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7월 13일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발표됐습니다. 이번 대표팀 발탁에도 2가지 사항이 고려된 듯합니다. 병역면제 여부와 국제대회 경험이 그것입니다. 특히나 후자는 팀 전력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라 매우 중요한 대표팀 발탁 기준으로 보입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국제대회 경험’이 지나치게 모호한 개념이라며 이를 발탁 기준으로 삼는 건 무리라는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국제대회보다 자국리그 외국인선수를 상대로 한 성적을 참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혹시 외국인선수 상대 국내선수들의 기록을 알 수 있을까요. - 이영선 -
A. MBC-ESPN 임영환(33) PD는 야구기록의 성삼위(聖三位)라 할 수 있는 타율, 홈런, 타점을 맹신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OPS(출루율+장타율)나 WHIP(이닝당 출루허용수)등 시청자에게 다소 생소한 기록들을 중계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배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야구기록의 성삼위들과 같은 비중으로 배치하기도 하지요. 왜냐? 그런 기록들이 시청자들이 야구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으로 작용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임 PD는 최근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중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야구기록의 성삼위 옆에 OPS와 WHIP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앉혔듯이 이번엔 전통적인 대표팀 발탁 기준이었던 국제대회 경험 옆에 새로운 접근법을 앉히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스포츠기록 통계 전문업체인 Sports2i에 연락을 취한 뒤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국내선수들의 외국인선수 상대 성적을 알고 싶은데요.”
국제대회 경험과 외국인선수 상대 성적
한국야구위원회(KBO)윤동균 경기위원장이 밝힌 대표팀 인선 기준은 3가지입니다. “첫째 올시즌 성적 두 번째 국제대회 경험 세 번째 대회에 임하는 정신적인 자세.” 모두 이견을 내놓기 힘든 당연한 기준들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두 번째 기준으로 제시된 국제대회 경험은 한번쯤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SBS스포츠 김용희 해설위원은 현역시절 태극마크가 새겨진 대표팀 유니폼을 외출복처럼 입었던 이입니다. 그 만큼 국제대회 경험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은 국제대회 경험이 대표팀 인선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절은 지났다고 믿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전에는 선수들이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외국에 한 번이라도 더 가본 선수가 준비물도 잘 챙기고 몸 관리도 잘했습니다. 거기다 대표팀은 늘 뽑히는 선수들이 또 뽑히게 마련이었어요. 이건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쿠바, 대만도 마찬가지였죠. 늘 그나물에 그밥이었습니다. 당연히 상대국 선수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밖에요.” 여기까지가 김 위원이 밝힌 '국제대회 경험'의 정의입니다.
“그러나 1982년 이후 프로선수들은 국제대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어요. 막상 참가해도 몇 년에 한 번씩 태극마크를 달기 때문에 과거처럼 상대국 주요선수들을 잘 알지 못하죠. 게다가 해마다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때문에 더 이상 외국은 낯선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국리그에 외국인선수가 뛰는 시대를 맞은지 오래에요.” 김 위원이 국제대회 경험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시한 이유들입니다.
타당한 지적입니다. 많은 야구인들이 김 위원과 생각을 함께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비중이 축소된 국제대회 경험을 대신할 대표팀 발탁 기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 위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국인선수 상대 성적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는 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외국인투수 상대 타율과 OPS
외국인선수 상대 성적을 대표팀 인선의 작은 기준으로 삼아보잔 관점은 매우 독특하고 생경합니다. 물론 현재 국내무대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선수들의 기량이 일본, 미국, 쿠바, 네덜란드 등 야구강국 선수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각 팀 2명씩 총 16명에 불과한 외국인선수들도 충분한 비교지표라고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효한 의미를 갖기에는 충분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Xports 김건우 해설위원은 “외국인투수들은 국내 투수들보다 키가 커 그 만큼 릴리스 포인트가 위에서 형성된다”며 “올림픽 본선에서 우리나라와 맞붙게 될 미국, 쿠바, 네덜란드, 캐나다 투수들이 모두 이런 스타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이런 공통점과 특성을 고려한다면 대표팀 인선에 외국인선수 상대 성적을 참고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는데요.
