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집에 술 익거든/ 김성최(金盛最)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의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함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하고자 하노라
현대어 풀이: 자네 집에 술이 익으면 부디 나를 불러주게나. 우리 집에 꽃이 피면 나 또한 자네를 청하겠네.
인생 백 년 안팎의 덧없는 시름을 잊어버릴 일을 함께 의논해 보세나.
가식 없고 소박한 이웃 간의 정과 풍류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대단한 명예나 부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술이 익고 꽃이 피는' 자연스러운 삶의 변화 속에서 벗과 마주 앉아 인생의 시름을 달래고자 하는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자연친화적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공정에 이퇴하고..."
公庭(공정)에 吏退(이퇴)하고 할 일이 아주 없어
扁舟(편주)에 술을 싣고 侍中臺(시중대) 찾아가니
蘆花(노화)에 수많은 갈매기는 제 벗인가 하노라
현대어 풀이: 관청에서 관원들이 퇴근하고 나니 할 일이 아주 없어서,
작은 배에 술을 싣고 시중대(강원도 흡곡에 있는 정자)를 찾아가니,
갈대꽃 사이에 날아드는 수많은 갈매기가 모두 내 벗인가 하노라.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하루의 공무를 마친 뒤 찾아오는 한가로움(강호한정)을 노래한 시다.
벼슬살이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작은 배를 띄우고 자연으로 향하는 해방감이 돋보이며,
특히 마지막 장에서 갈매기를 벗 삼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김성최(金盛最, 1645 ~ 1713)
조선 후기 숙종 대에 활동했던 문신이자 시조 작가.
인적 사항: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최량(最良), 호는 일로당(佚老堂).
관직 이력: 1666년(현종 7)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83년(숙종 9) 단양군수를 지냄.
이후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치며 당상관인 통정대부 목사(牧使, 정3품 관직) 자리까지 올랐음.
문학적 의의: 가문(신안동 김씨)의 명망에 걸맞게 관직 생활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면서도,
권력 다툼보다는 자연을 벗 삼는 풍류와 소박한 삶을 지향했음.
그의 작품들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시조집인 《청구영언》 등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