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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2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유럽 최대 규모 희토류 산화물 100만t 이상 광산 스웨덴 북부 키루나에서 발견
2016년 터키 이스탄불 술탄아흐메트 광장에서 IS 자살폭탄테러 사망 10명 부상 15명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샤블리 에브도’ 테러 규탄 행진 34개국 정상 등 150만 명 참여
2012년 원로 서양사학자 노명식 교수 별세
원로 서양사학자 노명식(89) 전 한림대 교수가 12일 낮 별세했다.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경성경제전문학교와 서울대 사학과를 나와 경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사학회장(1978~80), 역사학회장(1982~84)을 지냈고, 1992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972년 '10월유신' 후 기독교교수협의회장으로 항의 성명 발표 등을 주도해 경희대에서 해직됐으며 이후 성균관대·한림대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는 1980년 대학가 필독서였다.
그는 작년 6월 전집(12권)을 냈다. 통상 제자나 후학들이 비용을 부담해 스승께 헌정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노 교수는 1억3000만원 가까운 출판 비용을 직접 댔다. 300질 한정판 비매품으로 나온 책은 대학 도서관과 연구자 등에게만 배포됐다. 머리말에는 "받은 은혜에 조금이라도 감사의 뜻을 표하고 세상을 떠나고 싶어서"라고 썼다.
2010년 아이티, 7.0 강진 피해
2010년 1월 12일 오후 4시 53분쯤(한국시각 13일 오전 6시 53분) 중미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200년 만에 최악인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정부청사·주택·아파트·호텔·병원·학교·도로 등은 물론 대통령궁과 의회건물도 붕괴됐다.
진앙은 수도 포르토프랭스 남서쪽 15㎞ 지점이었으며 수시간 동안 규모 5.9와 5.5 등 모두 28차례의 강력한 여진도 이어졌다.
피해 당시 곧바로 어두워져 피해상황은 정확히 집계 되지 않았지만 매몰된 사상자 수는 22만명 부상자 30만명이 발생 했다.
태평양 쓰나미센터는 쿠바, 바하마, 도미니카 등 카리브해 지역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가 1시간30분 만에 해제했다. 미국은 현지에 구호팀을 급파하기로 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이날 지진이 지난 1770년 이후 아이티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이라고 발표했다.
2010년 멕시코 마약왕 테오도로 에두아르도 가르시아 시멘탈 체포
2010년 1월 12일 멕시코 경찰이 가장 잔혹한 행동으로 악명 높았던 멕시코 마약조직의 보스 테오도로 에두아르도 가르시아 시멘탈(Simental·36)을 체포했다. ‘엘 테오(El Teo)’ 란 이름으로 알려진 그의 검거에 내걸렸던 현상금은 210만달러(약 24억원)로, 멕시코 현상 수배 사상 최고액 수준이었다.
엘 테오는 애초 미국 서남부와 국경을 마주한 티후아나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마약조직 ‘아레야노 펠릭스(Felix)’ 의 부관이었다. 하지만 2008년 10월 이 조직의 보스들이 각각 구속되거나 사망하자 자기 조직을 만든 뒤 다른 경쟁조직원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제거하면서 세력을 확장해왔다.
2008년 중국 중남부 19개성에 4주 동안 50년만의 폭설, 주요 고속도로와 철도망 마비
2006년 하지 순례 마지막날 300여명 압사
이슬람 최대의 종교 행사 ‘하지(haji) 순례’ 마지막 날인 2006년 1월 12일, 사우디아라비아 미나 계곡의 ‘마귀 돌기둥’에 돌멩이를 던지던 의식을 치르던 중 적어도 345명의 무슬림이 압사했다.
올해 마귀를 쫓는 의식인 이 투석 행위에 200만명 이상이 참가했으며 이날 사고는 해가 질 무렵, 의식에 마지막으로 참여하려던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발생했다. 이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1990년에는 1426명이, 2003년에는 251명이 압사했다.
2006년 미소짓는 제퍼슨 70년만에 바뀐 5센트
미국 조폐국이 2006년 1월12일 새 디자인의 5센트 동전을 공개했다. 1938년 이후 5센트 동전의 앞면에는 미 헌법 초안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의 옆모습이 새겨졌으나, 올해부터 사용하는 5센트 동전에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 정면을 담았다. 2007년까지 새 동전은 모두 10억개가 유통될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휴렛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 윌리엄 휴렛 사망
2001년 노근리사건 한미양국조사단 노근리사건이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임을 인정
2000년 김종필 국무총리 퇴임
1998년 유럽회의 19개 회원국 `인간복제금지` 의정서에 서명
1992년 `라인 모드 브라우저` 버전 1.1 등장
1990년 대한항공-아에로플로트, 서울-모스크바간 항로 취항키로 합의
1989년 재일교포 2세 이양지, 일본 아쿠타가와상(芥川賞) 수상
한국인 2세 이양지씨가 일본 문학진흥회가 제정한 1988년도 아쿠타가와상(芥川賞)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심사위원회가 1989년 1월 12일 발표했다. 아쿠타가와상은 1934년 제정, 제2차 세계대전때 5년간 중단됐을 뿐, 지금까지 일본의 신인작가 최고의 등용문으로 그 권위를 자랑했다.
