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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풋볼뉴스(Football News) 원문보기 글쓴이: 블루문
정서는 경기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서를 잘 조절하면 기복 없는 경기력을 유지하는 힘이 생긴다. 특히 불안감, 부담감, 압박감 등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감정에 잘 대처할 필요가 있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1편에서 주인공 라일리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감정을 캐릭터화 한데 이어 2편에서는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라는 네 개의 감정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해 성장에 대한 공감도를 높인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주인공과 함께 감정의 소용들이 속에서 신념이 생기고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감정이 ‘나’를 이루고 성장하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축구로 떠올리는 감정, 즉 정서는 어떤 게 있을까? 아주 쉽게 구분하면 ‘나는 축구를 좋아해’ 혹은 ‘나는 축구를 싫어해’ 같은 표현으로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의미한다.
정서가 축구에 미치는 영향
축구를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요인은 몇 가지가 있다. 집중력으로 대변되는 심리적 기본기, 경기를 풀어가는 경기 지능, 동료 또는 지도자와 소통할 있는 소통 역량 등이다.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서’를 정의하면 강력하고 주로 통제 불가능한 감정을 포함해 생리적 변화를 수반하는 경험이다. 감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쁨, 즐거움, 행복감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신체 반응이 있다. 불안, 부담, 압박 같은 감정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하거나 체온이 확 올라 덥다고 느껴지거나 하는 몸의 반응이 이어진다.
우리가 경험하는 정서는 다시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로 구분할 수 있다. 긍정 정서는 감사, 행복감, 즐거움, 평화로움, 만족감, 차분함 등이다. 대부분 우리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쪽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정 정서는 분노나 과민함, 짜증, 불행감, 무서움, 겁, 두려움 등이다. 긍정 정서와 달리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경직되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축구에서 정서 조절이 필요한 대상은 후자라고 볼 수 있다. 불안감, 부담감, 압박감 등 심리적으로 불편한 상태를 잘 조절하면 기복이 적은 선수가 될 수 있다. 기복은 잘할 때와 못할 때의 편차를 의미한다. 어떤 경기에서는 무척 잘했던 선수가 다른 경기에서는 굉장히 못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기복이 심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기복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정서 조절에 조금 더 신경 써 보자.
[자료1] 황희찬의 득점 세레머니
[자료2] 프리킥 상황에 대처하는 양팀 선수들의 자세. 곧 시그널이 될 수 있다
부정 정서(불안감, 부담감, 압박감)의 기능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부정 정서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불안감과 부담감 그리고 압박감이다. 불안감은 특정한 대상 없이 막연히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를 뜻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전세계에서 바이러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로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다. 그런 느낌과 생각을 불안이라고 한다. 경기장에서라면 킥오프 직전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휘슬 울리기 직전, 안도감이나 확신이 떨어진 상태를 불안감을 느끼라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부담감은 불안과 조금 다르다.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느낌이다. 페널티킥 혹은 승부차기 키커로 나간 선수가 흔히 느끼는 감정이다. 골대 앞에 선 키커의 머릿속에는 슈팅이 반드시 골대로 향해야 성공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부담감이 너무 커지면 판단력이나 주의력이 약화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담감이 긍정적 역할도 한다. 이 내용은 뒤에서 다루겠다.
또 다른 부정 정서로 압박감이 있다. 내가 무언가에 내리 눌리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경기에서는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선수가 공을 갖고 있을 때 그 선수를 수비하기 위해 여러 선수가 포위하는 장면이다. 공을 가진 선수는 당장 큰 압박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때 빠져나온다면 큰 기회가 생긴다.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일어나는 에너지 회오리가 바로 압박감이다.
부정 정서를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경기에서 패하거나 혹은 개인 플레이가 잘 안되는 날이 있었다면, 당장은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날 수 있다. 말 그대로 부정적인 정서다. 그런데 이 정서를 경험하고 나면 다음 경기에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훈련이나 분석을 열심히 하게 된다. 사람은 부정 정서보다 긍정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서는 동기촉매제 역할을 한다.
정서의 기능을 조금 더 살펴보자. 정서는 선수나 감독의 선택을 도와준다. 경기 중 판단이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더 좋아하거나 더 즐거운 쪽으로 선택할 때, 정서적인 판단이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투지, 끈기, 승부욕 등 끝까지 싸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내가 원하는 결과’라는 긍정 정서를 경험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정서는 나와 타인을 보는 창의 역할도 한다. ‘타인을 보는 창’은 나를 맡고 있거나 내가 막아야 하는 상대를 정서를 통해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경기 중에 상대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적 상태 또는 생리적 반응이 나의 다음 움직임을 끌어낸다. 공격 진영으로 달려가는 상대 공격수를 보면서 ‘저 선수가 어떻게 움직일 것 같으니 나는 이렇게 움직여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도와주는 재료가 바로 정서다.
‘나를 보는 타인의 창’도 마찬가지다. [자료 1]은 국가대표 황희찬의 세레머니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득점 장면을 보지는 못했어도 골을 넣고 경례하는 제스쳐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당연히 기분도 좋은 상태일 것이다. 어떤 선수가 이런 동작을 한다면 무척 기분이 좋은 상태이고 득점에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유추하게 만드는 재료 또한 정서다.