국내 최고의 전력분석원으로 꼽히는 삼성 허삼영 과장도 “외국인선수에 강한 타자나 투수들이 국제대회에서도 잘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개 외국인선수들이 국내선수들을 충분히 연구한 뒤 공략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국내선수들도 자국선수들에 비해 외국인선수들을 낯설어 하기 때문에 외국인선수와 국내선수의 대전은 어느 면에서는 국제대회와 유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허 과장은 과거 모 선수의 예를 들며 “상대팀 투수들을 집중 연구해 단점을 찾은 뒤 공략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힘든 단기전의 국제무대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며“국내용과 국제용 선수를 나눈다면 그건 적응력과 순발력의 차이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올시즌 외국인선수를 상대로 한 국내선수들의 성적은 어땠을까요. 임영환 PD가 Sports2i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올시즌 외국인투수 상대 타율(40타석 이상)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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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서 탈락된 박재홍(SK)이 외국인투수를 상대로 33타수 16안타 타율 4할8푼5리를 기록해 이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역시 대표팀 자리를 이대호(롯데)에게 양보한 김태균(한화)이 40타수 18안타 타율 4할5푼을 기록해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표에서 보듯 대표팀 타자 가운데 외국인투수 상대 타율 10걸에 든 선수는 김현수(두산)가 유일합니다.
외국인투수 상대 OPS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김태균이 무려 15할2리를 기록하고 뒤를 이어 박재홍이 14할6푼4리를 기록한 게 눈에 띄입니다. 한화는 타격의 팀답게 이 부문에만 4명이나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한화 선수 가운데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건 김민재가 유일합니다. 여기서도 대표팀 선수 가운데는 김현수의 이름만 보입니다.
외국인타자 상대 피안타율과 피OPS
대표팀 투수진은 24명 가운데 10명입니다. 류현진(한화), 김광현(SK), 권혁(삼성), 봉중근(LG), 장원삼(우리·이상 좌완투수), 임태훈(두산), 오승환(삼성), 송승준(롯데), 한기주(KIA·이상 우완투수), 정대현(SK·언더핸드)이 그들입니다. 이 선수들의 외국인타자 상대 피안타율과 피OPS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단, 올시즌 국내리그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외국인타자가 카림 가르시아(롯데), 덕 클락(한화), 클리프 브룸바(우리 히어로즈), 로베르토 페타지니(LG), 윌슨 발데스(KIA 퇴출), 제이콥 크루즈(삼성 퇴출) 등 6명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현욱(삼성)이 외국인타자 상대 피안타율(20타석 기준) 5푼3리로 이 부문 1위입니다. 올시즌 피안타율이 2할4푼2리인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타자 킬러'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도 합니다. 국내프로야구에서 가장 저평가된 오른손 선발투수 가운데 한명인 채병용(SK)도 외국인타자 피안타율은 1할3푼6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표팀에 선발된 투수 가운데는 봉중근이 외국인타자 상대 피안타율 2할5푼8리로 가장 좋았는데 이범석(KIA)를 제외하고 시속 150km를 뿌리는 강속구 투수가 없다는 게 눈길을 끕니다.
전 삼성 외국인타자 크루즈는 이와 관련해 "한국투수들의 빠른 볼은 인상적이지 않으나 변화구는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 중간 정도로 빼어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외국인타자 상대 피OPS 역시 피안타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현욱과 채병용, 매트 랜들(두산), 이범석 등이 5할 밑을 기록하며 외국인타자에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봉중근을 제외하고 대표팀의 선발 트로이카로 불리는 김광현(SK), 류현진(한화), 송승준(롯데)의 외국인타자 상대 피안타율과 피OPS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래와 같습니다.
표에서 보듯 세 선수 모두 썩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나 미국 혹은 캐나다전 선발이 예상되는 송승준은 외국인타자 피안타율과 피OPS이 각각 3할8푼1리, 10할5푼1리로 리그 투수 가운데 최하위권입니다.
미국야구를 경험한 바 있는 어느 선수는 송승준의 외국인타자 상대 성적을 두고 "외국인타자들의 눈에 송승준의 공은 눈에 익은 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선수는 "송승준의 투심패스트볼이나 체인지업은 대개의 외국인타자들이 이미 마이너리그에서 경험했던 공"이라며 그러나 "역으로 눈에 익은 만큼 컨트롤만 뒷받침되면 충분히 타자들을 유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어차피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입니다. 이런 데이터도 한번쯤 활용해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이미 대표팀은 결정이 됐고 이제는 그들이 최선의 선택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일은 차 뒷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느긋하게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는 일밖에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