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긴 연휴를 그냥 말 수는 없었다.
그는 지난 화욜부터 6일 간을 쉰 것이다.
우린 산에 가기로 했다.
첨엔 내장산을 생각했다가 내가 늦잠 자는 바람에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등산 지도를 펼쳤다.
오늘 우리는 주차장에서 새인봉을 거쳐 대피소로
그 곳에서 미답의 코스인 주남마을로 해서 내려오기로 했다.
차를 두고 가야 자유롭다.
차를 가져가면 원점회귀해야 하기에 코스선택부터 매이게 된다.
집 뒤에서 1001번을 탔다.
둘이 함께 타느라고 맨 뒷 좌석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무릎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차는 남광주를 거쳐 증심사에 도착하는데
오랜만에 타는 버스라서 그런지 아님 움직임이 큰 뒷자리라서 그런지
우린 멀미기를 느꼈다.
종점에 내려 세 줄의 김밥과 1000원어치의 삶은 고구마도 샀다.
한 달여 전에 오를 때 공사중이었던,
주차장을 지나 본격 등산로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부근의
길이 말쑥하게 정리(도시화)되어 밋밋하고 발도 피로하고
심정적으로도 삭막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낙엽되어 떨어져 앉은 누런 솔잎이 여전히 계절의 운치를 내고,
우릴 반기는 듯 노래하는 이름 모를 새의 노래는 자연으로부터 우리가 환영받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뛰는 듯 했다.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다.
가족단위로 또는 친구와 어울려 삼삼오오 새인봉으로 향한다.
설익은 문학적인 표현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는 잔설의 풍경들...
응달진 사면엔 눈이 떡가루처럼 내려 앉아있고
등산화의 흙발굽아래 길마다의 속살은 얼어 있다.
방심하고 호기를 부리다가는 복병처럼 숨은 얼음길에 엉덩이를 찧기 십상이다.
그도 뒤 따라가는 나를 염려하느라 뒤를 돌아보다 미끄런 얼음으로 인해
춤추듯 몸을 부르르 떨며 넘어질 듯 했으나
운동으로 다져진 신경인지라 곧 중심을 잡아 창피한(?) 꼴을 면할 수 있었다.
새인봉의 양지쪽,
소태마을(?)의 고랑에 난 한가로운 황토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각자의 방석을 펴고
우린 김밥을 먹었다.
"우웩... 왜 이리 짜?"
"시금치를 빼고 먹어봐."
그래도 짰다.
그래서 우린 한 줄은 그냥 남기고 대신 삶은 고구마를 먹었다.
물고구마는 얼어서 그런지 반으로 나눈 가운데에 조금 시커먼 부분이 눈에 보이긴 했으나
달고 맛있었다.
물 마시고 귤도 까먹고 다른 쓰레기는 챙겨 배낭에 넣고
귤껍질은 부엽토 바닥을 나무로 헤집어 구멍을 만들고서 넣고 다시 낙엽을 모아 덮고 발로 밟아주었다.
점심을 먹을 때 그는 우모 조끼를 꺼내 내게 입혀 주었었다.
땀이 식으면 체온이 떨여져 고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조끼를 벗지 않고 배낭을 매고 반대편 증심사 쪽을 조망했다.
바람재에서 토끼등 쪽으로 난 임도,
그 아래로 차 밭이 아치를 그리며 펼쳐진 거대한 그림이 보인다.
그 아래가 증심사이고...
우린 철교를 지나고 목교도 지났다.
암벽등반하는 태종대를 가까이서 보니 곧 떨어질 듯 살이 떨렸다.
내려와 새인봉 삼거리에서 숨은 사거리를 지나치지 않고 머리에 입력하고 언젠간 저길도 가보리라고 마음속에 다짐했다.
중머리로 오르는 길이 지리하다.
오르는 우리쪽 사람보다 내려오는 더 많은사람들의 무리...
우린 쉬지않고 천천히 오르고 또 올라 대피소에 닿았다.
좌는 중머리다.
직진하는 방향은 용추폭포쪽이고...
눈 앞에 중봉과 장불재가 보였다.
그 사이에 입석대의 끝이 조금 보이고,
좌로 서석대와 통행이 금지된 구역인 천황봉도 보인다.
감히 누가 막는가?
용감한 우리의 발길을...
무등산엔 군부대가 들어서 있어 통일조국을 꿈꾸는 씩씩한 젊은이들이 무등을 지킨다.
오른쪽으로는 장불재에 이어 백마능선이 이어지고
계속 이어지는 끝에는 안양산이 자리한다.
그 우로는 만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무등은 광주와 담양, 화순의 세 지역에 걸쳐 있는 큰 산인 것이다.
황금코스라고 선인들이 이미 개척해 놓은 고속도로격인
증심사, 중머리, 중봉,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 코스만 타면서 무등산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무등은 그 보다 훨씬 넓고 장대한 산인 것이다.
백마고지에서 규봉, 산장과 원효사 쪽의 아랫편인 담양쪽의 무등을
올해에는 몇차례에 걸쳐 나누어 가보고 싶다.
우린 그렇게 무등을 한 눈에 바라보고
마집봉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산상방뇨를 꿈꾸며...
땀으로 수분배출이 안되니 요의가 느껴진다.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은 사람들의 출입이 별로 활발한 곳이 아닌지라
산상방뇨도 그리 어렵게 생각 안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다.
나는 오른 쪽을 향하고,
그는 왼쪽을 보고 행동했다.
마집봉을 향해 가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소태역, 대아(?)아파트에서 오는 길이라 했다.
적막한 산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반가워 몇 가지를 물으며 대화했다.
헬기장에 도착해 귤을 까먹고,
아래로 보이는 2수원지와 주남 저수지를 보면서 지도를 펼쳐 보았다.
