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召命)을 찾으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에 열정도 없고, 정신적 고통도 없고, 의심도 불안도 절망도 없이 자족(自足)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믿을 뿐, 하나님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다.” 이는 스페인의 철학자 우나무노 이 후고(Miguel de Unamuno y Jugo)가 한 말이다.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아닌 하나님 그분 자체를 믿는다면 우리는 나를 창조하신 그를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그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며 살고자 하게 된다.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 야고보(Jams)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14-26절).
우리가 이 험난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강력한 열정이 있어야 하며, 그 실천의 과정에서 닥치는 어려움과 좌절 등으로 고통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닥치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세례 요한(St. John the Baptist)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심한 것처럼 한 때 의심을 품는 일이 있게 마련이며 덩달아 불안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때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험난한 과정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흔들림 없이 실천해나갈 때 그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야고보의 말처럼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야고보서 2장 22절).
여기서 주목할 바는 우리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과업을 일생의 소명(召命)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종종 일어나는 의심과 불안과 절망들을 능히 극복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과업을 굳건한 믿음으로 내 평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 한가 하는 것이 참된 믿음의 관건이 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내 평생의 소명은 과연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이를 확실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우리 선조님들이 입지(立地)를 무엇보다 강조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인조임금에게 먼저 뜻을 세울 것을 주문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성지(聖志)를 굳게 정하시어 밖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만사의 근본이 세워질 것입니다. ···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도 만약 뜻이 세워지지 않으면 끝내 이룰 수가 없습니다. 뜻을 세우는 요체는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하였다.<조선왕조실록 인조16년(1638년) 5월 16일>. 한편 율곡 이이 선생은 그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제1장 입지(立志)에서 말하기를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게 여겨 물러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 사람도 그 본성은 성인(聖人)과 똑같으며 사람의 본성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구별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인은 유독 성인이 되고, 나는 유독 평범한 사람이 되는가. 이는 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고 앎이 분명치 못하고, 행함이 독실(篤實)하지 못해서이다.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런고로 “내 일생에 걸친 소명(召命)을 찾으라!” 이것이 우리가 굳건한 믿음과 실천으로 현세에서 축복을 받고 내세에 천국(天國)으로 들어가는 관건이 된다.
2024.11.12.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