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암 조각공원으로
십이월 셋째 월요일이다. 엊그제 뭍으로 건너가 창원 근교 서북산과 불모산을 누볐다. 서북산에선 감재를 넘어 헛개나무를 잘라 오고 불모산에선 무념무상 가랑잎 쌓인 길을 걸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와실로 들었다. 일주일 뒤 동지가 다가와 해가 짧아졌다만 산책을 다녀올 요량으로 차림을 바꾸어 연사 정류소로 나갔다. 능포로 가는 10번 버스를 탔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좋았다. 그보다 미세먼지가 끼지 않아 더 좋았다. 내일은 기압골 통과가 예상되어 전국적으로 비가 예보되었다. 주중 연초 내륙에 머무니 갑갑함을 느껴 퇴근 후 자투리시간일지라도 시내버스를 타면 바닷가로 나갈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능포다. 연사 정류소에서 저녁 공부를 하지 않고 하교하는 아이들과 같이 버스를 타 송정고개를 넘어 옥포로 갔다.
아주에서 대우조선소 정문을 둘러 두모고개에서 장승포로 들었다. 능포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몇 되지 않았다. 능포항 동쪽 방파제로 나가니 낚시터를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날이 어둑해 와도 걱정은 없었다. 양지암 등대와 조각공원은 찾았기에 지형지물이 익숙하다. 저녁엔 들리지 않았어도 조각공원은 가로등이 켜져 야간 산책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일몰 후 금방 어두워져 산행은 무리였다. 산책도 가로등이 켜진 곳만 찾아가려니 한정되었다. 옥포와 장승포를 지난 능포 종점까지 갔던 것이다. 연사에서 능포까지는 사십여 분 걸렸다. 퇴근 후 여러 차례 그곳으로 나갔다. 수변공원을 거닐기도 하고 봉수대도 올랐다. 양지암 등내나 조각공원에 오르고 장승포 해안 길을 산책하기도 했다. 양지암 조각공원을 찾아 산책할 셈이다.
어느 해변이나 낚시꾼들이 더러 찾았다. 갯가에서 그들을 볼 때마다 내가 낯선 곳에 머무는 이방인임을 실감한다. 나는 낚시에 문외한일뿐더러 앞으로도 입문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낚시는 물때를 맞추어 하는 듯했다. 동짓달 스무날은 물때가 아닌지 낚시꾼이 한 명도 없었다. 용왕님이 만조백관들을 용궁으로 불러들여 어전회의를 열어 물고기들이 연안으로 나올 겨를이 없나 보다.
방파제를 지나 비탈길을 오르니 건너편 덕포는 불빛이 훤했다. 바다 건너 저 멀리 북쪽에는 거가대교에서 알록달록 야간 조명이 들어왔다. 진행 방향 갈림길에서 등대로 가질 않고 가로등이 켜진 조각공원을 향했다. 산등선으로 오르니 능포 주택지와 수변공원엔 불빛이 점차 밝아왔다. 야자매트가 깔린 산책로를 지나니 조각공원이 나왔다. 가로등에 반사된 몇몇 작품을 둘러봤다.
낮에 조각공원을 찾는 이가 드문데 초저녁은 한 명도 없었다. 아까 지나온 해변에 낚시꾼이 없었듯이 조각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인적이 드문 곳을 즐겨가는 나에게 알맞은 산책코스였다. 처음엔 조각공원까지만 두르고 능포동 주민자치센터로 내려갈까도 했는데 가로등이 켜진 길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진해만 바깥은 대한해협 밤바다를 오가는 여러 선박에서 줄지은 불빛이 비쳤다.
바다에는 컨테이너운반선과 고기잡이배들이 섞어 있는 듯했다. 밤이라 기관 엔진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조각공원이 끝난 지점에서 장승포로 돌아가는 해안 산책로로 들었다. 가로등이 켜져 있고 차량은 다니질 않아 걷기에 좋았다. 낮에는 산책객이 더러 나왔을 텐데 초저녁이라 인적이 뜸했다. 벚나무가 나목이 된 산책길 절벽 아래는 갯바위에 부딪힌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가덕도는 실루엣으로 비치고 먼 다대포 일대는 아파트 불빛이 훤했다. 어둔 밤바다 수평선으로는 배들이 켠 불빛이 줄을 지어 비쳤다. 날씨가 춥지 않고 공기는 상쾌했다. 제법 긴 해안 산책로가 끝난 곳은 장승포 포구였다. 어선들은 조업을 나가 포구는 썰렁했다. 수협 앞에서 고현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 연사에 내려 와실로 들었다. 밥솥에 전원을 넣고 찌개를 끓여 한 끼 때웠다. 1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