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매일경제신문, 5월 26일자
#1. 텔라닥(Teladoc)은 2002년 설립된 미국 최초·최대의 비대면 의료 기업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의료인의 영상통화나 전화 진찰을 받고, 전자처방전으로 처방약까지 배송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년 이용건수가 400만건 정도였는데, 올해 1분기에만 200만건을 돌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환자들이 비대면 진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용자 만족도는 90% 이상이고, 오진율이 대면 진료보다 높다는 보고도 없다. 그렇지만 이 사업모델은 한국에서 원칙적으로 금지다. 의료법 제17조와 제33조에 의해 병원 내 대면 진료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2. 솔라 살롱(Sola Salon) 스튜디오는 2004년 설립돼 뉴욕, LA 등 530여 개 매장을 가진 공유미용실이다. 과거 미용사들은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소속돼 높은 수수료(70%)를 떼 30%만 손에 쥐는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은 공유미용실로 고정 멤버십만 내면 80%까지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식 공유미용실은 한국에서 불법이다. 공중위생법 시행규칙 제2조와 공중위생관리안내서 위반이기 때문이다. 공유미용실의 미용사는 본인이 관리하는 칸막이 안에 모든 설비, 심지어 샴푸실까지 갖추어야 한다. 공유미용실에 공유시설이 별로 없는 셈이다.
비대면 진료 금지나 공유미용실 규제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국적(無國籍) 규제다. 한국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오진 위험이 높고, 대형 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전화 진료의 한시적 허용이 발표된 후 80일간 26만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루어졌다. 그사이 오진은 없었다. 더욱이 스마트기기의 발달과 만성질환자의 의료데이터, 인공지능의 성장은 오진 우려를 감소시킬 것이다. 대형 병원 쏠림 우려도 무조건 막기보다는 의료 전달체계, 수가 등에 대해 양립 가능한 유인기제(Compatible Incentive Mechanism)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다.
미용실 공유 규제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2012년 시행규칙 개정 당시 미용실을 공유하면 비위생적이고 화재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공유미용실 스타트업이 고정 멤버십을 받는 대가로 위생과 안전관리자 등을 통해 직접 챙긴다. 비슷한 규제에 얽혀 있던 공유주방이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화를 도모하고, 코로나19 위기에도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처럼 공유미용실도 샌드박스로 사업화를 꾀하고 있다.
규제는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다만 규제를 장벽 삼은 기득권 집단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좋아한다고 무조건 바꿀 일도 아니다. 먼저 규제는 비용이라는 인식과 함께 편익과의 저울질이 필요하다. 규제개혁 선진국이라는 영국, 미국 등은 규제비용 총량을 관리하는 동시에 부처별 감축 목표치까지 정해놓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도 참여정부에서 비슷한 아이디어인 `행정부담감축제` 도입 얘기가 나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행정입법의 경우 규제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나 의원입법은 이마저 거치지 않고 있어 더 문제다.
외국인투자기업들은 독특한 규제를 많이 가진 나라를 `갈라파고스 규제국가`라 부른다.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우리나라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유도하려면 정부와 국회가 신법 제정 시 외국 유사 사례를 찾아보고 외국에 없는 규제는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한마디로 기존 규제를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국제기준과 동떨어지게 우리나라를 비대면 갈라파고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