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나리오만큼 예쁘게 나온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식들과 어머니의 동행, 그 하나만으로 아름다운 영화인 거죠.”
언제부터인가, ‘전원일기’의 김 회장 댁 며느리 고두심(50)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어머니상이 됐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던 그 어머니, 혹은 지긋지긋한 삶에 풍화되어 한때의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마저도 다 잃어버린 ‘인어공주’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말이다.
‘엄마’(감독 구성주)는 어지럼증이 있어 탈것을 타지 못하는 어머니가 해남에서 목포까지 걸어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을 그린 영화다. 68세의 어머니를 연기한 고두심은 자애로운 어머니로만 비치지는 않는다. 반거들충이 같은 아들의 머리도 쥐어박고, 술에 취한 남편이 다리에서 오줌을 누다 떨어져 죽은 것을 회상하며 키득키득 웃어대는, 그런 살아있는 어머니다. 고두심이라는 배우는 다소 밋밋한 영화를 이끄는 힘. “아무래도 사건이 있다든가, 신비롭거나 충격적이지 않은 영화지요. 하지만 기분 좋게, 사람은 이렇게들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좋아요.”
어른을 위한 아름다운 동화 같은 시나리오와 너무나 선해 보이는 감독 때문에 택한 영화를 찍으며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딸의 결혼식장에서의 마지막 내레이션에서는 더욱 그랬다. “참 힘든 독백이었는데, 한번에 OK가 됐어요.” 평생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다가 4년 전 돌아가신, “배움은 짧았지만,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컸던” 어머니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자부심과 그리움이 반반이다.

▲ 영화 '엄마'의 한 장면 | |
고두심은 우리 영화계에 뒤늦게 안겨진 선물 같은 사람이다. ‘인어공주’에서의 그악스러운 어머니는 ‘무고한 희생자’로서의 관습화된 어머니를 넘어선, 일상 속 어머니 모습으로 새롭게 다0가왔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생활력이 강하면서도 소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진 어머니, ‘한강수 타령’에서는 내 자식도 아닌 자식들을 키우는 강인한 어머니처럼 어머니 역할이라 하더라도 반복된 것은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 시대 어머니는, “나의 삶도 있고, 너(자식)의 삶도 있다”고 생각할 줄 아는 어머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자주 중복되는 것은 아닐까. “뭔가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건 나의 팔자 같다. 제주도 여자 고두심, 김 회장 댁 며느리 고두심, 이런 시절이 지나니, 이제 ‘어머니 고두심’이다. 하지만 그게 억울하지는 않다. 새로운 것? 그건 기회가 오겠지.”
‘잘났어 정말’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사랑의 굴레’나 아주 성격이 고약한 배역으로 나왔던 2년 전 ‘인어 아가씨’를 할 때의 고두심을 ‘어머니 고두심’의 영역에만 한정하는 건 아까워 보인다. 게다가 꽤 관능적일 수 있는 외모와 날카로워 보이는 성격을 감안하면 중년의 ‘팜므 파탈’ 같은 역할도 욕심이 날 법하다. “지금부터 그런 시나리오가 들어올 것이다.” 예측인지, 바람인지 모를 답에 그의 속내가 보인다. “‘닥터 지바고’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아름답고 웅장한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가 젊은 시절, 김부선에 앞서 ‘애마부인’을 제안받고 거절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땐 너무 젊어서 그런 영화가 이상하게만 보였던 거죠.”
매일 아침 북한산에 오를 때 그녀는 오감으로 땅을 느끼며 ‘사람을 닦는’ 공부를 한다. “남의 눈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삐끗하면 다치는 게 산이에요. 고개를 숙이고 땅을 걷다 보면 자기를 낮추는 공부가 되지요.” 우리 시대의 어머니상인 고두심이 새 ‘인생’을 찾는 순간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영화적 순간이 될 듯하다.
첫댓글 언제나님, 저도 "꽃보다 아름다워"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노혜경 어찌 그리 시나리오도 잘썼는지 몰라요. 연기자들 역시 공밥 먹지 않지요.
달래 님~ 반갑습니다. 노희경과 고두심 사이의 인간적인 신뢰도 참 보기 좋았습니다. 달래 님께서 힘을 실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