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불닭집이 문을 열었다 닭 초상이 활활 타오르는 사각 화장지가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더 이상 느끼한 입맛을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공익적 문구를 실은 행사용 트럭이 학교 입구에서 닭튀김 한 조각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불닭집 주인의 화끈한 기대를 와와, 맛깔나게 뜯어 먹는다 삽시간에 매운바람이 불고 꿈은 이리저리 뜬구름으로 떠다닌다 낙엽, 전단지처럼 어지럽게 쌓여가는 십일월 벌써 여러 치킨 집들이 문을 닫았다 패션쇼 같은 동네였다 가게는 부지런히 새 간판을 걸었고 새 주인은 늘 친절했고 건강한 모험심이 가득했으므로 동네 입맛은 자주 바뀌어 갔다 다음은 어느 집 차례 다음은 어느 집 차례 질문이 꼬리를 물고 꼬꼬댁거렸다 졸음으로 파삭하게 튀겨진 아이들은 종종 묻는다 아버지는 왜 아직 안 와 파다닥 지붕에서 다리 따로 날개 따로 경쾌하게 굴러 떨어지는 소리 아버진 저 높은 하늘을 훨훨 나는 신기술을 개발 중이란다 어둠의 두 눈가에 올리브유 쭈르르 흐르고 일수쟁이처럼 떠오르는 해가 새벽의 모가질 사정없이 비튼다 온 동네가 푸다닥, 홰를 친다
[심사평]
상상력의 활달함과 표현의 신선성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교수)
2008년도 수상자로 <안녕, 치킨> 등의 이명윤 시인을, 그리고 신인상 수상자로 <빈 집>외의 김민수 시인을 선정한다. 이명윤 씨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상상력이 자유분방하고 감수성이 신선하다. 젊은 시정신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뜻이 되겠다. <이번엔 불닭집이 문을 열었다/ 닭초상이 활활 타오르는 사각 화장지가/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중략- 낙엽, 전단지처럼 어지럽게 쌓여가는 십일월/ 벌써 여러 치킨집들이 문을 닫았다/ 패션쇼 같은 동네였다 가게는 부지런히 새 간판을 걸었고/ 새 주인은 늘 친절했고 건강한 모험심이 가득했으므로/ 동네 입맛은 자주 바뀌어갔다 -중략- 일수쟁이처럼 떠오르는 해가/ 새벽의 모가질 사정없이 비튼다/ 온 동네가 푸다닥,/ 홰를 친다> 라는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신선한 비유와 생동감있는 감각으로 일상성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서정을 노래하되 긴장력과 신선도를 유지하는 감수성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의 이사> <폭설> <라디오 여왕> <그 동네 신발들은 공손하다> <일용직 정씨의봄> 이들 속에는 일상성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함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넘실거리고 있어서 관심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김민수의 <빈집> 등의 시편들에도 가난한 일상의 아픔과 슬픔들이 신선한 감각과 비유로 표현되어 주목된다. <종기처럼 그을린 마을이 늙을 때마다/ 빈 집 하나씩 늘어갑니다/ 허전한 맘에 빗물은 아무데서나 울며 흘러가고/ 꼭두새벽 소죽 끓이며 아침을 열던 부엌도/ 밖으로 나와 하늘만 봅니다/ 관절염처럼 삭여진 기둥 옹이에/ 마파람 설렁설렁 드나들어 휘어지고 -중략- 문패하나 세우지 못한 죄로 대문은 충혈되어/ 세월의 녹만 멍처럼 번집니다>처럼 시적 직관과 표현력이 돋보인다. 사실 이 두 분의 시뿐 아니라 최종심에 남았던 김판길, 박재홍, 전정숙, 최우민, 황종배 시인들도 수상작 수준에 들었지만 상대적인 면에서 한 편씩만 뽑는 것이어서 다음 기회로 넘겨졌음을 밝혀둔다. 모쪼록 수상자 두 분이 더욱 정진하여 구상솟대문학의 생명사랑, 인간사랑, 평화사랑의 정신을 더욱 기리고 살려 나아가기를 기원하며 축하의 뜻을 전한다.
구상솟대문학상운영위원회
심사위원 : 유안진, 김재홍, 방귀희
이명윤 시인 1968년 경남 통영 출생. 2006년 <시마을문학상><전태일문학상>수상.
2007년 시안 신인상. 제9회 수주문학상 우수상(2007) 제12회 구상솟대문학상 본상(2008)
첫댓글상징성 풍부한 표현이 정말 독특하고 신선하네요...작은 동네에 밀어닥친 새 변화의 조류가 상거래 관계와 여러 일상까지 바꾸어 놓는 심각함을 잘 붙잡아 두고 있는 것 같군요...규모의 경제로 무장한 다국적 기업의, 재래시장 잠식과 같은 사회적 긴장을 쉽게 대체해 놓고 있는 느낌이 옵니다...
첫댓글 상징성 풍부한 표현이 정말 독특하고 신선하네요...작은 동네에 밀어닥친 새 변화의 조류가 상거래 관계와 여러 일상까지 바꾸어 놓는 심각함을 잘 붙잡아 두고 있는 것 같군요...규모의 경제로 무장한 다국적 기업의, 재래시장 잠식과 같은 사회적 긴장을 쉽게 대체해 놓고 있는 느낌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