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찬가
막걸리를 마셨지 어머니의 심부름에 뒤뜰 논에 계신
아버지한테 가다 목이 말라서 주전자 뚜껑으로 홀짝
한번 집 나간 탕아 두 번인들 가출 못하리오
겨울철 여물 솥에 불 붙힌 아버지의 당부에
아궁이 속 남은 잿불에다 술 주전자 얹어 놓고
한참 있다가 뜨듯 데웠나 싶어 홀짝 또 마셔 보았지
막걸리란 게 시원하게도 따듯하게도 좋더라만
최루탄의 습격으로 냅다 도망친 동성로의 골목
서말통 막걸리집 서 백골단 갔나 안 갔나 망보며
은신 중 동그란 깡통 탁자에 모여
막걸리에 어울린 노가리 질겅거리고선
정권을 탓하며 위정자 흉보며 사상과 논리의
날갯짓으로 밤이 새도록 마시곤
개 같은 세상의 위정자들 꼴 보기 싫은 더부룩
줄 곳도 마땅치 않아 밤새 외로워한 전봇대에다
외사랑의 들큰 한 놈 나 또한 개 되어 퍼부어 주었지
핑계가 없는 무덤이 없어 가출한 탕아 제 버릇 개 줄까
월하의 월침삼경이라 한들 명월이 바뀌리오
이런들 저런들 세상이 변하랴 변한 건 산천과 나인 걸
너는 오롯이 나는 소롯이 피었다 지는 게 인생이지
지긋이 애뭉한 막걸리 들큼하게도 쌉살하면
세상도 익어 물욕이 없을 굶주린 탕아 집으로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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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 보니 이제야 막걸리 맛 알겠더라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어머니 심부름으로
족히 3킬로미터는 넘을지 싶은 거리에서 술 주전자 들고 걷노라면
두됫짜리 주전자에서 찰랑거리는 막걸리가 삐죽거리며 흘러나온다.
그 하얀 액체가 아깝고 궁금도 하여 뚜껑으로 조금 마셔 보았는데
허이구야 그 시큼 떨떠름한 맛이라니, 왜 이걸 그리 좋아라 하시며 마시는지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더라
유월의 날씨에 그늘도 없는 어머니 심부름 길
가도 가도 집은 안 보이고 목은 마르고 그래서 찔끔찔끔 마셨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며 집으로 온 나에게 어머니 말씀
"아이고 야야 날도 더운데 들고 오너라 애썼다 얼굴이 다 빨갛구나." 하시는데
속으론 뜨끔했었다 홀짝인 막걸리에 취한 걸 들켰나 싶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철
헛간을 등진 아궁이에서 소여물을 끓이시던 아버진
"야야 여기 불 다 꺼지면 막걸리 데워 오너라." 하셨지
나는 막걸리 덥히면서 그 잿불에 고구마 구워 먹는 재미로 막걸리 심부름 곧잘 했다
막걸리란 게 여름철 차가운 우물 안에 넣어 차게 마셔도 맛있지만
겨울철 은근하게 덥혀서 마시면 그 맛이 더욱 달착 지근하다
타이어 표 검정 고무신 신은 까까머리 쪼맨한 아이가
어른의 길목으로 가는 여울목에선 제 딴에는 힘든 삶의 부대낌에
넘치는 열정으로 고만고만했던 동무들과
무소불위의 도도하기만 했던 독재와 이념의 담벼락에 청춘을 들이박곤 했다
쥐뿔도 가진 게 없었던 아해들의 용기였음이라
번화가의 뒷골목 대폿집엔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애인의 변심을 탓하며 한잔
정권의 오만방자에 분노의 열변으로 한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세상의 이질감에 속은 더부룩
그 막걸리 밤새 외로워한 전봇대에다 옛다 너도 마셔라 쏟아부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의 아이러니와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 같은 아픔을 청춘이란 이름으로 달게 받아야 했던 그 시절
무엇으로도 자신을 보상 받지 못했던 탕아는
결국 세상과 타협을 하며 명월이 휘청한 달빛바다에 풍덩 빠지더라.
지기미 떠그랄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나도 막걸리 한 잔에 풍덩 빠진다.
시큼텁덜하면서도 달착 지근한 삶이란 그 오묘한 맛의 세상으로 탕아도 나도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