마지막으로 정서는 위험 상황에서 경고 기능을 한다. [자료 2]는 프리킥 상황을 포착한 사진이다. 공격과 수비 할 것 없이 양 팀 선수들의 표정과 동작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격하는 팀은 득점하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고, 수비하는 팀은 빠르게 행동해 실점 위험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이때 양 팀 선수들의 정서가 신체 반응을 ‘빠르고’ ‘강력하게’ 움직이도록 유발하는 재료로 쓰인다.
종합하면 경기를 하면서 느끼는 불안감이나 부담감, 압박감은 제거해야 할 정서가 아니다. 부정 정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서 조절하기
부정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
1) 불안감: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 불안을 느낀다. 축구의 운동 수행 측면에서 본다면, 불안은 크게 두 가지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주의 초점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근수축-이완의 협응 구조(코디네이션) 변화다. 주의 초점은 시야와 관련된 능력이다. 우리는 눈으로 여러 정보를 담는다. 눈으로 보는 정보는 환경시와 초점시로 구분된다.
환경시는 180도 정도를 확보하는 일반적 시야다. 눈을 뜨고 있을 때 그냥 들어오는 정보라고 이해하면 된다. 초점시는 주의를 기울여 보는 시야다. 3도에서 5도 사이 아주 좁은 각도의 정보만 눈에 담는다. 보통은 환경시와 초점시가 번갈아 여러 상황과 변수를 정보의 형태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불안을 느끼면 초점시가 작아진다.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다. 경기 중 주변 환경이나 동료 위치, 상대 선수 움직임 등을 보지 못하고 상대 페인팅에 훅 넘어가는 경우다.
불안해지면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구조도 변한다. 슈팅, 헤딩 등의 동작은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이뤄진다. 불안을 느끼고 긴장하는 순간 수축-이완의 강도나 힘, 순서가 상대적으로 바뀐다. 똑같은 동작을 시도해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플레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다.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는 실수에 머물기 보다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불안과 긴장은 크고 작은 실수로 이어지는데, 실수만 떠올리면 정상적인 경기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실수 장면에 대해 ‘잊자, 잊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금물이다. ‘잊자’고 생각하는 것 자체로 실수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실수를 한 기억은 지난 시간과 함께 떠내려 가도록 두자. 바로 다음 플레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조금 더 뛰거나 다음 동작을 선택하는 쪽으로 더 집중하면 실수로 인한 긴장과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
2) 부담감: 부담감은 의무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과 자세다. 과도한 부담감은 판단력과 주의력을 방해한다. 부담감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선택지도 많아진다. 단순하게 슈팅하면 될 상황에서 패스를 할지 한번 접고 들어갈지 등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판단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부담감에 눌리면 좋은 경기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담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앞서 의무와 책임을 언급했는데, 바로 그 책임감 때문에 성실하고 꿋꿋하게 훈련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성실하고 꿋꿋하게 무언가를 해 나가면 동료들과 지도자가 나를 믿어준다. 스스로를 믿는 신뢰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부담감 역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에너지다. 축구 할 때 생기는 여러 부담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 보자. 긍정적인 자극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다.
3) 압박감: 압박감은 과제를 달성하려고 할 때 생기는 에너지다. 추가 시간 4분을 남겨놓고 상대에 끌려가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혹은 내가 공을 잡고 있을 때 상대 수비 다섯 명이 나를 에워싸는 상황이어도 좋다. 정서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섯 명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면 분명히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 당장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면 돌파해 압박을 벗어나면 상대는 다섯 명밖에 남지 않는다. 순식간에 나와 우리 팀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순간을 벗어나면 긍정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에너지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면 문제 상황을 단순화하는 게 좋다. 야구 레전드 고 최동원이 이런 사례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기사로 소개된 내용을옮기면 이렇다.
‘최동원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일종의 의식을 치렀다. 먼저 오른손으로 로진백(송진가루)을 턴 다음, 스타킹을 두어 번 잡아당기고 이어 무테안경을 바로 잡은 다음모자를 바로 섰다. 그리고 글러브 안의 공을 오른손으로 쥔 다음 허리 뒤춤으로 가져갔다. 투구준비 완료다.’(조선일보 2011, 5. 7)
이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루틴이다. 반복적이고 정형화한 동작 패턴을 통해 복잡한 환경을 정리하는 것이다. 패턴을 단순화하면 상대를 의식할 필요 없이 내 마음과 몸의 준비에 집중할 수 있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플레이에도 훨씬 안정감이 생긴다. 압박감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각자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보자. 단순화한 패턴을 통해 경기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서 조절이 잘 되면 안정감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다.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는 경험이 쌓이면 ‘나는 이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선수’라는 확신이 생긴다. 그 생각 자체가 또 안정감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심리적으로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부정 정서를 잘 이해하고 다뤄야 하는 이유다.
* 2024년 KFA 선수 교육 프로그램 내용을 지면에서 볼 수 있도록 재구성한 글입니다. 전체 내용은 유튜브 KFA_ACADEMY 채널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4월호 ‘PSYCHOLOG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강사=윤영길(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
정리=배진경
사진=FAphotos
첫댓글 정보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