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디세이] 이준수 목사 "장애는 축복…내 삶이 그 증거"

뇌성마비 장애로 몸은 불편하지만 세상 그 어느 영혼보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이준수 목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뇌성마비지만 지적장애 없어
학창시절 성적 늘 최상위권
서강대 졸업 후 UCLA 유학
박사학위 좌절 후 신학 공부
한인 첫 뇌성마비 목사 돼
09년부터 홍보·문서 사역
"절망처럼 보이는 고난도
분명한 목적 있는 은혜"
2남1녀 중 장남인 그는 8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나 두 달간 인큐베이터에 있으며 심한 황달을 앓아 뇌성마비 장애인이 됐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것 빼고는 지적장애가 없었던 그는 강남 8학군 소재 고등학교에서 내신 1등급을 받을 만큼 학창시절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고
온화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그러나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다른 자신의 불편한 몸이 창피하기도 했을 듯싶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제게 몸이 불편해도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죠.
그런 어머니의 교육철학과 사랑 덕분에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사귀며 장애로 인한 콤플렉스 없이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 어머니는 그에게 세상을 향해 난 희망의 통로였다.
모친은 초등학교 시절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를 업고 등하교시켰고
장애인 전형이 없던 그 시절 그가 대학에 입학 할 수 있었던 것도 모친의 애끓는 간절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다.
당시 대입 학력고사 답안은 OMR카드에 작성해야 했는데 그의 떨리는 손 때문에 정확한 마킹이 불가능했기에
모친은 대학교들을 찾아다니며 그가 시험지에 답을 체크하면 학교 측이 이를 카드로 옮겨 달라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서강대 측이 이를 받아들여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돼 1988년 서강대 불문과에 입학했다.
여느 청춘처럼 연애도 하고 이별의 아픔도 맛본 평범하지만 눈부신 시절이었다. - 기사 중 일부 -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224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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