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헬스조선DB음주운전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만취 음주운전자가 9살 어린 생명을 앗아간 뒤 음주운전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등의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음주운전보다 치사율이 높은 건 고령운전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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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 25%는 고령운전 탓, 2040년 고령운전자 1316만명
지난달 순천에서는 1t 트럭이 투표소를 덮쳐 3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70대 트럭 운전사는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오인해 잘못 밟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도 최근 통과했고 이렇다 할 병력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명백한 범죄인 음주운전과 달리 고령운전 사고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뼈아픕니다.
통계로만 보면 고령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위험합니다.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해 교통사고로 인한 전체 사망자 2916명 중 709명(24.3%)이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에서 발생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 206명(7.1%)의 3배를 넘는 수치입니다. 면허소지자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11%정도라는 걸 감안했을 때 높은 수치입니다.
앞으로 고령운전자는 폭증할 예정입니다. 경찰청 추산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면허소지자는 2025년 약 498만명, 2030년 725만명을 거쳐 2040년 1316만명에 달합니다. 이에 따라 고령운전 사고 건수도 덩달아 증가할 가능성이 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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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상황 대처, 젊은 운전자 0.7초·고령 운전자 1.4초
운전은 뇌 입장에서 고도의 멀티태스킹입니다. 거의 모든 뇌 영역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해야 교통 법규에 맞게 운전할 수 있습니다. 후두엽에서는 신호, 표지판 등 시각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해야 하고 측두엽과 해마에서는 공간 지각이나 목적지 등 기억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합니다. 두정엽에서는 팔과 다리에 명령을 내려야 하고 전두엽에서는 상황을 종합해 통제해야 합니다.
나이 들어 운전능력이 감소하는 까닭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뇌 영역의 감소입니다. 충북대 심리학과 정수근 교수(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는 “나이가 들면 뇌 신경세포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뇌 구조도 변해 신경세포 간 연결성이 약해진다”며 “신경세포를 감싸면서 정보 전달을 매개하는 수초 조직도 손상되는데 이러면 정보 처리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뇌 영역이 줄어든다고 인지기능까지 감소한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인지기능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걸 습득하는 건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고 기존에 해왔던 일을 수행하는 건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돌발 상황 대처 능력입니다. 정보 처리와 반응 속도가 느려지면 사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사물을 파악하는 정지시력과 동체시력은 40세부터 저하해 60대에는 30대 대비 80%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75세 운전자가 시각정보를 얻으려면 25세 때보다 약 16배 많은 빛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국립재활원이 가상현실을 이용한 도로 주행 검사를 실시했더니 돌발 상황 시 젊은 운전자의 반응 시간이 0.7초였다면 고령자는 1.4초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수근 교수도 “실제 참가자들이 간단한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노인들은 반응하지 말아야 할 때 반응하는 등 갑작스런 상황에선 행동 억제가 잘 안 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운전 방해하는 퇴행성 질환, “67~72세 때 찾아온다”
각종 퇴행성질환도 운전능력 감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도로교통법령과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총 23개 질환이 운전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먼저 퇴행성근시, 백내장, 난청, 메니에르병과 같은 질환은 시각 정보를 놓치게 만들고 경적 소리를 지웁니다. 퇴행성 관절염 등의 근골격계 질환은 핸들 조절을 어렵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심근경색과 같은 순환기계 질환과 치매 등 정신계질환은 갑작스런 사고 위험을 높입니다.
퇴행성 질환으로 운전 능력이 감소하는 시점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학계에서는 통상 70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7~2020년 교통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23개 질환을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고령운전자 연령 67~72세 사이에 교통사고 유발 질환이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퇴행성근시, 조울증, 정동장애, 조현병, 치매는 70~72세에 발병률이 높았고, 그 외 나머지 질환은 67~69세에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건강하다 응답하면 이상 無? “운전 능력 평가 기술 개발 중”
우리나라에선 현행법상 70세가 넘어도 적성검사만 통과하면 계속 운전대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적성검사라는 게 실제 운전능력을 증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운전자 본인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직접 평가하는 설문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작성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로교통공단이 효율적인 운전능력 평가기술을 개발한다고 합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현행 적성검사에 한계가 있다는 점과 앞으로 고령 운전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운전자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는 공통된 논의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다만 현재는 고령자 운전 능력 평가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인 방향성 등이 나온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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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반납하면 혜택주고 고령자 특화 차량 도입해야…
효율적인 운전능력 평가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정부 정책은 고령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그에 맞는 혜택을 주는 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에서는 70세 이상 운전자 면허 반납 10만 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운전을 생업으로 삼거나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에게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조준한 수석연구원은 “운전면허 자진반납제도, 농어촌 등 교통취약지역 이동성 확보 등은 고령자 연령대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적용으로 고령운전자 안전대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고령자 이동권 보장을 위해 특화 차량 도입이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일본은 2017년, 고령 운전 사고 방지 기능을 갖춘 ‘서포카S’를 도입하고, 보조금을 통해 차량 교체를 지원했습니다. 서포카S는 센서가 충돌을 예상하면 자동으로 비상 제동 장치가 작동합니다. 또 가속 페달을 밟아도 급발진하지 않도록 연료를 차단하는 억제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 사고 감소 효과가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본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서포카S의 10만 대당 인명 사고 건수는 일반 승용차보다 41.6% 낮았습니다.
오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