우린 주남저수지를 거쳐 주남마을로 가기로 계획했었다.
나침반도 꺼내 방위를 확인했다.
좌로 가면 2수원지가 나올 것 같으니 우로 가자는 결정을 했다.
가다가 블랙의 '영원'을 입은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그와 이야길 나누며 지도를 꺼냈다.
"누가 만든 지도지요?"
"아, 삼양타이어 다니던 그 형님이 만드신 거네."
알고 보니 그는 무등산의 프로 산악인이었다.
68년 부터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녁에도 후래시만 있으면 산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지도의 미비점을 몇 가지 지적했다.
조금의 수정보안이 필요하지만 참 잘 만들어진 지도라고 칭찬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무등산 지도가 우리가 가진 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는 마집봉을 중심으로 연결된 길에 대해 설명해 주고 중머리를 향해 갔다.
우린 마집봉에 도착했다.
그 곳은 마치 마이산을 옮겨 놓은 듯 했다.
아! 누가 그런 예술품을 만들어 놓았을까?
평평한 돌조각을 깨어 층층이 쌓아놓은 거대한 돌탑들...
그것들은 첨성대 같기도 하고 말의 귀 같기도 했다.
10여 기 정도의 탑들이 나란히 서잇었다.
근처에는 바위나 돌이 눈에 띄지 않는데 어디서 구해다
그런 정성스러운 작품들을 만들었을까?
그는 뭘 기원하고 염원하며 그 탑들을 쌓았을까?
그는 얼마나 오랜동안 이 작품들을 만들어 왔을까?
미완의 작품들이 몇 기 있었고 그것들은 지금도 진행중인 듯 했다.
유한의 우리인생, 그의 생명이 끝나도 그것들은 길이 남아 그를 이야기하고 그를 보여주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산과 함께 오래 서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보며 우린 사진도 찍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갈림길에서 우린 소태쪽을 택했다.
그 길은 경사가 급했으며 응달이라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어,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으면 위험하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안하려 하고 그는 챙겼다.
나는 적당한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의 말대로 아이젠을 착용하고 게처럼 옆으로 걸으며 얼마를 내려가니
임도가 나온다.
"에이, 싱겁다."
막판에 쉬운 길을 찾다가 너무나 싱겁게 끝내고 만 것이다.
그 마을은 소태동,
산중마을로 집은 몇 가구 보이지 않고,
논이 있고 밭이 보인다.
한 참을 내려 가니 현대식 절도 있고
오염물질 내뿜는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듯 했다.
시커먼 연기들을 내뿜는데, 매캐하다.
"손수건을 입과 코에 대."
우린 숨도 크게 안쉬며 걸음을 빨리 해 근처를 빠져 나왔다.
사람들은 그 깨끗한 자연을 오염시키고 싶을까?
청정지역까지 숨어들어 오염물질을 내뿜어 대기를 발암물질로 오염시키고
맑은 물을 끔찍한 오폐수로 더럽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해가 안된다.
나쁜사람들 같으니라고...
신진자동차 운전학원을 지나 마운틴 마트를 지나니 큰 길이 나온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다 되었다.
12시 20분에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가게 앞까지 내놓고 파는 등산복 등 옷들을 구경하며
만두집에 들어가 만두를 사서 들고 버스를 기다린다.
117, 17, 118번 등 우리 집으로 가는 차는 널려 있다.
우리 앞에 미끄러지 듯 정차하는 좌석버스인 117번을 탔다.
냄새가 덜 나게 도시락을 조심스럽게 열고 만두를 하나 꺼내 입에 넣는다.
남은 만두가 식을까 봐 그는 빨리 뚜껑을 닫는다.
"맛있어?"
허기지다며 달게 먹는 나를 그는 웃으며 만족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는 밀가루 음식이 잘 맞지 않는 고로 먹으면 자칫 탈나기 쉽다.
그래서 나 혼자서 다 먹었다.
상무지구에 내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는 쑥호떡과 붕어빵을 샀다.
그는 집에 있는 인절미를 렌지에 덥혀 꿀을 찍어 먹고 싶다고 했다.
오늘 산행, 참 좋았다.
길고 긴 설 연휴기간 중에 하신 무등산 산행기를 읽으니, 오래전 카페에 올렸던 제 무등산 산행기가 부끄럽게만 느껴집니다. 또렷이 무등산에 보이는 듯 싶습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뜻을 가진 산이라 그런지 그리 산행이 어렵지만 않습니다만, 그리 만만히 보이는 산행길도 아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첫댓글 작년 1월초 일터를 옮기기 전 얻은 겨울휴가때 통영가는 길에 광주에 들려 광주운영진 브렝땅님 차를 얻어타고 무등산 중턱인가 산사에 들려 광주시내를 내려다 본 적이 있습니다. 수년전 무등산 산행이후 간만에 들린 것이지요. 오늘 업무차 빛고을에 내려갑니다. 저녁에 상무지구에서 카페친구들이나 만날까 생각중..^^
길고 긴 설 연휴기간 중에 하신 무등산 산행기를 읽으니, 오래전 카페에 올렸던 제 무등산 산행기가 부끄럽게만 느껴집니다. 또렷이 무등산에 보이는 듯 싶습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뜻을 가진 산이라 그런지 그리 산행이 어렵지만 않습니다만, 그리 만만히 보이는 산행길도 아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무명씨님, 참 반갑습니다. 상무지구에 오신다면 만나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밝은님~~방가와여..광주분이시네여..전라게시판에 발도장 찍지 않으실래여~ 쥔장님은 브렝땅님이구어 매월 책을 선정해서 읽고 정모도 한답니다 무등산 수기 인상깊게 잘 읽고 갑니다 해피한 하루 되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