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배달된 유품을 안고 유족들은 또 한번 오열했다.
전투복 주머니에서 나온 휴대전화에는 애써 통화를 시도한 흔적이
피묻은 지문으로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하려 했다면 엄마한테 걸려던 게 틀림없어요.
형은 효자였거든요.”
TV에 나와 울먹이며 말하는 동생의 모습은
많은 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혼미해진 정신으로 ‘엄마’를 찾던 병사를 포함해
5명의 영웅들은 끝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벌써 먼 추억의 희미한 단편처럼 여겨지지만 불과 한 달전의 일이다.
그 때 우리는 두 부류의 영웅을 보았다.
한쪽은 국민적 열광 속에 월드컵 경기장에서 태어난 축구 영웅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국민이 눈물로 보낸 서해교전의 영웅들이다.
태극 전사들이 월드컵 4강의 신화로 국민에게 영광을 바친 그 시간
전쟁영웅들은 나라를 지킨 명예를 국민의 가슴에 심고 떠나갔다.
그 즈음 축구 승리를 경축하는 잔치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대중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성황 속에 밤하늘의 불꽃으로 장식됐지만
하루 전 순국 영웅들을 보내는 합동영결식은
출입통제 지역인 국군병원에서
대통령과 국방장관도 없이 유족들의 흐느낌 속에 치러졌다.
김 대통령은 우리 선수들이 뛰는 거의 모든 경기를 찾아 선수들을 응원했지만
일본 방문길의 대통령은 서울공항에서 헬기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분당 국군수도병원 영안실의 용사들은 찾지 않았다.
축구 영웅들은 경기가 끝난 후 3억원씩 포상금을 받았지만
순국 영웅들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지급되는 정도인
평균 3000만원의 ‘조의금’을 받았을 뿐이다.
월드컵 전사들의 활약상은 경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방송에서 반복 재생되어 모든 경기 장면을 외울 정도지만
참수리357호 영웅들은
‘우리 어선이 원인 제공을 한 우발적 사건’이라는
일부 언론의 해괴한 논쟁에 끌려다니다가
국민의 감각에서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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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4명)
△정장 대위 윤영하(해사 50기 26세)
△병기사 하사 조천형(부사관 173기 26세)
△병기사 하사 황도현(부사관 183기 22세)
△내연사 하사 서후원(부사관 189기 22세)
▽실종자(1명)
△중사 한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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