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 김민정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였다
헤어지자며 남자는 그랬다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호(號)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a bitch
사전은 좀 찾아보셨나요? 누가 볼까
가래침으로 단단히 풀칠한 편지
남자는 뜯고 개자식은 물로 헹굴 때
비로소 나는 악마와 천사 놀이를 한다,
이 풍경의 한순간을 시 쓴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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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치사하군요. 언제는 특이하게 시 쓴다고 달라붙더니 이제와선 시 쓴다고 트집 잡는 당신. 시인이 필요한 곳은 인간의 몸, 마음, 정신 중 어디일까. 세상의 어느 자리에 시인은 앉을 수 있을까. 헉, 그게 그런 거였어? 다정과 힐난이 줄넘기 넘는 아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거야 인생 다반사 그 모양이니 그렇다 치지만, 차버리고 떠나는 마당에 꼰대 같은 이유씩이나 조목조목 들이대며 ‘안전망’ 구축하는 당신. 마음 변했으면 그냥 쿨하게 잘 가줘요, 당신한테 시 쓰고 살라고 안 할 테니까. 여기서 뭉개져 시 쓰고 사는 거야 내 인생이죠. 난 내 인생이 좋다구요! 애인과 우습게 헤어지고 화가 나서 팔짝팔짝 뛰다가 푸른 밤바다를 보고 온 것 같은 시. 시시콜콜 가르치려드는 꼰대님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로 쓰기 쉽지 않은 바람맞은 시. 깎자고 덤비는 세상에서 너무 싸게 파는 거라서 더 이상 깎아줄 수 없는 시. 안 착해 보이는 착한 시. 그러니 우리 해피하자구요.