수상작품은 1988년 11월 문예지 `군상`에 발표했던 중편 `유희`다. 이씨는 일본 야마시나현에서 출생, 와세다대 사회과학부를 중퇴하고, 1984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 1988년 졸업했다. 이씨는 한국 전통춤에 매료돼 1988년 다시 이화여대 무용대학원에 입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씨의 부모는 제주도 출신으로 이씨가 9세 때 일본에 귀화했다
1989년 한국ㆍ소련 은행, 사상 첫 신용장 개설
국내 시중은행과 소련 은행간의 사상 첫 신용장 개설이 이루어져 한소간 교역형태가 간접교역에서 직접교역으로 바뀌게 됐다. 조흥은행은 소련 모피연맹과 1백만달러 어치의 모피원단 수입계약을 체결한 (주)진도의 요청에 따라 수입대금지급을 보증하는 신용장을 개설, 환거래 은행인 소련 외환전담 국영은행앞으로 보냈다.
이에 따라 소련모피연맹이 모피원단을 선적한 다음, 관련서류를 소련 외환전담 국영은행에 제시하면 조흥은행은 (주)진도로부터 수입대금을 받아 소련 외환전담 국영은행을 통해 직접적인 형태로 결제하게 됐다.
조흥은행은 소련과의 직접결제를 위해 1988년 6월 소련 외환전담 국영은행에 구좌를 트고 일정결제대금을 맡겨두는 방식의 `예치 환거래` 계약을 체결, 이날 첫 對소련 수입신용장을 열었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이 81년 국정연설에서 남북한당국최고책임자의 상호방문을 제의하고 김일성의 조건없는 서울 방문을 제의
1981년 경북 의성에서 공룡 화석 발견
1981년 부산대학교 경북 의성군에서 1억년전 공룡화석 발견
1980년 북한, 남북총리회담 서한으로 제의(대한민국 호칭 처음 사용)
1979년 환율인상 등 경제조치
1977년 박정희 대통령, 대북식량원조 제의
1976년 여류추리작가 애거서 크리스티 사망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1976년 1월 12일 사망했다. 86세였다. 생전에 단편소설 147편, 희곡 15편, 장편소설 90편 등 많은 작품을 남긴 크리스티의 소설은 전세계 50여개국 언어로 20억부가 넘게 팔려 `성경(Bible)` 다음으로 독자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 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열개의 인디언 인형`) `쥐덫` `나일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은 우리나라 독자들로부터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명탐정 셜록 홈스를 낳은 작가 코넌 도일의 작풍에 실증주의와 심미주의를 결합시킨 것으로 평가받았다. 행동보다는 추리를 더 좋아했던 그의 작품 주인공 에르퀼 푸아로가 1975년작 `커튼`에서 죽자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그 해 6월 1일자 1면에 이 탐정의 부음 기사를 실었고, 뜨개질을 좋아하는 그녀의 또다른 주인공인 독신 노처녀 제인 마플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시카의 추리극장`의 제시카 플레처를 비롯해 그 뒤에 창조된 여성 탐정들의 모델이 됐다.
1973년 비상각의 ,정부조직법개정안 의결(공업진흥청, 공단관리청 신설)
1973년 박정희 대통령 남북대화의 기본원칙 밝힘
1) 한반도 전쟁 재발위험 제거
2) 남북한 평화적 관계 정립
3) 평화통일. 해결이 쉬운 것부터 시작해 실천이 축적되는데 따라 어려운 문제 해결
1972년 라만, 방글라데시 초대수상에 취임
1966년 존슨 미국 대통령, 주월미군은 19만명이라고 발표
1964년 해방 후 첫 일본행 여객선 아리랑호 취항
1962년 정부, 이식제한법 공포
1962년 제1차 유학생자격고시
1961년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조직
1960년 파리서 13개국 대서양경제회의 개최
1956년 여객선 태신호 삼천포서 화재. 65명 사망
1956년 1월 12일 새벽3시30분경 부산-여수 간을 운항하는 정기여객선 태신호가 부산을 떠나 여수로 가다가 삼천포항에 잠시 기항하고 있던 중 3등 객실에서 불이나 객실 안에 있던 승객 65명이 사망했다. 출입계단이 하나 밖에 없는 여객선의 3등 객실에서 불이 나자 선장이 불이 더 번지지 않도록 하기위해 출입구를 폐쇄하는 바람에 이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는 선박의 발전기가 고장나 전깃불이 꺼지자 여객선 사환이 캄캄한 3등 객실안에서 램프에 기름을 붓다가 선실 돗자리에 기름을 많이 흘려 놓았는데 옆에 있던 승객이 끄지 않은 성냥불을 이곳에 잘못 던져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인명경시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검찰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선장과 사환 등 3명을 구속했다.
