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지도자를 찾습니다!
음성 듣기
텍스트 보기
1970년부터 1973년 말까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았던 사람들은
훈련소장 정봉욱 (鄭鳳旭)소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논산훈련소에 들어가면 가끔 훈련소장 훈시가 있는데,
짧으면 두 시간이고, 길면 다섯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특이하였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 장성 가운데 가장 강직한 장군이었습니다.
그의 경력은 특이합니다. 본래는 북한군 소좌였습니다.
연대 병력을 이끌고 다부동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상관의 부당한 작전지시에 항의하여
인민군 2,000명의 연대 병력을 이끌고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육군 소령으로 임명하였습니다.
6·25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장군으로 승진하였습니다.
그는 공산주의 이론에 가장 정통하였는데,
그의 연설 내용은 공산주의 이론의 허구성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저서도 몇 권 남겼습니다. 그의 가장 큰 특성은 강직함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당시 공무원 사회보다 더 부패한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군대였습니다.
군대 가운데서도 가장 부패가 심한 곳이 논산 신병훈련소 였습니다.
장교들이 보급품과 부식을 빼내어 팔아먹는 것은 물론이고,
사병들의 병과 선정이나 근무지 배치 등을 돈을 받고 거래하거나 권력자들의 청탁에 따랐습니다.
이런 사정을 안 박정희 대통령은 정봉욱 소장을 투입하였습니다.
정봉욱 소장이 훈련소장으로 부임하자 마자, 논산의 경제가 멈추었습니다.
훈련소에서 군수물자가 부정적인 방법으로 유통되다가 공급망이 차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정에 관련된 장교들은 모두 구속을 시켰습니다.
특히 차량이 귀하던 시절에 장교들은 군용 지프를 몇백
리 밖에 있는
자기 고향의 친척의 결혼식 등에도 이용했습니다.
정 소장은 이를 일절 허용하지 않았고,
작전 이외에는 군용 지프를 절대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한번은 자기 부인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짐을 잔뜩 들고 걸어오다,
운전병이 지나가다 발견해서 집까지 태워 주었습니다.
당장 운전병과 자기 부인을 구속시켜 버렸습니다.
장교들 사이에서 "정봉욱은 미친 놈이야!"라고 따돌림을 당했지만,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알아주었습니다.
김신조 124군부대 침공 이후 거기에 대응할 간부 양성기관인
제3사관학교 창설 주무자였고, 초대 교장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관생도에게 얼마나 감화를 주었던지
2018년 95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육군3사관학교 동창회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지금도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이런 공직자를 찾습니다.!
2024.01.09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