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그늘_ 강연호(1962 ~ )
사람의 그늘을 만난 지 오래다
어디 그늘이 없었을까, 눈 흐려진 탓이다
나이 들면 자꾸 멀리 보게 마련이고
멀리 건너다보는 시력으로는
사람의 그늘도 흐리게 뭉개지는 법
그늘을 헤아리는 심사는
어느 늙은 나뭇가지 사이로
한때 무성했던 세월이 구름처럼
뭉텅뭉텅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바람 가는 방향으로 귀를 연 이파리들의
여름에는 키가 크고 겨울에는 늘어졌을
한 시절의 내력을 가늠하는 일
우듬지 여윈 손가락이 바람을 쓸어 넘기듯
아, 나도 언젠가 저런 빗질을 받는 적이 있었더랬는데
덜 마른빨래처럼 고개 수그리고
머리를 맡겨 생각에 잠기는 일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서늘했던 그늘
그 어두웠던 눈 밑으로
문득 흔들렸을, 잠깐 반짝였을
불빛인지 물빛인지를 놓치지 않았으나
그저 놓치지 않았을 뿐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애써 멀리 외면했던
그늘의 길이를, 마침내는 깊이를
이제 와 곰곰 되짚는 일이다
그러나 눈 흐려진 지 오래
한 뼘 두 뼘 겨우 더듬을 뿐
사람의 그늘을 재어본 지 오래다
[2012년 발표 시집 「기억의 못갖춘마디」에 수록]
《A Whiter Shade of Pale》
영국 출신 밴드 Procol Harum 1967년 발표 曲였으며,
애니 레녹스(1954~ ) 1995년 커버 曲입니다.
요 曲과 아래 영화 「Easy Virtue」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ㅎ
2008년 제작된 영화이니 제시카 비엘(1982 ~ ) 26세, 콜린 퍼스(1960 ~ ) 48세 모습...
https://youtube.com/watch?v=mYGsmDtVIyE&si=EnSIkaIECMiOmarE
첫댓글 ㅎㅎ
안녕하세요
'사람의 그늘'
심오하고 멋진 시
잘 감상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요기서 '그늘(shade)'은 우수憂愁, 애절哀切 등으로 짐작합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