1955년 태신호 화재사고로 60명 넘게 사망
태신호 화재 사고는 1956년 1월 12일, 삼천포항에 기항 중이던 조선기선 소속의 태신호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60명이 넘게 사망한 사건이다
956년 1월 12일 새벽 3시 30분, 부산발 여수행으로 삼천포 앞바다에서 기항 중이던 조선기선주식회사의 135톤급 선박 태신호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불은 3시간 만에 진화하였고, 잠자고 있던 승객 147명 중 66명이 사망하였다. 경·중상자를 합하여 사상자는 88명이었다. 태신호는 1955년 12월에도 통영 앞바다에서 태풍호와 충돌하여 5명이 행방불명된 사고가 있었다
1950년 애치슨 미 국무장관, `애치슨라인발표
에치슨 라인 선언은(Acheson line declaration) 1950년 1월12일 발표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에 의해 발표된 선언이다
여기서 애치슨 라인은 미국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극동방위선을 의미한다
1950년1월10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비밀회담에 참석한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이 타이완의 동쪽 즉 일본 오키나와아 피리핌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말하였다
이틀 후(1월12일) 외교위원장 톰 코널리는 이를 대외에 발표하였다
애치슨은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열린 전 미국신문 기자협회에 참석하여 ‘아시아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면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동북아시아 방위선을 재확인하는 발언을 하였다
태평양에서 미국의 지역방위선을 알류산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연설을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 선언취소를 강력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흔히 `애치슨 라인`이라 불리우는 이 동아시아 방위선 설정으로 애치슨은 6.25를 발발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선언이 6.25 발발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통주의자들은 이 연설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예측하지 못한 미국의 결정적 실책이라고 보는 한편 일부 학자들은 이 연설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음모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애치슨은 이 지탄이 평생 마음에 걸린 탓인지 1971년 타계하며 "불행한 한국에 `불안한 침묵`이 퍼져 가고 있으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훗날 회고록에서도 당시 주된 관심은 중국이었다고 밝히며 6.25와는 무관함을 주장했다.
1950년 서울 국제 전신전화국 개국
1949년 일본의 현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출생
1946년 신탁통치반대 국민대회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5년간의 미소신탁통치안이 가결되고 미-소공동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외신보도가 발표되자 1946년 1월 12일 독립정부의 수립을 갈망해 온 전국민은 이에 격분하여 신탁통치 반대 전국대회를 열고 100여 개의 애국사회단체와 정당의 이름으로 신탁통치 반대성명을 전개했다.
특히 김구와 임시정부계는 반탁과 즉각독립을 내걸고 운동의 선두에 나섰으며 이러한 반탁운동은 민족감정을 자극하여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좌익세력이 박헌영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신탁통치에 대한 태도를 표변하며 찬성에 나섬에 따라 좌우익의 분열이 시작됐다. 이후, 남한에서의 반탁운동은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될 때까지 극렬하게 전개됐다.
1946년 UN안전보장이사회 발족
1942년 미국과 멕시코 공동방위위원회 설치
1933년 평북 평천리에서 고구려시대 운하 유적지 발견
1931년 인도에 대폭동
1931년 중강진 -43.6℃ 사상 최고 추운 날씨 기록
1923년 의열단원 김상옥 열사 종로 경찰서에 폭탄 투척
의열단원 김상옥 열사가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 일경과 매일신문 기자 등 7명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며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현장을 벗어난 김상옥은 사건 후 후암동의 친척집과 금호동의 안장사, 효제동의 이혜수 집, 홍제동의 동지 집을 전전하며 거처를 옮겼으나, 1월 22일 새벽, 홍제동에서 끈질기게 뒤쫓아온 경찰 수백 명에게 포위된 채 격전을 벌이다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자신의 총으로 자결했다. 일경 15명을 살상한 뒤였다.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면서 확인한 총상만 11군데에 이를 정도로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며 일제하 국내외에서 전개된 의열투쟁 가운데 가장 장렬하고 대표적인 항일 시가전이었다.
189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상옥은 일찍이 아버지를 잃어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낮에는 철공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를 했다. 1910년 경성영어학교에 입학해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을 기르며 물산장려운동과 야학운동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4월 비밀결사단체 혁신단을 조직,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이듬해 8월 일본 총독 사이토 암살계획이 사전에 발각돼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의열단에 가입, 수차례 국내에 잠입하며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1904년 화가 이응로 출생
1899년 스위스 화학자 뮐러 출생
1896년 미국 심리학자 데이빗 웩슬러 출생
1896년 미국 헨리 루이스 스미스 교수, 최초의 X레이 사진 촬영
1879년 일본 천리교 창립
1834년 영국의 해외 노예무역을 폐지한 영국의 정치가 그렌빌 사망
1746년 페스탈로치 출생
1665년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