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리 일몰
십이월 둘째 목요일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들녘 산책은 줄이고 곧장 학교로 들었다. 들녘으로 산책을 나가지 않은 허전함으로 짧은 동선이지만 학교로 가는 길에 건너편 산자락을 바라봤다. 낙엽이 진 나목이 드러났다. 연사 들녘은 연초천과 접했다. 연초천 건너 효촌마을이다. 효촌마을 동남으로 에워싼 두 봉우리가 와야봉과 약수봉이다. 그 마을 앞동산인데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와야봉과 약수봉은 소나무와 낙엽활엽수가 섞인 혼효림인데 겨울이 되니 식생의 구분이 확연했다. 단풍으로 물든 활엽수들은 낙엽이 져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고 소나무는 청청한 잎 그대로였다. 추사가 제주 적소를 찾아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에 남긴 발문 그대로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라고 하셨다.”
두 봉우리 산등선으로 펼쳐 선 나무들이 나목이 되니 앙상한 가지가 부챗살처럼 보였다. 길게 이어진 산등선이라 내 눈에는 살아 있는 물고기 등지느러미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횟집 활어 가운데 등지느러미가 유난히 빳빳한 볼락이나 감성돔에 비유해 아침나절 ‘낙목한천’이라는 글을 남겼다. 산봉우리는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데 볼락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미지에서 따왔다.
그 글을 문학 동아리 카페에 올리고 지인 메일로도 넘겼다. 약수봉 나목과 볼락 사진을 대비시킨 글의 일부는 지기들 휴대폰으로도 넘겼다. 오후가 되자 그 글을 읽어본 친구가 회신이 왔다. 첨부된 사진에 볼락이 있었기에 섬으로 가더니 그새 내가 낚시에 취미를 붙였는가 싶어 오해했단다. 다시 글을 찬찬이 읽어보니 산등선 겨울나무에서 등지느러미가 연상됨을 뒤늦게 알았다나.
다른 한 친구는 내가 휴대폰으로 글과 함께 보낸 사진을 보고 곧장 회신이 왔다. ‘몸은 거제에 있어도 마음은 창원 근교 산이 그리운가 봐’였다. 친구가 그럴 만도 한 게 사진과 함께 보낸 글의 내용이 주말에 뭍으로 건너가면 불모산이가 서북산으로 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내가 본 와야봉과 약수봉 산등선 부챗살 나뭇가지가 거기 겨울 산에서 본 것과 같아서였다.
점심시간은 도서관에 들려 몇 권 책을 빌려 펼쳐 읽었다. 오후엔 강당에서 관련 업무 부서에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특강이 있어 뒷자리서 경청했다. ‘연탄길’ 작가 이철환이 먼 곳까지 찾아와 그의 작품 창작 배경과 청소년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될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곧이어 퇴근 시각이 다가와 아무 대비가 없이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고심이 되었다.
일단 교내 급식소로 갔다. 저녁 공부를 하고 갈 학생들보다 먼저 배움터 지킴이와 야간 당직자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식판에서 밥과 찬을 채워 그분들 곁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 식후 학교에 머물며 할 일이 없어 교정을 나서니 저녁 공부를 하지 않고 하교하는 학생들의 통학버스가 줄을 이어 빠져나갔다. 학생들은 통학거리가 멀어 수익자 부담으로 통학버스를 운행했다.
교정을 나와 와실로 향하지 않고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아침이면 동이 트기 전 어둑할 때 거닐던 들녘이다. 이번 주엔 월요일만 들녘을 둘렀고 이후는 나가질 않았다. 어제그제 이틀은 미세먼지가 짙어 생략했다. 목요일 아침은 날씨가 쌀쌀해 미적댔다. 아침에 나가지 않은 들녘 산책을 오후 퇴근길 나선 셈이다. 해가 저물어 저녁 공기는 제법 쌀쌀했지만 목도리와 장갑이 막아주었다.
연효교에서 둑길 따라 효촌교로 올라갔다. 하천 생태보에선 몇 마리 오리들이 헤엄쳐 다녔다. 효촌교를 건너 지명유래와 관련 있는 효자비를 지났다. 물이 흘러가는 방향 둑길을 걸러 연효교에 이르니 야간 조명이 들어왔다. 계룡산이 바라보인 들녘을 지나 연사 와실로 들었다. 냉장고를 살피니 데쳐둔 배춧잎이 며칠째 밀려 있었다. 그걸 꺼내 젓갈에 찍어 곡차 안주로 삼고 잠들다. 19.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