옮겨진다면 돌길이 반쯤 모래가 되었으리라 하여, 임을 만나고 싶은 애타는 심정을 그려냈다.)
제명은 자술 (自述), 또는 남편에게 주는 시로 증운강 (贈雲江)이라고도 한다.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꿈에 기대어 나타낸 작품이다.
이한 (離恨)
平生離恨成身病 평생이한성신병 (평생토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 주불능료약불치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衾裏泣如氷下水 금리읍여빙하수 (이불 속 눈물이야 얼음 밑을 흐르는 눈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 일야장류인불지 (밤낮을 흘려보내도 그 누가 알아주나요)
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지은 작품으로, 남편과의 헤어짐을 후회하며 회한의 눈물을 보이는 여인의 속내가 잘 묘사되어 있다.
송별
人間此夜離情多 인간차야이정다 (이 밤, 우리 이별 너무 아쉬워)
落月蒼茫入遠波 낙월창망입원파 (달은 멀리 저 물결 속으로 지네요.)
借問今宵何處宿 차문금소하처숙 (묻고 싶어요. 이 밤 어디서 주무시는지,)
旅窓空廳雲鴻過 여창공청운홍과 (구름 속 울어 예는 기러기 울음에 당신도 잠 못 이루시리.)
님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을 달과 기러기에 기대어 노래한 작품이다.
위인송원(爲人訟寃) -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함
洗面盆爲鏡 세면분위경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 소두수작유 (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어도)
妾身非織女 첩신비직녀 (이 몸이 직녀가 아니옵거늘)
郞豈是牽牛 낭기시견우 (낭군께서 어이 견우가 되리이까?)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가 아전들의 토색질에 걸려 소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에 산지기의 아내는 옥봉을 찾아와 남편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목사에게 손을 좀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옥봉은 오언시 한 수를 써서 파주목사에게 보냈는데, 파주목사는 그녀의 시를 보고 크게 감탄하여 곧 산지기를 풀어주었다고 하는데, 목사는 이 글에서 산지기의 아내가 자신은 베를 짜는 사람 (織女) 가 아니니, 남편 또한 소를 끌고 간 (牽牛) 도둑이 아니라는 뜻이 재치있게 담겨 있음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남편 조원에게 알려지자, 조원은 크게 화를 내고 소박을 놓게 되었는데, 이는 곧 시를 짓지 않겠다는 남편과의 약속을 어겼으며, 엄중한 관청의 일에 아녀자가 사사로이 간여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네는 지금까지 나와 여러 해 동안 지내면서 실수하는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찌 백정의 처를 위해 시를 지어주어 감옥의 죄수를 풀어주게 하여 남의 이목을 번거롭게 하는가? 그 죄가 커서 어쩔 수 없으니 즉시 자네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게!”
옥봉은 뚝섬 근처에 살며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으나 허사였고, 그 후 10여년을 홀로 지내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애통한 마음을 시로 승화시키다가 세상을 떴다. 그때 그녀의 나이 35세 정도였다.
이원(離怨)
深情容易寄 심정용역기 (정을 샅샅이 아뢰기는 쉬우나)
欲設更含羞 욕설경함수 (정작 말하려니 부끄러움이 앞서 입술만 깨물 뿐)
若問香閨信 약문향규신 (임이 내 소식을 묻는다면)
殘粧獨倚樓 잔장독의루 (화장을 지운 채 홀로 누각에 있다 전해주시오)
칠월칠석
無窮會合豈愁思 무궁회합기수사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무슨 걱정이랴)
不比浮生有別離 불비부생유별리 (뜬구름 같은 우리네 이별과는 견줄 것도 아니라네)
天上却成朝暮會 천상각성조모회 (하늘에서 아침저녁 만나는 것을)
人間謾作一年期 인간만작일년기 (사람들은 일년에 한 번이라고 호들갑을 떠네)
卽事 (즉사) - 본대로 짓다.
柳外江頭五馬嘶 유외강두오마시 (버드나무 너머 강 언덕에 다섯 말이 우는데)
半醒愁醉下樓時 반성수취하루시 (누대를 내려올 때 술 절반 깨자 또 근심에 취했어요.)
春紅欲瘦臨粧鏡 춘홍욕수림장경 (봄날 붉은 꽃들 시들어갈 때 경대에 앉아)
試畵梅窓却月眉 시화매창각월미 (매화꽃 핀 창가에서 반달같은 눈썹을 그려보았지요.)
樓上 (누상)
紅欄六曲壓銀河 홍란육곡압은하 (붉은 난간의 여섯 노래가 은하수를 누르고)
瑞霧飛微懸翠羅 서무비미현취라 (상서로운 안개 흩날려 푸른 휘장에 걸려있다.)
明月不知滄海暮 명월부지창해모 (밝은 달빛에 바다에 해 지는 줄도 모르겠는데)
九疑山下白雲多 구의산하백운다 (구의산 아래에는 흰 구름이 짙어지는구나.)
雨
終南壁面懸靑雨 종남벽면현청우 (남산 벼랑에 푸른 비 걸려있고)
紫閣飛微白閣晴 자각비미백각청 (자색 누각에 흩뿌리고 흰 누각은 개었구나)
雲葉散邊殘照淚 운엽산변잔조루 (구름 터진 사이로 저녁 햇살 흘러나오고)
漫天銀竹過江橫 만천은죽과강횡 (하늘 가득 뻗은 은빛 대나무 강 건너 걸쳐있다.)
玉奉家小池
玉奉涵小池 옥봉함소지 (옥봉, 작은 연못에 잠겼네)
池面月涓涓 지면월연연 (연못으로 흐르는 달빛)
鴛鴦一雙鳥 원앙일쌍조 (원앙새 두 마리)
飛下鏡中天 비하경중천 (거울 같은 하늘로 날아오르네)
옥봉이 연못이 되고, 연못이 달빛과 만나 한쌍의 원앙이 되어 비천한다.귀엽고도 깜찍하면서 시상의 전개가 깔끔하고도 탁월하다.그 달빛은 누구일까? 누구이길래 함께 원앙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