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이 있으면 내가 댓글을 잘 달았는지, 잘못 달았는지를 짐작하는데도 아무런 덧글이 없으니
나도 무척이나 난감하다.
꼰대 : 늙은 남자를 지칭하나요? 그럼 반대로 늙은 여자한테는 어떤 단어가 있나요? '꼰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나이많은 남자가 잘난 체하는 것을 '꼰대'라고 말하면... 잘난 체하지 않는 늙은 남자는 뭐라고 부르나요?
나는 10대 소년기를 기억합니다. '얼른 스물 살이 되었으면... '하고요. 오래 전에 스물 살을 넘겼고, 지금은 일흔세 살이 되어서 여든 살을 바라보는 늙은것이 되었지요.
늙은것들이 대접을 못 받는 세상이지요. 그러는 너는 몇 살 먹었는데? 너도 곧이다. 꼰대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눈에 거슬립니다. 위 도표... 이미지에서... '부정적인 꼰대' 대신에 '긍정적인 꼰대'에 대한 자료가 동시에 제시되었으면요. 제시할 수 있겠지요?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꼰대' 낱말을 검색한다.
1) 학생들의은어로, ‘선생(先生)’을이르는말.
2) 학생들의은어로, ‘아버지’를이르는말.
3) (기본적인 의미)학생들의은어로, ‘늙은이’를이르는말
'과거의 꼰대'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했다.
'현재의 꼰대'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미래의 꼰대'는 아는 것조차도 모른다고 잡아뗀다.
'그런 사실은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모른다, 나중에 말하겠다. 변호사한테 위임한다. 심지어는 못 들은 척하며, 아예 입을 꾹 다물고는 서둘러서 현장을 빠져나간다(변호사 등을 잔뜩 대동하고...).
나는 미래지향적 인간이기에 아는 것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잡아떼야겠다.
초복이 지난 요즘(7월 중순)에는 날씨가 무척이나 무더워졌다.
나는 퇴직한 지도 오래되었고, 시골에서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를 보살폈다.
어머니가 아흔일곱 살 난 지 며칠 뒤인 2월 말에 또다른 세상으로 가셨기에, 나는 초상을 치루고는 그참 서울로 되돌아왔다.
농사 일을 접고는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나는 정말로 무기력하게 산다.
내가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날마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답답하다.
내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고작 인터넷 사이트인 컴퓨터를 작동시켜서 내 삶에서 별로 가치가 없는 뉴스나 읽고, 개인카페에서는 낭이 올린 글과 사진을 읽고, 더러는 나도 남의 글에 댓글 쓰고, 또 내 생활일기인 잡글이나 긁적거린다. 내 삶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 그렇고 그런 것들에 불과하다.
인터넷 뉴스, 개인 카페에 오른 남의 글을 읽고는 나도 댓글을 단다.
이런 댓글은 분명히 '꼰대-짓'일 게다.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행태는 엇비슷하기에.
칭찬과 격려가 아닌 '지적하는 듯한 댓글'을 달면 미움이나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기준에 다소 미흡한 글과 사진에는 댓글과 덧글을 단다. 이 짓거리라도 해야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꼰대-짓'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댓글 달면서 '꼰대-짓'을 하면서 나는 직간접적으로 배운다.
남이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이 먼저 눈에 띄이게 마련이기에. 남의 잘못 속에는 또다른 지식과 지혜를 엿볼 수 있기에.
나는 집나이 일흔세 살이다. 1949년 1월 생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상황을 어렴프시 짐작하고, 1960년대의 가난한 세상, 1970년대의 경제부흥기를 거치고, 1980년대의 정치적 혼란기를 겪으면서 살았기에 이제는 '세상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착각도 든다. 즉, 내가 경험한 잣대로 세상을 엿본다.
아쉽게도 내 엉터리인 잣대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들이, 미흡한 것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세상은 엉터리, 미숙하고, 가짜, 거짓, 짝퉁, 과장, 허위 등으로 가득 찼다는 인식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나는 오랫동안 '사기술'에 관한 뉴스 등을 모은다. 뉴스에서 뜨는 <사건/사고>에 대한 자료수집이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허술하기도 하고, 정말로 교활한 인간성도 엿본다.
이런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까 나름대로 '꼰대'의 시각도 가지게 되었다.
인생 후반기, 특히나 노년세대인 나한테 앞으로 남은 삶은 어떠할까?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일전 부동산 납세고지서를 보았다.
지난해보다도 1/3 이상으로 세금이 올랐다.
'우씨!' 하면서 눈쌀을 찌뿌린 나한테 아내가 한 마디했다.
'그거 별것도 아니네요. 있는 사람이 더 내야... 세상은 약자들이 살 수 있어요. 그거 세금을 내도 우리는 살 수 있어요.'
세상이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내 아내 맞아? 성당교인이라서 그럴까?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널널하다.
맞는 말이다. 그 세금으로 국방력을 키워서 국가안보를 지키고, 경찰관으로 하여금 사회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공공행정을 수행하고, 경제를 더욱 활성화하고, 더 나아가 사회약자를 보듬는 데에 쓸 것이기에.
아무런 종교관도 없고, 사회단체에 가입하지 않고도 사는 나.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세상은 정말로 많이도 변했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모두가 평준화, 평등하게 사는 세상으로 진화한다'는 느낌이 든다.
자연스럽게 '아는 척, 잘난 체, 권력을 많이 가진 양' 하는 것들이, 꼰대들이 사라진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