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 피었나 안 피었나 궁금은 하고 외 1편
황형철
삼백오십 살쯤 됐다는 화엄사 홍매에 주말 인파 몰렸다는데 한눈에 봐도 우아한 자태에 가 보고 싶은 속내 숨길 수 없지만 그래도
동백이 피었을까 제일 궁금스럽다
벚꽃이 활짝 전농로나 녹산로 소식은 심심찮게 오고 오동도나 선운사 같은 전국적 명소도 있지만 비할 게 아니고
동백은 향기가 없어 빛으로 새를 불러 모은다지
큰넓궤 가는 길에 잃어버린 마을에 점점이 피기 시작할 즈음 제법 시적인 말을 근사하게 얹어서 부쳐 준다면 그 사람 평생 사랑하고 말 텐데
누추한 뜰이나마 한 그루 가꾸어 설룹게 스러진 정낭 살그머니 어루만지며 빛으로 말하고 음악도 풍경도 지을 것을
남쪽 섬에서 연락이 오나 안 오나 빨갛게 속을 태우고 있다
집에 와서 자고 가
하루가 멀다고 붙어 지내던 형이
집에 와서 자고 가란다
옛 시절 술병보다 흉하게 쓰러져
이 새끼 저 새끼 누가 누구 새끼인지
계통도 혈통도 무시하고 족보를 꼬았지
실패뿐인 연애부터 문사철까지
맥락 없이 떠들다가
술집이며 들판이며 애인에게 뛰쳐나갔어
이젠 밤새워 폭음할 체력도 안 되고
속이나 달래자고 라면을 끓이지 않는다
담쟁이처럼 벽을 덮은 책이 고작이던 때가
졸업앨범처럼 바래 가고 있기는 할 텐데
큰맘 먹고 나선 길에 모처럼 만나도
객쩍은 돌발은커녕
볼록한 뱃살 앞에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두고
막히기 전에 내려갈 걱정이 앞서
우리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평수 넓은 집도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자동차도 가졌는데
먹어도 먹어도 심장 아래 허기가 남아
여러모로 생각이 드는 것이다
― 황형철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 (시인의일요일 / 2024)
황형철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겨를』 『사이도 좋게 딱』.
숨어있기 좋은 마음을 골라 시로 펼쳤습니다.
진심이 스며, 애틋함을 감출 수 없는 시의 마음
인쇄소에서 새 시집이 도착한 다음 날에도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시를 읽고 쓰는 시인이 있다.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서정의 물길을 헤쳐온 황형철 시인이다. 한눈팔지 않고 유별난 착실함과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지역 시단을 지키며, 시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순정의 세월이 어느새 25년. 드디어 그의 세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황형철은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복원하는 시인의 예지를 지니고 있는 시인이다. 오직 황형철만이 가능한 감각의 서정을 만들어내며, 주변의 일상과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간절하고 뜨겁게 시를 써낸다.
이전 시집들이 식물성의 세계에 천착하며 사유의 깊이와 진정성 있는 울림을 보여주고, 인간의 삶과 자연의 연결 지점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은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특유의 정서를 재치 있게 반영하면서, 세속 인간의 내면에 숨은 인간다움을 찾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지니고 있는 제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제주도에 별다른 연고가 없으면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일주일, 열흘, 한 달씩 제주도에서 생활하며 제주를 애정한다.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 편편마다 감출 수 없는 애정이 스며있다.
그는 이미지를 애써 만들려고 하지 않고, 문체 또한 일반화된 도식을 떠나서 발생상태의 감각적 인상을 참신하게 포착하는 데 노력한다. 자신의 일상을 시의 한복판으로 끌고 나와서 일상생활 속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한편, 가장 낮은 곳으로 시의 마음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애정으로 시에 견고한 의미의 구조를 구축한다. 황형철의 시 속 시인은 자기와 다른 존재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초월의 근거가 된다. 그의 시가 맑고 순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름답고 지극하고 속 깊은 서정
숱한 상처와 애잔한 사랑에 대한 반듯한 예의
황형철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는 오랜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던 삶의 흔적들을 섬세한 시선과 언어로 발화한 사유와 감각의 기록이다. 시인은 차분하고도 정제된 목소리로 세련되고도 살가운 언어적 생동감과 실물감을 우리에게 건네준다. 가장 유연하고도 탄력 있는 사유와 감각은 어느새 인생론적 혜안으로 이어지고, 시의 저류(底流)에는 밝고 투명한 비애와 희망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다. 그렇게 황형철의 시는 삶의 숱한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거나 사라져 간 존재자들에 대한 애잔한 사랑과 관심에서 발원하여, 사물이든 인물이나 풍경이든,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자리를 마련해 주는 데 집중한다. 그것이 오래된 그만의 시적 존재론인 셈이다. 이때 그의 시는 역설적 희망의 전언으로 몸을 바꾸어 간다.
사물이 거느리고 있는 모양과 소리에 대한 발견 과정을 통해 서정시는 시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에너지에 구체화한 형태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시인의 자기 고백을 통해 삶의 성찰적 기능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이나 장면을 구체적 사물의 이미지로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그 질서에 자적(自適)하려 하는 황형철 시인은 아름답고 지극하고 속 깊은 서정을 이렇게 풍부하게 건네주었다. 최근 우리 시단이 거둔 일대 수확이요, 그를 언어에 대한 집념과 소리에 대한 명민한 감각의 시인으로 만들어 줄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그 언어와 소리에 새로운 귀를 열게 될 것이다.
황형철은 남다른 기억에 대하여 반듯한 예의를 갖춘 시인이다.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순간적 존재 전환을 수행하게 되고, 일상을 벗어나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의 이동을 꾀하게 된다. 그 심미적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은, 뭇 사물로 원심적 확장을 했다가 다시 스스로에게 귀환하는 구심적 과정을 밟아 간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베르그송(H. Bergson)이 말한 ‘지속의 내면적 느낌’이 한없이 펼쳐지면서, 경험적 기억을 통해 현재 자아의 마음에 따라 조정된 시적 시간을 구성해 가는 과정이 담기게 된다. 그 곡진한 서정에 이제 우리가 귀를 기울일 차례이다. “언제 한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매번 경험하고 고백하면서 말이다.
― 시인의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